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8화 (28/201)

"형, 무조건 야흐오부터 죽여야 돼요!"

"그걸 누가 모르냐 이 빠가사리야."

명태 녀석조차 생각하는 걸 상대가 모를 리 없다.

직접 라인전을 겨뤄봤기에 알고 있다.

녀석이 결코 바보가 아니라는 걸.

'야흐오를 노리는 게 최선인 건 맞아. 하지만 꼭 그렇게 할 필요는 없지.'

오히려 그 반대도 가능하다.

야흐오를 제외한 나머지를 죽인다.

평균적인 성장이 앞선다는 이점을 철저하게 이용한다.

[18:07] LOK 작은맹수(자드): 용 치다 상대 오면 바로 딜 중지하고 이니시 걸어야 됩니다

[18:11] 솔로짬밥20년 (풀리츠크랭커): 전 판부터 똥 싸지르던 새끼가 오더병 걸렸네ㅋㅋ

[18:14] LOK 작은맹수(자드): ……

이번 판만 말린 거면 모를까.

하필 전 판에 크게 실수를 저질렀다.

자신이 아니라 뒤에 있는 녀석이 말이다.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됐으니까 커피나 믹스로 말아와. 까까도 하나 사오고."

찬물 더운 물 가릴 때가 아니다.

아니꼽더라도 자존심을 굽혀야지.

동생 보는 앞에서 가오가 있어 심부름을 보냈다.

[18:21] 세계최강카이팅 (토이치): 그래도 다크 상대로 라인전 버티긴 했자너ㅋㅋㅋㅋ

[18:23] 한대맞고세대치기(리심): ㅇㅇ 우리 합심해서 다크 연승 끊어봐요!

[18:23] 주제를아는잡종 (갓렌): 으어어어어어어어어!

채팅창의 꼬라지가 말이 아니다.

울부짖는 이상한 새끼도 한 마리 있다.

명태가 돌아오기 전에 모든 것을 끝낸다.

'내가 한타 타이밍 안 잡아주면 이득도 못 볼 못 놈들이야.'

조합과 라인전 우위의 유리함.

이를 살리기 위해서는 한타가 필수 불가결이다.

노골적인 용 트라이 움직임이 기폭제 역할을 한다.

「해일이당!」

고작해야 다이아1~ 마스터 구간.

무작정 싸우는 것밖에 모르는 실력대다.

적 서포터 인어가 일으킨 파도가 덮쳐온다.

'적팀이 가진 유일한 광역 에어본이다.

어차피 서포터 궁인데 약하지 않겠어?

평범한 상황이라면 분명 그러하다.

문제가 있다면 적팀의 야흐오다.

야흐오의 궁 연계를 예의주시해야 한다.

더군다나 주의해야 할 건 하나가 아니다.

쿠확!

어둠 속에서 난데없이 나타난 이블퀸.

3인궁이 박히며 정면 한타가 열렸다.

자신이 생각했던 구도 그대로다.

'쇈궁까지 빠졌고. 노리던 대로 흘러가고 있어.'

적팀은 야흐오를 빼면 성장이 저조하다.

가장 신경 쓰이던 궁극기도 빠졌다.

정확하게 원하던 구도의 한타다.

격의 차이를 보여줄 시간이다.

프로가 설계하는 한타가 무엇인지.

어찌할 수 없는 무력함을 느끼게 해주마.

다대기!

분명 완벽했던 한타의 구도.

상대의 노림수도 전부 예상 내다.

한 가지가 조금 심각하게 빗나갔다.

야흐오가 절대 올 수가 없어야 할 방향.

용 둥지 안쪽에서 회오리가 날아왔다.

당황한 나머지 또다시 맞고 말았다.

'설마 점멸로?! 그렇다 쳐도 회오리는 대체…….'

적을 치지 않으면 회오리를 충전할 수 없다.

때문에 주도적인 플레이가 불가능한 챔피언.

