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통하는 레벨인 버그도 있어.'
'어떤 일이든 안 들키면 죄가 아닌 법이다.
킬리만자로 클랜의 부스 안.
그 어느 때보다 일산불란하게 움직이고 있다.
前클랜장인 차승혁의 오더는 그들에게 있어 절대적이다.
'제길, 병신 같은 갱킹이나 당해주다니.'
미드 라인을 압도하며 게임의 주도권을 잡았다.
그 주도권을 살리지 못하고 적 정글에 놀아났다.
해주고 싶은 말이 산더미지만 당장 중요한 건 게임의 승리.
"오바하지 말고 대치만 하라고 알겠어?"
"네, 하고 있어요."
"절대 안 물릴 테니 걱정 붙들어 매세요!"
게임의 상황은 분명 팽팽하다.
꽝! 한타를 붙는다면 어찌 될지 모른다.
하지만 LOL이라는 게임은 단순한 힘 싸움이 아니다.
'네깟 놈이 날고 기어봤자 진짜 프로한테는 안돼.'
러이갓의 방송에서 그를 저격했을 때.
결과적으로 패배를 하게 된 것은 사실이다.
부정을 할래야 할 수 없을 정도로 수차례 깨졌다.
차승혁은 패배의 이유가 자신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솔로랭크의 특성상 운이 없었을 뿐.
그리고 장기를 발휘하지 못했을 뿐.
서걱!
서걱!
자드를 잡고 무난하게 성장했다.
사이드 라인, 스플릿 주도권을 휘어 잡았다.
그 의미는 여느 때보다 크게 와 닿는다.
박살을 내놓은 제임스도, 탑에서 잘 성장한 럼블도 자신을 막을 수 없다.
1 대 1을 무조건 이긴다.
그 하나의 전제 하에 자드라는 픽의 의미는 살벌해진다.
'네 녀석도 마찬가지야.'
제법 귀찮게 해줬지만 그래봤자 백정, 정글이다.
라인전 단계가 끝난 이상 녀석이 할 것은 없다.
피말리는 탈수기 운영으로 목을 조인다.
스플릿 운영이야 말로 차승혁의 장기다.
이렇듯 오더가 가능한 팀 게임이라면 더욱.
킬리만자로 클랜은 그의 충실한 수족이 되어주고 있다.
"바텀 라인 보이지? 천천히 바론쪽 시야 잡아먹어."
"상대가 이니시 걸어오면 어떡하죠?"
"그럴 수가 없어. 정글 보이는 순간 바론 칠 준비나 해."
상대도 제법 재간이 있다는 걸 안다.
하지만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자신과는 격이 다르다.
아마추어들은 모르겠지만 프로의 운영은 비할 바 없이 체계적이다.
'니놈이 뭘 할지는 다 손바닥 내라고.'
자신이 바텀 2차 타워를 압박하는 순간.
은신 궁극기를 활용해 람블과 함께 덮칠 것이다.
그 사전 준비로 반드시 아래쪽으로 동선을 밟아야 한다.
즉, 바론쪽 대치 구도는 4 대 3이다.
수적 우위를 바탕으로 시야를 점할 수 있다.
정글이 보이면 한타를 열거나 바론을 트라이하면 된다.
차승혁은 연습생으로서 팀의 스크림에 참가한 적이 많다.
여러가지 배울 기회가 있었고, 그 지식을 활용 중이다.
완벽하진 않아도 아마추어 상대로는 차고 넘친다.
'벌써 궁을 켰다고?'
그렇게 머릿속으로 그려낸 계산.
하지만 예상과 현실은 다룰 수 있다.
상대가 아마추어인 만큼 정상적인 궤도에서 벗어나도 이상하진 않다.
아직 바텀 라인을 충분히 내려가지도 않았다.
애꾸사자가 주위에 은신해있다는 경고 표시가 떠오른다.
기가 찬 상황에 차승혁은 히죽 입꼬리가 올라갔다.
구오오……!
적당히 도망가는 척 꼬리를 흔든다.
애꾸사자가 덮치는 순간 태세 전환.
자드의 궁극기 죽음의 선고가 사형을 집행한다.
물론 상대도 노리는 바가 있을 것이다.
저 멀리서 람블이 불바다 미사일을 깔 수 있다.
올가미 속박과 연계해 자신을 잡아볼 생각이겠지만.
'멍청한 새끼! 다 알고 있다고 했지?'
복수심에 불타 눈은 멀었어도 어리석진 않다.
차승혁은 자신의 컨디션이 최고조임을 직감했다.
차오른 아드레날린이 판단력을 보다 또렷이 보정한다.
지금이라면 강화된 올가미도, 떨어지는 미사일도 피해낼 수 있다.
그 자신감 자체는 틀린 것이 아니었을지 모른다.
한 가지 상정하지 못했을 뿐이다.
콰직!
