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7화 (37/201)

이미 확실한 실효를 보았다.

전략의 방향성을 수정할 필요가 있을까?

'밴픽이라는 게 그렇게 화려할 필요가 없어.'

비장의 카드.

고도의 심리전.

상대의 묘수를 무위로 돌리는 신의 한 수.

고스트 바둑왕도 아니고 구태여 필요하지 않다.

어떤 일이든 가장 중요한 건 기본이다.

기본부터 공략해 나가야 한다.

"이블퀸."

"네."

첫 번째 세트에서 해온 작업이다.

한 마디의 단어로도 의사소통에 무리가 없다.

상대가 기본에 충실하지 않다면 그 점만 파고들면 된다.

"또도 박사."

"네!"

챔피언을 밴할 때마다 벽 건너에서 억소리가 들려온다

조금 신경 쓰이지만 걱정해줄 필요는 없겠지.

결정타를 때려 박는다.

"카서트 밴하고 거미여왕 가져와."

"SCV good to go sir!"

첫 번째 세트와 달리 블루팀이다.

무조건적으로 픽 하나를 먼저 가져오는 게 가능하다.

가져오는 것은 당연히 거미여왕.

'악의가 담긴 저격 같아 보일 수 있지만 의외로 보편적인 전략이야.'

코치였던 만큼 밴픽 전략에 대해서는 당연히 꿰고 있다.

일련의 전략은 신인 선수 상대로 자주 사용된다.

아직 아마추어물이 덜 빠진 얘들 말이다.

위협이 돼서 밴하는 게 아니다.

주력픽을 뺏어 허수아비로 만들기 위함이다.

밴카드가 소비했으니 다른 쪽에서 구멍을 메운다?

보편적이라는 건 그만큼 많이 사용된다는 의미다.

잘 먹힌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사용된 대회의 데이터도 많은데 대부분의 경우.

쿠!

챠앙!

적 탈리반 3세가 미드 라인 갱을 찔러온다.

영혼 없는 깃발을 가벼운 무빙을 밟아 피한다.

뻘쭘한 듯 그대로 방향을 틀어 돌아가려 하지만.

─적을 처치했습니다!

미흡한 체력 관리가 눈에 보였다.

굴러온 호박을 놓아줄 이유가 없다.

이렇듯 바보 같은 실수로 잘리는 경우가 많다.

'바보 같다기 보다는 사실 종이 한 장 차이지.'

보기에는 바보 같지만 사실은 큰 차이가 아니다.

정글링이 익숙해서 체력 관리가 됐다면.

깃창 적중률이 조금 더 높았다면.

그 사소한 차이로 전혀 다른 결과가 도출된다.

그리고 이를 우리는 숙련도라고 부른다.

탈리반 3세의 숙련도가 매우 미흡하다.

단순한 챔피언 폭 문제.

이른바 기본기의 영역이다.

프로와 아마추어를 가르는 벽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오또케! 오또케!"

"아, 그거 맞아주면 안되는데……."

"아 몰라!! 자꾸 나만 죽어."

응원하는 벽 말고.

바텀 라인의 열기는 여전하다.

네이티브한 본토 발음의 오또케스트라가 연주된다.

참고로 오또케는 2010년, 한 캐나다인 유튜버가 한국 여성들의 반응을 표현한 게 시초다.

절대로 여성 혐오를 위해 악의적으로 만들어진 표현이 아니다.

이토록 유창한 오또케스트라라면 그도 만족할 것이다.

'원딜 입장에선 씹고생이겠지만.'

물론 원딜러는 만족하지 못한다.

어쩌다 커플팀에 껴 가지고 저 고생을 할까?

한 가지 확실한 건 남자친구 쪽이 매우 영악하다는 사실이다.

원딜이 아니라 탑으로 빠졌다.

상황이 복잡해 보이면 달래지도 않는다.

저 정도면 거의 확신범이라고 볼 수 있다.

─아군이 당했습니다!

적 더블 킬!

서포터가 생으로 물려서 죽고 말았다.

빅 웨이브인 탓에 원딜까지 다이브 당한다.

일순간 킬 스코어가 따라잡히는 상황까지 와버렸다.

화락!

서걱!

하지만 괜찮다.

우리 혜지 하고 싶은 거 다 하는 세상.

기호 1번 최창민이 만들었으니까.

'죽여 달라고 시위를 하길래 이 꼴 날 줄 알았어.'

견제한답시고 어설프게 깝죽깝죽 대더라고.

나름대로 용기 있는 시위였을지도 모르지만 내 눈에는 안전벨트 없이 자이로드롭 타는 꼴로밖에 안 보였다.

바보가 아닌 상대는 당연히 응징했다.

결과적으로 미끼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다이브 당한 시점에 정확하게 도착할 수 있었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더블 킬!

