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9화 (69/201)

화제의 서울팀이 등장함과 함께 현장은 소란스러워진다.

〈탈아마추어! 삼선 갤럭시를 잡고 올라온 서울팀입니다. 선수 전원이 소위 닉값을 하는 고등학생임에도 불구하고 프로팀 못지 않은 저력을 갖추고 있어요.〉

〈율천고, 해강고, 풍덕고……, 그러고 보니 다 고등학생들이네요~!〉

〈일각에서는 초고교급팀이다. 이런 농담도 나오고 있거든요?〉

-용준좌 어리둥절

-단간론파 해설 씹ㅋㅋㅋㅋ

-초고교급 재능!

-이 앞은 절망편일까, 희망편일까……

충분히 프로에 준하는 실력을 보여줬다.

문제는 상대가 너무 강하다는 사실이다.

맛밤 엔투스는 지금까지 겪은 적들과는 격이 다르다.

〈그래서 더 기대가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마왕은 무조건 승리한다! 저희가 반우스갯소리로 말했었는데 이제부터는 진짜 장난이 아니에요.〉

〈그런 아마추어 시절의 별명은…… 흥미 본위이기 때문에 솔직히 큰 의미가 있진 않죠.〉

흥분에 가득찬 클끼리 해설과 달리 김서준 해설은 덤덤하다.

본래 성향이 그런 감도 있지만 문제는 이번 주 첫 경기다.

마진 엠파이어에서 기대의 신인을 출전시켰다.

「[GeSPA컵] 마진 엠파이어 8강 탈락, 넛신, 아쉬운 경기력」

「[GeSPA컵] 프로의 벽. 지지 않는 정글러 넛신…… '옛말'」

16강에서 교체 기용으로 재미를 봤던 넛신.

아마추어 시절부터 '지지 않는 정글러' 로 유명했다.

게임은 져도, 정글 싸움은 절대 지지 않는다는 자신감이다.

GOO Tigers에게 패배해 유명무실해졌다.

프로씬에서는 도저히 이어나가기 힘들 목표다.

무조건 승리한다는 마왕의 이명은 그 이상이다.

─오늘 마왕 거품 꺼지는 날이긔?

지가 뭔데 우리팀에 관심 없대ㅋㅋ

└사실 전부터 마음에 안 들었긔

└응 우리도 필요 없어!

└밥디디가 있는데 하위 호환이 왜 필요해ㅋㅋㅋ

맛밤팬들이 눈에 불을 켜고 주시하고 있다.

커리어에 깔쌈한 스크래치를 긁어주겠다.

오늘 경기의 주된 관전 포인트이기도 하다.

〈하지만 길고 짧은 건 역시 대봐야 아는 거 아니겠습니까?〉

〈맞습니다. 양팀 모두 패배해서는 안될 이유가 있어요. 그만큼 만반의 준비를 해왔을 테고, 결국 붙어봐야 알 수 있겠죠.〉

시작하는 첫 번째 세트의 밴픽.

긴장 속에서 한 땀, 한 땀 세심하게 이루어진다.

하지만 서로가 무난함만을 추구할 수 없는 사이다.

과연 어느 쪽이 먼저 승부수를 던져올지.

움직임을 보인 건 서울팀이었다.

프로 레벨에선 흔치 않은 픽을 기용했다.

〈끠? 산다라를 의식해서 뽑은 픽 같죠?〉

〈상성 면에서는 확실히 앞선다는 평가는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픽이 재미있기는 해도 팀원들이 보통 좋아하진 않죠.〉

밴픽 도사 김서준 해설이 인상을 찡그린다.

단순하게 상성만 보고 마음이 앞섰던 것 같다.

조합과 초반 구도를 의식하지 않은 아마추어스러운 선택.

대회 게임은 라인전 상성이 전부가 아니다.

김서준 해설의 지적은 지극히 합리적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뮤니티의 반응은 조금 공교롭다.

-어, 진짜로??

-저걸 대회에서 쓴다고??