그래야만 할 야흐오가 혼자 전황을 비틀고 있다.

─적에게 당했습니다!

적이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설마 자신이 이렇게 속수무책 농락 당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려고 있다.

흐르는 식은땀이 멈추지 않는다.

* * *

「우리에게 돈!」

궁극기가 연계되며 공중에 묶는다.

그 위로 쇈의 도발 점멸이 그어진다.

공중에서 내려오기도 전에 터지고 만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잘하는사람이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무극의 대검, 2코어가 나온 야흐오다.

딜각만 나온다면 프리딜이 미쳐 날뛴다.

그 딜각을 스스로 예쁘게 만들어냈다.

'별 거 아닌 잡기술인데.'

정말 별 게 아니다.

정글몹을 쳐서 스택을 쌓는다.

한타에서 바로 회오리를 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시간 제한이 있다.

언제까지 정글몹을 치고 있을 수는 없다.

시기적절하게 상대가 용을 친 덕분에 판 짜기가 쉬워졌다.

"오지고 지리고 레리꼬 스무스~!"

바로 옆에 계신 분이 만드신 유행어.

지금 만큼은 입에 착착 달라붙는다.

흘러가는 게임의 향방은 일방적이다

그 기폭제가 되어버린 시점.

용 한타라는 것은 두 말할 필요 없다.

다대기!

익숙한 외침과 함께 쏘아진다.

한 줄기 회오리가 전장을 가른다.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시체 뿐이다.

─적에게 당했습니다!

적 더블 킬!

잘하는사람님은 전설적입니다……!

미치고 팔딱 뛸 지경까지 성장했다.

칼끝에 걸리는 순간 쪽도 못 쓰고 찢긴다.

차승혁은 올라오는 채팅을 묵묵히 바라봤다.

[24:02] [전체] 한대맞고세대치기 (리심): ㅈㅈ 미드 차이가 감당이 안된다

[24:07] [전체] 세계최강카이팅 (토이치): 수고요~ 방송 타서 재밌었음

[24:11] [전체] 솔로짬밥20년 (풀리츠크랭커): 다크님 혹시 러이갓 키 160 넘는지 팩트 체크 가능하나요? 진짜 평생의 소원인데

[24:14] [전체] 탑지면정글차 (쇈): 풀츠 진성 러빡이네; ㅇㅈ

게임의 승패는 사실상 정해진 상태다.

아군은 미니언을 먹는 것보다 채팅을 더 열심히 지고 있다.

역전이 불가능한 상황이니 만큼 이해는 하지만.

'미드 차이라니 이런 엿같은…….'

자신이 왜 저런 욕지거리를 들어야 한단 말인가?

그리고 너는 왜 뒤에서 구경을 하고 있냐?

고개를 휙 돌린 차승혁이 눈을 부라리자.

"저, 저는 옆에서 염탐 좀 하고 있겠습니다! 다음 큐 저격…… 하실 거죠?"

"……그래라."

최명태가 눈길이 닿지 않는 곳으로 꺼진다.

바로 옆자리, 칸막이 때문에 눈 마주 칠 일은 없다.

하지만 스피커를 통해 울리는 소리가 낱낱이 들려온다.

「별풍이 내린다. 샤랴랄라 랄랄라~♬」

러이갓 방송 특유의 브금이 재생되고 있다.

그 이유는 따질 것도 없다.

쉬지 않고 이어지며 고막을 따갑게 찌른다.