잘하는사람님이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와 너무 잘하신다~ 고마워요! 저 이제 뭐해야 돼요?"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커피도 한 잔 빨고 편하게 하세요."

"저 그럼 커피 사와도 돼요?"

진짜로 사오리라 기대하고 한 말은 아니었지만 뭐, 그럴 수도 있는 노릇이다.

의외로 솔로랭크에서 자주 있는 경우다.

흡연충들 꼭 인베 끝나고 오지 않는가?

'그거랑 별 다를 거 없다고 생각하면…… 될 거야 아마도. 아무튼 그래.'

깊게 생각하는 건 포기했다.

놀라운 점 하나는 커피 고르는데 3분이 넘게 걸렸다는 것.

그 3분 동안 바텀이 오히려 평화로웠다는 것.

그리고 드디어 눈치를 챘다는 것.

"근데 저 혜지가 아니라 혜리인데……"

"혜지가 더 입에 착착 감기니까 혜지라고 부를게."

"네? 왜요?"

그런 게 있다.

몰라도 된다.

세상 모든 일을 꼭 알아야 할 필요성은 없다.

'오늘 하루는 혜지해. 내일도 할 수도 있겠지만.'

꼭 알지 않아도 괜찮다.

내일도, 내일 모레도 사람의 인생은 그 자신이 만들어가는 법이다.

모쪼록 내 시선이 닿지 않는 곳은 혜지가 아니었으면 싶다.

* * *

아마추어 대회 Keg.

프로 대회를 제외하면 가장 인지도가 높다.

이따금 재밌는 사건이 터지면 관심이 집중되기도 한다.

조금 지나치게 폭주하고 있다.

벌써 수백 만원에 달하는 폭리를 취했다는 소문.

사촌이 땅을 사도 배가 아픈 형국에 잉벤의 여론을 흥분시키기 충분하다.

─잉벤러들이 마왕 장사 부러워하지 않아도 되는.EU

어차피 곧 따라하는 얘들 생겨서 일자리 잃음 ㅅㄱ

대리처럼 막힐 듯

└(팩트)대리는 막히지 않는다

└어휴, 돈냄새는 기가 막히게 잘 맡아요

└인생이 한철 장사ㅋㅋㅋ

└수요가 있는데 당연히 공급이 생기겠지

수요와 공급의 법칙.

누구나 한 번은 들어봤을 경제학 이론이다.

현재는 수요에 비해 공급이 적기 때문에 가격이 높다.

하지만 그 공급을 충족시켜준다면?

마왕이 떼돈을 버는 게 알려지자 피드백은 즉시 왔다.

실력에 자신 있는 상위권 랭커들이 군침을 흘리며 따라했는데.

─김민식 예선 8강 강탈 실화냐……?

─BJ나잘해 방송 키고 갔다가 개쪽.avi

─비래월, 정종 마왕 만나서 개털림ㅋㅋㅋㅋㅋㅋㅋ

쪽팔린 패전보만이 울려온다.

제대로 흉내내는 사람조차 없다.

누구도 마왕의 밥그릇에 숟가락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장본인의 기세는 수그러들지 않는다.

믿고 싶지 않지만, 믿어지지 않지만 승리 뿐.

이쯤 되자 커뮤니티의 여론도 흔들린다.

─혼자 캐리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네;;

김민식도 그렇고 비래월 형제도 그렇고

소문은 안 좋아도 실력은 알아주는 얘들이잖아

그런 얘들도 쪽을 못 쓰는 거 보면 진짜 잘하긴 하나 봐

└김민식 아가리는 챌린저잖아ㅋㅋㅋ

└(팩트)진짜 챌린저다

└마챌도 두들겨 패는 마왕 당신은 도덕책……

└김민식이 마왕 다크 아니래. 방송에서 말함

자칫 쪽팔릴 수도 있는 일이다.

평소 네임드라 불리던 유저였다면 더더욱.

한 가지 다행인 건 비슷한 처지인 사람이 많다.

흩어진 흥미는 마왕에게로 모여진다.

대체 누구길래 이토록 이슈를 몰고 다닐까?

마챌 네임드들도 고개를 젓는 솔로캐리를 해낼까?

─대회라는 게 솔랭에서 양학하는 거랑은 다름 ㄹㅇ

BJ 중에 대회 나간 얘들 있어서 봤는데

개인 실력도 중요하지만 팀플 경험 유무가 크더라

└롤이 5대5인데 게임인데 당연하지

└그래서 마왕이 대단한 거

└대체 어떻게 캐리하지?

└씹잘하니까!

한 번만 지면 패배한다는 악조건.

솔로랭크와 달리 변수도, 전략도 신경 써야 한다.

그 희한한 일을 홀로 해내자 잉벤 내에서도 재조명 받는다.

