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고하셨습니다! 정말 한 수 배웠어요."
"실력도 실력인데 오더가 진짜……."
"저희 뒤풀이하러 갈 건데 혹시 괜찮으시면 어떠세요?"
약속대로 캐리를 마쳤다.
사례금 80만원을 계좌 이체로 전송 받는다.
어떻게 보면 지나칠 정도로 많은 금액.
'우승 상금을 생각하면 그렇게 큰 부담은 아닐 거야.'
경쟁 심리에 불붙이면 그 이상도 가능했다.
하지만 어떤 일이든 과유불급.
너무 많이 받으면 앞으로의 장사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이곳 인천은 오늘 일정의 시작일 뿐이다.
인천광역시 송도동에 위치했던 비타민 PC방.
그곳에서 열린 예선전을 마치고 나왔다.
딱 결승전만 치르면 되니 간단했다.
'시급 오지게 땡기고 나왔지.'
경쟁 심리에 불붙인 결과다.
체할까봐 팀 내적인 조언도 해줬다.
그 연장선상으로 뒤풀이에도 초대 받았지만 금일 스케줄이 매우 바쁜 관계로 거절했다.
공짜밥을 마다할 만큼의 가치가 있다는 소리다.
서울 강남구의 피크PC방.
택시를 타고 서둘러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한창 어수선한 상태였다.
"저기…… 마왕님 맞으시죠?"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사람이 한 명 나와 있다.
이곳 PC방 아르바이트생이 아니다.
잠시 속하게 될 클랜의 따까리다.
어지간히 급했는지 초조함이 표정을 뚫고 나온다.
나와 비슷한 동년배로 추측된다.
제발 맞다고 해달라는 눈치다.
"정식 아이디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치죠. 상황이나 말해보세요."
"휴우…… 살았다. 클랜장형이 서둘러 와주시랍니다. 이쪽이에요!"
이곳 피크PC방의 의뢰인……, 아니 의뢰 클랜이다.
Keg의 지역 예선은 전국 각지의 PC방에서 한날한시에 치러지는 것이 아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
PC방의 협조를 얻어 진행하는 만큼 칼 같을 수는 없다.
사장님들 개인사정도 있을 테고.
지역별로 안 맞는 날짜도 있을 테고.
한두 곳도 아니고 100여곳이 넘는 만큼 어쩔 수 없는 문제다.
같은 날짜라도 진행 시간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피크PC방은 비타민PC방에 보다 3시간이 더 늦게 시작된다.
"히토미 클랜의 클랜장 장태식이라고 합니다."
"뭔가 익숙한 이름이기는 한데 꼬추 클랜이라 아쉽네요."
여성 클랜이면 그건 그거대로 문제가 있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일의 내용이 급선무다.
사전에 들은 바에 의하면 시간에는 분명 여유가 있었다.
"일단 16강은 무난하게 통과했습니다."
"이제 겨우 16강인데…… 뭐가 그렇게 조급해요?"
원래라면 인사하고, 상황 듣고, 밥이나 먹으려고 했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따까리가 아주 죽을 상이길래 대회가 혹시 빨리 진행됐나?
여기 사장님이 삼겹살 익기도 전에 드시는 분인가.
무언가 사정이 있나 했는데 이제 겨우 16강이다.
결승은 커녕 준결승도 멀었다는 소리다.
"근데 이게 대진이……."
"안 좋아요?"
"아니, 안 좋지는 않았는데 그게……."
말하는 꼬라지를 보고 있자니 나를 부른 이유는 알겠다.
클랜의 앞날과 미래가 다소 걱정된다.
똑 부러지게 말을 하면 좀 좋아.
나름대로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 사람이 있는 모양이다.
물론 결과적으로 그렇다는 거지, 과정에서는 차이가 있겠지만.
아니, 원래는 저희들이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상대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녀석을 헬프로 부르는 바람에……."
히토미 클랜장이 호들갑을 떠는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16강을 가뿐히 이기고 대진표를 둘러봤다.
상대로 올라올 팀, 어느 팀이 되던 문제 없겠다.
분명 그랬었는데 예상 외의 사태가 터졌다.
8강에 올라온 상대 클랜의 멤버가 한 명 바뀌었다.
도무지 신경을 안 쓸래야 안 쓸 수가 없는 녀석으로.
와아아아아-!
무슨 일이 있기는 있나 보다.
소란스러운 현장의 열기가 그 이유를 말해준다.
* * *
로드 오브 로드의 프로게이머가 되는 방법.
길이 뚜렷하게 닦여있지 않다.
방법은 크게 두 가지 뿐이다.
진짜 압도적으로 잘해서 주목 받거나.
인맥빨로 게임단에 직접 평가를 받거나.
이 두 가지를 제외하면 비효율적인 방법밖에 없다.
당연하게도 이를 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
그런 상황에서 프로게이머의 입지가 올라간다.
하고 싶은 사람은 많은데 등용문은 아직도 좁다.
이번 Keg가 전년도 대비 과열돼버린 이유다.
