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6화 (36/201)

'그 짓을 했겠지 분명.'

사정을 아는 사람이 자신밖에 없다는 생각에 히죽 실소를 짓는다.

일반 유저들은 모를 천상계에서만 일어나는 일이다.

즉, 녀석의 실력은 계획적으로 꾸며낸 가짜다.

물론 웬만큼은 하니까 이런 사태도 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그 실력이 정말로 다크와 비견될 리가 없다.

아니, 만에 하나 그렇다고 쳐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형 오늘만 이기면 진짜 한동안 떼돈 벌 수 있겠어."

"집중해서 이기고 술이나 땡기러 가자. 한동안 마실 시간도 없을 테니까."

잘한다고 해봤자 개인이다.

그에 반해 자신들은 두 명.

호흡을 맞춰온 시간은 비할 데 없이 길다.

설사 다크라 하더라도 자신들 둘이라면 지지 않는다.

양학 만큼은 도가 틀 정도로 많이 해왔다.

이긴다면 화제는 고스란히 자신들의 것.

예선전 용병 제의가 쏟아져 올 것이다.

Keg 기간 동안 돈을 쓸어담을 수 있다.

한동안 바빠지겠지만 원하는 바다.

'소문을 내줄 구경꾼들이 잔뜩 있으니 이기기만 하면 돼.'

비래월 형제는 일확천금의 미래를 기대하며 착석했다.

그런 그들의 눈앞에 펼쳐진 건 당장의 현실이었다.

* * *

비래월 형제.

상대팀 용병으로 와있는 모양이다.

공교롭게도 머릿속 한 구석에 기억이 남아있다.

'워낙 철면피들이라서.'

천상계, 마스터 티어 이상의 높은 구간.

고인물이다 보니 일이 생기면 다 건너건너 들린다.

특히 소문이라는 게 안 좋은 이야기는 잘 퍼지기 마련이다.

실력적으로는 신경 쓰이지 않음에도 기억에 남은 연유다.

마챌 구간에 속한 이상 알아야 할 정보이기도 하다.

그 둘은 악질적인 행위를 지속해왔으니까.

『어뷰징』

의도적으로 게임을 져주는 행위.

돈을 받고 게임의 승패를 조작하는 것이다.

하는 놈들이 워낙 많아서 기억할 정도까진 아니지만.

─안녕하세요. 비래월입니다

시기심에 눈이 먼 아이가 제게 누명을 씌워 글을 남깁니다

짜증이 앞서지만 성심성의껏 해명하도록 하겠습니다

.

.

.

아는 사람들은 아는 이야기다.

너무 확실해서 근거를 덧붙일 것도 없다.

마치 불이 어째서 뜨거운지 설명하라는 느낌이다.

하지만 그 아는 사람, 천상계 유저가 너무 적다.

의심이 퍼지자 능청스럽게 해명했다.

커뮤니티 사이트에 직접 글을 올리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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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이 말린 건 우연에 불과합니다

근거 하나 없는 무책임한 의심입니다

유죄 추정의 원칙이나 다름이 없어요

게다가 의심글을 올린 사람이 도수죠?

저를 욕하기 전에 자기 행실이나 돌아봤으면 좋겠네요.

마지막으로 저와 동생 모두 개인방송을 하고 있으니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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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당시만 해도 어뷰징에 대해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챌린저 스트리머도 별로 없어서 정보가 제한된다.

일반 유저들에게는 이해하기 힘든 개념이다.

돈을 받고 솔로랭크를 져준다고?

브실골플에서는 일어날 가능성도 없다.

장본인이 워낙 완강히 부정하고 있기도 하다.

어? 그런가? 저 말이 맞나?

구체적인 해명까지 더해진다.

결정적으로 의심을 제기했던 이가 도수였다.

└어휴, 도수 그 쓰레기 새끼 이럴 줄 알았다

└증거도 미약한데 욕하는 잉벤러들 뭥미?

└힘내세여

└정글 종결자님도 방송 키고 해명하셨어요!

이른바 언론 플레이를 해낸 것이다.

저격을 했던 사람의 신뢰도도 워낙 낮았다.

아무리 맞는 말이라도 과정에 따라서는 뒤집힐 수 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손바닥으로 태양을 가릴 수는 없다.

아닌 척하며 이미지 관리를 하는 것도 시간 문제였다.

어뷰징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진실 또한 밝혀진다.

'근데 그게 2015년인가 2016년인가 나중 일이라서.'

정확한 시기까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최소한 지금은 아니다.

2014년인 현재에는 가식적인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높아진 인지도로 방송까지 해가며 말이다.