『마왕은 무조건 승리한다.』

어떤 수단을 사용했는지.

얼마나 한 실력을 가졌는지.

정보가 제한돼있으니 어떻게 알 방도가 없다.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하다.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았다.

비아냥에 불과했던 드립이 가시적으로 와 닿는다.

잉벤 검딱 잉벤킹의 권위에도 통제가 되지 않을 지경이다.

독보적인 캐리력을 발하는 그의 행보.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대통령배 e스포츠 대회 Keg.

아마추어들에게는 기회의 무대다.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자리다

지역 예선의 통과.

하기만 한다면 전력 강화를 통해 결선까지 노려볼 수 있다.

프로 데뷔의 꿈에 한 걸음 다가가는 셈이다.

'그렇긴 한데.'

하지만 나에게는 그렇지 않다.

내 목표는 고작 아마추어 대회가 아니다.

노리는 건 우승이 아니라 과정과 수익이다.

약간의 사례를 받고 소원 성취에 도움을 주고 있다.

규모가 커지다 보니 주수입이 돼버렸다.

벌써 거둬들인 액수가 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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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일자      계좌 번호  입금액

2014/06/30  105-640-*  800,000원

2014/06/30  270-011-*  500,000원

2014/07/01  660-055-*  550,000원

2014/07/02  130-701-*  50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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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액 23,263,247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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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선전이 진행된지 약 3주일.

도움을 준 팀이 서른 개가 약간 안된다.

그 보상으로 받은 돈이 2050만원 안팎이다.

기존에 모아둔 돈과 생활비를 제하면 2300만원 가량.

고작 한 달 가까운 시간에 벌었다는 걸 생각하면 상당하다.

아니, 대수롭지 않게 괜찮은 벌이 했다고 할 만한 액수가 아니다.

'진짜 드럽게 많이 번 건 맞지.'

프로게이머 시절 최고 연봉은 진작에 뛰어넘었다.

코치 연봉은 기본적으로 선수랑 비할 바가 아니기 때문에 따질 것도 없다.

그만한 액수를 벌어 놓고 기분은 별 탈 없이 덤덤하다.

목표 액수에 비해 턱없이 부족해서.

그것도 있지만 가장 큰 건 그렇게 살아온 탓이다.

솔직하게 프로게이머 생활하다 보면 금전 감각이 없어진다.

'원래 프로게이머들이 그래.'

직업 특성상 연봉은 많다.

불안정성을 고려해 상당히 높게 책정된다.

아무리 적게 버는 선수라도 웬만한 대기업 직장 뺨을 친다.

그런데 일이 바빠서 돈 쓸 시간이 없다.

애초에 그런 사치와 향락을 모르는 나이대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10대부터 연습에 빠져 산다.

돈도 써본 놈이나 쓰는 거지.

게임밖에 모르는 얘들이 게임 얘기밖에 더 할까?

돈이 나갈 만한 주제의 대화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심지어 여자도 없어.'

밥 해주는 이모님이랑 썸탈 게 아닌 이상 이성과의 접점이 전무하다.

그냥 업계 구조상 사치와 거리가 너~~~~~~~~무 멀다.

조금 지나칠 정도로 클린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연예인이, 가수가, 스트리머가 돈을 허비한다는 기사는 셀 수도 없이 자주 올라온다.

프로게이머가 그러고 다닌다는 기사는 1년에 하나 나와도 많이 나온 수준이다.

프로게이머의 수가 적은 것도, 수입이 적은 것도, 관심이 적은 것도 아님에도.

'가끔 생각해보면 진짜 특이한 업계이긴 해.'

물론 이상한 사람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순수한 겜돌이들 집합체다.

연봉은 많은데, 돈도 별로 안 쓰고, 일에만 집중한다.

통장에 돈이 쌓이지 않을 수가 없는 삶이다.

비단 그래서 번 돈에 감흥이 없다는 건 아니다.

사실 마음만 먹었다면 배 이상도 못 벌 것이 없었다.

사람들의 경쟁 심리에 기름을 끼얹는다면 어려울 것도 없다.

'지망생의 간절함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까.'

그렇기에 악용 하고 싶지 않았다.

나 또한 같은 고민을 하며 살아왔으니까.

인생에 남은 것이 후회와 번민밖에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딱히 선인은 아니지만 나름대로의 선은 지킨다.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인생 만큼 서글픈 것이 없다.

그런 내적 갈등은 접어두고서라도 보다 큰 그림을 봤을 뿐이다

"행님들, 제가 죽은 이유가 뭘까요?"

-까기도 귀찮다;;

-이래서 ㄹㅇㄱㄹㅇㄱ 하는구나

-??릾캆 쵮?????럾?

-이걸 추천 받으려고 큰 그림 그리네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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