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이 불투명하게 느껴진다.
언제까지 갈지도 모르겠고, 하는 과정도 매우 어렵다.
자신의 본 실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괜히 데뷔했다가 거품만 꺼지는 게 아닌지.
만에 하나 잘못되면 개인 방송의 인기에도 지장이 생긴다.
그러니까 스트리머.
속된 말로 단타 치는 게 낫지 않나?
당장의 상황만을 고려하는 게 훨씬 안정적인 것도 사실이다.
그런 세간의 흐름에도 확고한 신념을 고수하고 있다.
다이렉트로 프로를 하겠다는 야심찬, 준비된 신인.
마왕을 지켜보는 관심이 부풀어 오르는 이유다.
* * *
최근의 일상은 한참 바쁘다.
팀 단위 연습과 함께 아르바이트까지 병행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몇몇 프로팀에게 연락도 받고 있지만 관심은 없다.
'가치가 정해지지 않은 물건은 후려치기 마련이야.'
아직 Keg가 채 끝나지도 않았다.
그리고 내가 노리는 건 그 이상이다.
벌써부터 시기상조, 계약을 논할 것은 없는 일이다.
물론 이는 확실한 자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e스포츠판에서 10년 이상 굴러먹은 경력과 노하우.
이미 길을 알고 있기에 발을 내딛는데 주저함이 없다.
"거품 확-! 꺼지면 어떡해. 솔직히 혼또니 그런 생각 해보긴 했지?"
"……."
-너무 직구 아님?ㅋㅋ
-그걸 본인한테ㅋㅋㅋㅋ
-유단시타네~
-보황 오늘 방송감 싸라있네!
하지만 보는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합방을 진행하며 보황과는 제법 친분이 쌓였다.
그러다 보니 한 가지 권유도 받게 되었다.
당장 프로 할 거 아니면 방송을 해보는 건 어떻겠냐?
2014년은 한창 인터넷 방송이 주목 받던 시기다.
유망한 직종으로 분류되며 지원자가 줄을 섰다.
대기업에 속하는 보황이 밀어준다면 적지 않은 도움이 된다.
딱히 자기 이속을 챙기려는 속셈도 아니다.
오히려 걱정을 해서 하는 말이다.
"아는 챌린저BJ들한테 물어봤는데 대부분 프로 데뷔에 회의적이더라고. 할 것도 많고, 리스크도 높다고."
"아~ 뭐 그런 시각도 있죠."
-BJ나 프로나 버는 돈은 비슷한데 프로가 훨씬 빡세잖아
-ㄹㅇ 솔랭만 해도 별풍 터지는 스트리머가 개꿀이지
-나도 러이갓보다 잘하는데 BJ 할 거임ㅋㅋ
어설프게 프로 하느니 BJ가 훨씬 낫다.
일련의 여론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나도 코치 재직 시절 자주 상담 받아본 내용이다.
'직업 특성상 허구헌날 들을 수밖에 없었지.'
선수들 상담하다 보면 무조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야기다.
나는 특히 더 개인적인 상담 요청이 잦았다.
왕년에 상당히 인기가 있었거니와 굴곡도 겪어온 탓이다.
"근데 저는 기준이 좀 잘못됐다고 생각해요."
"기준? 챌린저보다 더 필요하다고?!"
"솔직히 챌린저는 웬만하면 찍잖아요."
"그, 그렇지……. 여러분들 이거 인정하시죠?"
-ㅇㅇ 나 챌린저 2티어
-챌린저도 못 찍어본 흑우 없제~?
-저세상 Q&Aㅋㅋㅋㅋㅋㅋㅋㅋ
-마피셜: 챌린저는 개나 소나 찍는다
아니, 장난으로 하는 소리가 아니다.
러이갓의 방송처럼 채팅창에 챌린저 수천 명이 대기하고 있는 걸 전제로 말한 것도 아니고.
"일단 좀 들어보세요."
"들어보기도 전에 역겨운 냄새 살짝 나는 거 같긴 혀."
"진짜로…… 자기 인생 버리고 게임만 미친 듯이 하면 챌린저까지는 찍어요."
게임을 오래 해온 사람들에게는 한 가지 습관이 붙는다.
최대한 효율적으로 하려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특히 쉽게 찾을 수 있는 버릇이다.
친구가 RPG 게임을 시작했다!
무조건 이게 사기니까 이거 키워야 한다고.
무조건 스킬 이거 찍고, 저걸로 전직 안 하면 망캐라고.
"옆에서 훈수 두는 놈들 존나 많잖아요."
"그거 인정! 어제 POE 하는데 코와이네~ 5초마다 스킬 바꾸라고 가조쿠들 싸우고 난리도 아니었자너~."
-어제 방송 씹레전드ㅋㅋㅋㅋㅋㅋㅋ
-결국 개똥 스킬 찍었다 아님?
-응, 제대로 찍은 거 맞아
-챌린저랑 RPG는 격이 다른 거 같은데……
그렇게 다를 것도 없는 이야기다.
한 달, 두 달.
고작해야 방학 기간.
