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갱각을 설계해두었다.
어떻게 도망을 갈래야 갈 수가 없다.
상대의 대처도 미흡했던 탓에 더블 킬.
심지어 정글간의 CS차이까지 난다.
적 정글은 눈치를 보며 카정을 쳤다.
나는 바텀 듀오에게 리쉬를 받고, 안정적으로 편하게 정글링을 돌았다.
이상적으로 대처하자 이 모양 이 꼴이다.
불과 4분이 안되어 게임이 터지고 말았다.
실수에 기대는 플레이 방식이 가진 한계다.
'정글러는 유동적인 상황 판단이 진짜 중요한데, 아마추어 애들은 게임을 공식처럼 외우고 한다니까?'
(대충 카정으로 게임 이기는 방법)
(대충 2렙갱으로 게임 이기는 방법)
이런 것만 미친 듯이 파서 점수를 올린 반작용이다.
그래서 점수는 높은데 실속은 없다.
팀 게임에 들어가면 점수값을 못한다.
실제로 멸망전이라던지 여러 대회에서 증명된 사실이다.
다이아1에서 트롤 취급 받는 전프로가 허벅지 벅벅 긁고 코딱지 슥슥 긁으면서도 손쉽게 압도한다.
이기고, 지고가 문제가 아니라 팀 수준이 같다면 장난감처럼 가지고 논다.
솔로랭크와 팀 게임이 다르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콰직!
파박-!
그리고 지금 내 피지컬은 고작 전프로 정도가 아니다.
게임이 말리자 또다시 카정을 들어온 상대.
2킬 먹은 애꾸사자의 발톱에 푹- 찢어진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서울 Satan님이 학살 중입니다!
결국은 상대의 실수에 기대는 플레이다.
변수가 많은 솔로랭크에서는 잘 먹힌다.
변수가 제한된 팀 게임에서는 한계가 명확하다.
상대의 실수를 기대해서는 안된다.
상대가 실수를 하도록 유도해야만 한다.
스노우볼의 첫 단추를 꿰는 방식이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저라덴이 저렇게 쪽도 못 쓰는 거 진짜 상상도 못했는데 와……."
"형은 무슨 다 잘해요? 이렇게 오더하면 내가 상대라도 무조건 당했겠다."
"평소에도 이렇게 좀 해주지!"
하면 연습이 안되잖아.
지금도 우리팀 정글러를 위해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재호는 저런 플레이를 안 하기 때문에 점수가 낮아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점수가 높아봤자 저런 플레이만 하면 실력 인정을 안 해줘.'
항상 인재에 목 말라있는 프로팀들.
그럼에도 챌린저 정글에게는 눈길을 썩 안 준다.
미드나 원딜이면 라인 관리 잘하네, 합류 타이밍 좋네, 한타 포지셔닝 괜찮네 이런 식으로 평가할 부분이 있는데 정글러는 어차피 기초부터 다 가르쳐줘야 된다.
피지컬과 나이를 빼면 어드밴티지가 없다.
점수가 웬만큼 높아도 대우를 잘 해주지 않는다.
스트리머 중에 챌린저 정글러가 유독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두근! 두근!
초반 3킬을 바탕으로 6레벨을 이르게 찍었다.
그 궁극기를 바로 활용 안 할 이유가 없다.
아직 4레벨에 불과한 리심을 향해.
─적을 처치했습니다!
서울 Satan님이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도망갈 여지가 없는 깔끔한 암살이다.
초반이 망해버리자 정신을 못 차린다.
방금의 킬은 게임에 쐐기를 박아버리는 결정타다.
정글 레벨 차이가 벌써 3레벨.
아이템 차이는 스치면 죽는 지경까지 왔다.
이렇게 보면 상대가 엄청 못하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챌린저 1000점을 찍은 건 대단한 거야.'
방식이 워낙 단순하다 보니 실전에서는 쓸모가 없을 뿐이다.
솔로랭크에 던져두면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인다.
상대가 프로라도 실력을 유감 없이 발휘한다.
스노우볼의 계기가 될 첫 단추만 꿰면 된다.
어디서 1, 2킬만 주워 먹으면 사람이 달라진다.
그것은 비단 솔로랭크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근데 내가 그 1, 2킬을 줄 생각이 전혀 없다니까?'
