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와서는 Keg에서 가장 화제가 되고 있을 정도다.
화룡점정[?龍點睛].
한 가지 속보가 안 그래도 높아지는 관심에 기름을 붓는다.
─[속보] 서울팀 판결문 떴다…….jpg
17:00 결선 1R
Keg 광주 VS Keg 서울
「참수」
└나니이?????????
└왜 참수임? 혹시 테러라도 함?
글쓴이-이래서 눈치 빠른 꼬맹이는 싫다니까
└넌 너무 많은 걸 알아버렸어
다가오는 Keg 결선 첫 번째 경기.
화제의 중심에 선 두 팀의 대결이 예정됐다.
Keg의 우승과 대한민국의 안보를 두고 세간의 이목이 집중된다.
* * *
Keg 결선 당일날이 밝았다.
경기가 열리는 상암 e스포츠 스타디움.
최근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되는 만큼 흥행 또한 예상이 되었지만.
"??????? ?? ????? ???? ??? ??? ???"
"??? ???? ??? ???!"
"???? ????? ????? ???? ???????."
조금 예상하기 힘든 진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이국적인 언어가 관중석 곳곳에서 귀를 간지럽힌다.
얼핏 당황스러울 수 있으나 사실을 알고 나면 별 건 아니다.
-와 팟수들 많이 왔네
-지들끼리 암구호 쓰네ㅋㅋㅋ
-인싸쉑들 어리둥절하죠?
-몰라 뭐야 그거 무서워……
까메오팟TV의 인기PD들이다.
방송 경기에 출연한다는 소식을 듣고 팬들이 가만 있을 리가 없다.
평소 활동성과는 거리가 있는 팟수들도 오늘 만큼은 발품을 아끼지 않고 찾아왔다.
〈확실히 요즘 Keg가 주목 받고 있고, 세간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 현장의 뜨거운 열기로 느껴지네요!〉
〈그 뜨거운 열기가 모쪼록 진짜 열기가 되지 않아야 하긴 할 텐데…….〉
Keg의 결선부터는 마치 롤챔스처럼 정규 방송으로 나간다.
파프리카TV, 토이치TV, 네이버TV 등 인터넷 플랫폼은 물론 오프게임넷의 케이블로도 말이다.
진행을 맡는 성승현 캐스터의 물음에 커뮤니티의 반응에 관심이 많은 클끼리 해설이 대답한다.
〈참고로 입장료가 없습니다! 무료, 공짜에요! 많은 팬분들이 찾아와서 응원해주시면 선수들도, 저희들도 힘이 나거든요.〉
〈맞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열기가 뜨거워서 정말 한국 e스포츠의 미래가 기대되네요.〉
-김서준은 모르네ㅋㅋㅋ
-클끼리만 쪼개고 있어ㅋㅋ
-제발 피신해!
-오늘 지는 순간 상암 e스포츠 경기장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PD파키맨.
이국적인 외모 탓에 오해를 불러일으키곤 한다.
수 틀리면 테러를 해버린다는 일종의 밈이 있다.
당연하게도 그럴 리가 있을까?
테러와는 거리가 먼 한국 사회다.
하지만 선수 얼굴이 나오자 생각이 약간 달라진다.
〈어……. 예, 넋을 잃고 바라보게 되는 매력이 있네요. 광주 대표팀의 미드라이너 파키맨 선수입니다.〉
〈실제로 파키스탄 혼혈이고, 여동생이 도내 최상위 랭크라는 정보가 있습니다.〉
-어이! 위험하다구!
-선수 정보가 아니잖아ㅋㅋㅋ
-클끼리 이 새끼 100% 준비해왔네
-IS에 납치 당한 인질 시점.avi
최근 커뮤니티와 SNS에서 이슈가 되는 이유를 보여준다.
방송을 타며 더더욱 불거지리란 건 불 보듯 뻔하다.
하지만 그에 맞서는 상대.
와아아아-!
관중석 이곳저곳에서 소란스러운 함성이 들린다.
소문으로만 듣던 실력을 직접 목도할 수 있는 기회다.
서울 대표팀이 모습을 드러내자 찾아온 팬들이 아우성이다.
〈서울팀도 소문의 그 선수를 중심으로 굉장한 이슈를 몰고 있는 팀이죠?〉
〈그렇습니다. 이미 아시는 분들 아시겠지만…….〉
실제로 적지 않은 팬들이 관중석에 모습을 보인다.
고작해야 아마추어팀.
이렇듯 팬덤이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다.
하지만 절대적인 기준에서는 못 미치는 것도 사실이다.
LCK팀들은 물론이고, 상대팀인 광주 대표팀에게조차.
알려진 것에 반해 깊은 팬심을 가진 이들은 적다.
-정말로 무조건 승리할까?
-대회는 다르다니까
-우리 팟수 대표팀이 더 세!
-마왕은 아직 검증이 안돼서ㅋㅋ
팬이라는 건 그리 쉽게 되는 것이 아니다.