이 정도가 아니라 글자 그대로 인생을 갈아 넣으면 행동 하나하나에 극한의 효율을 추구하게 된다.
그런 사람들이 롤에서 챌린저를 찍는 거다.
반년만에 달성했다, 이런 유저도 알고 보면 게임 자체를 오래했다.
처음부터 맨땅에서 이룩하는 게 아닌, 살면서 쌓아온 게임 센스가 플레이를 도와준다.
'근데 이게 결국 재능이라고 보기는 애매하거든.'
공부로 비유하면 보다 간단하게 정리된다.
한 달에 수천 만원대의 과외 받고, 하루에 3시간씩 자며 공부해서 박사가 된 사람.
뭔가 설명할 수 없는 기괴한 천재성으로 자연스럽게 박사인 사람.
일반인이 보면 어느 쪽도 천재지만 그 천재들 사이에서도 격이 한참은 갈린다.
챌린저도 넓은 의미에서 마찬가지다.
단순히 시간을 엄청나게 투자해서 챌린저가 된 사람은 대부분 한계에 마주친다.
"한 마디로 너는 재능충이라 괜찮다는 거네."
"뭐, 굳이 요약하면 그렇게 되겠죠."
"확실히 창민이가 재능이 있기는 혀. 인정! 근데……."
"네."
"나는 왜 챌린저를 못 찍을까? 인생 더 갈아 넣을 것도 없는디."
"……."
-1만 시간의 법칙 실패……
-그 누구보다 게임을 많이 하는데!
-아니, 보황 봐봐~ 챌린저 재능 맞다니까?
물론 약간의 재능은 필요하다.
신이 버린 재능의 소유자면 어쩔 수 없지.
그래도 웬만하면 보통은 찍을 수 있다는 소리다.
"형은 방송의 재능이 있잖아요."
"BJ 안 했으면 인생 살짝 좆될 뻔하긴 혔어."
"방송 끄고 하시면…… 분명 아마도 Maybe, Probably 찍을 수 있을 거에요."
-아마도가 좀 많은데……?
-결국 잘난 체로 끝나네ㅋㅋㅋ
-근데 마왕은 진짜 될놈이긴 함ㅋㅋ
사람마다 다른 재능을 가지고 있는 법이다.
방송의 재능이 매우 뛰어나니 밸런스는 맞잖아.
그리고 실제로 신이 버린 재능으로 챌린저 찍은 사람도 있다.
"어느 정도냐면 다른 일 안 하고 게임만 주구장창 하는데 대포도 제대로 못 먹어요."
"뭐? 챌린저가? 그건 좀……."
"진짜로요."
"위로해주고 싶은 건 알겠는데 그건 1절, 2절 카카시 뇌절이지~."
-말도 안되지ㅋㅋㅋ
-CS도 제대로 못 먹으면 마스터도 못 달아
-전력으로 위로해주려 했지만 Fail
아니, 진짜다.
속고만 살았나.
나도 볼 때마다 너무 신기하고 답답해서 직접 마우스 잡고 먹여주고 싶을 정도다.
"진또배기면 거의 인간 승리격 사례 아니여?"
"그렇다고 볼 수 있죠. 언젠가 인간극장에 한 번 나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진짜 있다고?
-있으면 별풍 1만 개 쏜다
-대포를 못 먹는다니 설마……
현실은 가끔 픽션을 뛰어넘는다.
* * *
Keg의 본선은 전국 각지에서 열린다.
전라도 호남의 최대도시 광주광역시.
쿠워어어어!
광주 대표팀을 결정하는 결승전이다.
그림자가 쏟아지며 적을 공포에 물들인다.
말카림이 미쳐 날뛰며 솔로킬을 따내고 만다.
와아아아아-!
현장 관중들 사이에서 박수 갈채가 쏟아진다.
그를 보기 위해 찾아온 팬들이 수십이다.
심지어 일련의 광경은 송출되고 있다.
-ㅁㅍㅁㅅ
-무등산 적토마 이쿠요~
-대포 따위 쿨하게 멸시하고 솔킬 따시는 그는 도덕책……
-인간조무사 재슥쿤!
까메오팟TV.
인터넷 스트리밍 사이트.
수만 명에 달하는 시청자들의 응원이 터져 나온다.
대통령배 e스포츠 대회 Keg.
넷상에서 한창 화제가 되고 있다.
그 이유는 비단 마왕, 그리고 서울 지역 대표팀 때문만이 아니다.
「진형을 무너뜨려라~~!」
우렁찬 외침과 함께 달려나간다.
뚜벅뚜벅.
정직한 움직임이 보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낸다.
"갓렌을 왜 쓰는 거야 대체? 능욕용인가?"
"아니, 학상은 무등산 믹서기도 모르능가?'
옆자리의 아저씨도 알 만큼 유명하다.
전세계 원탑 갓렌 유저!
그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위상을 자랑한다.
「눈도 깜짝 안 한다!」
그런 똥챔을 쓰는 유저가 달리 없기 때문이다.
김재슥의 갓렌이 용맹하게 외친다.