콰직!
내려찍히는 발톱, 평타는 어떻게 똥꼬쇼를 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애꾸사자의 딜이 너무 세다.
체력이 빠른 속도로 단다.
'어, 어??'
상정 외의 사태.
당황한 차승혁은 그림자와 위치를 뒤바꿨다.
허겁지겁 점멸까지 썼지만 그 뒤를 따라온 애꾸사자에 강화된 발톱에.
─적에게 당했습니다!
강서구 Satan님이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자드의 딜 사이클은 시간이 다소 소요된다.
궁극기 폭딜이 터지는데 약 3초의 시간.
그 사이에 얻어 맞고 깨지고 말았다.
"시발 뭐 이렇게 세?!"
"형 죽었어요?"
"우리 바론 치래서 쳤는데……."
자신도 모르게 본심이 육성으로 새어 나오고 만다.
계획을 치밀하게 세웠던 만큼 충격 또한 크다.
멘탈을 바로 잡을 시간마저 주어지지 않는다.
차승혁이 사전에 내렸던 오더.
킬리만자로팀은 충실하게 실행하고 있었다.
3 대 4였을 바론 교전에 람블이 텔레포트를 탔다.
자드의 스플릿이 손쉽게 막혀버린 탓이다.
그 과정에서 궁극기 사용도 없었다.
사용하지 않은 궁극기는 고스란히.
「파멸의 비를 맞아라!」
바론을 치고 있는 킬리만자로팀을 향해 떨어진다.
가두리 양식장이 노릇노릇하게 타들어간다.
* * *
흔히 대회 경기에서 말하는 운영.
사실 보는 입장에서는 어려울 것도 없다.
'이렇게 저렇게 해가지고 그냥 유도리 있게 잘 움직이면 되는 거 아니야.'
하지만 당연하게도 실제로 행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판단 하나하나에 리스크와 리턴을 고려해야 한다.
그것도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게임 내에서.
고작 그것만으로 끝나는 일도 아니다.
수준이 높아질수록 변수 또한 많아진다.
단 하나, 상정하지 못한 실수가 치명적인 결과를 야기한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강서구 Satan님이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자드가 허무하게 잡히자 본대 쪽에도 영향이 다이렉트로 간다.
람블이 합류하며 손쉽게 바론 트라이를 막아냈다.
점멸을 단체로 쓴 탓에 킬은 내지 못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해.'
운영적인 관점에서 이미 끝난 게임이다.
자드가 더 이상 사이드 주도권을 가지지 못한다.
상대의 본대도 점멸이 없어 이니시에 매우 취약하다.
1 대 1을 과신했던 자드의 실수.
그 하나만으로 게임이 터져버린 셈이다.
어떻게 보면 상대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다.
"창민이형이 잡으면 똑같은 챔피언도 더 센 거 같지 않냐?"
"내가 할 땐 저런 딜 절대 안 나오는데."
"……."
장인들의 영상을 관전하거나 할 때.
생각 이상의 강력함에 감탄스러울 때가 있다.
자신이 하면 같은 상황에도 저런 딜이 안 나오던데.
'대부분은 버그입니다.'
어떤 게임 디렉터의 말에 의하면 그렇게 정리될 것이다.
일반적인 이유는 챔피언 숙련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면 딜 사이클을 녹여내는 솜씨.
그런데 간혹 진짜 버그인 경우도 있다.
챔피언이 가진 본래 위력 이상을 내뿜는다.
잘만 활용한다면 성능을 배가 시키는 것이 가능하다.
Q - 사자발톱
버그발톱: 적중 시 효과가 두 번 적용되던 버그를 수정했습니다!
차후에 업데이트되는 구인수의 격분검 효과를 패시브로 가지고 있는 셈이다.
평Q평q를 박으면 순간적으로 온힛 효과가 여섯 번 터진다.
자드가 한순간에 녹아버린 숨겨진 사정이다.
하지만 이 버그가 치명적으로 사기냐?
묻는다면 사실 그렇지 않다.
공격력 아이템 위주의 세팅을 했다면 사실상 없는 버그다.
「불타는 섬광」
공격력: +15
공격 속도: +35%
기본 공격 적중 시 몬스터에게 100의 추가 피해를 입히고 체력을 10 회복합니다.(챔피언 상대로는 피해량이 1/3로 감소합니다.)
온힛 아이템의 최고봉인 불타는 섬광.
여기에 몰락검을 더해 시너지를 극대화시켰다.
사소한 버그라도 활용하기에 따라서는 이렇듯 사기가 된다.
'가장 좋은 건 특정이 안된다는 거지.'
티아매트 버그는 고의성을 부정하기 힘들다.
특정 매커니즘을 정확하게 시행해야만 한다.
한두 번은 몰라도 계속 그런다면 의심을 안 받는 게 더 이상하다.
