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알면 알수록 더 보이는 게 있다.
아마 저라덴 친구도 모르진 않을 것이다.
천재 소리 들으며 월반했는데 옆자리 친구 이름이 아인슈타인이고, 앞자리의 머리 훤칠한 친구가 폰 노이만인 느낌이다.
"크~~! 챌린저 1000점이면 테이커, 알파카…… 날고 기는 프로들이니 당연히 특별한 게 느껴질 거 아니여?"
"같은 점수라도 격이 다르죠. "
"근데 너는 쫄은 느낌이 전혀 없다?"
"저는 뭐 준비된 프로니까."
-패기
-5252 이 녀석 패왕색 패기를 쓴다고!
-이러다 진짜 나중에 롤챔스 우승하면 웃기겠다ㅋㅋㅋ
-ㄹㅇ 레전드편 될 듯
그때는 그랬다는 소리다.
8년도 더 전의 일이니 기억나는 것도 용하다.
그리고 이제는 9년 전의 과거에 지나지 않다.
실력적인 면에서 밀린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아마추어에서 프로로의 재도전이 아니다.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입장에서의 정복이다.
『승리』
이틀, 솔로랭크 100점 가량 올리기엔 차고 넘치는 시간이다.
발목 잡힐 만큼 무르지 않다는 걸 증명한다.
보황과의 합방을 진행하며 자연스럽게.
"표정 하나 안 바꿔버리기! 컹s하네~ 챌린저 1000점인데 그래도 뭐 리액션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어?"
"이미 1000점 이상급인 건 대회에서 보여드렸잖아요."
-시크~~
-보황이 옆에서 겁나 시끄럽게 떠드는데 이기네
-그 와중에 상대 저라덴ㅋㅋㅋㅋ
-저라덴 멘탈 나가고 800점대 박음ㅋㅋㅋ
사람이 생각이 많아지면 오히려 무덤덤해질 때가 있다.
챌린저 1000점, 익숙한 구간에 돌아왔다.
감회가 없다고 한다면 거짓말이다.
'은퇴 이후에는 아무래도 찍기 힘들었으니까.'
선수들은 찍게 만들었지만, 나 자신은 이야기가 다르다.
코치는 선수와 달리 개인 시간이 많지 않다.
피지컬적인 면도 확실히 퇴보한다.
그럼에도 1000점을 찍는다면 다시 프로를 고려해볼까?
그런 생각을 했던 기억이 얼핏 스친다.
그만큼 선수 생활에 미련이 있었다.
다시 한 번 잡은 기회.
허투루 쓸 만큼 미련한 인간이 아니다.
내 폼과 팀의 수준과 끌어올리는 작업은 착실하게 성과를 발하고 있다.
"근데 여기서 이러고 있어도 돼? 슬슬 내일 결승전 준비해야 하지 않나?"
"……."
"내가 할 말은 아니긴 혀."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엿 먹여버리기~
-당장 내일이 결승전인데ㅋㅋㅋㅋ
-상대 SKY T1 소속임ㄷㄷ
출연료가 탐나서 땡땡이 치는 듯한 느낌이 있지만 결코 그런 건 아니다.
시험 전날에 벼락치기 한다고 크게 변하는 거 없지 않은가?
대회 준비도 마찬가지의 느낌이 있다.
'무엇보다 확신이 있지.'
미래의 정보를 알고 있다.
활용할 수 있는 건 게임 내적인 부분만이 아니다.
상대 팀, 상대 선수에 대한 약점도 이용하지 못할 것이 없다.
* * *
상암 e스포츠 경기장.
보조 경기장으로도 어지간한 대회를 유치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하지만 진짜는 주 경기장인 GiGA 아레나이고, 그 규모는 800석에 달한다.
〈저희가 이곳에서 결승전을 제외한 모든 LCK의 경기를 보내드리지만 사실 만석이 되는 경우는 흔치 않잖아요?〉
〈그만큼 엄청 넓어요! 방금 카메라에 비친 커플 분들도 주위 돌아봤다가 깜짝 놀랐어요.〉
경기장 중앙의 대형 모니터.
당황한 커플들의 모습이 폭소를 자아낸다.