프로팀들이 주목하고 있다는 소문까지 돌고 있다.
일부 클랜들은 상위 입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강력한 구원 투수를 불러 전력을 강화시킨다.
서울 강남구의 피크 PC방.
지금 막 16강 경기를 끝낸 헌티드 클랜도 위와 같은 방법을 취했다.
"와주셔서 정말 살았습니다. 솔직히 저희끼리는 자신이 없어서……."
"다 돕고 사는 거지. 내가 이래 봬도 의리파잖냐."
클랜장의 아부에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한다.
로드 오브 로드의 아마추어 네임드 중 하나.
김민식은 한 가지 목적을 가지고 이 자리에 왔다.
"진짜 민식이냐?"
"와 본인 앞에서 드립 쳐보고 싶다!"
그의 주위에는 수많은 구경꾼들이 몰려있다.
과거 카오스라는 게임의 네임드로 유명했다.
현재는 독특한 유행어와 함께 더욱 유명해졌다.
"민식이냐 그거 원래 코빅 유행어잖아."
"아, 진짜? 어쩐지 입에 ?? 감기더라."
어떤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만들어진 유행어.
이제는 김민식을 상징하는 네 글자로 자리 잡았다.
그 인기에 힘입어 그는 파프리카TV의 BJ로도 활동하고 있지만.
'내 실력이면 프로게이머 정도는 하고도 남지.'
카오스는 LOL과 비슷한 AOS장르의 게임이다.
차이가 있다면 대중적인 인기가 적었다는 것.
정식 프로게이머가 존재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군대를 전역한 이후 세상이 바뀌었다.
같은 장르인 LOL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빠르게 적응한 김민식은 생각하게 된다.
게임을 직업으로 가지고 싶다고.
그렇기에 BJ를 하고 있지만 성이 차지 않다.
프로게이머 정도는 해야 자신의 이름값에 어울린다.
'Keg에서 활약해주면 게임단들이 알아서 설설 길 테지.'
지난 반년, 그 밑준비를 끝내 놓았다.
LOL이라는 게임에 완벽하게 적응했다.
짧은 시간이지만 자신의 재능이라면 충분하다.
솔로랭크, BJ로서 실력을 증명해왔다.
조금만 더 계기가 있으면 제안이 올 것이다.
자신에게 걸맞는 LCK 게임단의 주전 자리가.
그 계기가 되어줄 무대.
Keg에서 자신의 실력을 과시할 생각이다.
거만하게 의자를 두 개나 쓰고 있는 김민식이 피식대는 사이.
'어휴 진짜 씨발 새끼 인성하고는.'
헌티드 클랜의 클랜장 남현태는 속으로 푹푹 한숨을 내쉬었다.
연상인 자신은 예의를 지켜 말하고 있다.
그걸 알고 있을 텐데도 반말이나 찍찍 내뱉고 있는 김민식.
괜히 카오스 시절부터 인간 쓰레기라 유명했던 게 아니다.
그럼에도 남현태는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쓰레기 같은 인성에 비례해 실력은 진짜다.
결과적으로 그에게 도움을 청한 판단은 옳았다.
만약 그가 없었다면 예선조차 버거웠을지 모른다.
강남구 지역의 예선전이 생각했던 이상으로 빡세게 진행된다.
"유명 클랜들이 너무 많네요…… 이럴 줄 알았으면 다른 곳으로 신청할 걸 그랬네."
"왜, 다른 곳은 설렁설렁 하데?"
"지인한테 듣기로 인천쪽은 저희랑 비슷한 급이 우승했다고 합니다."
헌티드 클랜과 비슷한 급이라면 다이아 상위권이다.
기껏해야 마스터 한두 명 끼어있는 수준.
김민식은 가볍게 깔보며 이죽댄다.
"클랜전이다 뭐다 하더니 좆밥들밖에 없구만?"
"그, 그렇죠. 민식님이 와주신 덕분에 저희도 본선에 무난하게 진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헤헤."
대놓고 안하무인임에도 불구.
남현태가 비굴하게 나오는 이유가 있다.
저래 보여도 200명 밖에 안되는 챌린저 티어 실력자다.
팀에 한 명 있기만 해도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다.
게임 경력도 길어 대회 무대에서도 침착하다.
실력 하나만 두고 보면 탑급 아마추어다.
본인 피셜로는 자신이 최고.
곧 프로로 데뷔해서 LCK를 먹을 것이다.
그런 말을 하지만 최근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요즘 마왕이다 뭐다 하는데 솔직히 별 볼 일 없지?"
"글쎄요……. 전 잘 모르겠는데요."
"러이갓이랑 짜고 치고서 띄워주기 하는 거지 그런 새끼 챌린저에서 게임 한 판만 해도 정신 못 차려."
"그렇구나. 저는 잉벤에서 대충 보기만 해서 헤헤."
보다마다겠는가?
클랜장들 사이에서 요주의 인물이다.
PC방 대회들을 수도 없이 털었으니 당연하다.
최근에는 다크의 부캐로 더욱 알려져 있다.