-의도가 불순한 것 같은데……

-사탄: 아, 이건 좀ㅋㅋㅋㅋㅋ

팬들이 갑작스레 요란을 떠는 이유가 있었다.

* * *

커뮤니티의 소란은 일부 의도했던 부분이다.

관심 없는 승리는 반쪽짜리다.

어떤 쪽으로든 화제가 생기길 바랬던 게 사실이지만.

"형, 어떡해요!"

"상대가 그렇게 밥 먹듯이 잘한다는데……."

"밥도 그렇게 잘 먹는대!"

"……."

다소 당황스러운 논란이 일고 있다.

커뮤니티를 눈팅 하면 밥 얘기밖에 없다.

옆에서도 팀원들이 줄기차게 밥 얘기를 떠든다.

'원래 롤판에 먹는 걸 좋아하는 선수들이 많기는 해.'

짜장면에 환장하는 선수도 있고, 풀 뜯어먹는 신수도 있고, 배고파서 자드 미러전 솔킬 1억 번 따인 선수도 있고 가지각색이다.

다 먹고 살려고 하는 일인 만큼 딱히 특이할 것까지는 없다.

맨밥 얘기가 자꾸 나와서 그렇지.

가만히 보고 있으면 비유를 하는 건지, 밥 얘기를 하고 싶은 건지 잘 모르겠다.

아무튼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하나 뿐이다.

'그렇게 좋아하면 원없이 먹여 드려야지.'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다고 하지 않는가?

해상 레스토랑 발라티에의 상디가 된 기분으로 배가 터질 때까지 먹여준다.

점심으로 밥 먹을 시간이다.

한 번쯤 의문을 가져볼 수 있는 일이다.

솔로랭크에서는 저거 나올 때 그거 뽑으면 영혼까지 털어버릴 수 있는데.

이 멍청한 프로게이머들은 그걸 몰라!

알려주고 싶다는 마음이 마구 솟구친다.

하지만 프로팀들이 생각보다 그리 멍청하진 않다.

안 쓰는데는 다 나름대로의 이유와 사정이 존재한다.

꽈득!

산다라의 검은 구체가 바닥을 뜯는다.

흔히 표현되는 허락 받고 CS 먹는 상황이다.

끠즈?선택한 이상 초반은 인고의 시간이 요구된다.

'물론 이렇게 버티는 픽들이 한둘은 아니지.'

중후반을 바라보고 하는 챔피언들 말이다.

하지만 그런 픽들은 필수 능력치가 있다.

최소한 라인전이 위험하진 않아야 한다.

파밍 스킬이나, 유지력 관련 패시브.

끠즈에게?찾아볼 수 없는 두 가지다.

물론 그런 게 없어도 쓰이는 픽들도 있다.

'그런데 그런 건 다 자체적으로 라인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픽들이고.'

차후 대회에서 야흐오나 이랠리야 같은 게 성행하는 이유다.

얼핏 보기에는 다 비슷한 근접 암살자.

알고 보면 픽의 의미가 전혀 다르다.

그냥 주도권만 없으면 내버려두면 된다.

주도권이 없으면서+ 쳐맞으면 정글러가 시팅을 해줘야 하기 때문에 동선이 강제된다

프로 대회에서 이 차이는 엄청난 것이다.

"형 미드 괜찮아요?"

"잡았어."

"……네?"

대회에서 자주 기용되는 챔피언들은 초반을 넘길 근거가 있다.

그에 반해끠즈?아무것도 없다.

하염없이 스킬을 피하며 CS를 최대한 받아먹는 게 전부인데.

촤아앗!

산다라가 내비친 사소한 빈틈.

평타 견제 타이밍에 미끄러지듯 파고든다.

반에 반 박자 가볍게 쉬며 재롱잔치로 솟구친다.

'밥디디는 각 재는 게 신중한 편이니까.'

이 정도 타이밍이면 십중팔구다.

아니나 다를까 스킬샷이 허공을 가른다.

땅을 내리찍으며 체력을 적당히 빼고 빠져 나온다.

