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 잠깐 귀환한 타이밍에 용을 먹히고 말았다.
상대 정글도 언제 먹었는지 텅- 비어있다.
어떻게 로밍이라도 가보려고 했지만.
'아니, 딜교환을 빡세게 해놓던가 라인이라도 만들어 놓던가……'
잘 크긴 했는데 딱히 할 게 없어.
미드에서 CS를 받아먹으며 시간이 흘러간다.
대회에서 종종 나오는 스노우볼이 안 굴러가는 경우다.
만약 관전 모드로 봤다면 생각이 조금 달라졌을 것이다.
로밍 타이밍을 잡을 거면 미리 설계를 했어야지.
당장의 상황을 대처하는데 급급한 결과다.
스크림에 참가하며 견문을 넓혔지만 그래봤자 수박 겉 핥기.
하물며 경험도 부족한 반아마추어에 지나지 않다.
안 그래도 정신 없는 실시간 게임에서 설계를 할 여력이 있을 리가 없었다.
─아군 포탑이 파괴되었습니다!
─아군이 당했습니다!
이곳저곳에서 들려오는 패전보.
초반의 유리함도, 미드 주도권도 온데간데없다.
갈수록 더 숭숭 뚫리는 구멍에 정신을 못 차리고 농락 당한다.
강팀은 치명상은 당하지 않는다.
약팀은 스노우볼을 굴리는 능력이 미흡하다.
이 두 가지가 맞물리며 어처구니 없는 역전이 나오게 된다.
그나마 첫 번째 세트는 역전 당했다고 위안이라도 삼았지.
진행되는 두 번째 세트는 샌드백처럼 맞기만 하고 있다.
모든 프로 관계자들이 다전제의 첫 단추를 중요시하는 이유다.
첫 번째 세트를 승리한 팀은 보다 완벽하게 이길 궁리만 하면 된다.
반대로 진 팀은 자신들이 세워온 전략에서부터 회의감이 든다.
다른 전략을 써야 하나?
단순히 실수로 진 건가?
프로팀들도 매번 골머리를 썩는 문제다.
아마추어팀이 현장에서 즉석으로 수정할 수 있는 레벨이 아니다.
다가오는 세 번째 세트.
"시발 새끼들아, 제대로 좀 하라고!"
"아니, 형 근데……."
"지금 말대꾸 하냐?"
보다 처절한 결말이 기다린다.
* * *
Keg 서울 지역 본선 결승전.
가장 지대한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현장 방송이 되진 않지만 정보는 실시간으로 올라온다.
어디에?
커뮤니티에.
내용은 단편적여도 할 말은 전부 전하고 있다.
─서울 본선 결승전 관람 후기.txt
알지?
└ㅇㅇ
└ㅄ
└ㅅㅂ
└무조건 승리했다고?
딱히 전하지 않아도 이심전심 알고 있지만.
한 줄로 요약될 것이다.
이변은 없었다.
─강서구 Satan님을 도저히 막을 수 없습니다!
그나마 치고 박았던 첫 번째 세트와는 대조적이다.
시종일관 강서구팀의 리드 하에 흘러간다.
그 중심에 있는 건 역시나 그 선수.
"확실히 싹이 있어. 바로 전력으로 써 먹어도 될 수준이야."
"삼선 사탄, 삼선 마왕. 어울리지 않나?"
"허허, 닥치시게."
경기를 지켜보는 관계자들의 반응이 호평일색일 만도 하다.
이따금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구는 대형 신인들.
까고 보면 소문에 못 미치는 경우가 대다수다.
그도 그럴게 사실 당연하다.
일반 유저와 관계자의 시선은 다르다.
단순히 점수 높고, 피지컬 개쩐다고 좋은 선수가 아닌 것이다.
"강서구팀 얘들이 전체적으로 기본이 돼있어요. 그죠?"
"글쎄, 자네랑 나랑은 판단 기준이 많이 다르니까."
e스포츠는 일반 스포츠와 달리 선수의 가치를 판단하기 난해한 점이 많다.
엘리트 코스르 밟아온 선수라던가.
고교 리그에서 활약을 했었다거나.
감독, 코치에게 추천을 받는 등 체계적인 시스템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름대로의 판단 메뉴얼은 있다.
프로팀마다, 상황마다 다른 점은 있어도 대부분 이 몇 가지 만큼은 공통적이다.
첫 번째는 바로 챔피언폭.
이쿠, 이쿠!
현 메타에서 1티어로 손 꼽히는 픽이다.
앞으로도 쭉 사용되는 정글계의 교과서.
리심은 선수의 피지컬을 가장 가시적으로 알 수 있는 지표이기도 하다.
현장 관중들의 이목이 집중된다.
리심의 동선이 미드 라인을 향한다.
와드 방호로 벽을 넘어 음파를 자드에게 적중시켰다.
침착한 스킬 적중이 감탄을 자아내지만 아직이다.
라인이 짧은 미드 라인의 특성.
괜히 잘못 들어갔다가 역으로 당해 죽는 수가 있다.
이~쿠우!
그럼에도 불구 한 치의 망설임도 없다.
