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그 하나라면 1대1 교환에서 그쳤을 것이다.
문제는 이어진 판단에 있다.
깃창-점멸 콤보가 3명을 그림 같이 띄워버렸고.
─아군이 당했습니다!
적 더블 킬!
상대 부시안까지 앞점멸로 호응하자 두 명이 전사한다.
서포터가 살아남긴 했지만 포탑은 지킬 수 없다.
바텀 라인에서 대량 실점이 나고 말았다.
"역시 갓구나이트……."
"네?"
"형, 바텀 못 막을 거 같아요."
"그런 게 있어."
나도 모르게 새어 나오고 말았다.
그 정도로 물이 오른 잼구의 경기력은 치트키에 가깝다.
가을철 살이 통통하게 오른 기름진 전어도 비할 수 없는 참맛이다.
소위 주사위과에 속하는 선수다.
잘할 때와, 못할 때의 기복을 따라올 자가 없다.
주사위 눈 1의 잼구가 게임을 혼자 터트렸다면, 주사위 눈 6의 잼구는 게임을 혼자 터트린다.
'쓰고 보니 뭔가 결과적으로 같긴 한데.'
그 정도로 게임을 혼자 좌지우지하는 실력의 소유자다.
아무리 나라도 주사위 6의 잼구는 무시하지 못한다.
현재 경기에서 하필 6의 눈이 나오고 말았다.
구오오……!
물론 갓구 모드가 된 잼구가 거슬린다는 이야기다.
백업을 가다 올라오는 도중 마주친 자드.
미쳤는지 숨어있다 궁극기를 박아온다.
캬아악-!
대처법은 매우 간단하다.
타이밍을 맞춰 뒤로 맞궁을 쓰면 된다.
카시오가피의 궁극기, 메두사의 눈이 자드를 석화시킨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쏘면 못할 것도 없는 일이다.
자드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그렇지도 않다.
'하긴 이때는 자드 대처법이 활성화가 안됐던 시기였으니까.'
자드도 처음 나왔을 때는 말이 많았다.
현란한 스킬 구조 탓에 프로도 눈 뜨고 코 베였다.
그것도 수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자 뻔하다는 소리를 듣게 된다.
현재 유저의 입장에서 본다면 한없이 고인물.
선점 효과까지 안 가도 스킬 이해도부터 남다르다.
자드의 킬각을 손쉽게 무위를 돌리고, 역킬각까지 잡아냈지만.
─아군 포탑이 파괴되었습니다.
게임은 여전히 불리하다.
바텀 교전의 여파로 포탑까지 나갔다.
그 와중에 탑라인의 영향력 차이도 점점 벌어진다.
"아, 최소한 체력은 빼고 죽었어야 포탑은 막았는데……"
"창민형이 솔킬 안 땄으면 분위기 싸해질 뻔했어."
"미안, 집중할게."
"괜찮아, 천천히 혀."
""……네?""
주사위 6의 잼구는 천재지변이다.
고작 아마추어가 감당할 수 있는 무게가 아니다.
오히려 개스파컵 전에 좋은 연습 상대를 만나게 되어 다행이다.
'물론 경기를 진다면 말짱도루묵이겠지만.'
원하는 건 적당한 긴장감과 경험치다.
과정이 너무 지저분하면 기세가 꺾인다.
오랫동안 공들여온 계획에 차질이 생길 우려가 있다.
다음 교전에서 확실하게 반전의 여지를 만들어야 한다.
그럴 수 있는 밑천은 이미 닦아 놓았다.
혹시 모를 상황에서의 안전벨트 또한.
'잼구와 잼할이 뛰어난 선수임에도 코치들의 뒷목을 잡게 만드는 이유가 있지.'
작정한다면 이용하지 못할 것도 없다.
상대는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다.
흘러가는 경기의 향방은 치열하다.
단순히 눈싸움을 박터지게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쿠! 챠앙!
탈리반 3세의 깃창이 테러스티나를 노린다.
점프는 늦었다는 판단.
점멸을 사용한 건 차악의 선택쯤은 되었다.
그조차 예상했다는 듯 비틀어버린다.
이어진 점멸이 자연스럽게 하늘로 띄운다.
깃창-점멸에 당한 테러스티나는 그대로 찢긴다.
〈우와-! 예측 점멸!〉
〈예측은 아니고, 바로 반응한 것 같은데…… 어느 쪽이든 진짜 대단하네요 잼구 선수!〉
게임에 결정타를 박을 만한 교전은 아니다.
부산팀이 또다시 이득을 가져간 정도.
하지만 지금까지 보여준 플레이가 엄청나다.
경기를 반쯤 지배하고 있음이나 다름이 없다.
동선도, 스킬 활용 능력도 혀를 내두른다.
잼구의 경기력에 격찬이 쏟아질 만하다.