하지만 일련의 버그는 겉으로는 전혀 이상한 점이 없다.
몰락검도 선택률이 낮은 거지, 아예 안 가는 템은 아니니까.
AOS 게임에서 정보의 선점은 사기라는 두 글자로도 부족하다.
"2인 바론 할 테니까 나머지 연기해."
"그게……돼요?"
"되니까 말하시겠지."
"토 달지 마 임마!"
내가 괜히 이미 끝난 게임이다.
그런 극단적인 단정을 한 게 아니다.
점멸이 전부 없는 상대는 시야 장악에 애로 사항이 꽃핀다.
어느 정도는 대비를 하겠지만 사소한 것.
정글러와 서포터가 안 보이는 정도는 넘어간다.
단순히 안 보이거나, 귀환 타이밍을 잡았다고 보는 게 타당하기도 하다.
'2인 바론을 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하겠지.'
아군조차 상상을 못하고 있으니 당연하다.
불타는 섬광에 몰락검, 그리고 버그.
정글몹을 잡는데 최적화돼있다.
빠른 레벨링과 아이템 세팅이 가능했던 연유다.
이는 오브젝트도 예외가 아니다.
서포터가 몸만 대주면 바론조차 토막낸다.
─바론 백작을 처치했습니다!
단 하나, 상정하지 못한 실수가 치명적인 결과를 야기한다.
한 번 꼬이면 수습이 불가능한 지경까지 치닫는다.
팀 게임의 운영이 어려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상대의 어설픈 운영.
약점을 골라 푹푹 찌르자 간단히 무너진다.
막싸움을 하면 변수라도 있지,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은 꼴이다.
─아군이 포탑을 파괴했습니다!
─아군이 포탑을 파괴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사이드 라인.
자드도 이제 마음 놓고 푸쉬를 못한다.
나한테 걸리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바텀과 미드를 동시에 밀며 돌려깎기가 진행된다.
초반에 조금 휘청였던 게임.
정상 궤도에 올려 놓았다.
'그러고 보니 기억이 났는데.'
당장의 수습을 위해 바쁘게 전력을 쏟았다.
한숨 돌리고 나자 얼마 전 기억이 떠오른다.
러이갓과 처음 합방을 했을 때의 기억 말이다.
LOK 작은맹수.
예비 지갑 2호가 저격을 했었다.
두 번째 판부터 실력이 갑자기 늘어나 ATM기가 고장났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이유를 이제야 명확히 알게 되었다.
Keg 서울 본선의 경기장.
장소가 협소한 탓에 눈길을 조금만 돌리면 반대쪽 부스가 보인다.
모니터야 반대 방향이니 당연히 안 보이지만 선수 얼굴은 즉석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그런 거였단 말이지.'
우리 친구가 현실의 벽을 마주하고 좌절해 전면 성형 수술을 선택한 게 아닌 이상 한 가지 가능성으로 귀결된다.
대리 게임.
비단 솔로랭크에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대리 시험 사례도 매년 끊이지를 않는데 대리 경기가 뭐 별거겠는가?
개인 확인 절차가 간소한 아마추어 대회에서는 이따금 걸린다.
그 피해자가 되는 것도 있을 수가 있는 일이다.
'뭐 사실 딱히 피해자는 아니지만.'
진다면 피해자지만, 이긴다면 그냥 사소한 트러블이다.
연습도 더 잘되니 팀적으로는 오히려 이득이다.
감사함을 전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이런 재미난 일을 나 혼자만 알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승전은 5전 3선승제로 진행된다.
한 번의 패배가 치명적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내가 실수한 거 미안하긴 한데. 사이드 부담이 너무 크다 보니까 손이 꼬인 거야."
"죄송해요. 저희가 라인전 단계에서 조금만 정신 차렸으면……."
"그래도 중반까지는 할 만했으니 이길 수 있어요!"
첫 번째 세트를 패배한 킬리만자로 클랜.
실수를 보완해 으쌰으쌰 해보자는 분위기다.
긍정적인 자세는 좋지만 흔히 빠지기 쉬운 실수다.
LCK, 롤챔스 경기를 보다 보면 이따금 나온다.
약팀이 강팀을 상대로 초반 우위를 점한다.
마치 이길 것처럼 시종일관 몰아붙이다.
그렇게 이변이 터지는 경우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마술처럼 비벼진다.
정말 결과적으로 눈 떠보면 게임이 져있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차승혁은 미드 라인을 압박한 끝에 솔로킬을 따냈다.
상대 강서구팀의 미드라이너 율천고.
그의 약점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드 말고는 사람 노릇 못하는 놈이 어딜 내 앞에서 깝죽대.'
첫 번째 세트에서 미드 차이를 중심으로 승기를 잡았다.
그 발판을 두 번째 세트에서도 마련해냈다.
하지만 넘쳐나는 힘을 소비할 구석이 없다.
─적이 용을 처치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