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권 유저들에게 있어 대리는 별로 민감한 이야기도 아니다.
비유하자면 미성년자가 술이나 담배를 하는 정도.
나쁜 일이긴 하지만 뭐, 할 수도 있는 거지.
상위권 유저들 사이에서는 그다지 드물지도 않다.
학창 시절, 친구들 중에 담배 피는 얘 한두 명은 꼭 있다.
그런 친구가 있는 사람이 미성년자의 흡연을 정색하고 비판한다?
설사 엄근진하던 사람도 감화되기 마련이다.
남들보다 월등한 재능을 팔 뿐이잖아?
물론 프로의 경우 문제가 될 소지가 많겠지만 말이다.
"야, 시발 연습생이 돈이 있겠냐? 그 짓이라도 안 하면 담배도 못 펴."
"그도 그렇네요. 그래도 저는 걱정이 돼서……."
"등치는 산만해서 걱정 드럽게 많네. 안 걸려 임마. 어디 한두 번 해보냐?"
다른 사람 계정으로 게임 좀 할 수 있지.
대리는 공적인 장소에서나 쉬쉬하면 된다.
장본인들만 입을 다물면 들킬 일은 전혀 없다.
쿠-웅!
솔로랭크의 큐가 잡혔다.
늦은 밤, 다이아1이라는 높은 구간.
방금 전에 같은 큐에 걸렸으니 십중팔구다.
물론 이번에는 하는 사람이 바뀌긴 하겠지만.
-오 저격 성공ㅋㅋㅋㅋ
-무슨 저격요? 누구 방송함?
-러이갓이랑 다크 합방 중임! 밴 보니까 이 큐 맞는 듯
큐가 잡히자마자 팀원들이 시끄럽게 떠들어댄다.
저격하는 사람이 자신들만 있을 리란 법은 없지.
깔끔하게 한 큐에 성공했으니 아무래도 상관없다.
"이 구간은 대리할 때나 가끔 했는데."
"헐, 여기 구간도 대리를 해요?
"없어서 못하지. 판당 얼마인지 알기는 하냐?"
다이아1 구간 정도 되면 승당 3~4만원은 받는다.
그만큼 실력이 요구되지만 자신이 누구인가.
LCK 1부팀의 연습생이 되려면 최소 마스터 상위권이다.
차승혁은 그보다 한 단계 높은 챌린저.
팀 내의 연습만 아니면 더 올릴 자신도 있다.
저런 애송이 한 명 참교육시키는 건 어렵지도 않다.
'실력 격차를 보여주고 수하로 부린다. 그러고 보면 명태도 그렇게 영입했었지.'
자신이 킬리만자로의 클랜의 클랜장을 맡고 있던 시절.
솔랭에서 싹이 보이는 애들을 닥치는 대로 영입했다.
그렇게 세력을 늘려 클랜의 몸집을 키웠다.
이로 인해 얻은 것은 고작 인맥만이 아니다.
연습생을 잘 두지 않는 1부 리그팀들.
그들이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게 됐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 아니겠어?'
여느 집단 생활과 마찬가지다.
게임단 생활 또한 인맥이 기본이다.
사람 관계라는 게 다 오고 가는 것이다.
싹수가 보이는 얘들을 게임단에 소개해준다.
말하자면 중계역 같은 역할을 한다.
그런데 최근 괜찮은 얘들이 씨가 말랐다.
킬리만자로 클랜이 쇠퇴했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조만간 관리에 들어가려고 했다.
알아서 찾아온 데다 쓸 만한 녀석까지 발굴해냈다.
'조금만 손을 봐줘 볼까.'
배짱이 있는 녀석 같으니 울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에게 게임을 한 수 배우고 싶을 정도.
격이 다른 실력이 무엇인지 교육해줄 시간이다.
* * *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전 판의 그 ATM같은 친구.
두 판 연속 상대팀으로 걸렸다.
그 정도야 그럴 수도 있는 일이다.