〈저희가 결선 1일차부터 쭉 해설을 해와서 알지만 이 선수가 기복이 다소 흠이긴 해요. 하지만 잘할 때는 단점이 없어요.〉
〈기복이란 건 결국 경험치의 문제고, 선수 생활을 하다 보면 긍정적인 방향으로 개선되는 부분이거든요. 정말 이번 Keg 대박이긴 합니다.〉
-잼구 쟤도 존나 잘하네
-괜히 ?연습생이 아니야……
-뱅기한테 Q맞힐 정도면 말 다했지
-1~2년만 지나면 세체정 되겠다ㄷㄷ
흠을 잡을래야 잡을 부분이 없을 정도다.
결승전 다운 경기가 펼쳐지고 있다.
물론 상대는 기복조차 없지만.
─서울 Satan님이 학살 중입니다!
여전한 파괴력을 과시하고 있다.
마왕의 카시오가피가 자드를 잡았다.
어떻게 예상했는지 합류하는 동선에 숨어있었다.
메두사의 눈에 그대로 석화.
채 풀리기도 전에 사르르 녹아내린다.
존재감이라는 면에서 결코 밀리는 일이 없다.
〈진짜 경기 수준이 제가 잠깐 LCK 해설이었나 헷갈릴 정도로 말도 안돼요. 슈퍼 플레이가 양쪽에서 밥 먹듯이 나오고 있습니다.〉
-밥 먹듯이?
-하긴 LCK에서는 밥 먹듯이 나오긴 하지
-ㄹㅇ루
-Fact) 밥 먹듯이 하던 거다
LCK, 한국의 1부 리그는 용담호혈이다.
슈퍼 플레이를 밥 먹듯이 하는 선수도 실존한다.
하지만 결승전이라 할지라도 Keg는 아마추어 대회.
양팀 선수들의 경기력이 진심으로 감탄스럽다.
김은준 해설의 심정을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
한국 e스포츠의 미래가 여러모로 기대가 된다.
─요즘 아마추어, 연습생들 미친 거 아니냐?
웬만한 LCK보다 경기력 더 쩌는데
└저런 애들이 경력까지 쌓으면……
└1~2년 실전 뛰다 보면 기복은 없어지니까
글쓴이-ㅇㅇ 포텐셜을 봐야지 포텐셜을
└마왕, 잼구, 잼할 기억해야겠다
그럴 만한 경기를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순수한 경기력 하나로 팬을 만들어낼 정도다.
당연히 프로 관계자들도 혀를 내두르며 주시하고 있다.
"마왕은 알고 있었지만 잼구 저 선수는……."
"연습생이라고 했지?"
"잘 키워서 기복만 없애면 세체정 만들 수 있겠다. 해볼 만하겠는데?"
단순한 입롤, 상상이 아닌 현실로 만드는 직업군이다.
감독과 코치들이 입맛을 다시는 것도 당연하다.
싹이 보이는 선수만큼 탐이 나는 인재가 없다.
하지만 아직 경기는 진행 도중.
지금까지 보인 건 전부 장점 뿐이다.
보다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판단해볼 여지도 있다.
쿠! 챠앙!
이성적인 판단을 삭제시켜 버린다.
탈리반 3세의 깃창이 무섭게 내질러진다.
점멸이 돌아오자마자 기습 이니시를 걸었다.
-미친 클라스;;
-신, 그는 잼구인가?
-아니, 저런 선수가 있다고??
-깃창을 무슨 ㅅㅂㅋㅋㅋㅋㅋㅋ
마치 드리프트를 하는 것처럼 훅-! 꺾인다.
3인 에어본에 꼼짝 없이 걸린 이니시.
그보다 더 놀라운 건 포커싱이다.
〈카시, 카시 물렸어요! 무조건 잡아야죠! 부산팀은-!〉
김은준 해설이 목청을 높이는 이유가 있다.
깃창-점멸이 마왕의 카시오가피를 띄웠다.
생존기가 없다고 할 수 있는 챔피언.
연계만 잘하면 자를 각이 분명히 나온다.
부산팀도 그걸 알고 있고 접근 중이다.
뚜벅뚜벅 걸어가는 대장군 나이즈가.
캬아악-!
메두사의 눈에 석화된다.
같이 들어온 자드는 지레 겁먹어 도망갔다.
한타가 갑작스레 묘한 분위기로 흘러가고 만다.
〈어, 어어!! 들어가서 큰일 났죠, 이거는-!〉
〈잠깐만요. 이거 너무 정직하게…….〉
지금까지 경기력이 워낙 충만했다.
초보적인 실수가 믿기지 않는다.
카시궁을 정면에서 받아내자.
─더블 킬!
트리플 킬!
서울 Satan님이 전장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제아무리 잘 큰 나이즈라도 별 수가 없다.
이니시를 건 탈리반도 함께 쓸린다.
해설진조차 말을 잃은 상황 속에서.
* * *
"야……, 카시궁 의식했어야지. 좀 그렇다."
부산팀의 부스 안.
아쉬운 소리가 안 나오기 힘들다.
나이즈가 조금만 세심하게 했다면 이길 수 있던 한타다.
카시오가피의 궁극기는 정면에서 맞으면 2초 스턴.
