'일 리가 없잖아……!'
미안하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틀려먹었다.
내가 원하는 바를 하나도 캐치하지 못하고 있다.
정말 다크라는 걸 부정할 목적으로 쪽지를 보냈을까?
방송을 보는 시청자들이 알고 싶은 건 진실이 아니다.
까놓고 말해 진실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재미라는 이름의 액기스.
그들이 원하는 건 오직 그것 뿐이다.
'무슨 아니라는 전제 하에 방송을 진행해. 아니라는 걸 밝혀내는 것 자체가 컨텐츠인데.'
BJ가 시청자의 입장에서 딴지를 걸어줘야 된다.
그래야만 시청자들의 답답함이 해소되지 않겠는가?
하늘이 알고 땅이 아는데 왜 다크가 아닌 척을 해?
적어도 시청자들은 그렇게 생각할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그 장단에 맞춰줄 필요성이 있다.
연기가 아니라 진심으로 그런 짓이 가능한 인간.
〈저는 다크가 아닙니다. 일련의 소문은 전부 헛소문입니다. 이 점 명확히 해주시길 바랍니다…… 는 개뿔이 대리충 슈발 새끼가 대가리에 총 맞았나?!〉
어디선가 들어본 구수함이 느껴지는 욕설이다.
욕쟁이 할머니의 젊은 남자 버전.
심지어 키까지 거의 비슷하다.
-크으……! 러이갓 팩폭 지렸고요
-이 맛에 러이갓 방송 본다ㅋㅋㅋ
-??릾캆 쵮?????럾?!
BJ러이갓의 방송이다.
BJ러너맨과는 상반된 태도를 보인다.
그냥 대놓고 가릴 것도 없이 다크를 까고 있다.
일련의 이유는 짐작할 것도 없다.
채팅창을 들여다 보면 올라온다.
BJ도 적지 않게 신경 쓰는 눈치다.
-근데 이러면 합방 물 건너 간 거 아님?ㅋㅋ
-어차피 GOO 엔터한테 밀릴 꺼 뻔하니까
-러이갓 태세 전환 역겹죠?
〈채팅창에서 어그로 끄는 슈발 새끼들은 대가리에 카구팔을 쳐맞았나……. 행님들! 러이갓 하면 소신 아닙니까?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도 아니고 다크인 게 뻔하기 때문에 내가 이렇게까지 언성을 높여서 말을 하는 거지.〉
나중 시점으로 생각하니 약간 많이 어폐가 있긴 하다.
하지만 지금 시점으로 생각하면 의외로 맞는 말이다.
러이갓 하면 안 좋은 이미지가 박혀 있으나.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거든.'
솔직한 소신 발언으로 인기를 끌었다.
걸쭉한 입담과 게임 예능까지 더해졌다.
최고의 BJ 중 하나로 자리매김할 만했다.
〈파프리카TV가 개인 방송국이 아니라 좆목 방송국이 되고 있는 이 시국에 제가 GOO 엔터테인먼트 얘들 때문에 소신 굽히고 다크를 다크라고 하지 않으면 되겠습니까? 무슨 조선시대도 아니고 진짜로.〉
-캬~ 사이다!
-이 맛에 러이갓 방송 보지
-?で?못하고 있자너ㅋㅋㅋ
적어도 현재 시점에서는 그러하다.
그리고 지금은 그의 최전성기.
파프리카TV의 투탑이라 할 수 있다.
'모든 BJ를 다 체크할 필요는 없어.'
파프리카TV에 산재한 여러 BJ들.
그중 교섭할 사람은 탑급 BJ뿐이다.
그 이하는 화제를 키우기 위한 방편이었다.
현재 시점으로 따지면 러너맨과 러이갓.
둘 이상의 파급력을 가진 BJ가 없다.
과연 둘 중 어느 쪽을 택할 것인지.
