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2화 (32/201)

만약 진짜로 실력 있고, 스타성 있는 선수가 탈락한다?

Keg 입장에서도 흥행 면에서 아쉽다.

팀게임인 만큼 생길 수 있는 불상사다.

구성원만 바뀐다면 개인의 재참가는 터치하지 않는다.

"아, 물론 이전 팀 우승과 본선 진출에 대한 권리를 포기했을 때의 일이지만…… 본인에게 확인해본 결과 그것도 문제가 없네요."

"……."

남현태의 입장에서는 억울하다.

운전사를 고용하고 안전 벨트까지 맸는데 사고가 나게 생겼다.

무슨 홍길동도 아니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난리가 났다.

인천에 이어 서울까지 참가하다니.

심지어 규칙상 아무 문제도 없다니?

'왜 하필 나한테 이런 일이…….'

미치고 팔딱 뛸 일이지만 하소연할 시간도 없다.

지금 당장 경기가 시작하려고 한다.

이대로라면 예선전 8강에서 떨어지는 대망신을 당할지 모른다.

"아니야. 이것도 괜찮아."

"괜찮기는 무슨 그 자식이라고요!"

"너 지금 내 말에 토 다냐?"

"……."

물론 승산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싸가지에 비례한 실력을 가진 김민식.

예선전의 우승을 위해 그를 구원 투수로 불렀다.

본인도 자신이 만만한 듯하니 해볼 만하지 않을까?

아니, 할 수밖에 없다.

"그 자식은 내가 잡을 테니 걱정 말고 다른 라인이나 잘해."

"민식님만 믿겠습니다……."

여전히 불안을 떨치지 못하는 남현태는 초조하게 손톱을 오독오독 씹는다.

그와 대조적으로 민식은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그도 그럴게 로드 오브 로드.

게임도 재밌고, 인기도 많고 다 좋은데 한 가지가 늘 마음에 안 들었다.

'나보다 유명한 사람이 너무 많아.'

카오스 시절만 해도 자신이 가장 유명했다.

군대를 갔다온 2년 사이 너무 많은 것이 변했다.

주류 게임이 바뀌고, e스포츠화 되며 유명인들이 대거 쏟아졌다.

이게 다 게임을 늦게 시작한 탓.

군대만 아니었어도 로드 오브 로드 최정상에 군림했을 것이다.

민식은 항상 아쉽다고 생각했다.

그 아쉬움을 풀어낼 절호의 기회다.

'안 그래도 띠꺼운 새끼였어.'

듣도 보도 못한 자식이 시시껄렁한 짓 좀 하고, 다크라 오해 받았다고 커뮤니티의 관심을 독차지한다.

자신이 반년에 걸쳐 롤판에서 쌓은 인지도를 뛰어 넘었다.

민식으로서는 아니꼬울 수밖에 없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낸 셈이다.

하지만 만약 그 글러온 돌을 자신이 이긴다면?

거품처럼 불어난 인지도를 고스란히 흡수할 수 있다.

"저기……, 민식님 팬이에요!"

"아, 그래? 팬클럽 가입 했어? 유튜브 구독 눌렀고?"

"당연하죠! 이거 별 건 아닌데 음료수라도……."

구경꾼 한 명이 별 거 아닌 콜라를 건넨다.

이렇듯 지금도 웬만큼은 유명하다.

하지만 만족할 수준이 아니다.

롤판에서는 카오스 이상의 유명인이 된다.

그리고 프로게이머를 향한 첫 걸음을 내디딘다.

양 팀의 동의 하에 예선전 8강 경기가 시작된다.

* * *

김민식이라는 이름은 들어본 기억이 있다.

그럭저럭 인지도가 있는 파프리카BJ.

'솔로랭크에서도 만나본 적이 있고.'

딱히 유별난 일은 아니다.

천상계 유저들이 원래 다 그놈이 그놈.

반쯤은 고인물이라 큐를 돌리다 보면 만나게 돼있다.

점수 차이가 나는 탓에 몇 번 안 만나긴 했지만.

BJ가 아니었다면 기억조차 못했을 것이다.

여러가지 사건사고를 달고 다니던 올드 유저다.

'그냥 그런 실력을 가진 평범한 유저A였지.'

의아하게 들릴 수도 있는 일이다.

챌린저면 엄청나게 잘하는 거 아니야?

마음만 먹으면 프로도 할 수 있을 텐데.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대한민국에서 챌린저를 찍어본 사람이 최소 수천 명은 넘는다.

그중에서 프로를 하는 사람은 정작 5%도 안된다.

나머지 95%가 전부 프로 생각이 없어서가 아니다.

일반 유저들이 챌린저를 찍으면 가장 먼저 하는 생각.

'나도 한 번 프로게이머 해볼까?' 이거다.

'챌린저를 일반 유저라고 하니까 어폐가 있어 보이긴 해.'

