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3화 (63/201)

나도 사람인 만큼 그런 생각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다.

그도 그럴게 개스파컵 도전은 리스크가 상당히 크다.

거품이 빠질 각오도 해야 한다는 의미다.

딱히 이제 와서 두렵지는 않다.

그저 생각이 많아질 뿐이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흔들림이 아예 없다면 거짓말이다.

「안녕하세요. 오프게임넷의 이영돈PD입니다…….」

고민이 깊어지던 차, 한 통의 믿기지 않는 연락을 받게 되었다.

2014년의 LOL 월드 챔피언쉽.

한국은 롤드컵 열풍으로 한창 달아올랐다.

매년 그러하겠지만 올해는 한층 더 특별하기 때문이다.

메인 개최국이 다름 아닌 한국이다.

어느 때보다 열기가 뜨거울 수밖에 없다.

심지어 한국팀들이 엄청나게 선전하고 있다.

「[롤드컵 4강 예고]삼선 블루, 2014년 네 번째 결승 진출 노린다!」

「한국팀 전원 조 1위 진출! 롤드컵 8강 진출팀 라인업 총정리」

「[롤드컵] 논란, 그리고 이변! 롤드컵 16강 이슈 Top.5」

한국의 세 팀 모두 8강 본선에 조 1위로 진출.

롤드컵의 여러 이변 속에서도 제자리를 지킨다.

또다시 우승팀이 탄생하리라, 팬들의 기대는 높아져 간다.

─올해 롤드컵은 삼선만 믿고 가면 되겠네

둘 중 하나가 무조건 우승할 듯

└블루가 하겠지

└죽음의 조에서도 1위로 올라감ㅋㅋㅋ

글쓴이-기세는 레드가 더 쩌는 거 같은데

└응, 섬머 4강 내전에서 털렸죠?

그룹 스테이지에 이어 8강까지 무난한 승리.

삼선 블루와 레드는 내전을 기약한다.

하지만 낭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마진 실드 8강 요약.txt

OMC한테 쳐맞아서 다진 실드됨

└다진 실드ㅋㅋㅋㅋ

└무참하게 다져졌지

└어휴, 짱깨 3위팀한테 지냐

└해외 경기였으면 입국 막았다 ㄹㅇ

뜻밖의 패배를 하면 매국노 취급을 받는 한국 고유의 풍습이 존재한다.

사실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특정 스포츠에 자부심이 있는 나라는 대부분 그러하다.

어떤 나라에서는 마피아의 살해 협박이 심심치 않게 터지고, 실제 살해로 연결되기도 했을 정도다.

그 정도로 대단한 화제 속에서 롤드컵은 진행되고 있다.

이전의 임팩트가 묻혀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그럼에도 마왕에 대한 관심은 쭉- 이어진다.

─와…… 마왕은 요즘도 잘 나가네

BJ들 게스트로 불려 다니고

오프게임넷 만년다이아에도 출연하고

└ㄹㅇ?

글쓴이-방송 편성표에 떴음

└아니, 진짜 TV에 나온다고??

└마왕 이미지 안 좋았지 않았나……

고작 그 정도의 이야기가 아니다.

활동 범위를 서서히 넓혀나가고 있다.

Keg 우승 이후 치솟은 주가는 기존의 선입견을 타피시키기에 충분했다.

「굿게임TV- '마왕'의 은밀한 개인교습 -1편-」

「굿게임TV- '마왕'의 은밀한 개인교습 -2편-」

「오프게임넷- 만년다이아 (4트롤도 가능해……?)」

굿게임TV, 오프게임넷.

2014년, 국내 정규 리그를 주관하는 방송사들이다.

그곳에서 진행되는 LOL 관련 예능 프로그램에 섭외되기에 이른다.

물론 이전부터 쭉 인기 스트리머들과 합방을 해왔다.

수만 명의 시청자가 몰릴 만큼 화제도 되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음지, 개인 방송이다.

개인 방송 시청자들은 Deep하다.

마니아층에 속하는 성향을 가졌다.

보편적인 대중 문화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마왕 또 어디 출연하는 거 없음?

보고 싶은데

녹방도 ㄱㅊ

└인방충 꺼져

글쓴이-님 만년다이아 안 봄?

└아직도 마왕 모르는 흑우가 있네

└요즘 굿겜, 옾?출연하면서 개잘나감

아무리 흥행을 해도 개인 방송은 그들만의 리그다.

인지도 있고, 돈도 잘 버는 스트리머들이 정작 커뮤니티에서는 '인방충 꺼져' 소리 듣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공식 방송의 출연은 의미가 크다.

일반팬들의 입장에서 더욱 살갑게 와 닿는다.

마왕을 언급하는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어진다.

본인의 방송 진행 능력이 탁월하다는 것도 한몫한다.

─마왕, 마왕 듣기만 했는데

만년다이아에 나오는 거 보니까 빨 만하네

방송 진행도 시원시원하게 잘 맞춰줘서 꿀잼띠!