'내가 GOO 엔터테인먼트 쪽 BJ들과 다수 접촉했으니 결국은 GOO 엔터테인먼트와 합방을 할 거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러이갓이 태도를 바꾼 것은 아마 그런 연유에서 일 것이다.
어차피 안된다면 반대쪽 파이라도 챙겨 가자.
계산적인 속셈이 묻어있다.
〈행님들, 대리충이니 출석도 대리로 할 거라고 생각되시면 우측 상단에 터치따봉 부탁드립니다 앙 러모띠!〉
-출석도 대리로ㅋㅋㅋㅋㅋ
-러빡이로서 ㅇㅈ합니다
-러이갓 드립 빵빵 터지네
그렇게 드문 이야기가 아니다.
인터넷 방송은 전쟁에 가깝다.
총탄이 오가지 않을 뿐이다.
'시청자의 수는 정해져 있고, 한정된 인원을 나눠 먹는 거니까.'
진영 논리, 색깔 논리가 없을 수가 없다.
애초에 투탑 체제인 만큼 당연하다.
그렇다면 나에게 밉보인 거냐?
그게 또 그렇지가 않다.
오히려 그 반대라고 볼 수 있다.
내가 원한 건 바로 이런 신선함이다.
'기관총처럼 쉬지 않고 새어 나오는 악의. 이 정도는 돼야 나를 감당하지.'
저는 다크가 아닙니다 일련의 소문은 전부 헛소문 어쩌고저쩌고.
나와 합방을 하고 싶다는 BJ들에게 일관되게 돌린 쪽지다.
그들의 성향과 입장을 알아둘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단기간에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의도적으로 벌인 사건이다.
진위가 밝혀지는 순간 관심이 사그라들 건 당연한 이치.
즉, 물 들어왔을 때 노를 제대로 저어야 한다.
내가 노 젓는 걸 열심히 응원해주는 사람!
그게 바로 러너맨이고.
지가 더 잘 젓는다고 잘난 척하는 사람이 러이갓이다.
두 사람의 성향 차이는 합방의 방향성과 흥행과도 직결된다.
'뭐, 내 기대가 그렇다는 소리지만.'
적어도 뻔뻔한 사람과 티키타카 하는 게 더 편한 것은 맞다.
이러한 이유가 있어 최종 선택을 하게 된 BJ는 러이갓.
방송에 대한 진정성, 안타깝게도 나한테는 별 의미가 없다.
결정적으로.
〈저희 GOO 엔터테인먼트에서 책임지고 섭외할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형님들~!〉
BJ러너맨이 대표를 맡고 있는 GOO 엔터테인먼트.
향후 운명이 어떻게 될지 너무 잘 알고 있다.
너무 잘 알고 있어서 문제다.
'조금 많이 안타깝게 되더라고.'
아는 사람들은 아는 이야기.
현재는 나밖에 모르는 이야기.
물론 미래의 일은 어디까지나 미래의 일이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로 왈가왈부할 건 없다.
그런데 그 미래가 내일 모레면 이야기가 좀 많이 달라진다.
GOO 엔터테인먼트는 채 한 달이 되지 않아 무너질 모래성이다.
그보다는 향후 2년 동안은 잘 나갈 러이갓.
방향성까지 맞으니 고민할 것도 없다.
타산적인 사람과는 잘 맞는 편이다.
* * *
오늘 낮, 여러 BJ들의 방송을 둘러보았다.
과연 누구의 게스트로 가는 게 좋을지.
선택의 시간 끝에 고르긴 했으나.
'원래 인생에는 100%라는 게 없어.'
옛말에 평안 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
쪽지를 보내온 건 러이갓이지만 태도를 바꿨다.
민심과 입장을 고려해 지금의 태도를 고수할 가능성도 있다.
─파프리카 No.1 BJ, 러이갓입니다.
후후, 저와 합방을 하고 싶으시다고요?
.
.
.
답장은 생각 이상으로 빠르게 왔다.
하지만 그 내용이 긍정이란 보장은 없다.