생존각, 역관광각을 재던 자드의 명치에 점멸-범의 일격을 먹인다.
체력이 절반 이상 남아있었음에도 한순간에 골로 간다.
─강서구 Satan님이 학살 중입니다!
"와~~ 콤보 까리한 거 봐라."
"근데 저거 너무 겉멋 아니야?"
"그냥 날아가서 점멸 아끼고 잡지~."
갱킹은 훌륭하게 성공시켰다.
하지만 그것이 최선의 판단이었는지.
경기를 보는 관중들 사이에서 판단이 엇갈린다.
너무 과투자, 겉멋이었다.
아무튼 잡았으면 된 거다.
과연 어느 쪽의 말이 옳은 것일까?
이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프로 관계자들도 일련의 장면을 보고 있었다.
흥분한 관중들과는 반대로 냉철하게 상황을 직시한다.
""…….""
아니, 할 말을 잃었을 뿐이다.
자드의 체력 상태가 안 좋기는 했다.
하지만 원콤에 보내버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날아갈 때 평타 한 번 박았던 게 컸네요."
"그게 돼?"
"……뭐, 되죠. 테러스티나 R평이랑 같은 원리라서."
"그래? 그러면 잡을 만도 했네."
모든 감독과 코치, 기타 관계자들이 잡기술에 해박한 게 아니다.
한 코치의 설명에 미스테리의 마지막 조각이 짜맞춰진다.
음파를 맞춰 놓고 점멸-궁을 쓴 이유가 납득이 간다.
리심의 Q스킬 2타 데미지는 잃은 체력에 비례해 커진다.
R평으로 먼저 체력을 깎아 놓으면 더 세게 박힌다.
물론 관중들의 말대로 겉멋 같아 보이기도 하나.
'만약 실피로 살았으면 오히려 리심이 위험했겠지.'
'센스가 제법인데? 과감하고 침착한 판단이 아주 마음에 들어.'
대부분은 그 이유 또한 이해하고 있다.
프로 레벨에서는 적의 실수를 기대하지 않는다.
상대의 대응이 이상적이라 상정하는 게 기본 방침이다.
만약 자드가 리심이 날아오는 순간 점멸을 썼다?
바로 그림자를 사용해 뒤로 빼며 QE를 먹였다?
역으로 죽는 것은 십중팔구 리심이 되었다.
과감한 앞점멸 콤보로 그 여지를 삭제시켜 버렸다.
애매할 수 있었던 킬각.
리심의 센스 하나로 180도 다른 구도가 연출된다.
"미드, 탑만 잘하는 줄 알았는데 정글까지……. 하 고놈 진짜 물건이네."
"저렇게 라인 폭이 넓다는 건 게임 이해도도 꽤 있다는 거거든."
챔피언폭, 그리고 피지컬, 과감한 판단력과 집중력.
솔로랭크도 아닌 대회 무대에서 펼쳐내고 있다.
관계자들의 평가가 오르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도 저런 건 실패했을 때 리스크가 높은데 안 하는 게 낫지."
"저는 해도 상관 없다고 생각하는데……"
"게임이 안정적으로 오래 가야 좋은 거야. 알겠어?"
"배터리 충전 때문은 아니죠……?"
물론 케바케다.
이렇듯 독단적인 판단.
자칫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는 노림수.
좋아하지 않는 보수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삼선 게임단의 감독 최우룡이 그러했다.
그런 사소한 취향 차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강서구 Satan님이 전장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럴 만한 캐리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 자신이 원석임을 증명하고 있다.
접전으로 시작했던 결승전은 어느새 강서구팀의 원사이드한 마운팅이 되었다.
결국 마지막 보루, 세 번째 세트까지 무너져 내린다.
소위 용준하지 않고 임팩트 있게 끝났다.
마왕에게만 관심이 있던 관중들에게는 좋은 일이다.
〈강서구팀……, 아니 이제는 서울팀이죠. 우승 축하드립니다!〉
Keg 서울 지역 본선의 결승전.
우승 상금 100만원의 수여식이 진행된다.
LOL의 게임사, 폭동 게임즈의 직원이 축하 인사를 전한다.
예선, 본선, 결선……, 올라갈수록 보다 큰 단위의 지역구를 대표한다.
강서구 대표팀은 서울 대표팀으로 승격된 것이다.
그 주역.
〈결승전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큰 격차로 이겼잖아요? 서울을 대표해서 참가하게 될 결선도 그만한 자신이 있는지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마왕의 손에 마이크가 잡힌다.
경기장 내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된다.
당사자의 소감을 들을 수 있는 자리가 열렸다.
〈저희가 결과적으로 3대0으로 이겼지만 그 과정이 무난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서 보다 결선 준비에 힘을 쏟겠습니다.〉
〈아~, 그래요? 저희가 보는 것과는 달리 선수들 입장에서는 많이 긴장되는 요소가 있었나 보죠?〉
처음 그의 이름이 알려졌을 때.
하필 다크와 엮이며 이러저러 사고가 있었다.
인성이 좋지 않다는 안타까운 선입견이 입혀졌다.