그런 거다.
* * *
세간의 기대가 쏟아졌던 경기다.
양 팀 정글러의 솔로랭크 점수를 합하면 거진 2000점!
아마추어가 아니라 프로게이머라 할지라도 흔치 않은 대전이다.
〈때문에 정말 치열한 두뇌 싸움! 혹은 피지컬 싸움이 될 거라고 많은 분들이 예상을 하셨을 것 같은데…….〉
흘러가는 경기의 향방은 전혀 예상 외다.
서울팀이 시종일관 고삐를 잡고 몰아붙인다.
그 과정이 실수나, 한 번의 교전 여파로 비롯된 게 아니라.
-CS도르에 이어 솔랭도르ㅋㅋㅋㅋㅋ
-저게 챌린저 1000점이라고?
-헬린저 1000점 아님?
-갱 한 번 안 가놓고 5데스가 실화냐고ㅋㅋ
그냥 글자 그대로 아무것도 못하고 있다.
경기 내내 정신을 못 차리고 방황하고 있다.
가는 곳마다 불행을 흩뿌리는 역병신이 되었다.
어흥!
바텀에서 와드를 지우던 리심.
갑자기 어둠 속에서 애꾸사자가 덮친다.
리심은 바로 궁극기로 차버리고 와드 방호로 도주했으나.
─더블 킬!
서울 Satan님이 전장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위치가 하필 부쉬쪽이었다.
애꾸사자의 홈스테이지가 전장이 된다.
즉시 점멸을 사용해 부쉬 플레이로 더블 킬을 따냈다.
〈아…… 이건 헤이클린까지 다이브 당해 죽겠는데요?!〉
〈그나마 한 명이라도 데려갈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아, 역시 안되네요.〉
의도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결과적으로 사고를 친 느낌이다.
괜히 와드 지우다가 물려서 몰살 당한 걸로밖에 안 보인다.
커뮤니티에서 비꼬는 드립이 올라오는 것도 어쩔 수 없다.
─리심은 FM대로 한 것, 라이너가 판단 미스!
두세 명이었어도 애꾸사자는 제압 힘들었을 것 -입장 발표-
└대림동 리심ㅋㅋㅋ
└방관형 정글러ㅋㅋㅋ
└거기 서폿분 큐 좀 맞혀주세요!!
└오또케! 오또케!
마치 일부 여경처럼 제대로 된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다.
라이너에게 민폐만 끼쳤다는 게 주류 의견이다.
한두 번도 아니고 게임 내내 그랬으니 비판을 받는 것도 마땅하지만.
"서울팀이 평소랑은 다른데?"
"처음 카정 대처부터 깔끔했지. 정글의 움직임이 예사롭지가 않아."
프로팀 관계자들.
당연하게도 경기를 주시하고 있다.
Keg의 결선, 그것도 준결승전에 해당하는 만큼 두말할 필요도 없다.
경기력이 생각 이상이자 놀라는 분위기다.
알면 알수록 더 보이는 게 있다.
아무리 아마추어 정글러라 할지라도 쉽게 제압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챌린저 1000점이 뉘집 개이름이겠는가?
물론 프로 무대에서는 부족할 수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아마추어 대회에서는 여포의 환생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았다.
─퍼스트 블러드!
첫 번째 세트가 싱겁게 끝났다.
두 번째 세트까지 그리 되리란 보장은 없다.
아마추어 경기는 어느 한쪽으로 확확 기울어지는 일이 다반사다.
이번에야 말로 점수값을 하길 기대했는데.
〈서울팀이 인상적인 2렙 탑갱으로 선취점을 가져갑니다!〉
〈아니, 이게 진짜 설계하는 것도 그렇고, 스킬 연계도 그렇고. 순간 LCK의 한 장면을 보는 줄 알았어요.〉
반전은 없었다.
해설자들 마저 감탄을 절로 금치 못하게 만드는 훌륭한 갱킹이다.
서울팀이 또다시 선취점을 가져가며 주도권을 휘어 잡았다.
고작 그 정도의 일이 아니다.
최소한의 대각선 법칙은 이루어져야만 했다.
유효갱을 성공시키던가, 하다 못해 카정이라도 치던가.
