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비 종교급의 추종자들이 다수 존재한다.
악마의 재능이라 불릴 정도로 매력적이다.
하지만 악마들 중에서도 천외천이 있는 법이다.
마왕이라는 두 글자가 가진 의미.
추종자들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이치였다.
* * *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사실 듣도 보도 못한 유명인A가 1년에 몇 억원씩 번다는 소식을 들어도 느끼는 감정은 마찬가지다.
부럽다는 감정은 대상이 누구든 느낄 수 있다.
그럼에도 굳이 속담에서 말하는 대상이 사촌인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당시에는 집성촌 문화가 일반적이었다.
사촌은 근처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이웃 주민A.
같은 생활 수준을 살던 친구가 갑자기 땅부자가 되다니?
상대적 박탈감을 더욱 느낄 수밖에 없다.
현재 차승혁의 상황이 그러했다.
'아니, 시발 저 새끼가 왜…….'
자신이 클랜장을 밑고 있던 킬리만자로의 표범.
Keg 본선의 응원과 지도를 위해 현장에 찾아왔다.
그런데 눈앞에 굉장히 신경 거슬리는 녀석이 보인다.
마왕이 서울 지역 본선에 참가했다는 이야기는 이미 들었다.
하지만 한 가지 만큼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자신은 감히 말도 걸기 송구한 프로게임단들의 감독, 코치들.
"프로 생각 있으면 언제 한 번 진지하게 날 잡고 이야기 해보지 않겠나?"
"자네는 자네의 가능성을 아직 몰라. 우리 같은 전문가들에게 코칭을 한 번 받아보면~."
결승전이 시작하기 전, 그를 에워싸고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심지어 스프링 시즌의 우승, 섬머 시즌의 준우승팀.
삼선 게임단의 감독 뇌신 최우룡까지 보인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래라 깔보던 상대.
입장이 뒤집힌 수준을 넘어 닿지도 않을 지경이다.
차승혁의 눈이 돌아가는 것도 당연했다.
프로게이머 연습생.
대다수 선수들이 겪는 과정이다.
아마추어를 벗어나 프로로서 가져야 할 기본 소양들을 배운다.
어디까지나 배우는 입장인 것이다.
게임단 입장에서는 데리고 있어서 득 볼 게 없다.
회사의 인턴들은 잡다한 일이라도 하지, 연습생들은 그런 것도 하지 않으니까.
일반적으로 연봉이 없거나, 매우 적게 책정된다.
연습생의 생활은 궁핍할 수밖에 없다는 소리다.
때문에 차승혁은 대리 게임으로 생활비를 충당했었는데.
'내가 저 자식 때문에 얼마나 쪼들리며 살았는지…….'
울화통이 터져 저지른 PC방 키보드 파손.
하필 기계식 키보드인 탓에 한두 푼이 아니었다.
그래도 평소 같았으면 대리 매물 한두 건으로 막을 수 있었다.
대리라는 게 작정하고 하면 몇십 만원도 뚝딱이다.
하지만 그럴래야 그럴 수가 없는 처지.
차기 시즌 서브 선수로의 데뷔가 확정된 상태다.
어쩌다 잘못 사건이라도 터지면 데뷔 자체가 무산된다.
기계식 키보드의 수리비는 살점을 도려내는 기분이었다.
맨밥과 라면 국물을 곱씹으며 원흉에 대한 증오심은 커져만 갔다.
"야, 모자 내놔봐."
"모자요? 네…… 뭐 여기요."
차승혁은 최명태에게 뺏어 쓴 모자를 눌러 쓰며 주위를 둘러봤다.
자신의 얼굴을 알 만한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한 번 저질러볼 만도 하다.
킬리만자로 클랜은 B조 소속으로 서울 지역 본선을 치렀다.
화제가 가득했던 A조와 달리 관심을 못 받았을 뿐이다.
무난한 경기력으로 결승전까지 쉽게 진출했다.
하지만 결승전에서 진다면 도로아미타불.
커뮤니티 등지에서 반응이 뜨거운 상대다.
지금 자신이 하려는 건 클랜 차원에서도 필요한 선택이다.
"형이…… 대신 하겠다고요? 엥??"
"들키면 장난으로는 안 끝나는데요."
"안 들켜 짜식아. 내가 작년 4강 출신인 거 잊었어?"
차승혁은 작년 Keg에 참가했던 이력이 있다.
경기 지역 대표팀으로 결선 4강까지 올라갔다.
그런 만큼 대회의 규정도 빠삭하게 아는 입장이다.
'심판 한 명 허수아비처럼 있는 수준이지. 모자 쓰는 정도로도 충분해.'
본선부터는 개인의 정보도 체크한다.
중복, 혹은 대리 참가를 막기 위함이다.
하지만 그 수준이 엄격한 정도는 아니다.
마음만 먹으면 대리 참가도 못할 것이 없다.
무슨 짓을 저질러도 안 들키면 죄가 아닌 법이다.
방송 경기가 아닌 본선이기에 증거도 남지 않는다.