딱히 신경 쓸 가치는 없다.

나쁜 기억과 함께 되살아났을 뿐이다.

상대의 데이터는 요긴하게 활용할 구석이 있다.

"일단 이블퀸 잘라."

"이블퀸요? 그거 너프 먹고 사기는 아닌데. 밴할 가치까지는 딱히 없지 않나……"

팀원을 시켜 밴픽을 세밀하게 지시한다.

의아할 수 있겠지만 내 말은 절대적이다.

적어도 예선전의 결승이 끝날 때까지는 말이다.

'상대 선수의 정보를 알고 있다는 건 반은 이기고 시작하는 거야.'

약점이 많은 상대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반응이 있었다.

벽 건너 상대팀 부스가 조금 소란스러워진다.

"또도 박사도 잘라."

"또도 박사는 대체 왜……?? 진짜 이해 안되는데요?"

"까라면 까."

또도 박사는 대세였던 시절이 잠깐씩은 있지만 기본적으로 비주류 챔피언이다.

스킬 구성 자체가 워낙 수동적이기에 생기는 한계다.

밴 카드를 허비할 가치까지는 없다.

알고 있음에도 미련 없이 저지른다.

이번 반응은 한층 격해진다.

벽 건너 상대팀 부스가 조금 많이 소란스러워진다.

"카서트 잘라."

"카서트는 진짜…… 이거 결승전인데요? 그런 한물 간 시즌2 때나 쓰던 챔을."

"까라면 까라고."

"넹……."

카서트 또한 주류픽에서 한참은 벗어났다.

그럼에도 상대팀 부스는 혼란스러워 한다.

밴이 끝났으니 픽으로 결정타를 먹여준다.

"거미여왕 가져와."

"다른 거 많이 살았는데……. 요즘은 리심이 1티어 아니에요? 저 리심 더 잘해요."

"아, 그냥 해. 내가 거미 페티쉬라 그래."

"헐……, 취존."

물론 설명이 빈약한 탓도 있다.

하나하나 해석을 달아주면 좀 좋아.

그러지 않는 데에는 당연히 이유가 따른다.

'아무리 설명을 잘 해줘도 입감이 안되는 일이란 게 있거든.'

겪어봐야 아는 것도 있는 법이다.

원래 세상사 모든 일이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그 효과를 가시적으로 느끼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화락!

챠라락!

그림자가 깔리며 두 개의 표창이 날아간다.

적 트페는 안절부절 하다가 결국 맞는다.

허무할 정도로 쉽게 킬각으로 이어진다.

─퍼스트 블러드!

적을 처치했습니다!

자드는 리스크가 높은 픽이다.

편하게 꺼내 들만한 챔피언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꺼내서 재미를 보고 있다.

'팔다리 잘린다는 느낌을 솔직히 잘 모를 거야.'

상대팀 미드라이너 비래월.

카서트가 잘리자 트와이스 페이크를 꺼냈다.

이는 일반 유저들도 흔히 해보는 경험이다.

잘하는 챔피언을 못하게 됐다?

비슷한 느낌의 챔피언으로 대신 하면 된다.

숙련도 차이가 많이 나도 티어 한 단계 정도다.

하지만 천상계에서는 그 차이가 훨씬 심하다.

그냥 아예 다른 사람이 된 수준으로 격하된다.

비래월은 카서트 하나밖에 못하는 원챔 장인이다.

화락!

챠라락!

견제를 하자 안 그래도 서툰 움직임이 더 엉망이 돼버린다.

과도한 앞무빙으로 어찌저찌 용케도 피하긴 했다.

안타깝게도 맞든, 안 맞든 별 상관이 없었다.

구오오……!

미니언이 쓸려나가며 6레벨이 찍힌다.

즉시 그림자와 위치를 뒤바꾼다.

자연스레 잡히는 두 번째 킬각.

─적을 처치했습니다!

다른 걸 따지기 이전에 단순한 숙련도 부족이다.

안 그래도 한참은 밑도는 실력.

주챔피언까지 못하게 되자 그 격차는 배가 된다.

킬각 잡기 쉬운 자드로 곱절의 곱절을 만든다.

미드 라인이 매우 신속히 터져 나간다.

그리고 이는 정글도 예외가 아니다.

─아군이 적을 처치했습니다!

더블 킬!

탑 라인에서 승전보가 들려온다.

아군 탑&정글이 2대2 교전에서 대승했다.

정글 종결자의 탈리반 3세가 실수를 해버린 탓이다.

'아마추어들에게는 흔히 있는 증상이지.'

챔피언 폭이 좁은 것 말이다.