탈진이 걸렸기 때문이다.

미니언 딜도 의식해야 함이 옳다.

마치 그런 것처럼 긴장감을 분산시킨 후에.

촤아앗!

치지직……!

점멸로 단숨에 거리를 좁혀 죽창을 박아 넣는다.

긴장이 풀어졌음에도 칼 같은 반응이다.

산다라는 점멸로 죽창을 피해냈지만.

─퍼스트 블러드!

적을 처치했습니다!

아마테라스처럼 걸린 도트딜이 목숨을 빼앗는다.

점화 하나만으로는 잡을 수 없는 체력이었다.

산다라로서는 억울할 만도 한 상황이다.

?끠?

Q - 죽창 찌르기

이론상 피할 수 있습니다! : 이제 죽창 찌르기 시전이 완료되기 전 대상이 사거리를 벗어나면 피해를 입히지 않습니다.

분명히 피했는데 데미지가 들어갔다.

소위 말하는 판정에 관련된 부분이다.

현재 시점에서끠?는 절대 피할 수 없는 게이볼그와도 같다.

'그런 오타쿠 만화가 하나 있긴 했지.'

궁금해서 한 번 찾아보니까 개나 소나 잘만 피하더라고.

그런 과대포장과 달리 현재끠즈?Q는 점멸을 써도 맞는다.

이러한 판정 변화도 잘만 활용하면 버그에 준하는 위력을 보인다.

"아니, 와……."

"근데 좀 위험하긴 했어요. 저 못 봐드리는 타이밍이었는데."

얼핏 쉽게 농락한 것처럼도 보였다.

속사정을 파고들면 결코 그렇지가 않다.

정글러인 재호의 피드백은 의미가 있는 일갈이다.

'딜교환 타이밍에 정글이 덮쳤다고 생각해봐.'

솔로랭크 기준으로도 끔찍하다

대회 기준으로는 더더욱 얄짤이 없다.

각 좁히고 점멸로 붙어서 평평평평 하면 죽어야 한다.

주구장창 쳐맞거나, 킬각을 노려야 하는 극단적인 선택이 강요되는끠즈?대회에서 사용이 제한되는 이유다.

물론 나한테는 그다지 상관없는 이야기다.

'정글 위치는 파악하고 있고, 스킬은 잘 피해서 안 맞은 걸로 쳐버리면 되고.'

맛밤 엔투스의 미드라이너 밥디디.

한두 번 라인전을 상대해본 게 아니다.

기본 성향부터 사소한 습관까지 모든 걸 알고 있다.

선수 시절에도 밥을 꾸역꾸역 먹여줬다.

코치가 된 이후 피드백을 위해 분석까지 했다.

모르긴 몰라도 밥디디보다 최소 열 끼는 더 먹는다

「밥 먹자!」

무난하게 풀린 라인전.

서로 점멸이 없는 6레벨.

노리고 있던 필연이 밥디디에게 적중한다.

* * *

경기 전, 사실 논란 아닌 논란이 다소 있었다.

─오늘은 김서준일까, 김동준일까?

리그표로 보면 김동준이 맞는데 말이야……

└오늘은 꿀잼 매치업이라 또 모르지

└김동준에 강민철까지 투조냐 키면 웃길 듯ㅋㅋ

└뭔 소리야?

글쓴이-동부 리그 경기 때 말이 없어져서 김동준됨

토너먼트 리그표를 양분했을 때 유독 서쪽에 강팀들이 몰렸다.

매치업이 좀 더 알차고, 재미가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해설진도 사람인지라 텐션이 차이가 생긴다.

그런데 김서준 해설은 그것이 좀 적나라했다.

높은 텐션을 보여주던 평소와는 확연히 다르다.

마치 강민철 해설처럼 조냐의 물시계를 시전해버렸다.

원래부터 약팀의 경기에 인색한 면이 있던 그다.

일련의 사건이 계기가 되어 하나의 별명이 정착됐다.

김서준의 또 다른 자아, 김동준으로 불리게 된 연유다.