〈지금 저라덴 선수는 하나부터 열까지 다 꼬였어요. 이번에는 정버프 시작을 하고 천천히 가려고 했던 거 같은데…….〉
〈탑갱이 성공하면서 블루 지역에 압박을 들어오니까 버프도 뺏기고, 심지어 점멸도 빠졌죠?〉
-잘하는 게 없누……
-역시 대림동 정글러!
-나도 오늘부터 챌린저 1000점 찍으러 간다ㅋㅋㅋㅋ
그냥 속수무책 무너져 내린다.
어이가 없을 정도로 초반 빈틈이 푹푹 파인다.
그리고 그 빈틈으로 인한 누수는 거대한 폭포수로 이어진다.
─트리플 킬!
서울 해강고님이 학살 중입니다!
뭐라도 해보기 위해 찌른 바텀 갱킹이었다.
인천팀의 입장에서는 나름대로 노려본 승부수였다.
고스란히 역갱에 당하며 적 원딜러만 배부르게 살찌워준다.
〈살다 보면 누구나 게임이 안 풀리는 날이 있잖아요.〉
〈CS도 안 먹어지고, 킬도 한 끗 차이로 살아가고요.〉
〈그 정도가 아니라 10연패, 20연패 박고 하늘이 원망스러울 때가 있는데 저라덴 선수는 오늘이 그런 날인 것 같습니다.〉
클끼리 해설의 말이 위로로 들릴 정도로 안타깝다.
안 가면, 안 가는 대로 터지고.
가면, 가는 대로 더 터지고.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불쌍한 포지션이 되었다.
흘러가는 경기의 진정한 내막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고작 아마추어 대회에서 휘둘러져야 할 힘이 아니다.
준결승전까지 압도적으로 서울팀의 승리로 끝이 난다.
Keg의 일정은 굉장히 타이트하게 진행된다.
휴일도 없고, 그냥 바로바로 당일치기다.
때문에 한동안은 눈코 뜰 새도 없이 바빴다.
"그래도 결승전은 토요일이니까 여유 좀 있는 거잖여?"
"아뇨. 없는데요."
-칼답
-ㅋㅋㅋㅋㅋㅋㅋㅋ
-바쁜 사람 불러서 뭐하는 겨
-보황 섭외력은 미쳤네ㄷㄷ
그리고 그 다음도 바쁠 예정이다.
결승전이 하루를 격하고 진행돼도 바쁜 건 바쁜 거다.
오히려 결승전이기에 더욱 그런 감이 있는 것이겠지만.
'사실 나는 안 바쁘지.'
Keg에 많은 의미를 두고 참가한 팀원들과 상대팀과는 다르다.
고작 아마추어 대회에 만족할 그릇이 아니다.
물론 방심을 하겠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제가 여기서만 말해두는 건데 저희는 지금 브레이크가 없는 폭주 기관차 같은 거에요."
"브레이크가 없다? 음…… 코와이네~."
-보황 이해 못했다에 별풍 100개
-그런 느낌은 아니던데?
-ㅇㅇ 운영도 깔끔혀
게임 내 운영이나, 팀의 성향 같은 걸 말하는 게 아니다.
신규팀을 규합했을 때 흔히 일어나는 현상이다.
한 마디로 말한다면 '기세'.
'옛날에…… 아니, 미래에 그리핀도르라는 팀이 있었지.'
과거·미래 혼용 사용법이 되었는데 아무튼.
2018년 섬머 시즌, 챌코에서 올라온 폭풍의 전학생이다.
전승 승격 이후 LCK에 새로운 역사를 쓸 뻔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쓸 뻔.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딱 한 번만 지지 않았다면 정말로 그렇게 돼도 이상하지 않았다고.
《만약에 평행 우주가 있다면, 승리한 그리핀도르는 앞으로 나아가고 있겠지만, 우리는 여기서 죽었어. 이 1패는 앞으로 100승을 해도 지워지지 않을 거야. 낭만, 전설이 끝났어. 앞으로 e스포츠가 100년이 넘게 갔을 때 회자될 전무후무한 기록이 사라졌어. 우리는 평범해져 버렸어. 다들 그렇게 된 기분이 어때?》
김머호 감독의 어록이다.
좋게 말하면 동심과 이상을 가슴에 품고 있고, 그냥 말하면 중2병을 못 버린 양반이라 표현이 사람 뒷골을 당기게 만든다.
