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6화 (56/201)

'잘하는 건 아는데 아직은 나한테 안되지.'

일카리나는 마왕의 실력에 대해 인정하고 있다.

자신의 개인 방송에서도 솔직하게 말을 했다.

하지만 아직은 자신이 앞선다고도 생각한다.

지금까지 해먹은 경력 면에서 비교가 안된다.

아마추어 대회의 여포는 자신이다.

수월하게 라인전을 진행하고 있던 도중.

촤앙!

끠즈?바닥에 죽창을 꽂고 솟구친다.

자신의 스킬샷을 피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당연히 그럴 거라 생각했는데 점멸을 써왔다.

'아니, 잠깐……!!'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일카리나는 당황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침착하게 대응한다.

만에 하나도 킬각이 잡힐 일은 없다.

그리고 그 예상은 분명히 맞았다.

서로 쌍스펠을 쏟아부은 격한 딜교환.

체력이 서로 바닥 났을 뿐 킬이 나진 않았다.

"형 강가에 리심 보였는데요? 저 못 봐줘요 지금."

"괜찮아, 괜찮아. 이미 뺐어. 집 가면 돼."

문제는 그 다음 상황이다.

정글의 개입 때문에 라인을 손해 봤다.

기분이 나쁘긴 해도 상대 정글을 부른 셈이다.

'서로 쌍스펠 빠진 거고, 정글 불렀으면 밀린 건 아니잖아.'

식은 땀이 나긴 했지만 놀랄 일까진 아니다.

그만큼 상대의 실력은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역시 아마추어 대회는 자신이지.

긴박한 상황에서도 맵리를 놓치지 않았다.

대처 또한 빨라 손해를 최소화 시켰다.

귀환 타이밍 잡았다 생각하면 될 상황.

"아~, 200원 부족하네. 오케이, 고서랑 두란링."

태세를 정비하는 일카리나는 아직 이변을 알아채지 못했다.

LOL이라는 게임은 신묘하다.

'안다.'

선점의 효과는 단순한 꿀챔프, 버그, 잡기술 뿐만이 아니다.

'어떻게 보면 이것도 잡기술의 한 갈래라 볼 수도 있긴 하지.'

요지는 귀환 타이밍의 조절이다.

빅토리가 가진 치명적인 단점.

전용 아이템을 업그레이드 할 1000Gold를 못 모으게 만드는 것이다.

솔킬을 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짤짤이 챔프인 빅토리가 탈진까지 들고 있다.

무리하게 솔킬각을 노리는 건 자충수가 되기 십상이다.

「밥 먹자!」

끠즈?궁극기가 빅토리에게 달라붙는다.

미니언을 타고 다가가 재롱잔치로 내려친다.

반억지로 붙은 것이기에 킬각까진 나오지 않겠지만.

'그걸로 족해.'

빅토리의 체력이 위험한 수준까지 떨어졌다.

상대로서는 의식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여차하는 순간 다이브 당할 테니.

"다이브 할 거에요? 상대도 있을 텐데."

"근처에 살짝 보여주기만 해."

다이브에 특화된끠즈?

정글러가 어슬렁거리기까지 한다.

이렇게 압박을 주는데 상대 미드가 바보다. 멍청이다. 해삼이다. 멍게다. 말미잘이다!

'말미잘은 못 먹지 않나?'

어째서 저 세 해물이 붙어 다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빼지 않을 수가 없다.

상대가 팀 게임에 대해 기본적인 이해가 있기 때문이다.

그 점을 이용하면 최소한의 압박으로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는 것도 가능하다.

소지 금액이 아마 750Gold 가량.

보유 아이템과 CS를 역산 한다면 딱히 어려운 계산도 아니다.

설사 가지고 있는 두란링을 팔아도 빅토리는 1000Gold를 마련하지 못한다.

'이제 이 게임 내에서 빅토리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딱히 죽은 것도 아니다.

CS도 밀리는 거지, 망했다고는 볼 수 없다.

그럼에도 빅토리는 이제 게임 내내 없는 사람이 된다.

촤앙!

시원한 물소리와 함께 미니언 웨이브가 삭제된다.

재롱잔치로 라인 클리어가 되는 7레벨이다.

그에 반해 빅토리의 볼품없는 레이저.

좌아악!

1000Gold를 모으지 못한 여파다.

강화되지 않은 레이저가 비실비실하다.

라인 클리어가 안되는 탓에 포탑을 끼고 받아먹어야 한다.

그 사이 나는 움직임 하나로 영향력을 흩뿌린다.

상대의 사이드, 정글 모두 사리는 수밖에 없다.

슬슬 미드 차이가 게임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최소 두 번째 귀환 내에 아이템 업그레이드를 못하면 게임 흐름에서 이탈을 해버려.'

빅토리가 가진 치명적인 단점이다.

알고 있기에 킬을 따는데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

이 약점을 찌르는 것도, 골드 계산도 잡기술에 해당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이루어내는 과정은 잡기술의 영역이 아니다.