〈러이갓키158cm님 별풍선 100개로 통 큰 팬클럽 가입 감사드리구요~ 강남러빡이님이 말도 안된다고, 러이갓 키 188cm이라고 300개로 딜교환 클라쓰! 키크는영양제님이 저랑 연관 없는 숫자 158개로 12시 다 돼가는 이 새벽에 흐름 달달하게 이어갑니다~. 이렇게 잘 터지면 방송하는 BJ도, 게스트로 오신 다크님도 슈바마! 마왕님도 힘이 나는 거죠 네에~.〉

〈저는 전혀 안 나는데요.〉

〈요즘 IMF라서 찬물에 밥 말아 먹다가 이제 겨우 롯데리아 불고기 버거 세트 하나 시켜 먹게 생겼는데 얼마나 기분 좋아? 앙 러모띠! 러이갓기모띠님 100개 지리구요, 오지구요! 별풍은 뭐다? 흐름이다~!〉

-롯데리아 불고기 버거 언제 100만원으로 올랐누……

-진짜 오지게 터진다

-터질 만하지 ㄹㅇ 오늘은 진짜 레전드 갓캐리 ㅇㅈ

-그 와중에 다크라고 말 실수한 거 실화냐??ㅋㅋㅋㅋ

별풍선이 터졌을 때 흘러나오는 BGM.

한 시도 끊기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아무리 탑급BJ 방송이라도 이만한 호황은 드물다.

'제기랄…….'

어떻게 보면 자신 이 상황을 만든 일등공신이다.

명예스럽기는 커녕 속이 뒤집어지려고 한다.

어금니를 아득 깨문 차승혁.

게임의 상황을 재빠르게 훑어본다.

이미 승패가 결정난 게임인 건 맞다.

하지만 할 것이 없다는 소리는 아니다.

'아다리가 조금 안 맞았을 뿐이야.'

어차피 게임은 지게 생겼다.

최소한 한 가지는 알게 해줘야 한다.

네가 이긴 건 그저 우연에 불과하다고.

열 번 겨루면 한두 번 있을 수 있는 우연.

다시 한다면 따질 것도 없이 자신의 승리다.

그 사실을 이번 판이 끝나기 전에 알려준다.

〈솔직히 임금 재협상 해주셔야죠. 오늘 롯데리아 불고기 버거가 아니라 출장 뷔페 오마카세로 먹을 것 같은데.〉

〈뭔 소리야 지금?! 이번 달 전기세도 간당간?聆?죽겠구만.〉

전기세를 무슨 몇 백, 몇 천만원씩 낸다면 대마초라도 키우나 보다.

그런 방송 내적인 맞장구나 칠 때가 아니다.

지금 당장 눈앞에 벌어진 상황.

구오오……!

상대는 방송 진행에 한눈이 팔려있다.

킬각을 노린다면 지금이 적기.

다소 치사하긴 하지만 찬밥, 더운 밥 가릴 때가 아니다.

차승혁의 자드가 야흐오에게 파고들었다.

아무리 잘 컸다고 해도 상성 차이가 있다.

스킬만 잘 때려 박는다면 킬각이다.

「바람을 맞아라!」

귀 따가울 정도로 시끄럽게 떠드는 BJ와 잡담을 나누던 중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 같이 펼쳐진 돌풍 장막이 표창의 진로를 원천 봉쇄한다.

그럴 수도 있는 노릇이다.

스킬을 쓰는 것 자체는 할 만도 하니까.

물 흐르는 듯한 대처에 차승혁은 자신도 모르게 입이 쩍 벌어진다.

휘익!

휘익!

도저히 잡담을 하고 있는 사람의 움직임이 아니다.

아이템의 차이와 전혀 상관없다.

딜을 넣을 각이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아직이다.

야흐오는 스펠이 모두 빠진 상태다.

그리고 자신은 점멸과 점화가 모두 있다.

활용한다면 우위를 점하는 건 자신.

분명 그래야만 했다.

신들린 움직임에 미친 듯이 춤 추며 농락 당한다.

챠라락-!

신중하게 노리고 쏜 표창마저 장막에 먹혀 사라진다.

동시에 야흐오가 무서운 기세로 파고 들어온다.

칼이 닿자 썰리는 것은 순식간이다.

─적에게 당했습니다!

적은 전설적입니다……!