하지만 생각 자체는 나도 대동소이하다.
'상어를 만났을 때 침착하게 코를 때리면 의외로 쉽게 제압할 수 있다고 하잖아.'
굳이 때리지 않고, 잡기만 해도 아무것도 못할 정도다.
그만큼 상어에게 있어서 코는 아킬레스건이다.
알고 있어도 대부분의 사람은 샹크스가 된다.
기세에서 이미 압도돼버렸기 때문이다.
약점이고 나발이고 곱씹을 여력이 없다.
그리핀도르도 명확한 약점이 있는 팀이었다.
'기세가 물오르면 선수들도 살짝 도핑 상태가 돼서 약점 같은 거 신경 안 쓰고 다 샹크스 만들어버려.'
내가 아무리 정확한 오더를 내려도 자잘한 실수와, 미진한 판단 한두 번에 뒤집힐 수 있다.
무릇 팀 게임이란 그런 것이다.
Keg 서울을 아무리 잘 성장시켜도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때문에 나는 팀 전력뿐만 아니라 기세와 세간의 평가에도 굉장한 신경을 쏟고 있다.
그 모든 것을 하나하나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는 없는 일이다.
적당히 느낌적인 느낌만 전달해도.
"음…… 오모시로이~. 그거 알지."
-하나도 모르는 거 같은데?
-스포츠에서 기세 중요함
-ㄹㅇ 리버풀이 그러잖아
-응 리중딱
기세라는 게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긴 경력과 선수 소통 능력을 기반으로 비슷한 환경을 구축할 뿐이다.
이런 것보다 일반 유저들에게 와 닿는 건 아마 솔로랭크의 점수겠지.
"솔로랭크 1000점이면 엄청난 거잖아? 근데 경기 보니까 속된 말로 가지고 놀더라고."
"가지고 논 건 아니고 그냥 적당히 카정 치고, 역갱 치고, 성장 못하게 하고, 자른 정도죠."
-그거 빼면 뭐가 남음?
-숨은 쉬게 해줬네
-숨 쉬게 해준 건 ㅇㅈ이잖아ㅋㅋㅋ
-챌린저 1000점인데 왜 이렇게 못할까 저라덴은
못하는 게 아니라, 활약할 구도를 전혀 주지 않았다.
마치 육지에 사는 개구리가 바다에 빠진 것처럼 허우적댄다.
솔로랭크와, 팀 게임의 차이에 적응하지 못하면 극단적으로 벌어지기 쉽다.
"근데 애초에 솔로랭크 점수가 그렇게 큰 의미가 없어요."
"그거 알지. 웬만하면 찍는다는 챌린저처럼?"
-보황만은 못 찍는다는 그?
-인생만 갈아 넣으면 된다는데 어째서 그는 실딱이인가
-프로들도 솔랭 열심히 할 텐데……
프로게이머들도 당연히 솔랭 열심히 한다.
점수를 일부러 안 올린다는 건 말도 안되는 소리다.
하지만 올리는 방식에 있어 아마추어와 프로는 현저한 차이가 있다.
'사실 솔랭 점수는 작정하고 올리면 의외로 어렵지 않거든.'
꼼수에 가까운 심리전.
솔랭에서만 쓸 수 있는 잡기술.
그 외에도 듀오, 밴, 닷지 등 점수 올리는데 꿀 빨기 좋은 게 너무 많다.
만약 그런 짓을 프로게이머가 한다?
승률 나오는 듀오만 골라서 하고.
조합이나 멤버 안 좋으면 닷지 하고.
챔피언도 숙련도 높은 OP챔피언만 하고.
솔로랭크가 지옥헬혼돈카오스가 되리란 건 불 보듯 뻔하다.
실질적인 실력 상승에 도움이 안되기 때문에 지양할 뿐이다.
아마추어와 프로의 점수가 비교할 거리가 아닌 이유이기도 하다.
"아~~~! 그래서 우리가 보기에 진짜 괴물 같은 아마추어들도 프로 데뷔를 잘 안 하는 거구나!"
"그런 것도 있겠죠."
잠깐 Latte is horse를 시전하자면.
나도 과거 아마추어 시절, 1000점을 찍고 자아도취에 빠진 흑역사가 있었다.
프로게이머도 만나보니까 별 거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