"솔직히 만에 하나 들켜도 저희는 상관없거든요? 근데 형은 어떡해요."
클랜 차원에서는 크게 반색할 일이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강서구팀.
팀원들 하나하나가 보통 쟁쟁한 수준이 아니다.
이대로라면 결승전 패배가 거의 확정이나 다름없다.
Keg에 쏟은 수개월간의 노력이 무위로 돌아간다.
그런 위기일발의 상황에서 확실한 구원 투수.
차승혁은 평소 클랜의 연습에 도움을 주었다.
갑자기 끼더라도 팀워크에 전혀 문제될 게 없다.
패배의 그림자가 드리우던 결선 진출에 활로가 생긴다.
'전력 상승은 물론이고 오더의 수준까지 높아져.'
어차피 가만히 있으면 지는 건 매한가지다.
클랜장인 김민수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걸 안다.
하지만 차승혁의 입장에서는 그렇지가 않을 텐데.
"좆돼도 내가 좆돼니까 신경 꺼라."
"……."
클랜 동생의 진심 어린 걱정.
데뷔 때문에 대리 게임도 그만둔 차승혁이다.
걱정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렇기에 하는 것이기도 하다.
'저 자식을 못 털면 앞으로도 되는 일이 하나도 없을 것 같다고.'
저격을 하고 되려 웃음거리가 되었던 사건.
본인은 인정하지 않을지언정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기억 한 구석에서 차승혁을 매일매일 괴롭히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배 아픈 꼬라지까지 목도 해버렸다.
안 그래도 다혈질인 성격으로 참을 수 있을 리가 없다.
찾아온 복수의 기회.
눈이 돌아간 그에게 다른 길이 보일 리 만무했다.
* * *
"자네 잠깐 이야기 좀 하지……."
"아, 안 사요 안 사!"
"……삼선 게임단의 감독 최우룡이라고 하네."
Keg 서울 지역 본선 3일차.
두 팀을 제외하고는 전부 짐을 쌌다.
서울 대표의 이름을 걸고 마지막 결승전이 치러진다.
현장에 도착하자 말을 거는 사람 투성이다.
방송에서 봤다는 자칭 팬들.
심지어 e스포츠 관계자들까지 있다.
한두 명이면 그러려니 할 텐데 너무 많아.
야속하게 대했더니 게임단의 감독이다.
그것도 삼선 게임단의 최우룡.
'사실 알고 있었는데 일부러 그랬어.'
워낙 특징적으로 생겨서 모를 수가 없다.
The 꼰…….
대중 교통을 이용하다 보면 많이 보이는 상이다.
대체로 젊은 피인 e스포츠판이라 기억을 못할 수가 없다.
실제로 자주 뵙기도 하였다.
그래서 더 싫다.
'거기는 임금을 못 맞춰줄 거 같단 말이야.'
삼선 하면 대한민국 굴지의 대기업!
그런 이미지가 있지만 e스포츠판에서는 다르다.
스타크래프트 시절부터 기타 대기업 팀들에 비해 인색했다.
LOL에서는 특히 더해서 전기세까지 아낀다더라?
최우룡 감독이 뇌신(雷神)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 연유다.
그래도 성적은 잘 나오는 팀이라 메리트가 없지는 않은데.
"해강고, 율천고 너네 둘은 나중에 삼선은 절대 들어가지 마라."
"네?"
"니들 스타일에는 안 맞아."
선수 색깔을 획일화하는 경향이 있다.
그 선수한테 맞으면 상관없지만 안 맞는 선수도 마개조를 해버려서.
'아직 스타일이 안 잡힌 신인 선수들에게는 좋지 않아.'
색깔이 워낙 확실한 팀이다 보니 생기는 단점이다.
반대로 감독과 코치한테는 진짜 좋은 팀이다.
전략 짤 때 복잡하게 고민 안 해도 되니까.
아무튼 관계자들의 적극적인 제안.
한 번의 패배를 만회했다는 확실한 방증이다.
하지만 앞으로 남은 결승전을 패배한다면 수포로 돌아간다.
"오늘은 진짜 방심하면 안되겠다. 상대 챌린저도 있고 수준 높네."
"킬리만자로…… 소문은 별로 안 좋아도 실력은 있는 데잖아."
"솔랭에서 만났을 때는 꽤 못하진 않았어."
그래봤자 아직은 본선.
팀원들의 대화에도 자신감이 묻어있다.
실력이 있는 상대인 건 맞지만 그 실력, 더 있으면 더 있지 덜 있지는 않다.
'실제 솔랭 점수도 더 높으니 괜한 자존심이라고 볼 건 아니지.'
과신이 아닌 자신이다.
냉정하게 판단만 한다면 나쁠 것은 없다.
적절한 자신감은 컨디션 관리에도 좋은 영향을 끼친다.
한 번의 패배 이후 깨달은 것이 없지는 않은 모양이다.
기본적인 마인드에 긍정적인 변화가 생겼다.
그렇게 남을 신경 쓰다 보면.
"그러고 보니 형 킬리만자로랑 싸우지 않았어요?"