의외로 겸손하며, 성실한 인터뷰가 호감을 불러일으킨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패배한 상대팀에 대한 예우조차 갖추고 있다.
〈미드분이 티어가 마스터라고 들었는데 챌린저 이상급으로 하더라고요. 저희가 상대적으로 전력이 우세했던 상황에서도…….〉
사실 관중들은 물론 관계자들도 마왕의 플레이만을 주목했다.
경기 내용도 그렇고, 인지도도 그렇고, 애초에 여기 온 이유도 그렇고.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확실히 준우승팀의 미드라이너도 제법 활약을 했다.
"꽤 나쁘진 않았지?"
"좀 가려져서 그렇지 플레이만 놓고 보면 압박도 잘했고, 운영적인 판단도 나름……."
다른 누구도 아닌 마왕이 그리 말해주고 있다.
한순간 관심을 가게 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프로 관계자들도 흥미를 보이며 긍정적인 이야기가 오가고 있던 차.
"어, 쟤 설마……."
"왜? 아는 얘야?"
"연습생인 걸로 아는데. 뭐지?"
일부 관중석이 조금 소란스러워진다.
단 한 번의 패배가 논란이 되었으리 만큼 화제의 중심에 있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말았던 Keg 서울 지역 본선이 마무리된다.
─잉벤러들이 암만 까도
무조건 승리하는 그는 도덕책……
└서울 대표됐네ㄷㄷ
└서울 Satan
└사탄이라고 하니까 더 사악해 보여ㅋㅋㅋ
└근데 왜 영어닉으로 바꿨지?
프로게이머들은 영어 아이디를 쓴다.
지금에 와선 자연스럽지만 시초가 있다.
1세대 e스포츠인 스타크래프트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스타크래프트를 플레이하기 위한 배틀넷.
초기에는 한국어를 아예 지원하지 않았다.
답답했던 일반 유저들이 '한스타' 패치를 만들었을 정도다.
당연하게도 정식 대회에서는 사용되지 않는다.
애시당초 영어로 만들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2세대 e스포츠인 LOL로 넘어와서도 고스란히 유지된 전통이다.
─영어닉으로 바꾸는 건 당연한 거 아님?
마왕 본인도 프로 데뷔 목표라고 했고
프로 할 거면 당연히 영어닉 쓰는 거지
└글킨 한데 ㅅㅂㅋㅋ
└닉이 하필ㅋㅋㅋㅋ
└???: 아, 이건 좀……
└역시 그분의 새로운 자아!
즉, 닉네임을 영어로 바꾸는 것 자체는 전혀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번역의 과정에 다소 의문이 남는다.
사악한 느낌이 안 들 수가 없다.
아, 이건 좀;;
소리가 절로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본디 다크라 의심 받았던 그이기에 더욱 화제가 되었다.
「[Keg] 이변은 없었다. Keg 강서구 본선 우승(종합)」
「[Keg] 한 번의 패배? 사고였을 뿐. 3-0 화끈한 완승!」
「[Keg] 강서구팀 우승, 3연승 보다 빛난 우승자의 품격」
하지만 현실에서도 종종 있다.
우락부락 생겨서 착한 사람,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아이디가 조금 익살맞을 수도 있는 노릇이다.
Keg 서울 지역 본선의 결승전.
많은 이들의 관심 속에서 우승팀이 결정되었다.
그 자체는 예상 그대로이나 놀랄 만한 사건도 있었다.
〈저희가 결과적으로 3대0으로 이겼지만 그 과정이 무난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서 보다 결선 준비에 힘을 쏟겠습니다.〉
방송을 통해 그의 입담을 본 사람도 있지만 안 본 사람도 많다.
더욱이 개인 방송의 특성상 자극적인 맛이 섞인다.
설사 본인이 의도하지 않아도 그렇게 된다.
시청자들의 반응.
합방을 하는 BJ들의 유도.
가벼운 느낌으로 들뜨지 않기가 도리어 힘들다.
하지만 장소마다 맞는 분위기가 있는 법이다.
개인 방송에 출연했을 때와는 달리 사뭇 진지하다.
잘난 척, 으스대기는 커녕 겸손하고 성실한 태도가 이목을 끈다.
-오~ 지들도 알고 있네
-율천고 자드 짤리니까 개털림ㅋㅋㅋㅋ
-인지하고 열심히 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얘넨 성장할 듯
현장에 찾아간 스트리머가 있었다.
최근 화제가 되는 만큼 특이한 일도 아니다.
방송은 곧 어그로, 흥행을 위해 발품 좀 파는 게 대수일까?
시청자들의 채팅도 대단히 긍정적이다.
화끈했던 경기 내용은 물론이고 우승 소감.
전체적으로 호감을 불러일으켰다는 반응이 줄을 잇는다.
─마왕 이 새끼 분노 조절 잘되네ㅋㅋㅋ
내가 정글이었으면 미드 뒤통수 조졌음
└자드 장인이 자드한테 솔킬씹ㅋㅋㅋㅋ
└근데 진짜 아마추어들은 솔랭에서 아무리 날고 기어도 한계가 있음
└ㄹㅇ 그래서 마왕이 더 대단한 거
└의외로 정상인이네. 실망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