임팩트는 컸지만 활동 기간은 길지 않았다.
스트리머가 아닌 프로게이머를 지망하는 만큼 기준도 더 높을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롤챔스, 롤드컵에서 선수들이 활약한 걸 본 게 있다.
그 이상의 특별한 무언가를 원하기 마련이다.
보여주지 않으면 팬들의 신뢰도, 팬심도 쉽게는 얻을 수 없다.
와아아아아아-!
그 계기가 될지도 모를 무대.
경기장을 가득 채운 약 200명의 관중들이 동시에 들뜬 이유가 있다.
소문의 마왕에게 카메라가 향했다.
만약 그 이유 하나였다면 이토록 환호가 쏟아지진 않았으리라.
한 가지 사실이 팬들에게 활기를 불러 일으킨다.
본선 내내 정글러로만 참전했던 그가.
〈이거는 미드에서 피바람이 몰아닥치겠는데요?〉
〈피바람……!! 부디 게임 내에서만 혈전을 펼쳤으면 좋겠네요.〉
-언어 선택이!
-피바람만은 안돼……
-5252 혈전이 아니라 성전이라구?
-마왕vs압둘 알리 정면 승부ㄷㄷ
화제의 중심에 선 두 팀의 첫 번째 세트가 펼쳐진다.
상암 e스포츠 경기장.
2018년 후반기에 롤파크가 개장하기 전까지 한국 e스포츠 대회의 심장으로 뛰었다.
파급력 있는 롤 대회는 전부 이곳에서 열렸고, 그렇기에 프로게이머 지망생들에게는 꿈만과도 같은 장소다.
"내가 이 자리에 설 날이 오다니……."
"관중 너무 많지 않아?"
"아, 긴장돼. 우황청심환 가져올 걸."
팀원들이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어느 정도 상정은 하고 왔을 것이다.
하지만 수능 시험장처럼 다 알아도 긴장되는 그런 게 있다.
'겁나 오랜만이긴 하네.'
물론 내 입장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하루이틀 출퇴근 해온 경기장이 아니다.
그렇다고 딱히 익숙하지는 않고, 오히려 그립다는 감정에 가깝다.
그도 그럴게 롤파크가 개장한 이후 상암 e스포츠 경기장은 쓰이지 않게 됐다.
여러가지 어른의 사정이 섞여 복잡한 부분이다.
당시에도 나도 선수라서 별 생각은 없었다.
"주경기장도 아니고, 보조 경기장이야. 평소처럼 해."
"그게 말처럼 쉬운 게……"
"우리 대진운도 안 좋아서 첫 대진부터 센 팀이에요."
팀원들의 넋두리도 이해는 된다.
첫 방송 경기인 만큼 긴장될 것이다.
심지어 상대는 우승 후보로 손 꼽히는 팀.
전체적인 전력이 우리팀에 뒤지지 않는다.
팀 게임의 합도 훨씬 오래 맞춰왔다.
걱정이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만.
'그런데 뭐 어쩌라고.'
그래서 안 할 거 아니잖아.
너무 신중한 것도 안 좋은 버릇이다.
웬만한 것들은 부딪혀보면 어떻게든 된다.
선수의 역할은 최선의 플레이를 하는 것이다.
선수의 성장, 상대의 분석, 그 외 잡다한 모든 것들은 코치의 역할이다.
하물며 나는 미래의 정보를 알고 있다.
챠락!
챠르륵!
첫 번째 세트의 라인전이 시작된다.
탤런의 부메랑 표창이 나를 노려온다.
상대는 압둘 알리라는 별명이 있는 파키맨이다.
'지금은 그 스탠스가 발현되기 전인가?'
차후에 압둘 알리라는 제 2인격이 깨어나며 난폭해진다.
물론 방송 내 컨셉이 과격하게 변한다는 소리다.
하지만 현재는 보복 당할 걱정이 없는 2014년.
좌아악-!
빅토리의 E스킬, 파멸의 광선이 탤런을 훑는다.
동시에 한 걸음 내디디며 탈진을 건다.
느려진 탤런을 평타로 톡톡 두드리자.
─적을 처치했습니다!
허무하게 킬각이 나온다.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다.
겪는 입장이 돼보면 생각이 전혀 달라질 것이다.
'얘가 아주 알라신을 영접한 기분일 걸?'
챌린저도 문제가 안될 판국에 다이아 1티어.
실력 차이가 너무 나서 라인전 하기도 민망하다.
상대가 못해서 죽는 게 아닌, 내가 잘해서 따는 거다.
실력 차이란 한 마디로 '거리 재는 감각' 이다.
단순히 물리적인 거리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킬각, 생존각……, 심지어 심적 거리까지 포함된다.
'상대에게 위협을 줘서 거리를 벌리게 할 수도 있고, 반대로 방심을 유도해서 오게 만들 수도 있어.'
그렇게 쥐고 흔들다 보면 상대의 거리 감각에 이상이 생긴다.
실수, 순간적인 호흡이 흐트러질 확률이 급증한다.