코치 입장에서 보면 프로와 유망한 아마추어를 제외하면 전부 일반 유저다.

이는 단순히 점수만 보고 속단하는 게 아니다.

잠재력 같은 것도 평가의 대상이다.

알고 있는 사람임에도 인상에 남지 않았다.

즉, 까놓고 말해서 별 볼 일 없었다는 소리다.

너무 팩폭이긴 한데 본인 면전에서 말하는 것도 아니니 상관없겠지.

'어차피 이런 건 본인이 더 잘 알아.'

95%가 프로를 포기하는 이유다.

챌린저쯤 되면 그래도 일반 유저들보다는 많이 안다.

자기 실력에 대해 스스로 고찰을 해보기 마련이다.

내가 프로 무대에 가면 먹힐 수 있을까?

나보다 잘난 사람들도 성공하기 힘들던데.

안타깝게도 이 시절의 김민식은 안 해본 모양이다.

"상대팀이 꽤 시끄럽네."

"김민식이라는 인성 개차반인 녀석이 형님을 이기겠다고 호언장담했나 봅니다. 신경 쓰지 마세요. 원래 그런 녀석이라."

신체 나이가 두 살이나 더 많은 사람한테 형님 소리 들으니 아무리 나라도 살짝 무안하다.

엄밀히 따지면 무안하지 않아도 되는데 사람 마음이라는 게 너무 과하면 약해진다.

깍듯한 대접과 페이를 받는 만큼, 선전포고까지 들은 만큼 열심히 일해줄 생각이다.

챠라랑!

랄라의 Q스킬 보라색 창.

일직선으로 뻗어나가 적을 꿰뚫는다.

이번 게임에서 내가 선택한 챔피언이다.

미드 랄라의 특징은 유틸성.

혼자 다 때려 죽이는 폭딜은 안 나온다.

하드 캐리와는 거리가 있는 픽으로 분류된다.

'그렇게 생각하기가 쉽지.'

어중간한 실력으로는 제2의 서포터나 다름없다.

하지만 플레이 방식을 바꾼다면.

완전히 다른 챔피언이 돼버린다.

챠락!

챠라랑!

라인 푸쉬와 함께 평타 짤짤이.

쉴 틈을 주지 않고 르풀랑을 몰아붙인다.

랄라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이 견제력이다.

'한 방 딜이 약한 거지 짤짤이는 꽤 세거든.'

야금야금 상대의 체력을 갉아 나간다.

상대의 답답함과 초조함을 유도한다.

아마추어들은 십중팔구 넘어오게 돼있다.

터억!

퍼엉!

르풀랑이 표식을 던지고 터트린다.

침묵과 함께 무시무시한 폭딜이 박힌다.

거리를 준 시점에서 피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심지어 지금 이 시점의 르풀랑은 침묵까지 있으니까.'

피하는 게 불가능한데, 반항도 할 수가 없다.

르풀랑이 침묵을 뺏긴 이유의 한 줄 요약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는 아직 뺏기지 않아서 문제다.

명실상부한 사기캐.

하지만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다.

내가 거리를 준 이유를 전혀 모르고 있다.

챠락!

챠락!

평타를 때리며 앞으로 파고든다.

침묵에 걸려도 못 쓰는 건 스킬 뿐이다.

당황한 르풀랑의 사슬을 흘려낸 시점에서 킬각이다.

르풀랑은 스킬쿨을 모두 돌린 상태다.

남은 것은 평타 뿐이다.

평타 교환이라면 랄라를 이길 수 없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강력한 패시브 평타.

지속딜이 은근히 강한 랄라다.

물론 여기에는 한 가지 전제가 깔린다.

상대의 강한 한 방 딜을 흘려내야 한다.

열심히 잘 최선을 다해서 해내기만 하면 이렇듯 역킬각이 잡힌다.

소위 말하는 입롤이지만 입롤이 아니다.

'뭔가 좀 개같은 논리이긴 한데 틀린 말은 아니야.'

르풀랑만 너프를 먹게 되는 게 아니다.

랄라도 차후에 너프를 많이 먹는다.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고 15단 너프.

그 하나하나가 굵직하진 않다.

자잘하게 조금씩 오랫동안 죽여왔다.

반대로 말하면 죽여도 죽여도 좀비처럼 되살아났다는 거다.

플레이어의 숙련도와 실력에 비례한다.

이러한 특징을 가진 챔피언들의 숙명이다.

현 시점에서 맞는 밸런스라도 내가 하면 사기가 된다.

챠라랑!

르풀랑은 꽁지가 빠지게 사리는 수밖에 없다.

솔로킬과 디나이로 인해 차이가 현저히 벌어졌다.

그리고 이는 단순히 라인전 말렸다로 끝날 일이 아니다.

다른 라인에도 고스란히 영향을 미친다.

랄라의 진가는 소규모 교전과 백업에 있다.

