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6화 (26/201)

-저격한다는 애들 특징 : 브실골임

잉벤의 방해에도 순조롭게 흘러간다.

* * *

킬리만자로의 표범.

클랜원 전부가 최소 다이어 티어다.

명실상부 로드 오브 로드 상위권 클랜이다.

클랜장은 무려 챌린저 티어!

마스터 티어 유저도 상당수 존재한다.

하지만 과거에는 고작 그 정도가 아니었다.

"나 나가고 진짜~ 퇴물되긴 했다 클랜."

"죄송합니다. 제가 부족해서……."

수원시 시내의 24시간 카페 안.

두 명의 남자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한 명은 킬리만자로 표범의 부클랜장 최명태.

"니가 무슨 잘못이냐? 다 클랜장이 관리를 못해서지. 안 그래?"

"……."

군대였다면 소름 끼칠 수 있는 광경이다.

흔히 거론되는 내리갈굼.

당사자가 아니라 그 윗사람을 욕한다.

그런데 클랜장이라면 가장 윗사람인데?

그럴 만도 하다.

다른 한 명의 남자는 前클랜장인 차승혁이다.

클랜을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런 말을 해도 될 만한 입장이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지금은 클랜을 탈퇴한 상태긴 하지만.

"표정 풀어라. 형이 너랑 클랜 생각해서 하는 말이잖아."

"그, 그렇죠. 선수 생활 바쁘실 텐데…… 항상 감사합니다."

부클랜장인 최명태마저 설설 길 수밖에 없다.

단순히 옛날에 클랜장을 했던 사람이 아니다.

그가 나간 이유는 출세를 했기 때문이다.

차승혁, 그는 프로게임단의 연습생으로 입단했다.

심지어 무명 게임단도 아니고 LCK의 1부팀.

프로 지망생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다.

"그래서 오밤중에 바쁜 형은 왜 불렀냐? 설마 최근에 사고쳤다는 그거?"

"정말 면목이 없게도…… 그게 맞습니다."

문제는 성격이 엄청나게 까탈스럽다.

알고 지내는 사이임에도 만나기가 껄끄럽다.

그럼에도 도움을 요청하지 아니할 수가 없는 상황.

"절대 제가 잘못한 게 아니라 그 자식이 게임을 훼방해서……."

최명태는 일단 자초지종부터 설명했다.

세간에 알려진 것과는 사실이 달랐기에.

적어도 최명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결국 니가 못해서 진 건 맞잖아?"

"아니, 진짜로! 제대로 붙으면 이길 자신 있습니다."

"아, 그래?"

친한 동생이 PC방 대회에 나가 망신을 당했다.

그럼에도 차승혁의 태도는 시큰둥하다.

지 뒤치다꺼리 정도는 지가 해야지.

'어휴, 못난 새끼.'

성격은 찌질해도 실력은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최근에는 그 실력마저 지지부진한 멍청이가 됐다.

하지만 한 가지 신경 쓰이는 것도 사실이다.

"시비 붙었다는 애가 최근에 말 많은 그 마왕이라고?"

"예, 그렇습니다. 다크라는 이야기가 있던데 절대 아닙니다. 제가 똑똑히 봤어요!"

시큰둥하던 차승혁의 얼굴에 생기가 인다.

그도 그럴게 프로게이머들 사이에서도 화제다.

PC방 대회를 털고 다니는 무명의 신인.

솔로랭크에서도 그 기세가 엄청나다.

롤판에서 이런 맛깔난 화제가 흔하지 않다.

과연 누가 무슨 목적으로 그런 짓을 저지르는 걸까?

'당연히 다크가 맞다고 생각했는데.'

암만 재밌는 놈이라도 정체가 다크면 의미가 없다.

어떻게 때려 죽여도 롤판 복귀가 불가능하다.

그런데 마왕이 다크가 아니라고 한다.

"최소한 얼굴이 알려진 네임드는 아니라 그거지?"

"예, 혹시나 해서 찾아봤는데 절대 아니에요. 진짜 별 거 없는 새끼……."

"좋아. 그 별 거 없는 새끼 우리 클랜으로 영입하자."

생각지도 못한 차승혁의 대답.

이러려고 이야기를 꺼낸 게 아닌데.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최명태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차승혁은 여전히 킬리만자로 클랜의 실세다.

그런 그가 원하면 진짜로 그리 될지 모른다.

농담일 거란 생각에 대꾸를 했지만.

"지, 진심으로 하시는 말이세요?"

"꼽냐?"

"아니, 그게 아니라 우리가 뭐가 아쉬워서 그런 새끼를……."

"그거야 당연히 씹잘하니까지. 니 오기 전까지 방송 보고 있었어."