└어리버리 안 타잖아

└그게 제일 좋음ㅋㅋㅋㅋ

└실력+재미 스타성 충만

└굿게임, 오프게임넷에서 밀어주는 이유가 있어

실력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실력이 전부인 것만은 아니다.

방송인 만큼 입도 어지간히 털 줄 알아야 한다.

인지도빨로 보는 것도 한두 번이지.

결국 재미가 없으면 외면 받는 게 냉혹한 방송의 세계다.

그 부분에서도 전혀 실망을 끼치는 일이 없다.

마치 프로판에서 10년 정도 굴러 먹은 듯한 담담함.

방송 진행에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오히려 주도적으로 이끌 정도다.

─보통 프로들 초청하면 묵묵히 게임만 하다 가는데

마왕은 진행자들까지 커버해줌

└강민철 조냐 탈 때 혼자 얘기함ㅋㅋㅋㅋ

└안정적인 맛이었어

└게임은 게임대로 잘하고

└이 정도면 준비된 프로라고 할 만하지!

시청자들 사이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가 있다.

그리고 이는 게스트로 초청한 쪽도 마찬가지다.

몇몇 방송을 시작으로 더 많은 정규 방송들.

굿게임TV와 오프게임넷에서 틈만 나면 부른다.

시청자들의 눈에 낯익은 셀럽이 되었다.

이른바 '대세' 반열에 당당히 합류한다.

* * *

당황스러운 상황이다.

최근 여러 방송에서 게스트 제의가 오고 있다.

'스트리머들은 그렇다 쳐도.'

이전부터 해왔던 일이고, 계속 온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다.

Keg 우승으로 더욱 입지가 넓어졌으니까.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질 만하다.

하지만 굿게임TV와 오프게임넷.

방송사에서도 러브콜이 오고 있다.

그 의미는 결코 단순하게 생각할 것이 아니다.

'나를 스타 선수로 밀어줄 용의가 있다는 것으로 봐도 무방하겠지.'

스타 선수가 BAAAM-! 하고 그냥 나타날 리가 없다.

방송사 차원에서 이미지 메이킹을 해준다.

실제로 실례가 상당히 많은 이야기다.

해설 데뷔 전부터 방송에 출연해온 클끼리.

대놓고 밥갱이라는 코너를 만들어준 까까오.

이렇듯 싹이 보이는 선수들은 적극적으로 키워준다.

나에 대해서도 방송사가 관심을 가졌다.

아직 데뷔도 하지 않았는데 이례적이다.

물론 어느 정도 예상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생각보다 계획이 훨씬 잘 풀린 만큼, 그 다음 진도가 빠르게 나가도 이상하진 않을 테니까.'

롤판 생태계를 누구보다 잘 아는 입장이다.

방송 출연 경력도 있기에 무난하게 소화했다.

세간의 반응도 굉장히 좋아 추가 출연 제의가 쏟아진다.

지금 내가 당황을 숨기지 못하고 있는 이유다.

현재 또 공식 방송에 게스트로 나오게 됐다.

이 방송은 나에게 있어 한 편의 추억과도 같다.

"마왕과 함께 하는 장인어르신!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준비 되셨나요?"

"예. 출연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어? 너무 립서비스 느낌인데……."

굿게임TV의 장인어르신 코너.

게스트 제안을 받고 한걸음에 달려왔다.

참고로 영광이라는 소리는 오프게임넷에 나왔을 때도 하지 않았다.

'절대로 입에 발린 말이 아니야.'

방송사 규모로 따졌을 때 굿게임TV는 오프게임넷에 비교도 되지 않는다.

케이블 방송도 아니라 스트리밍 플랫폼에 중계되는 게 전부다.

하지만 나는 어제 잠자리도 설쳤을 정도로 흥분했다.

"진짜 팬이에요."

"네? 아, 저요? 고맙긴 한데 좀 당황스럽네."

-마왕 김의정 팬이었음??

-아~~~ 주 작 스 멜

-이건 좀 아니지 않나요

-차라리 강민철팬이면 이해하는데ㅋㅋㅋ

김의정, 장인어르신 코너의 진행자다.

2부 리그 롤챌스의 메인 캐스터이기도 하다.

유명하긴 해도 팬층이 두텁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까놓고 말해서 롤챌스는 잘 안 보니까.

그럼에도 나에게는 뜻 깊은 순간이다.

과거 선수 생활 시절에 신세를 져서.

'그런 건 절대 아니고.'

아는 사람만 아는 이야기.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이야기.

그의 진짜 정체는 게임 캐스터가 아니다.

"옛날부터 노래 너무 좋아했어요."

"가수 시절 얘기는 좀……."

"죄송합니다. 팬심이 너무 앞서버렸네요."

-?? 뭥미?

-어, 설마……

-아아, 소까

-그런 '영웅'도 분명 있었지

흔히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김의정 캐스터는 과거 래퍼로 활동했다.