단순히 화면으로 볼 때는 입감하기 힘든 경기장의 크기다.
그럼에도 만석이 되는 경우가 흔치 않다.
인기팀들의 경기, 혹은 빅매치업 때나 볼 수 있는 진풍경이다.
오늘 이 자리가 그만한, 혹은 이상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와아아아아-!
Keg의 최종 우승팀을 가리는 마지막 자리다.
결승전에 올라온 첫 번째 팀이 모습을 드러낸다.
쏟아지는 함성 소리가 그 인기를 실감하게 해준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띈다.
한 선수의 등장과 함께 목소리가 더욱 고조된다.
서울팀 인기 지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역시 서울팀! 본선부터 수많은 화제를 낳았던 팀답게 응원 오신 팬분들이 진짜 많습니다. 특히 마왕 선수는 정말…….〉
〈Keg에서만 활약한 게 아니라 그 이전부터 쭉-! 이슈가 되었고, 인터넷 방송 쪽에서 유명 스트리머들과 합방을 하다 보니 근 세 달 만에 거의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 네임드가 돼버렸어요.〉
-마왕 아시는구나!
-진.짜.겁.나.잘.합.니.다
-클끼리 모르는 게 없누ㅋㅋㅋ
-Fact)롤갤 추천글에 정리되어있다
이름이 알려진지 고작 3달밖에 되지 않았다.
어지간한 프로게이머를 뛰어넘는 인지도를 구가하게 된 실정이다.
사정을 알고 보면 가히 그럴 만도 하다.
『마왕은 무조건 승리한다!』
어처구니 없는 비방성 드립을 현실로 승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지나쳐온 행보 하나하나가 자극적이며, 끝맛이 상쾌하다.
수많은 팬들이 몰리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할 이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Keg는 끝나지 않았고, 반대쪽 대진에서 승승장구하며 결승전에 올라온 부산팀! 결코 서울팀에 밀리지 않는 무시무시한 전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저희가 Keg를 아마추어 대회라고 소개했지만 사실 참가 요건이 아마추어에 한정되는 건 아니거든요.〉
하지만 아직 뿌리 얕은 묘목인 것도 사실이다.
인기의 비결이 승리.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았다는 신기하기 그지없는 경력 덕이다.
패배하고, 밑천이 드러난다면 그만큼 거품이 빠지게 되리란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그렇기에 더욱 중요할 결승전이다.
그 상대가 결코 만만하지 않다.
와아아아아아아-!
서울팀 이상의 함성 소리가 경기장을 메운다.
부산팀 자체는 그리 화제를 낳진 않았다.
그럼에도 현장팬의 수를 압도하고 있다.
국내, LCK의 가장 유명한 팀 중 하나.
SKY T1의 연습생이 둘이나 있기 때문이다.
주전 멤버가 아니더라도 팬들은 응원을 아끼지 않는다.
〈경쾌하고 재밌는 경기의 보증 수표! 잼구 선수와 잼할 선수, 통칭 잼잼 듀오가 입장하고 있습니다!〉
프로게이머 연습생.
정식 선수가 되기 전에 거치는 과정이다.
평균 반년에서 1년 가량의 훈련을 받고 팀에 소속될지를 판단한다.
이렇게 보면 예비 프로게이머구나!
그럴 듯하게 보일 수 있으나 실상은 변변치 않다.
대부분 자택에서 아마추어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고, 팀의 스크림을 도우며 미숙한 부분을 지적 받는 게 전부다.
공식적으로 하는 일이 없으니 월급도 받지 못한다.
e스포츠계의 인턴이라고 보기에도 부족한 취급이다.
설사 정식 선수가 돼도, 바로 주전으로 뛰는 게 아니라 후보 선수부터 시작하니 영 애매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연습생들 중에서도 격이 나뉜다.
국내 굴지의 명문팀 중 하나인 SKY T1.
팀에 들어가는 것부터 보통 일이 아니라는 소문이 자자하다.
─SKY T1 연습생 테스트 후기입니다
SKY T1을 목표로 연습생 준비하시는 분들께 도움이 될까 싶어서 후기 남깁니다
테스트 방식은 이즈 Q로 두두를 맞히는 것이었습니다(???)