그 틈을 노려서 킬각으로 연결했을 뿐이다.
이렇듯 말로 설명하면 쓸데없이 장황해진다.
하지만 비슷한 티어끼리는 느낌적인 느낌으로 알아 듣는다.
같은 상황을 마주해도 티어마다 판단하는 바가 보통 다르다.
다이아: 이게 죽나?
마스터: 위험하나?
챌린저: 킬각이네?
브론즈: 꼬라보네?
대충 이런 느낌으로 말이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저 친구 입장에서는 내가 기분 나쁘게 꼬라보는 줄만 알았는데 사실은 목덜미에 사시미를 들이밀고 있었던 거지.
물론 다이아1쯤 되면 브론즈보다는 많이 잘한다.
마찬가지로 나도 챌린저보다 많이 잘한다.
'하지만 더 죽이면 압둘 알리가 노할 수 있기 때문에.'
게임으로 이겨도, 현실에서 져버리면 말짱 도루묵이다.
현실은 리게임을 할 수 없는 척박한 환경이다.
결정적으로 이 게임의 관건은 미드가 아니다.
─아군이 당했습니다!
다른 라인들의 상황이 좋지 않다.
이렇게 되리란 건 사실 알고 있었다.
그래도 낙관적인 흐름도 한 번 바래봤지만.
'어쩔 수 없지.'
분명 우리 서울팀은 걸출한 스펙을 자랑한다.
나를 제외해도 가히 우승 후보라 꼽힐 만하다.
하지만 이들 뿐이었다면 절대 우승하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2014년도 Keg의 결과를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당시에는 활동을 안 했기에 그런 세세한 것까진 모른다.
그럼에도 확신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챔피언 폭.
푸슝!
타, 탕!
해강고의 부시안이 라인전 견제를 쑤셔 넣는다.
하지만 무언가 매가리가 없다는 느낌이다.
도라이븐을 할 때만큼 패기가 안 보인다.
다른 라인도 크게 다를 것이 없다.
평소와 같은 플레이를 해내지 못한다.
주챔피언을 못 잡았을 때 벌어지는 현상이다.
'원래 끼리끼리 만나는 법이야.'
해강고, 율천고……, 그 외 팀원들의 사정도 피장파장이다.
챔피언폭이 극단적으로 좁다.
솔로랭크 점수는 아마추어 탑클래스지만 결점이 명확하다.
심지어 익숙지 않은 방송 경기의 무대.
제 실력을 내기가 평소보다 매우 힘들다.
물론 그런 상황에 처한 건 상대도 마찬가지다.
와아아아-!
적팀의 선전과 함께 부스 밖 관중석이 요란해진다.
그 소리가 직접 들리지는 않아도 느껴진다.
차폐물이 있다고는 해도 완벽히 차단되진 않는다.
'홈그라운드라는 건 선수 컨디션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니까.'
특히 흔들리기 쉬운 아마추어 선수들에게는 더욱.
진행되는 첫 번째 세트의 구도는 예상 내였다.
대비책을 강구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다.
* * *
커뮤니티의 반응.
현장 관중석의 환호.
그 모든 것들이 최고조로 터져 나오는 이유가 있다.
써컹!
촤라락-!
파키맨의 탤런이 바람처럼 파고든다.
정글러 리심의 호응까지 더해진다.
미드 라인이 순식간에 일촉즉발.
-이건 필킬이다
-믿고 있었다고 젠장!
-오마에와 모 신데이루……!!
채팅창 반응이 미친 듯이 폭주한다.
특유의 유행어.
실현시킬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찾아왔다.
촤악!
콰지지직……!
그럼에도 마왕의 반응은 침착하다.
리심의 음파를 무빙으로 흘려보낸다.
거리를 벌리며 툭- 툭-! 카이팅을 시작한다.
탈진이 걸린 탤런을 두들겨 팬다.
어느새 상황이 180도 역전되어버린다.
순삭에 실패한 대가로 세 번째 죽음을 맞이한다.
〈나니이ㅣㅣㅣㅣㅣㅣㅣ??!!〉
-이 새끼들 리액션 하러 대회 왔나ㅋㅋㅋ
-아무튼 나니 ㄱㅇㄷ
-마왕 진짜 잘하긴 하네……
깜짝 놀란 파키맨의 표정이 포커스된다.
구강 구조로도 무엇을 말하는지 추측이 간다.
보통은 자신이 아닌 상대를 죽이지만 어쩔 수 없다.
〈와아-! 아니, 이건! 스스로를 슈퍼 세이브 해버렸죠?〉
〈정말 어째서, 최근 커뮤니티에서 이 선수를 주목하는지 그 이유를 보여주는 명장면이 나왔습니다!〉
소문 그대로의 실력을 보여준다.
세간의 기대에 당연한 듯 부응한다.
솔로킬에 이어 1대2까지 이기는 기염을 토해냈다.
해설진의 감탄사가 절로 쏟아질 만하다.
준비된 프로라는 명성에 걸맞은 위엄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 예상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