다이아 구간은 원래 같은 애들 자주 만난다.
내가 지금 신경 쓰는 건 그런 게 아니다.
'어디선가 봤던 것 같기도 한데.'
다른 플레이어의 게임을 관전하다.
코치의 일인 만큼 수도 없이 했지만 최근에는 한 적이 없다.
대체 어디서 봤나 가물가물했는데 두 번 보니 떠오르려고 한다.
"행님들~ 잔잔한 밤 방송 4만 5천 분이나 함께 해주고 계신데 추천 4만 개는 가볍게 만들어주셔야죠. 저보다 키 크신 행님들 추천 한 번 갈게요. 180 이상이다. 모바일 중계방 행님들 저보다 키 큰 분들 터치 따봉 PC분들 오른쪽 하단 추천 한 번씩만 부탁드립니다. 중계방 행님들도 함 눌러주세요~. 추천 누르면 아링 같이 생긴 여자친구 생깁니다 행님들~."
"여자친구는 모르겠고 확실히 랩은 잘하실 거 같네요."
하도 옆에서 쫑알쫑알 시끄러워서 잠시 생각이 끊겼다.
두 판 연속을 저격을 한 유저.
곰곰이 생각해보니 역시 그 착한 친구, 예비 지갑 2호다.
전판끠?게임 내 ATM이었다면 착한 친구는 현실 ATM이었다.
방송 컨텐츠로 솔로랭크를 하다가 우연히 만났다.
살다살다 이런 인연이 다 있네!
'같은 상황이 있을 리가 있나. 저격했구만?'
플레이에서 악에 받쳤다는 사실이 느껴졌다.
원한을 잊지 못하고 어금니 꽉 깨문 모양이다.
이미 지나간 옛날 일로 구질구질하게 나오다니.
한 차례 인성 교육이 필요할 듯싶다.
주제 파악을 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챔피언 선택부터가 심기를 거스르고 있다.
'자드라…… 챔피언도 지 주제에 안 맞는 걸 골랐네.'
피지컬이 받쳐주지 않으면 안되는 챔피언이다.
예비 지갑의 실력으로는 자충수가 될 게 뻔하다.
전 판을 본 시청자들이라면 분명 공감을 하고 있겠지.
-상대가 자드인데 과학을 후픽 하다니……
-더 사이언스!
-야필패 가나요ㅋㅋㅋ
-자드가 야흐오 카운터인 거 모르나?
'…….'
전 판을 안 본 시청자들이 많은 모양이다.
아니면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건가.
안타깝게도 전자와 후자 전부였다.
'그러고 보면 초창기에는 야흐오가 자드에게 약하다는 평가를 받았었지.'
야흐오가 워낙 실력빨을 많이 받는 챔피언이다.
숙련자와 비숙련자의 차이가 극과 극이다.
고이고 고인 물의 힘을 보여줄 시간이다.
구오오……!
자드의 궁극기 죽음의 선고.
스킬 이름 그대로 적 한 명을 끝장낸다.
1 대 1 암살에 최적화된 스킬 구조를 가졌다.
'한 마디로 궁박꼼이지.'
궁극기 박으면 꼼짝 못해!
3초가 지나면 뿌직! 하고 터져 버린다.
자드가 야흐오의 카운터라 손 꼽히던 이유다.
반대로 야흐오의 공격은 자드에게 안 닿는다.
회오리를 써도 그림자로 피할 수 있다.
띄우지 못하니 맞궁극기도 안된다.
'그런데 그건 고스란히 다 쳐맞아주는 우리팀 야흐오 이야기고.'
같은 선상에서 비교하면 매우 섭하다.
침착하게 대응하면 어려울 것도 없다.
질풍보를 내디디며 미니언을 탄다.
휘익!
휘익!
자드가 그림자를 활용해 쫓아온다.
단 하나의 긴장감도 들지 않는다.
편안한 시몬스 침대와도 같다.
상대의 움직임이 너무 뻔해.