그 기합이 무색하게도 체력바가 쭉쭉 줄어든다.
헤일의 불꽃 싸다구에 인정사정 없이 두들겨 맞는다.
뚜벅이인 갓렌은 부들부들 떠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수세에 몰렸던 것도 잠시.
이~쿠우!
상황이 순식간에 급변한다.
불꽃처럼 튀어나온 리심이 궁극기로 뻥-! 차버린다.
그새를 놓칠라, 김재슥의 갓렌이 점멸 침묵을 먹이며.
「정의를 위해-!」
학창 시절 찐따처럼 맞고 살던 한풀이를 제대로 시전한다.
침묵으로 상대의 혹시 모를 궁극기를 원천 봉쇄.
점화와 궁극기 콤보로 깔끔하게 마무리해낸다.
와아아아아-!
관중석에서 찬사가 쏟아져 나온다.
갓렌에게 제 2의 인생을 살게 해주었다.
랄사장의 리심이 훌륭한 갱킹으로 탑라인을 풀었다.
「버거킹!」
하지만 반대쪽 바텀 라인이 문제다.
대각선의 법칙이 고스란히 적용된다.
탈리반 3세의 궁극기가 배인을 가둬버렸다.
데구르-!
터엉!
위기일발의 상황 속에서도 침착하다.
배인은 좌로 구르며 탈리반 3세를 밀쳐낸다.
자신이 만든 벽에 쳐박히며 스턴.
─적을 처치했습니다!
서포터와 함께 탈리반을 순식간에 녹이고 점멸로 유유히 빠져나간다.
?선장의 슈퍼 플레이가 전황에 쐐기를 박는다.
탑과 바텀에서 동시에 이득을 거둬냈다.
-우리 가붕이 한 건 했누!
-저걸 대회에서 쓰네ㅋㅋㅋ
-?선장도 미쳤다ㄷㄷ
-크~ 우리 PD들 자랑스럽다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은 실시간으로 방송되고 있다.
까메오팟TV.
인터넷 스트리밍 사이트다.
파프리카TV에서 스트리머들을 BJ라고 부르듯, 까메오팟TV에서는 PD라고 일컫는다.
그 PD들이 단체로 뭉쳐 Keg에 도전장을 던졌다.
써컹!
미드 라인.
탤런의 목베기가 파사딘의 뒤를 잡는다.
수많은 표창들이 나부끼며 갈기갈기 찢어버린다.
지금 이 순간을 고대하던 팬들이 많다.
그도 그럴게 마침 마려웠던 참이다.
채팅창 반응이 불현듯 폭주한다.
-나니ㅣㅣㅣㅣㅣㅣㅣ
-참수 마렸던 참에ㅋㅋㅋㅋ
-앗쌀람 알라이쿰!
-He is Pakistanis
파키스탄에서 전수 받았다는 참수 비법.
파키맨의 탤런은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예사롭지 않은 출신 덕에 세계 최초 IS형 미드라이너라 불린다.
파키스탄 혼혈아로 삼삼한 와꾸를 자랑하기 때문이다.
챔피언의 특징과 결합하며 이제는 하나의 컨셉이 되었다.
물론 정말로 컨셉인지, 지령인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란이 인다.
─파키맨은 왜 Keg에 참가하는 거지?
혹시 '대통령배' 이기 때문은 아니겠지……
└쉿!
└삐빅! FBI에 의해 감시 받는 게시글입니다
└-?? ???? ?????? ??? ???
└「혁명」은 계획대로
혹자는 Keg에 도전장을 던지는 게 아니고 청와대에 수류탄을 던지는 거 아니냐?
하필 대통령배에 출전하는 의도가 무엇이냐?
그런 의혹을 제기하고 있지만 사실무근이다.
와아아아아-!
Keg의 광주광역시 지역 본선.
세 번째 세트가 끝나며 우승팀이 정해진다.
현장까지 찾아온 팬들과, 수만 명의 시청자들의 응원이 헛되지 않았다.
"상금 100만원 수령 축하드립니다! 이렇게 상금도 많이 받았는데 맛있는 거 사 드시겠어요?"
"순대에 쏘오주 마실 건디."
-역시 쏘오주!
-편의점 순대……
-전라도에선 뭐 찍어 먹음?
-순대는 당연히 초장이지 맛알못쉐키덜~
조금 헛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Keg 광주 대표팀의 주장 김재슥의 우승 소감.
너무나도 조촐한 메뉴 선택에 폭동 게임즈의 직원을 당황하게 만든다.
"그래도 오늘은 맛있는 거 먹어도 되지 않을까요?"
"그런가아? 간만에 회라도 묵을까……."
-깐-깐한 안주 선택
-역시 '그 나라' 의 음식을 택하시네요!
-나까무라 자이스키쿤!
-사스가 후지산 호카게ㄷㄷ
김재슥 또한 한국인과 일본인의 혼혈이다.
나까무라 자이스키라는 일본 이름도 가졌다.
하지만 국적은 당당한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국방의 의무도 마친 진짜 사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