얼마 전, 러이갓의 방송에 출연하기까지 했다.
그 실력은 아직까지도 논란이 되고 있을 정도.
'그게 어떻게 짜고 치는 고스톱이야…….'
짜고 치는 것도 한두 번이지.
솔로랭크에서 10연승을 넘게 했다.
마재윤이 롤판에 넘어와도 불가능하다.
하물며 그 과정을 남현태는 직접 봤다.
어지간한 챌린저도 그리 하지 못할 것이다.
별 볼 일 없다니, 기가 차지만 어쩔 수 없다.
김민식의 비위를 맞춰주는 게 급선무다.
거짓말 좀 하는 게 대수도 아니고.
어차피 만날 일도 없는 사람이다.
이미 커뮤니티에 소식이 파다하다.
마왕이 인천 지역 예선을 우승했다.
지인한테도 직접 들었으니 정확한 정보다.
"그러고 보니 마왕은 인천에서 우승했다네요. 다행히 결선까지는 볼 일 없을 겁니다."
"다행히……? 너 내가 그 자식이랑 붙으면 진다고 생각하냐?"
"……."
저 인성 파탄자 새끼는 알려줘도 지랄이다.
남현태는 적당한 말을 둘러댔다.
"기왕 붙을 거면 큰 무대가 어울린다는 소리죠. 여기는 무대가 작잖아요 예."
"하긴 결선부터는 방송 탄다니까. 내가 그 자식의 거품을 꺼주는 모습이 전국에 송출되면 볼 만하겠네."
"그러게나 말입니다."
잘난 척 으스대는 김민식의 비위를 맞춰준다.
언행은 띠꺼워도 실력 하나는 보증돼 있다.
그가 없이는 예선전을 우승할 수 없다.
마왕을 제외한다면 이 이상 가는 원군이 없다.
대의를 위해 참기로 마음 먹은 그 순간.
조금 낯익은 아이디가 화면에 보인다.
'어? 선수 교체했나?'
8강 경기 진행을 위해 모인 상태다.
상대팀 멤버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르다.
네 명은 같지만 한 명이 대진표와 바뀌었다.
뭐, 그럴 수도 있는 노릇이다.
자신들도 김민식을 그렇게 꼈다.
미리 식스맨으로 등록하고 바꾸는 방식.
'어디선가 봤던 아이디 같기도 하고.'
직감은 그렇게 속삭이고 있다.
머릿속 이성이 현실 직시를 거부한다.
상식적으로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하지만 현실은 현실.
그 다섯 글자는 낯이 익다.
사칭 아이디가 아닐까 검색도 해보았지만.
아이디- 잘하는사람
전적- 237승 121패
티어- MASTER 211LP
최근 전적- 30전 28승 2패 승률 93.3%
'…….'
이런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전적의 소유자가 달리 있을 리가 없다.
그래도 설마.
말도 안되는 일이다.
마왕은 이미 인천쪽에서 경기를 치렀다고 들었다.
무언가 착오가 있는 게 틀림없다.
한 가지 빼도 박도 못하는 아이디가 반박을 불허한다.
같은 팀으로 게임한 플레이어(최근 20게임)
BJ러이갓스마트컴 14전 13승 1패 92%
'사실대로 말해야 하나? 아니면…… 따져?'
인천쪽 우승 정보가 잘못된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대회 진행에 컴플레인을 넣어야 하나?
머릿속이 복잡해 뭘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분명 자신이 있다고 했다.
별 볼 일 없다고까지 했다.
남현태는 민식을 슬그머니 바라보았다.
다소, 아니 대놓고 당황스러운 상황이다.
인천 지역에 출전했다고 하던 마왕.
지인이 거짓말을 한 게 아닌 이상 확실한 정보다.
그런 그가 강남구 지역 예선전에 와있다.
대체 상식적으로 있을 수가 있는 일이란 말인가?
헌티드 클랜의 클랜장 남현태는 컴플레인을 걸었지만.
"규정상 딱히 문제될 건 없어요."
"그게 말이 돼요? 막말로 지금 예선전 두 곳에 다 나온 건데!"
안타깝게도 말이 된다고 한다.
그리고 그 말을 한 사람이 일개 알바생이 아니다.
Keg는 정식 대회인 만큼 대회 진행 요원이 파견된다.
대회 진행 요원도 살짝 어이가 없어 규정 사항을 따져봤다.
혹시 몰라 본사에 리퀘스트도 넣었다.
그렇게 낱낱이 알아본 결과다.
"팀을 옮기지 말라는 규정도 없고, 중복 참가에 대한 조항도 없어서……."
"아니, 같은 사람이 참가한 거잖아요. 다시 좀 물어봐요!"
"예선전은 개인에 대한 규정이 느슨한 감이 있긴 해요."
지역 예선은 100여개가 넘는 PC방에서 치러진다.
각각 10팀씩 참가한다고 쳐도 1000팀이 넘는다.
팀에 대한 관리으로도 인력이 부족하다.
개인에 대한 관리는 허술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는 어느 정도 필요한 유도리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