그에 맞춰 적당히 피해주면 된다.
궁극기를 써버린 자드는 조바심이 차오른다.
챠라락-!
억지로 따라와 표창을 날린다.
하지만 그 직전에 직감했을 것이다.
딜이 부족하다고.
「바람을 맞아라!」
설사 표창을 맞혔어도 말이다.
돌풍 장막에 가볍게 막혀 사라진다.
그 뿐만이 아니다.
챠앙!
동시에 뿜어지는 한 줄기 회오리.
노리는 대상은 당연하게도 자드다.
'하지만 웬만하면 피하지.'
아무리 좆밥……, 아니 하수 취급을 하더라도 나름 마스터다.
그 정도의 판단 능력도 결여돼 있을 리는 없다.
회오리가 써지는 순간 궁극기 그림자와 위치를 바꾸면 된다.
그렇다면 그것까지 예측해서 쏘면 그만이다.
위치를 바꿈과 동시에 끝에 정확하게 걸친다.
이렇듯 맞히기만 하면 상황은 180도 역전된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야흐오의 궁극기 바람의 상처가 발동된다.
순간적인 폭딜과 함께 패시브 보호막의 충전.
자드는 발악을 해보지만 도망조차 갈 수 없다.
─아군이 당했습니다!
솔로킬의 기쁨도 잠깐이다.
그 와중에 아군 러이갓도 죽었다.
혹시 추천 받으려고 죽은 건가 했는데.
"와~~ 방플 미치따! 와드 쳐박으면서 음파 들어오네 이 슈발 새끼! 방플 슈벌럼! 집 빨리 갔으니 개이득이죠? 행님들, 농담 아니고 미드가 너무 흥미진진해서 구경하다가 죽었어. 어~? 인정해줄 만하잖아?"
"아, 네……"
"자드 궁 쓰자마자 앞으로 미니언 타면서 어그로 빼는 거 문데? 무슨 메시 빙의한 줄 알았어 진짜로. 슈바마~ 회오리 예측샷 클라쓰 오지고 지리고 레리꼬 스무스~!"
-ㅇㅈ하자너ㅋㅋㅋ
-진짜 예측샷에서 바지 갈아입었음
-역킬각은 상상도 못했다;;
-자드 점멸 빨리 썼으면 살았는데 ㅉㅉ
만약 자드가 회오리를 맞지 않았다면.
최소 죽지는 않고 도망갔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충분히 가능했다.
'회오리가 쏘아지는 걸 보고 반응했다면 말이야.'
자드로서는 억울할 노릇이다.
쏘아지는 방향이 보이질 않았다.
그도 그럴게 모션 캔슬을 사용했으니까.
소위 말하는 고인물 잡기술 중 하나다.
돌풍 장막을 쓰며 검을 내지른다.
내질러진 방향과 정반대로 쏠 수 있다.
재빨랐던 예측이 오히려 독으로 작용한 셈이다.
그렇기에 이상한 일이기도 하다.
내가 알고 있는 예비 지갑 2호의 실력보다 약간 더 나아졌다.
'이놈의 ATM기가 고장이 났나…….'
이전 판만 해도 필요할 때면 꼬박꼬박 출금해주던 녀석이다.
그런데 일취월장, 아니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다.
혹시끠?연습 중이고, 주챔피언은 자드인 걸까?
'라고 생각하기엔 근본적으로 좀 틀린데.'
기본기 면에서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
나랑 심리전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유쾌하지 않다.
그리고 옆에서 쫑알쫑알 떠들어대는 추천 멘트도.
"행님들~ 이런 수준 높은 게임 감상하고 계신데…… 본방 중계방 터치따봉 PC분들 오른쪽 하단에 추천 우리 행님들 너무 안 누르시기 때문에 여기서 추천 타이밍 한 번 가져볼까요? 추천 누르시면 내일 좋아하는 여자가 고백합니다. 레알이에요. 러이갓 방송 추천 누르면 여자친구 생기는 건 하나의 성지가 됐으니까. 화력 괜찮아요. 중계방 행님들 느낌 있고요. 추천 안 누르는 사람 2019년까지 5년 동안 방구석에 박혀 가지고 모태솔로, 하루종일 롤만 합니다 진짜로~."