─표정으로 비교해보는 김서준 vs 김동준.jpg

표정만 봐도 행복해 보이는 김서준

보기만 해도 피곤해 보이는 김동준

└표정 관리 좀 해주세요 ㅠㅠ

└밑에 짤은 얼굴에 생기가 없네

└존나 미묘하게 썩어있어ㅋㅋㅋ

└웃음을 참아보지만 새어 나옴 vs 웃어보려고 노력하지만 안됨

이미 커뮤니티에서는 주류 드립으로 자리 잡았다.

그 대부분의 이유는 2부와 아마추어팀의 경기력 탓이다.

때문에 오늘 서울팀의 경기도 잘못하면 김동준이 재림한다!

농담으로 끝날 일만이 아니다.

안 그래도 화제가 집중되는 형국이다.

이미 개스파컵측에서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해설 스케줄을 조정했다.

안 그래도 말이 없는 강민철과 김동준의 시너지는 자칫 심각하다.

그러했던 기우가 바보 같이 느껴진다.

진행되고 있는 8강 D조의 경기.

「밥 먹자!」

김서준 해설이 쓴소리를 늘여 놓았던 픽이다.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싸늘했던 이유가 있다.

그 오해가 봄 맞은 눈처럼 사르르 녹아 사라진다.

〈안 쓰이는 픽들은 이유가 있기 때문에 안 쓰이는 거거든요? 근데 이유를 실력으로 보완하면 충분히 쓰일 수 있죠오!!〉

-김태식이 돌아왔구나!

-표정만 봐도 행복해 보임ㅋㅋ

-이렇게 말 잘하는 분이 어째서 어제는……

미드 라인에서 또다시 솔로 킬이 터졌다.

끠즈?궁극기가 매섭게 적중한 결과다.

마왕이 밥디디를 완벽하게 압도한다.

〈저는 설계를 해도 6레벨 이후가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난리 났어요 지금.〉

〈그러니까 제가 이 선수는 특별하다, 뭔가 달라도 다르다.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는 거에요.〉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그냥 글자대로 순수한 미드 차이.

변명의 여지가 없는 솔킬이다.

「밥 먹자!」

무심코 던지는 궁극기에 맞으면 바로 킬각.

하지만 이번에는 점멸 쿨이 돌아왔다.

포탑 다이브는 아무래도 부담된다.

─KGS 마왕님이 학살 중입니다!

전혀 상관없다는 듯 밥을 먹여버린다.

밥디디는 점멸 타이밍을 재고 있었다.

끠즈?재롱잔치를 피하기 위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할 수 없었다.

그 이유가 리플레이로 송출되고 있다.

다시 한 번 보자 확연히 눈에 들어온다.

아드득!

물고기가 머리를 들이미는 타이밍.

챔피언의 엉덩이가 살짝 띄워진다.

끠즈?E플이 정확하게 깔렸다.

〈이게 만약에 0.1,2초만 어긋나도 역으로 사고가 크게 터지는 그림이었어요. 작은 차이가 명품을 만든다는 말이 정말 와 닿는 선수 같습니다.〉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는 솔킬이 또다시 터졌네요.〉

-배가 부름ㅋㅋ

-클끼리 드립 타이밍 기다림

-밥 먹듯이 하는 선수에겐 역시 밥을 먹여 줘야지!

미드 라인이 어처구니 없는 속도로 무너진다.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상황이다.

맛밤팬들은 물론 마왕의 팬들도 설마 이 정도까지?

그 이유에 대한 분석이 실시간으로 이루어진다.

가장 많은 추천을 얻고 있는 여론.

썩 시답잖은 개드립이었다.

─밥디디가 현재 정신 못 차리고 있는.EU

''밥' 먹자

└밥디디 카운터 밥 먹자 ㄷㄷㄷㄷ;

└밥 먹이려고끠?했누ㅋㅋㅋ

└아 뿔 싸!

└사탄: 와…… 한 수 배우고 갑니다

구도가 워낙 절묘하다.

기존 별명과 딱 맞아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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