단순한 우연이 아닌 철저한 설계로 의도 돼있다.

감히 아마추어가 흉내 낼 수 있는 게 못 된다.

「밥 먹자!」

바텀 라인의 4인 다이브.

그것도끠즈?몸을 대고 앞장선다.

컨트롤이나 자잘한 실수 따위로 뒤집힐 염려도 없다.

─더블 킬!

─아군이 용을 처치했습니다!

확정으로 가져가는 더블 킬.

드래곤까지 안전하게 챙긴다.

게임이 답도 없이 기울어져 가는 가운데.

좌아악!

빅토리는 여전히 파밍 중이다.

그것도 불편하게.

레이저에 스친 원거리 미니언이 포탑에 먹혀 사라진다.

'이 타이밍에 한 방 클리어가 안되면 흘리는 CS도 많아져서.'

1000Gold를 모으는 시점이 더욱 요원해지게 된다.

물론 이번에야 말로 아득바득 모으려 할 것이다.

그래봤자 이미 게임은 끝나버린 후지만.

─아군이 적을 처치했습니다!

─아군이 포탑을 파괴했습니다!

전 라인에서 승전보가 들려온다.

바텀도, 탑도 애초에 승기를 점하고 있었다.

개입까지 하자 무심코 민 도미노처럼 겉잡을 수 없다.

'광주팀이 특별히 셌던 거지, 우리팀 기량이 절대 모나지 않아.'

등만 조금 떠밀어주면 받아먹을 줄은 안다.

미드 차이에 의해 경기는 착실하게 기울어진다.

* * *

쏟아지는 화제 속에서 시작한 첫 번째 세트.

특히 미드 라인전에 이목이 모아졌다.

양 팀 에이스의 불꽃 튀는 혈투가 예상됐는데.

-빅토리 파밍밖에 안 하누

-탑바텀 터지는데 미드 지박령ㅋㅋㅋ

-안 따라가고 뭐함?

-답 답 하 다!

미드 라인은 의외로 평화스럽다.

몇 차례 소란은 있었지만 결국 유혈 사태는 없었다.

관심을 모았던 빅토리는 짱 박혀서 파밍만 하고 있다.

아군은 이곳저곳 안 터지는 곳이 없음에도 말이다.

그 모습이 한없이 '초라하다.'

커뮤니티의 평가가 박해지는 것도 어쩔 수가 없다.

─롤판 최고 귀족…….jpg

"로밍 안 가브리엘" -백작

└귀족추

└발음 찰지네 로밍 안 가브리엘ㅋㅋㅋ

└천민놈들은 1:2나 하고 있어야지 암!

└어디 감히 천민놈들이 미드를 불러~

라인에서 짱 박혀 파밍만 하는 아군.

롤유저들에게 있어서 기피 대상 1순위다.

안 그래도 기대하고 있던 경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로밍을 안 간다는 의미의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게 된다.

경기 중인 일카리나로서는 알 수가 없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아직 경기가 끝나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빅토리가 딱히 죽거나 망한 건 아니에요. 코어템도 갖춰지고 있고, 지금도 싸우기만 하면 세거든요?〉

〈경기도팀에서 가장 성장을 잘했다고 봐도 무방하긴 한데…….〉

잘 성장한 빅토리의 위력은 이미 알려져 있다.

솔로랭크에서 그렇게 욕을 먹고 있음에도 불구.

한 번 터졌을 때의 포텐셜 만큼은 누구나 인정한다.

좌아악-!

할 게 없으니 CS라도 열심히 먹는다.

더티 파밍을 병행하며 밀리던 CS도 복구했다.

늦긴 했지만 아이템 업그레이드도 갖춰져 푸쉬가 빠르다.

─블루팀의 포탑이 파괴되었습니다!

─더블 킬!

서울 현준님이 학살 중입니다!

싸움에 전혀 낄 수 없어서 문제다.

다른 라인은 여전히 터져나가고 있다.

채팅창에서 아쉬운 소리가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역시 로밍 안 가브리엘ㅋㅋ

-벌써 별명도 생김?

-그래도 CS는 1등임!

-CS도르 수상ㅋㅋㅋㅋㅋㅋ

시청자 입장에서는 그냥 노는 걸로밖에 안 보인다.

왜 안 따라가고 미드에서 지박령질이지?

하지만 나름대로 근거가 있는 판단이다.

〈어설프게 따라다니는 것보다 미드라도 지켜주는 게 그나마 차선책이긴 해요.〉

〈이미 어느 쪽을 골라도 격차가 너무 벌어졌어요. 글로벌 골드 격차가 20분이 안됐는데 거의 1만입니다!〉

탑과 바텀이 아예 작살이 났다.

그 뿐만이 아니라 시야 차이도 현저하다.

힘에서도, 정보전에서도 해볼 만한 구석이 도저히 없다.