하지만 등만 돌아도 둔화가 되는 조건부 CC기다.
픽률과 평가가 저조한 이유이기도 하다.
잼구로서는 억울할 만도 한 상황이다.
한타를 그렇게 예쁘게 열었는데.
잼할이 덤덤하게 대답한다.
"남자는 등을 보이지 않는다."
"그럼 어쩔 수 없지!"
어쩔 수 없었다.
등짝의 상처는 남자의 수치!
상남자인 잼할은 결코 추태를 보이지 않는다.
그걸 알고 있는 잼구도 섭섭함을 훌훌 털어낸다.
친분이 있는 둘은 서로를 잘 알고 있다.
곧 이어질 교전의 결과 또한.
캬아악-!
사이드 라인에서 나이즈와 카시오가피가 마주쳤다.
흔들림 없이 올곧게 서로를 향해 나아간다.
쏟아지는 공격을 온몸으로 받아낸다.
─서울 Satan님이 부산 잼할님을 처치했습니다.
서울 Satan님은 전장의 화신입니다!
그리고 죽는다.
비록 싸움에선 졌지만 승부에서는 지지 않았다.
꺾이지 않는 잼할의 신념은 경기를 보는 이들에게도 전달됐다.
-어이 승부다! 하고 뚜벅뚜벅 걸어가서 죽어주네
-어이 승부다 ㅇㅈㄹㅋㅋㅋㅋ
-역시 상남자
-이 새끼 컨셉에 잡아먹힌 거 아니야?
너무 많이 전달돼서 문제다.
확고한 신념이 일순간 판단에 노이즈를 만든다.
우직함은 그의 장점이지만 때로는 미련하게도 느껴진다.
첫 번째 세트를 서울팀이 승리하게 된다.
라인전 단계까지는 팽팽했으나 한타 이후 급격히 무너졌다.
그럼에도 분명 훌륭한 경기를 펼쳤고, 결승전은 아직 끝나지 않은 게 사실이다.
5전 3선승제의 다전제.
역전을 노릴 기회는 충분하다.
잼할도 자신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스플릿 챔피언, 트롤킹을 잡으며 전의를 불태운다.
〈트롤킹! LCK에서는 웬만하면 볼 일이 없는 챔피언인데요?〉
〈잼할 선수가 솔로랭크에서 트롤킹 장인으로 유명합니다. 분위기 반전도 되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픽이에요.〉
〈결자해지 해야죠.〉
-어이 승부다!
-근데 트롤킹은 또 모름ㄹㅇ
-트롤킹 맞딜은 깡패야ㅋㅋㅋㅋㅋ
-진짜 맞다이 최적화 챔피언
더욱 고취된 기대 속에서 두 번째 세트가 시작한다.
결자해지[結者解之], 매듭을 묶은 자가 풀어야 한다.
클끼리 해설의 쓴소리를 듣기라도 한 듯 탑라인전은 무난하다.
성장이 어려운 거지, 코어템만 갖춰지면 트롤킹만큼 좋은 챔피언이 또 없다.
잼할은 자기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고 있다.
문제는 나머지 한쪽에 있었다.
─미니언이 부산 잼구님을 처형했습니다!
경기장에 갑자기 정적이 흐른다.
해설진도 말을 잃고 화면이 돌아가길 기다린다.
참사의 현장에 옵저버가 뒤늦게나마 도착했다.
〈바위 골렘의 묵직한 한 방에 탈리반 3세가 운명을 달리했습니다.〉
-X를 눌러 JOY를 표하십시오
-김서준 말잇못
-아니, 전 세트 그 선수 맞음?
-잼구……, 이 자식 물건인데?
첫 번째 세트에서 엄청난 존재감을 선보인 선수다.
두 번째 세트에서는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만 같다.
경기 내내 실수를 연발하며 웃지 못할 해프닝을 펼친다.
잼할과 마찬가지로 잼구도 확고한 개성을 가지고 있다.
일련의 사실을 본인도 모르지 않다.
팀원들도 다 아는 분위기다.
"주사위 굴렸는데 1 나오더라고."
"그 또한 운명,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쿨하게 받아들인다.
한두 번 겪어본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잼할은 잘할 때와 못할 때가 극명하게 갈린다.
두 번째 세트에서 또다시 패배.
세 번째 세트도 주사위 눈 1이 나왔다.
결승전은 그렇게 서울팀의 승리로 끝이 났다.
〈이게 참…… 집중력이 많이 저하된 결과 같아요.〉
〈결승전 무대라는 게 긴장도 많이 되고, 멘탈적인 부분도 흔들리기 쉽습니다. 프로 선수들도 그럴지언데 아마추어. 양팀 선수들 모두에게 좋은 경험으로 남았으면 하네요.〉
사실은 그거랑 전혀 상관없지만 말이다.
치열했던 결승전은 개그로 막을 내린다.
세간의 보편적인 예상대로 흘러간 결과이기도 하다.
─마왕이 진짜 대단하긴 한 게
저렇게 잘하는 잼구랑 잼할도 멘탈 나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