모든 것을 쏟아부은 회심의 킬각마저 차단 당한다.

무섭게 큰 야흐오의 칼질에 순두부처럼 녹아내린다.

얼이 빠진 차승혁의 귀에 씹오지는 소리가 콕콕 찔러온다.

〈충신러빡이님이 LOL개로 흐름 이어가고 있는 와중에 솔킬 씹오지네요. 아! 브론즈자드장인님이 자드 존나 못한다고, 내가 해도 저 정도는 하겠다고 100개를 또~!〉

〈이번 달 전기세 천만 원은 내시겠어요.〉

-별풍이 멈추지를 않네 와ㄷㄷㄷ

-잡담하면서 또 솔킬 땀!

-자드 덕에 별풍 꺼어어어억!

-응 그래봤자 158^^

'…….'

회심의 노림수가 오히려 방송 컨텐츠가 되고 만다.

별풍선 흐름에 지대한 기여를 또 하고 말았다.

자신도 모르게 키보드를 내려치고 만 차승혁.

"손님! 손님! 지금 미쳤……!! 그게 아니고 이러시면 곤란하죠."

"죄, 죄송합니다……."

러이갓 멘트 수준으로 시끄러운 PC방 내부다.

조금 소리 날 짓을 한다고 들키지는 않는다.

하필 옆에서 알바생이 청소하던 중이었다.

"사과해서 끝날 일이 아니잖아요. 이거 키보드 괜찮을까 모르겠네. 아!!"

어찌나 세게 쳤는지 키캡이 몇 개 날아갔다.

다시 끼면 해결될 일.

그렇다면 좋았겠지만 키보드의 상태가 생각 이상으로 심각하다.

"아니, 이거 잘 끼어지지도 않네. 클릭도 안되는데? 손님 이거 물어주셔야 될 것 같은데요."

"……."

어떻게 아르바이트생 선에서 처리할 일이 아니다.

아무리 귀찮아도 기물 파손은 넘어갈 수 없다.

그도 그럴게 값비싼 기계식 키보드다.

'제길 빠듯해 죽겠는데.'

프로게이머 연습생.

겉이야 번지르르 하지 속 빈 강정이다.

실질적인 수입이 거의 없다시피하다.

물론 지나가는 한 때다.

정식 데뷔만 하면 최소 직장인 수준의 월급을 받을 수 있다.

못해도 내년에는 시켜주겠다고 확답도 챙긴 상태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과도기라는 게 문제다.

지금 당장 지갑에 돈이 없어.

설상가상 눈에 잡히는 채팅창도 분위기가 사납다.

[26:00] [전체] 한대맞고세대치기 (리심): 와 씹새끼! 조금만 한눈 팔면 사고 치네

[26:03] [전체] 솔로짬밥20년 (풀리츠크랭커): 1코어 차이 나는데 그걸 기어 들어감ㅋㅋㅋ

[26:04] [전체] 세계최강카이팅 (토이치): 뇌가 없나?

[26:08] [전체] 주제를아는잡종 (갓렌): 으어어어어어어어어!!

실패에 대한 대가를 고스란히 치른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미드 차이.

느낌표가 하나 더 붙었을 정도로 잔뜩 성이 난 갓렌도 울부짖는다.

'내가 왜 이런 꼴을……. 끝나기만 해봐라.'

바로 다음 큐를 저격해 처참하게 박살 내주마.

차승혁은 이를 갈며 복수심을 불태웠다.

안타깝게도 그 소망은 이루어지기 힘들었다.

"끝나긴 뭘 끝나요. 키보드값 바로 안 주시면 사장님 부르겠습니다. 일 커져도 전 몰라요."

"네에……."

* * *

「우리에게 돈!」

야흐오의 궁극기가 발동되며 적을 붙든다.

땅에 떨어진 자드는 추하게 점멸을 썼지만.

─적을 처치했습니다!

곧바로 추격 당해 찍소리도 못하고 사망한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