좌아악-!

라인 클리어를 하며 버티는 게 최선이다.

상대가 던져주는 요행을 바라는 수밖에.

그 희망사항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악어다~!」

서울팀이 미드 라인에 몰려온다.

대놓고 쏘아지는 궁극기에 빅토리의 점멸이 빠진다.

그럼에도 전혀 멈출 기세 없이 쏘아져 죽창을 한 방.

─서울 Satan님을 도저히 막을 수 없습니다!

묵직한 데미지에 허리가 휘청인다.

약간의 지원이 더해지는 것으로 잡힌다.

무리하게 들어온끠즈라?제압했다면 좋았겠지만.

띠이잉……!

조냐의 물시계가 켜지며 갑분싸가 찾아온다.

적어도 경기도팀의 입장에서는 말이다.

이미 박혔을 쐐기가 더 아프게 박힌다.

-20분 동안 파밍만 한 결과가??

-조냐도 예상 못하누ㅋㅋㅋㅋㅋ

-그 와중에 탈진 안 쓴 건 뭐임?

-탈진 썼으면 비볐다 ㄹㅇ

워낙 미움털이 박히다 보니 정을 맞는다.

하지만 빅토리의 입장에서도 억울하다.

탈진이 있었던 거지, 쓸 수는 없었다.

〈끠즈?이래서 무서운 거거든요! 재롱잔치로 들어오면 탈진도 못 걸어요.〉

〈넣을 딜 다 넣고 조냐로 어그로 핑퐁까지……! 이건 결정타네요.〉

한타를 대패하고, 최후의 보루였던 미드 1차까지 밀리고 만다.

만에 하나의 가능성마저 사라져버린 상황이다.

원 사이드하게 끝나고 만 첫 번째 세트.

─이렇게 보니까 빅토리 쓰레긴데?

미드에서 CS만 축내고

한타에서 물리면 바로 죽고

└ㄴㄴ일카리나가 못 쓰는 거임

└로밍 안 가브리엘 백작이라^^;

└로밍만 따라갔어도 달라졌을 듯

└게임이 너무 터졌잖아ㅋㅋㅋ

커뮤니티에서 갑론을박이 일어나는 것도 당연하다.

이전에 봤던 빅토리와는 달라도 너무 달라.

어째서 그동안 안 쓰였는지만 보여줬다.

빅토리가 정말 안 좋아서 그렇다!

아니다, 저 새끼가 로밍 안 가서 그렇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렇게 느껴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저희도 해설을 하기 전에 사전 조사를 하잖아요.〉

〈왜 저를 보면서?〉

〈성승현 캐스터께 하는 말이 아니라…….〉

-눈치 주누ㅋㅋㅋㅋ

-성캐는 캐스터잖아

-짬에서 밀리는 클끼리

-그래서 선수들에게 직접 물어봄?

해설자들은 매 경기 전에 사전 조사를 한다.

이 선수가 보통 뭘 쓰고, 어떤 성향을 가진 팀이고.

알려진 정보에서부터 스크림 등 내부 기밀까지 포함된다.

해설자라는 위치상 인맥이 좋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한 발 더 나아가 직접적으로 물어볼 때도 있다.

요즘 빅토리 뜨던데 어떻게 생각하냐고.

〈좋기는 좋은데 난이도가 진짜 높다. 막 써도 되는 픽은 아닌 거 같다. 이 두 가지를 많이들 꼽더라고요.〉

〈그런데 그건 대부분의 캐리형 챔피언들에게 해당하는 점이잖아요? 야흐오도 그렇고.〉

〈물론 그렇긴 합니다.〉

-캐스터가 더 잘 아누ㅋㅋㅋㅋㅋ

-야흐오는 ㅇㅈ이지!

-캐리픽의 공통사항

-근데 맞는 말이긴 함

아직 퍼진지 얼마 안된 만큼 세밀한 분석이 되진 않았다.

설사 됐다고 해도 전할 수 있는 말에는 한계가 있다.

너무 자세히 말해버리면 전략 누출이 되니까.

그래도 최소한 한 가지는 확실해졌다.

괜히 잘못 꺼냈다가 망신살이 뻗칠 수 있겠구나.

그 반면교사가 현재 로밍 안 가브리엘이 돼버린 형국이다.

와아아-!

하지만 단 한 번의 실수였을 뿐이다.

그리고 이를 만회할 비장의 카드도 존재한다.

경기도팀에서 가져간 픽에 관중석의 환호가 빗발친다.

〈제가 누누히 말씀드리지만, 아마추어 선수들은 극과 극이에요. 안 풀린 판만 보고 속단하면 안되는 거거든요.〉

〈맞습니다. 일카리나 선수가 제임스 장인으로 진짜 유명한 유저에요.〉

별명이나 놀림도 아무한테나 해주는 게 아니다.

그만큼 인지도가 있는 선수이기 때문이다.

특히 제임스를 할 때는 사람이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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