저격해주면 게임 내내 좋아 죽는다.

이를 소위 팔다리가 잘린다고 표현한다.

그 정도가 심하다면 전략적으로 활용하기 좋다.

OP챔피언을 살려줘도 못한다는 소리니까.

이렇게 대놓고 괴롭혀줄 수 있다.

'진짜로 이거는 설명을 해도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거야.'

그래도 OP챔피언 살리는 게 더 손해일 거 같은데?

해봤자 별로 위협도 안되는 비주류 픽들인데…….

천상계 유저들에게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아무리 좋은 무기라도 손에 안 익으면 말짱 도루묵.

쓸 만한 수준까지 익히는 건 천상계 기준에서 쉽지 않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빵 대신 케이크를 찾듯 간단한 게 아니다.

해당 일화가 가짜든 비약이든 그것도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건 게임이 매우 쉽다는 거지.

─아군이 당했습니다!

적 더블 킬!

적이 학살 중입니다!

이 와중에 바텀 라인이 기대를 배신하지 않지만 상관없다.

"우리 혜지 하고 싶은 거 다 해!"

우리 혜지 하고 싶은 거 다 하는 세상.

기호 1번 최창민이 만들어간다.

자신만만하게 임했던 게 실수였을까.

흘러가는 게임의 구도는 버라이어티하다.

화락!

챠라락!

단순한 표창 견제.

하지만 레벨과 템 차이가 너무 현저하다.

맞았다가는 죽겠다는 서늘한 감각은 기우가 아니다.

본능적으로 점멸을 누른 건 일단 정답이었다.

허무하게 스펠이 빠지긴 했어도 목숨은 부지했다.

비래월은 흘러내리는 식은땀을 닦을 생각도 잊고 모니터 화면만을 바라봤다.

'시발…….'

어째서 자신이 이런 굴욕을 당해야 한단 말인가?

카서트가 잘린 탓에 본실력을 내지 못하고 있다.

아니, 거기까지는 예상하고 있던 상황이다.

전적을 본다면 저격밴 정도야 할 수도 있겠지.

하나 정도 당해도 팀플레이는 지장 없다.

그 팀플레이를 해야 할 동생마저.

─아군이 당했습니다!

적이 학살 중입니다!

탑라인에 이상한 갱을 갔다가 갱승을 내고 말았다.

참다 못한 비래월은 동생에게 쓴소리를 시전한다.

"야, 탑 갈 시간 있으면 미드를 와. 자드 주구장창 라인 밀잖아!"

"형이 타이밍 맞춰서 궁을 타면 되지. 괴물을 만들어 놓고……."

"뭐 시발?"

기어 들어가는 소리를 기어코 듣고 싸움이 난다.

하지만 서로 내세우는 주장이 틀린 것은 아니다.

비래월도, 정글 종결자도 게임이 심각하게 말렸다.

당초 세워온 계획은 이러했다.

트페가 미드에서 적당히 버텨준다.

6레벨 이후 미드&정글이 돌아다니며 게임을 터트린다.

완벽한 호흡으로 전장을 지배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되기도 전에 아예 초전박살 초죽음이 났다.

그 적당한 수준의 미드 라인전이 도저히 불가능하다.

─적에게 당했습니다!

잘하는사람님을 도저히 막을 수 없습니다!

점멸이 빠진 트페.

자드에게는 맛있는 먹잇감이다.

하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사리고 있었다.

사소하다고도 말하기 애매한 빈틈.

속절없이 킬각으로 이어지고 만다.

상대의 실력이 상정했던 것과는 너무나 다르다.

'정글만 정상이었어도 아오…….'

그 실력 차를 느낄 실력조차 아니다.

턱끝까지 올라오는 불평불만.

차마 내뱉지 못하고 속으로만 삼킨다.

라인전에서 묶인 채 샌드백이 되고 있다.

어떻게 말을 주절거릴 발언권도 없는 신세다.

세웠던 계획이 근본부터 꼬이자 갈피를 못 잡는다.

첫 단추부터 제대로 꼬여버린 셈이다.

아니, 보다 거슬러 올라간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밴픽부터 게임이 이상해졌다.

"탈리반 못해 먹겠다. 나랑 너무 안 맞아."

"첫 세트는 틀린 거 같고 다음 세트에 만회하자. 설마 또 밴 그따구로 하겠어."

상상도 하지 못했던 구도다.

상대의 대처가 운 좋게 뼈를 때렸다.

예상 외의 사태를 맞이했을 뿐이다.

다시 한다면 분명 이길 수 있다.

낙관적인 자기 위안에 불과했다.

역전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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