차승혁이 스마트폰을 까딱까딱 흔들어댄다.

러이갓의 방송에 그가 게스트로 초청됐다.

실력을 보니 생각 이상으로 뛰어나다.

그런 녀석이 만약 다크가 아니다?

기존 네임드도 아닌 생판 신인이다?

다른 클랜이 손을 쓰기 전에 영입해야 함이 옳다.

"그 새끼만 영입하면 킬리만자로 클랜도 다시 크겠네. 곧 대회도 한다며? 마침 시기도 딱 좋아."

"저, 저…… 아무리 그래도 그 녀석은 좀……."

"닥치고 그냥 친하게 지내. 롤은 잘하는 사람이 갑이야."

"……."

이건 뭐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아니고.

최명태는 어이가 빠져 할 말을 잃었다.

아니, 돌이켜 보면 이 형은 늘 그래왔다.

실력 있는 클랜원에게는 대우가 약속된다.

자신이 부클랜장이 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킬리만자로 클랜이 인성 관련해서 프리한 이유 또한.

'그래도 그 새끼 만은 안돼.'

만약 그 눈엣가시 같은 녀석이 챌린저라도 찍는다?

저 형이라면 얼씨구나 클랜장을 맡길지도 모른다.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린 최명태는 떠올렸다.

"형, 잘하는 사람이 갑이라고 하셨죠? 그럼 제가 그 녀석을 이기면 별 거 없다는 걸 인정하시겠네요?"

"오~~ 그런데 애초에 붙을 방법이 있어?"

자신을 흥미롭다는 듯 바라보는 차승혁의 물음에 대한 대답.

그다지 어려울 것도 없는 일이다.

지금 그 빌어먹을 녀석은 솔로랭크를 돌리고 있으니까.

"저랑 지금 PC방 가시죠. 그 새끼가 털리는 걸 실시간으로 보여드릴 테니."

다대기!

한 줄기 회오리가 바람을 가른다.

그 끝에 아슬아슬 걸리고 만다.

「우리에게 돈!」

야흐오의 궁극기가 발동된다.

딱 걸린끠?무참히 찢어진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잘하는사람님이 학살 중입니다!

-야흐오로끠?뚜까 팬다고??

-야필승 스고이……

-?멘탈 나간 듯

-우리에게 돈을 주고 사라지네ㅋㅋ

자동으로 출금되는 ATM같은 느낌이다.

미니언 좀 먹다 보면 알아서 배달을 온다.

되도 않는 딜교환을 걸다가 방금처럼 죽어준다.

"재롱잔치를 함부로 쓰면 안되죠 호갱님."

마치 내 예비 지갑이 생각나는 녀석이다.

벌레처럼 잘근잘근 짓밟아주는 맛이 제법이다.

기분 탓인지 아이디를 어디서 본 것 같기도 하고.

'그냥 기분 탓이겠지.'

아무튼 미드를 터트리자 게임은 싱겁다.

무난하게 이어지는 연승의 제물로 바친다.

가면을 벗는 일이 그렇게 호락호락할 것 같지 않다.

─더블 킬!

트리플 킬!

잘 성장한 야흐오.

중반 국지전의 패왕이다.

네 번째 판까지 손쉽게 오픈을 받아냈다.

"음~ 오지고 지리고 레리꼬 스무th~. 행님들, 챌린저 듀오 캐리 씹오졌으면 추천 한 번씩 부탁드립니다 앙 러모띠!"

"와아~."

-와아~(영혼 없음)

-양심 미아요

-러이갓이 한 것: 메이플

-다크가 야흐오를 이렇게 잘한다고? 그럴 리가 없는데……

계획 또한 착착 진행되고 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

다크는 야흐오와 거리가 먼 유저다.

완전히 대척점이라고 할 수 있다.

야흐오는 피지컬의 상징과도 같은 픽이다.

서서히 그려가는 밑그림이 윤곽을 나타낸다.

"다크는 야흐오 같은 거 안 하잖아? 챔프폭 말도 안되는데 지금."

"애초에 다크랑 비교하는 게 기분이 상하는 부분이죠."

-크~ 다크 무시 발언 지렸고요

-하긴 다크가 어둠보다 잘하긴 하지

-그리고 마왕은 다크보다 잘하는 거임!

-이러다 진짜 다크 아니면 재밌겠다ㅋㅋ

아직까지는 대세 여론이 크게 변하지 않았다.

가면을 못 벗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조금씩, 착실하게 그려지고 있다.

파프리카TV 내에서는 말이다.

커뮤니티 쪽의 민심은 여전하다.

아예 다른 방향의 추측까지 나올 정도다.

─???: 자, 어둠의 게임의 시작이다!

믿고 있어. 또 하나의 나!