"아, 나 그거 봤어! 현피 떴다고 하던데."
"……."
내 사정을 까먹을 때가 있다.
그러고 보니 킬리만자로 뭐시기.
이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반대쪽 대진이라곤 해도 한 번 쭉 훑어 보았다.
이제 와서 기억 나는 게 새삼스럽다.
눈치를 못 챈 게 용할 지경이다.
'근데 엑스트라 이름을 일일이 기억할 필요는 없잖아.'
안 그래도 고민할 일 많은데 메모리를 엄한데 소비하기 귀찮다.
스쳐 지나가는 인연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어차피 누굴 만나든 최소한 질 일은 없을 테니.
수준이 다소 높아져 봤자 고전하기엔 한참은 밋밋하다.
적당히 긴장감 있는 연습 상대가 되리라.
예상대로라면 그렇게 되어야만 했는데.
─아군이 당했습니다!
흘러가는 첫 번째 세트의 판국이 다소 다이나믹하다.
미드 라인.
아군 제임스가 적 자드에게 솔로킬을 따이고 말았다.
"아~~!! 알고 있었는데."
"아는데 왜 당해?"
"창민이형한테 욕 먹고 싶었나 보지."
"죄송……."
율천고미드킹.
팀의 미드 라인을 맡고 있다.
챌린저 자드 장인으로 익히 유명한 녀석이다.
그 자드를 뺏기자 정신을 못 차린다.
제임스 숙련도의 미숙이 눈에 보인다.
평소 같았으면 니 스킬 명중률이 너무 엿 같아서 모렐로가 니 손을 버프할까 고민하겠다, 이런 덕담을 건넸겠지만.
'즉석 피드백을 할 만한 상황이 아니야.'
제임스 대 자드의 구도.
최소한 10분까지는 제임스가 자드를 억제해야 한다.
그래야만 픽의 이유가 살고, 자드의 존재감을 죽일 수 있다.
그 정도는 율천고도 알고 있을 것이다.
자드 장인으로서 모를 수가 없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당해버린 이유는 한 가지로 귀결된다.
화락!
챠라락!
미드 라인의 견제가 매섭다.
자드의 플레이에 날카롭게 날이 서있다.
생각 이상으로 상대의 실력이 난해하다.
'저 녀석이 저 정도로 잘했다니 놀랍긴 하네.'
LOK 작은맹수.
예비 지갑 2호의 아이디다.
재밌게 놀았던 친구인 만큼 실력 또한 잘 안다.
아무리 율천고가 주력픽을 못했다고 한들 저 녀석한테 질 정도는 결코 아니다.
한 가지 짚이는 건 있지만 당장의 상황이 급선무다.
'……내가 하필 정글을 하고 있어서.'
피드백을 하기 위해 일부러 선택했다.
전체적인 상황을 살피기에 가장 적합하다.
하지만 게임을 캐리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솔로랭크에서는 가장 캐리력 높은 포지션인데?
팀 게임에서는 이야기가 180도 다르다.
수동적인 플레이가 강요되기 때문이다.
이렇듯 라이너가 알아서 망해버린다?
정글러도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어진다.
라인을 설 때처럼 주도적인 캐리를 하기 힘들다.
'그렇다고 한타 캐리를 바라보는 것도 어불성설이고.'
라이너보다 부족한 성장.
라이너보다 부족한 아이템.
심지어 2014년은 정글러가 제2의 서포터 취급을 받던 시기다.
게임 내 줄 수 있는 영향력에 한계가 있다.
일반적인 시선에서는 분명 맞는 말이다.
그마저도 나의 손에 들리면 예외가 된다.
두근! 두근!
애꾸사자 궁극기가 발동한다.
그 사기적인 은신갱이 표적을 노린다.
강화된 목줄이 또도 박사에게 휘감기며.
─적을 처치했습니다!
속전속결.
상대의 동선을 예측해 사소한 빈틈을 후벼 판다.
시야와 백업 속도가 밀려도 판을 짜내는 능력 자체가 다르다.
"와, 갱 타이밍 진짜 예술이었다."
"애꾸사자 씹장인인 거 몰라? 유튜브에서 영상 봤는데 존나 잘해!"
"……."
조금 찔리는 바는 있지만.
처음 PC방 대회를 양학하던 시절.
애꾸사자로 재미를 봤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버그를 정식 대회에서 쓰면 뒤가 켕기잖아.'
안 그래도 관심이 집중되는 형국이다.
유튜브 등으로 영상도 업로드되고 있다.
만에 하나의 사태가 일어날 일은 지양하는 게 좋다.
『제 15 조 (부정행위)』
가. 게임 상에서 발생되는 버그를 고의적으로 악용하여 이득을 취한 경우, 주최측의 판단 하에 실격 조치 및 향후 대회 참가 자격을 박탈한다.
이렇듯 정식 대회에는 관련 규정이 존재한다.
티아매트 버그는 까놓고 말해 ?박도 못한다.
"모르고 썼어요" 라는 변명이 통할 레벨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