이를 테면 절체절명 한 끗 차이 위기의 상황.

─아군이 지원 요청을 보냄!

정글러간에 1 대 1 싸움이 붙었다.

적 리심이 아군 이블퀸을 매섭게 쪼아댄다.

미드 라인 주도권을 바탕으로 먼저 도착해.

「커염둥이 한 방!」

달려가서 한 방 먹여준다.

상대의 반항과 도망의 여지를 빼앗는다.

이블퀸과의 협공으로 가볍게 1킬이 들어온다.

이후의 게임 진행은 간단하다.

미드 차이 하나에 균형이 무너진다.

그만큼 팀 게임에서 미드라는 포지션은 중요하다.

'실수 한 번에 게임이 터질 수 있을 만큼.'

얼핏 별 거 아닌 실수다.

그 별 거 아닌 실수가 패배로 직결될 수 있는 게 비정한 프로의 세계다.

아마추어 때 미친놈처럼 하던 얘들이 괜히 프로만 되면 얌전해지는 게 아니다.

스크림에서 최소 한 번씩은 쓰디쓴 경험을 해보기 때문이다.

물론 이곳은 프로는 커녕 아마추어 대회 예선 무대다.

그렇기에 지는 책임감도 가볍다.

"미드 차이 지리는데?"

"민식이 타워에서 나오지도 못하네."

"아오, 콜라 준 게 아깝다 자판기 커피나 뽑아줄 걸."

구경꾼들이 조금 핀잔을 주는 정도다.

장본인의 성격이 드럽다면 화가 날 수도 있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화낼 게 아니다.

프로씬에서 한 라인 차이로 게임을 진다.

인기팀인 경우 매장 수준으로 욕을 먹는다.

농담이나 과장이 아니고 진짜로 그렇게 된다.

우리나라 팬 문화가 특히 더 험악한 편이다.

하지만 아마추어들은 그럴 일 없잖아.

부담이 없다는 건 축복이다.

'저렇게 드럽게 못해도 욕도 별로 안 먹고 얼마나 좋아.'

김민식이라는 친구가 못한다는 소리가 아니다.

상대가 나였으니 만큼 어쩔 수 없다.

챌린저 티어면 나름대로 잘한다.

자기가 사는 우물 안에서는.

딱 그 정도의 느낌이다.

BJ가 아니었다면 아마 신경조차 쓰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BJ 중에서 잘하면 됐지. 적어도 러이갓보다는 잘할 거 아니야.'

그거면 된 거다.

프로를 할 게 아니라면 말이다.

프로게이머에 도전하는 수많은 아마추어들.

그들 중 꿈을 이뤄내는 이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나머지 절대 다수는 어째서 꿈을 포기하게 될까?

프로의 길이 너무 고되고 험해서.

직업 특성상 미래가 불투명해서.

그런 현실적인 이유는 사실 절반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애초에 프로를 지망할 정도다.

게임에 미쳐 살았다는 반증이다.

지금까지 한 게 아까워서라도 매달리게 된다.

포기의 계기는 실로 사소하다.

지금까지 한 게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앞으로 갈 길, 가야 할 길이 막막하다 못해 먹먹하다.

-BJ님은 왜 프로게이머 안 해요? 짱 잘하는데

-맞아 맞아 프로 하지!

-프로 하는 순간 LCK 씹터는 각 ㅇㅈ? 앙 기모띠!

한 스트리머에게 시청자가 물었다.

그 시청자의 생각에는 의아하다.

저 실력이면 프로게이머 해서 떼돈 벌 수 있지 않나?

질문에 스트리머는 이렇게 답했다.

본인도 원래는 프로를 목표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솔로랭크에서 어처구니 없는 놈을 만났다.

〈어떤 미친 고딩 새끼가 크레이브즈 궁을 보고 피하더라고. 프로는 그런 새끼들이 해야지.〉

그 미친 고딩은 가까운 미래.

롤드컵을 우승하고 세계 최고의 미드라이너가 된다.

테이커라는 세 글자가 e스포츠의 전설로 군림하게 만든다.

진짜 재능을 만나면 허탈해지는 것이다.

프로게이머를 해낼 자신감이 사라지고 만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Keg 서울 예선전 8강 경기.

사앗……!

금빛 사슬이 표독스럽게 적을 노린다.

랄라를 붙잡아 찢어버리기 위해.

그런데 랄라는 사뭇 장난스럽다.

「후후후 헤히? 웅아하우후 웅하하~하하!」

Ctrl + 4를 연타하며 웃고 있다.

스치기만 해도 죽을 녀석이 말이다.

그러니까 안 맞는다고 확신하고 있는 거다.

실제로 피했으니 할 말도 없다.

사슬이 빗나간 순간 도망조차 칠 수 없다.

민식은 악질적인 카이팅에 농락 당해 죽는다.

─적에게 당했습니다!

잘하는사람님이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미치고 팔딱 뛸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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