수많은 팬을 거느리며, BTS에 버금가는 K-POP 스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째선지 은퇴를 하고 말았다.

단군의 청춘부재라는 1.25배속으로 들었을 때 진정 가슴을 울리는 불후의 명곡만을 남기고.

화려한 연예계 생활을 뒤로 한 채 게임 캐스터로서 제 2의 삶을 살고 계신다.

'근데 단군핫은 좀 별로였어.'

굉장히 그 아무튼 대단한 분이다.

그렇기에 흔쾌히 게스트 제의를 수락했다.

과거의 이야기가 껄끄럽다면 팬으로서 더 캐묻지는 않겠지만.

"진짜로 하나만 묻고 싶은 게 있어요."

"과거 이야기만 아니면 뭐……."

"저는 대체 무슨 장인으로 나온 거에요?"

"……."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게ㅋㅋ

-빅토리? 리심? 마왕 챔피언폭 넓지 않나?

-그보다 김의정 캐스터의 과거를 알고 싶은데;;

장인어르신.

아내의 아버지를 일컫는 단어다.

동시에 LOL에 있는 '장인' 이라는 개념과의 언어유희다.

한 챔피언을 극한까지 파고든 이들을 말한다.

빵테온 2천판 장인,끠?3천판 장인처럼.

나도 그 정도 한 챔피언이 없지는 않다.

'리심 같은 건 최소 수천 판은 했지.'

게임을 매우 오래했으니 만큼 당연하다.

하지만 현재 시점에서는 알려져 있지 않다.

장인 느낌보다는 여러가지 두루 쓰는 스타일이다.

"캐리 장인으로 하는 걸로?"

"아, 네……."

-캐리 장인은 뭐여ㅋㅋㅋㅋㅋㅋ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네

-은근히 틀린 말은 아니야

-무조건 승리하니까!

캐리 장인이라는 얼토당토한 컨셉.

존경해 마지 않는 김의정 캐스터의 부탁이니 거절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물론 딱히 못할 것도 없는 일이다.

* * *

─더블 킬!

마왕님이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단일 플랫폼 시청자 수가 5만 2천.

전체 플랫폼 시청자 수 10만 오버.

전대미문의 파급력을 몰고 있는 솔로랭크 단 한 판이다.

〈대박! 대박! 이거 이기면 1등이지?〉

〈근데 아직 한참은 불리해요. 설레발 떨 때는 아니에요.〉

-와 저걸 역으로ㄷㄷ

-역시 캐리 장인!

-이거 이기면 1위임??

-솔랭 1위 결정전 미쳤다ㅋㅋㅋ

그럴 만한 가치가 차고 넘치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수직 상승하던 마왕의 랭킹.

롤드컵이 겹치며 한 가지 필연을 낳게 되었다.

기존 최상위권 랭킹을 차지하던 선수들의 부재로 자연스럽게 랭킹이 올라갔다.

장인어르신'진행 도중 3연승을 하자 1위 직전에 당도한다.

'캐리 장인' 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컨셉을 실현 중이다.

하지만 아직 화룡점정이 찍히지는 않았다.

상대는 현 1위.

이긴다면 새로운 1위가 되고, 진다면 3위로 미끄러진다.

그런 만큼 이 한 판에 걸린 무게가 보통 무거운 게 아닌데.

─아군이 당했습니다!

적 더블 킬!

적 트리플 킬!

하필 팀운이 심상치 않다.

바텀 라인이 완전히 개박살이 났다.

탑 라인도 간신히 숨만 쉬고 있는 형국이다.

〈이렇게 어려웠던 게임은 살면서 몇 번 극복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솔직히 가능성이 희박합니다.〉

〈아……, 그래? 그래도 극복한 적이 있다면 이번에도 어떻게 캐리할 수 있지 않을까?〉

〈안됩니다. 하지만 But 당신의 노래와 함께 할 때는 무서울 게 없었죠.〉

단군의 청춘부재를 듣지 않은 자, 청춘을 논하지 말지어다.

과거 수많은 청춘을 지탱해온 한 명의 가수였다.

그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살아갈 힘을 얻는다.

마왕, 괴물 같은 캐리력을 발하는 그도 구원 받은 당사자다.

진심 어린 호소가 김의정의 마음 속에 닿는다.

하지만 노래를 하는 건 별개의 일이다.

그가 연예계를 은퇴하게 만든 하나의 사건.

상처란 세월이 지나도 완전히 아물지 않는다.

더 이상 마이크를 잡지 않겠다고 공언했던 김의정이다.

〈상관 없어! 소리쳐줄께 카르페디엠-!〉

-이걸 진짜로???

-이 레전드곡을 다시 듣게 되다니……

-으정아ㅏㅏㅏㅏㅏㅏㅏ

-팬클럽 소집해 당장!

세월이 지나도 가슴속 청춘의 불씨는 사그라드는 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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