'장난쳐? 이게 테스트야?'
저도 처음에는 하도 어이가 없어서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는데……
단 한 번만 맞혀도 합격이었다.
그 정도로 팀에 인재가 궁하나?
아니면 무언가 숨겨진 의도가 있나?
의문이 풀리지 않은 채 지원자는 테스트에 임했고.
└2시간 동안 못 맞히는 게 말이 됨?
└작성자 브론즈임?ㅋㅋㅋ
└이분 챌린저 이즈 장인으로 아는데;;
└헐, 님 SKY T1 입단 테스트 보셨어요?
장장 두 시간 동안 피 말리는 혈전을 치러야 했다.
우연, 눈 먼 스킬샷 하나가 어쩌다가 맞았다.
그렇게 간신히 테스트롤 통과하긴 했을 뿐.
글쓴이- 알고 보니 두두가 뱅기 선수였더라고요. 그것도 눈을 가리고…… 그날로 저는 프로의 꿈을 접었습니다
└세상에
└역시 정글의 신!
└에이, 설마 말도 안되지ㅋㅋㅋㅋㅋ
개인의 경험인 만큼 과장된 내용이 섞일 수 있다.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쉬운 일이 아닌 게 사실이다.
SKY T1의 연습생 대우가 좋은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 피 말리는 테스트를 뚫고 합격한 연습생들.
한 명이 한 명이 웬만한 실력의 소유자일 리 없다.
현재 Keg의 결승전에서 그 실력을 유감 없이 발휘하고 있다.
와아아아-!
경기장 이곳저곳에서 아찔한 함성 소리가 들려온다.
그만큼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돈다.
탑라인에서 벌어지는 일기토.
치직!
챠자장!
잼할의 나이즈가 무섭게 견제를 쏟아 넣는다.
하지만 상대의 대응도 만만치 않다.
나무카이가 일그러진 전진으로.
슈루룩-!
스킬을 피하며 나이즈를 향해 파고들었다.
그 순간 한 가지 결말이 확정된다.
어느 한 쪽은 무조건 죽는다.
이따금 연출되는 상황이다.
탑솔러라면 결코 물러설 수 없는 자존심 싸움.
승패는 아주 사소한 차이로 갈린다.
〈정말 딱 한 틱 차이였거든요?!〉
〈이게 만약에 어설프게 백무빙 치다가 미니언한테 한 대 더 맞으면 죽는 거였는데 역시 상남자! 역시 잼할!〉
-도망갔으면 역으로 죽었다……
-ㄹㅇ 평타 한 대의 소중함
-역시 잼할!
-상남자는 등을 돌리지 않지!
마지막까지 욱여 넣은 평타 한 방.
뚝심과 담력이 만들어낸 우연이 아닌 필연이다.
킬을 따내고 차오른 약간의 체력으로 살아남기까지 했다.
잼할의 나이즈가 나무카이를 잡아내는데 성공한다.
그 의미는 결코 적을 수가 없다.
흘러가는 경기 구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나이즈가 벌써부터 이렇게 풀려버리면 대장군 승격이 반쯤은 확정된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진급 속도가 심상치 않은 잼할 선수의 나이즈인데요?〉
흔히 잘 큰 나이즈를 대장군이라고 부른다.
성장하는 순간 무시무시한 위력을 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그만큼 성장이 힘들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 과정을 정글의 지원 없이 자력으로 만들어냈다.
역시 잼할의 나이즈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
커뮤니티에서 격찬이 쏟아지고 있다.
─잼할의 나이즈는 진짜 특별한 게 있어
물러서지 않으면서 딜 넣는 패기가 정말……
프로 데뷔해서도 뭔가 한 건 보여줄 거야!
└역사를 장식할지 몰라!
└잼할 하면 나이즈지
└상남자는 물러서지 않아
└파란 맛?
실제로 잼할은 정식 프로 데뷔 이후.
세계 3대 조이 장인으로 손꼽히게 된다.
챔피언의 DNA를 뛰어넘는 오직 잼할만이 가능한 퍼포먼스를 펼친다.