└또 하나의 나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럴 줄 알았음. 출석도 대리로 하는 대리충

└갑자기 안 하던 챔피언들 하는 게 수상해

글쓴이-그 이유가 뭐겠어? 뻔한 거지

러모씨의 드립 대로 대리충이라 출석도 대리로 할 거다.

러카콜라가 러카콜라에게 팩트폭격 들어간다.

그런 느낌의 여론이 눈에 띈다.

'대체 그런 드립은 왜 해 가지고.'

입에 착착 붙게 만들어.

따지기에는 나름대로 근거가 있다.

그 빌미를 내가 제공하기도 했다.

─갑자기 리심, 야흐오 하는 이유가 뭐겠어?

누가 봐도 다크가 하는 챔피언이 아니잖아

대리로 출석한 얘랑 챔프폭이 달라서 그렇지

└이거다

└ㅇㅇ 갑자기 안 하던 챔피언들 하는 게 수상했음

└다크 이 사악한 새끼

└잔머리는 존나 잘 돌아 간다니까ㅋㅋㅋ

당연하게도 결정적인 증거가 되지는 못한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이 원래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다.

그럴 듯한 이유만 붙이면 믿고 싶은 사람은 믿는다.

잉벤으로서는 물러설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자기들이 저지른 게 있는데.

엎지른 물을 주워 담지 않고 추가해서 붓는 꼴이다.

'해결법은 간단해.'

어떻게 보면 뫼비우스의 띠.

지들끼리 북 치고 장구 치고.

안 믿으면 그만이라고 빼액! 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렇다고 해결법이 없다는 소리는 아니다.

간단하면서 명료하게 파고들 수 있다.

대역으로 쓸 만한 사람이 없다는 걸 증명하면 되는 일이다.

-알고 보니 2인 1역 아님?

-화장실 갔다올 때 바뀔지도ㅋㅋ

-이렇게 잘하는 사람이 또 있을 수가 있나?

-다크 아니면 프로 데뷔각이지

흐름은 점점 넘어오고 있다.

혹시나 하는 시청자들의 기대.

원하는 방향으로 착착 무르익는다.

하지만 아직은 조금 설익었다.

수확의 시기는 머지 않았다.

그때까지만 연승을 이어나가면 된다.

* * *

"아니 형 이건 진짜."

"진짜 뭐?"

"진짜 그 아다리가 안 맞아 가지고……."

한심하기 그지없는 변명의 향연.

차승혁은 혀를 차며 최명태를 바라봤다.

마왕을 터는 걸 보여줄 테니 PC방에 가자?

실시간으로 털리는 건 이 자식 쪽이었다.

그것도 그냥 털린 게 아니라 영혼까지 말끔히.

결과만 놓고 보면 머리를 쥐어 박아도 부족한 일이지만.

'그냥 실력 차가 너무 심했어.'

아다리가 안 맞기는 개뿔이다.

아다리 자체를 보지 못하고 있다.

예상을 한없이 벗어난 킬각.

보고 있는 시야의 차원이 다르다는 이야기다.

'생각보다 훨씬 더 흥미가 가는 녀석인데…….'

무심코 넘어갈 수 있는 조그마한 실수.

상대에게 빈틈이 보인 순간 목이 달아난다.

방금 진행된 게임에서 최명태는 철저하게 능욕 당했다.

그중에서 몇몇 킬각은 자신도 설마 했을 정도다.

챌린저라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실력이다.

그에 반해 이 한심한 녀석은.

"형 한 판만! 한 판만 더하면 진짜 이길 수 있어요 제발!"

실수를 만회하겠다며 바짓가랑이를 붙든다.

징그러운 녀석이지만 그럼에도 아끼는 동생이다.

본인이 쪽팔리다는데 지켜 봐줄 수도 있는 노릇이다.

'정말로 실수였다면 말이지.'

실수가 아닌 단순한 실력 격차였다.

다시 한다고 해도 이길 확률은 한없이 낮다.

애초에 이 녀석이 상대할 수준의 적수가 아니다.

최명태의 실력은 잘 쳐줘야 마스터 중위권.

그에 반해 마왕은 최소로 잡아도 그 이상이다.

정확한 건 랭크를 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그러니까 해보려고 한다.

"야, 비켜봐."

"아니 저 진짜 할 수 있다니까요?!"

"닥치고 비켜 보라고. 나도 게임 한 판 해보게."

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건지.

최명태는 의아했지만 일단 자리를 비켰다.

적어도 이 PC방을 나가려는 건 아닌 것 같으니.

동시에 설마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형 설마……."

"왜? 대리 처음 보냐?'

"아니 그게 아니라 입단하신 이후로 끊으신 줄 알고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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