그도 그럴게 다크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이었다.
반대쪽 파이를 챙겨가겠다는 심산.
그걸 감안해도 욕설이 워낙 생생했다.
쌍욕을 하며 거절해도 이상하지 않다는 소리다.
'러너맨이랑은 캐미가 별로 안 맞을 거 같아서 좀 그런데.'
그가 거절한다면 차선책은 러너맨.
다른 BJ들의 고려의 대상이 안된다.
인지도와 시청자 수에서 차이가 극명하다.
캐미가 맞는 사람은 인지도가 낮다.
인지도가 되는 사람은 캐미가 안 맞는다.
러이갓의 대답이 예스일지, 노일지.
딱히 고민할 것도 없었나 보다.
─참으로 탁월한 선택하신 겁니다!
여기서만 말씀드리는 건데……
다른 BJ들은 게임만 할 줄 알지 입 털 줄을 몰라요 입을
저랑 방송을 한다는 것 자체가 흥행의 보증 수표 아니겠습니까?
컨텐츠, 완벽하게 짜놓을 테니 몸만 와주시면 됩니다 네^^
아무래도 철저한 방송인인 모양이다.
내가 어째서 쪽지를 보냈는지.
그 의도를 눈치챈 듯 구구절절 자세하다.
BJ러이갓에 대해서는 이전부터 알고 있었다.
롤판에서 거의 다크급으로 미운 이미지가 단단히 박힌 분이다.
그럼에도 두터운 팬층을 보유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롱런했다.
BJ란 직업의 수명이 프로게이머급으로 짧음에도 불구.
병크를 터트리는 2018년까지 잘 먹고 잘 살았다.
그 장수의 비결을 알 것 만도 같다.
'태세 전환이 우두루급이네…….'
란이 일어난지 고작 열흘 남짓.
그 짧은 시간에 온갖 깽판은 다 치고 다녔다.
커뮤니티에서 '마왕' 이라는 두 글자가 친숙해질 만도 하다.
─다크 복귀 임팩트 강렬하긴 하다……
혼자 PC방 대회 싹쓸이하고
솔로 랭크도 미친 양학 중이고
어느 쪽으로 종결나건 후폭풍 크긴 할 듯ㄷㄷ
만약 예상대로 다크가 맞다면.
한 차례 해프닝으로 끝날 일이다.
그도 그럴게 다크가 아~무리 잘해봤자 의미가 없다.
└어차피 다크는 프로 못함ㅋㅋㅋ
└응, 앞으로 천년은 못 봐~
글쓴이-다크가 아닐 수도 있는 거잖아?
└그럴 리가 있나ㅋ 아니면 프로팀들이 가만히 있겠음?
설사 그의 실력이 너무 탐이 난다!
세간의 지탄을 감수하고라도 영입하고 싶다!
그런 생각을 가진 프로팀이 있다고 해도 그림의 떡이다.
저지른 사고가 웬만한 수준이었다면 모른다.
실제로 트러블이 있음에도 영입하는 사례가 있다.
하지만 다크의 경우에는 그 정도가 너무 심각하다.
천년 정지.
악의 축에 가까운 롤판에서의 이미지.
프로게이머는 물론 코치나 다른 관계자 직종도 불가능하다.
다크의 부캐로 판명 난 이상 더 볼 일도 없겠지.
PC방 대회조차 출전 금지 당할지 모른다.
갑작스레 새바람이 불어닥친다.
─러이갓 방송 공지 실화냐??
오늘 게스트로 마왕 초대한다는데?
뭐지, 러이갓 다크 싫어하는 거 아니었나
└걔는 컨텐츠만 되면 상관없을 걸ㅋㅋ
└파프리카 최고의 비제이 럾?
└러빡이들 신나겠네ㅋㅋㅋ
BJ가 유명 네임드가 합방을 한다.
드물기는 커녕 익숙한 느낌이다.