더욱이 상남자스러운 외모.
SKY T1 소속의 선수라는 점.
솔로킬까지 더해지자 관중들의 이목이 쏠리게 되는 것도 당연하다.
「우리 슼애기?미쵸! 나 죽어ㅋㅋㅋㅋㅋㅋ」
「잼할 어깨 만큼이나 탑라인 듬직하긔^^」
「미래?꿈나무들 하고 싶은 거 다 해!」
선수들의 무덤이라 불리기도 하는 SKY T1이다.
극성 맞은 팬덤 탓에 별의별 일이 다 생긴다.
하지만 그 방향이 꼭 나쁜 쪽만은 아니다.
인상적인 문구의 팻말들이 눈에 띈다.
SKY T1의 연습생들을 응원하기 위해 왔다.
그 열띤 응원을 독차지하게 놔둘 수야 있을까?
「버거킹!」
잼구의 탈리반 3세가 미드 라인 갱킹을 찌른다.
스킬 연계가 매끄럽게 들어갔다고는 보기 힘들다.
그럼에도 해설진들이 격찬을 아끼지 않는 이유가 있다.
〈자드가 점멸 궁으로 호응하면…… 그렇죠. 이건 점멸 써야죠.〉
〈물론 엄밀히 따지면 점멸 교환에 그쳤고, 탈리반 궁까지 빠져서 이득은 아니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굉장히 날카로운 판단을 했다고 봅니다.〉
상대 에이스의 점멸을 뺀 셈이다.
점멸이 없다면 플레이가 제한될 수밖에 없다.
제아무리 마왕이라도 스펠을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다.
흘러가는 게임의 상황은 아직 팽팽하다.
어느 한쪽으로 무너졌다고 보기는 힘들다.
하지만 운영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분위기가 좋다.
〈프로 연습생이잖아요. 그것도 SKY T1! 운영으로 유명한 팀이고, 그 장점을 흡수했을 거란 말이죠?〉
〈말씀하신 점이 게임 내내 보이는 것 같습니다. 특히 잼구 선수가 게임의 요지를 잘 파악하고 있다는 게 플레이에서 내내 느껴졌어요.〉
-와 SKY T1은 연습생도 장난이 아니네ㄷㄷ
-쟤네가 나중에 성장해서 LCK 나오면 무섭겠다
-지금도 저렇게 잘하는데 프로 되면 더 쩔겠지?
-갓구라고 불러야겠다 갓구!
아무리 결승전이라고 해도 아마추어 대회다.
운영적인 부분에서 미숙함이 있을 수밖에 없다.
프로팀의 연습생이라는 점은 어드밴티지가 확실하다.
향후 미래가 기대되는 훌륭한 경기력을 선보이고 있다.
그리고 서울팀은 특별한 액션을 취하지 않고 있다.
부산팀의 활약에 이목이 모아지는 것도 당연했지만.
* * *
생각보다 조금 이르다.
하지만 충분히 예상하고 있던 상황이다.
'이름을 아는 선수들을 만나게 되겠지.'
이른바 네임드급의 선수들 말이다.
코치로서 응당 알아야 하는 부분이다.
BJ들처럼 어렴풋하게 기억하는 게 아니라 세부적인 정보까지 파악하고 있다.
잼구와 잼할.
잊을 수 없는 활약을 펼치게 될 선수들이다.
e스포츠의 발전과, 문화적 다양성, 그리고 경기의 재미에 크게 이바지한다.
'정말 백년에 한 번만 나와야 할 정도로.'
보는 입장에서는 재밌겠지만 동료 선수들, 특히 코치 입장에서는 뒷목 잡게 만든다.
어떻게 컨트롤 하는 것이 힘든 선수들이기 때문이다.
현재 경기에서도 그 영향이 나타나고 있다.
이~ 쿠우!
바텀 라인.
아군 리심의 갱킹이 날카롭게 들어간다.
서포터를 자르고 남은 원딜러까지 마무리하는 듯한 상황이었다.
쿠! 챠앙!
반전은 순식간에 벌어졌다.
부쉬에 숨어있던 탈리반 3세.
깃창이 리심의 머리 위로 반듯하게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