-응 안 눌러^^
-웬만하면 안 누르는데 오늘은 누른다
-존나 잘하네 진짜ㅋㅋㅋㅋㅋ
-미래에서 왔는데 이거 진짜임 ㅠ.ㅠ
'내가 그래서 안 생긴 건가?'
잠깐 납득해버릴 뻔했다.
확실히 전성기의 러이갓은 느낌이 있다.
그 시절에 추천을 안 눌렀던 게 살짝 후회가 되려고 한다.
어떤 면에서는 감탄스럽기까지 한 방송 진행 능력이다.
하지만 당장은 내 게임 진행부터 걱정해야 된다.
미드 라인을 이기는 게 좀 늦어버렸다.
─아군이 당했습니다!
적 더블 킬!
적이 학살 중입니다!
불안불안했던 봇라인이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2대2 교전을 털리며 또다시 더블 킬을 헌납했다.
물론 버틸 만큼 버티다 터진 거긴 하지만.
'다른 라인도 사정이 썩 좋지가 않아서.'
정글러의 기량은 이미 보았던 그대로다.
추천 때문인지, 방플 때문인지 상태가 맛이 갔다.
다행히 탑은 꽤 버텨주고 있다.
버틸 뿐이지 궁극기를 쓸 상황도 안 나온다.
글로벌 궁극기 하나 믿고 하는 쇈임에도.
전체적인 상황이 웃어주지 않는다.
"미드&정글 하드 캐리하는 이 와중에 바텀 더블 킬 따이는 거 실화냐? 팀운 씹오지죠? 러빡이찬기님이 바텀 슈발 새끼들 대가리에 총 맞은 것 같다고 별풍선 200개 클라쓰! 앙 러모띠!"
물론 내 옆에 계신 분은 잘만 웃으신다.
채팅창의 반응도 이 정도면 캐리하겠네.
그도 그럴게 이것보다 더한 판도 이겨왔다.
'그런데 이 판은 아직 확신까진 안 서.'
ATM기가 확실히 고장 났다는 느낌이 든다.
팀 차이를 고려한다면 다가올 한타.
고비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 * *
자신이 하려던 건 교육이었다.
실력 차이를 뼈저리게 느끼게 해준다.
그런데 어느새 필사적이게 되었고, 숨 돌릴 여유마저 사라졌다.
'무슨 이렇게 말리고 지랄이야…….'
명태가 말했던 아다리가 안 맞는다는 표현.
어떤 말인지 조금은, 아니 격하게 알게 됐다.
자신의 공격 타이밍이 미묘하게 어긋난다.
딜교환이 자꾸 손해 보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홧김에 킬각을 잡았다가 망하고 말았다.
솔로킬을 당하는 수모까지 겪었다.
'……운도 좋은 자식.'
일순간 그래픽 오류가 생겨버린 탓이다.
자신의 판단은 분명 정확했다.
회오리가 생뚱맞은 방향으로 날아왔다.
맞지만 않았다면 절대 죽을 상황이 아니었다.
오히려 다음 타이밍에 킬각을 잡을 만했다.
그 요행으로 라인전의 균형이 무너졌다..
'하지만 아직 충분히 할 만해.'
바텀과 탑이 선전해준 덕분이다.
전체적인 구도가 크게 유리하다.
한타와 운영을 통해 만회할 수 있다.
물론 당초의 계획에서는 어긋난다.
가능한 압도적으로 이기려고 했다.
격의 차이를 보여줄 생각이었으니까.
이번 판을 승리하고 다음 판으로 굳힌다.
한 판으로 안되면 두 판을 하면 되는 일이다.
우물 안 개구리라는 사실을 가르쳐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