초대석이라던지, 파프리카TV의 흔한 컨텐츠 중 하나다.
하지만 그 대상이 마왕이라면 이야기가 많이 달라진다.
다른 누구도 아닌 다크의 부캐.
설마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설마 정말로 다크 아닌 거 아니야?
잉벤에서 잔뜩 집단 린치 했는데
아니면 흠좀무……
그냥 아이디 세탁한 거겠지?
└뻔뻔하게 등장할 확률 100%
└워낙 얼굴에 철판 깐 새끼라ㅋㅋ
└혹시 친구가 대신 가고 그러려나
└대리충이라 출석도 대리로 할 듯
마왕이 정말 다크가 맞는 걸까?
아니면 일방적인 오해의 산물일까?
어느 쪽이든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후자라면 잉벤으로선 난감해진다.
겉으로 보이는 여론은 바뀌지 않았다.
그냥 다크가 또 쇼하는 거잖아.
그럼에도 내심 혹시 하는 생각이 든다.
당연히 다크라 생각은 하지만 그래도…….
아주 잠깐 확인을 할 뿐이다.
며칠 남은 것도 아니고 당장 오늘이다.
금일 늦은 밤에 진행되는 게스트 방송.
파프리카TV의 러이갓 방송국에 드나드는 방문자가 유난히 많아진다.
* * *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일관성이 있었다.
마왕의 편을 드는 GOO 엔터.
자칭 소신 발언의 러이갓.
〈행님들, 제가 다 들었다니까요?〉
하지만 현재, 새로운 구도의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다.
단 하루, 시간으로 따지면 고작 한나절 만이다.
시청자들 입장에서 적응이 안될 수 있겠으나.
-네 다음 입벌구!
-뻥일 거 같은데……
-역시 어그로는 러이갓이지ㅋㅋㅋ
BJ러이갓의 방송이다.
그의 애청자라면 딱히 놀랄 만한 일도 아니다.
단순히 재밌는 일이지.
반전이라는 건 언제나 신선함을 선사한다.
숨 쉬듯이 과거의 발언을 각색시킨다.
입장을 뒤집는데 있어 거의 프로라고도 볼 수 있다.
『LoL◈러이갓』챌린저 미친 캐리ㅋㅋㅋㅋ★【☞35승4패
『LoL◈러이갓』새벽 생방★【미드 티몽☞핵콤보BUG 최초 공개
『LoL◈러이갓』마이忠정글☞승리시★별풍 10000개★레전드 미션!
들어가 보면 챌린저가 아니라 다른 노란 맛인 골드고.
티몽이 5데스로 똥 싸면서 팀탓 하고 있고.
아예 대조적인 모습이 관찰된다.
그게 나쁜 짓이냐?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
원래 파프리카TV의 방송은 어그로가 생명이다.
진지한 발언을 했을 때 신빙성이 다소 떨어질 뿐이지.
〈파프리카TV No.1 BJ 러이갓 아닙니까? 물어보면 다 자연스럽게 합방각 잡히는 거지~.〉
때문에 일련의 상황도 아리송해진다.
정말로 마왕이 다크가 아닌 걸까?
합방을 위한 큰 그림에 불과할까?
「안녕하세요 다크 부캐라 오해 받고 있는 잘하는사람입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진실이다.
장본인에게 정말로 답장을 받았다.
부정을 할래야 할 수가 없는 증거를 들이밀었다.
〈음~~ 오지고 지리고 레리꼬 스무th~!〉
쏟아지는 어그로에 오르가즘을 느낄 만도 하다.
BJ의 입장에서는 더할 나위 없는 상황이다.
무려 2만 명에 달하는 시청자가 함께 한다.
하지만 언제까지 지속되지는 않는다.
그도 그럴게 증거가 고작 쪽지 하나다.
2014년 6월 27일 토요일 오후의 7시.
약속의 시간을 향해 카운트된다.
공지의 내용이 거짓이 아닌 이상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