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2화 (72/201)

"너무 잘해요.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요."

"그래?"

게임은 이겼지만 정신은 패배했다.

탑라이너에게는 흔히 보이는 증상이다.

다른 포지션과 달리 라인전 비중이 매우 크다.

삼선과의 경기도, 오늘 경기도 라인전 내내 숨만 쉬었다.

끠즈?밴되고 람블을 잡았음에도 말이다.

자신감에 구멍이 난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근데 그건 어쩔 수가 없어.'

상대가 This is Shi다.

이 이상의 설명이 필요할까.

몇 년 후에는 코스프레 유튜버가 돼버리긴 해도 한 시대를 풍미한 탑솔러였음에는 부정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이대로 있을 수도 없다.

한창 기세를 끌어올려야 할 시기다.

개인 뿐만 아니라 팀 전체의 분위기와도 직결된다.

"혹시 막…… 형처럼 잘해지는 팁 같은 거 없을까요? 죄송해요. 너무 헛소리다. 당연히 한순간에 될 일은 아니겠죠."

"되지, 왜 안돼."

"…………네???"

대한민국에 안되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분노의 역류를 받아라!」

새빨간 불길이 적을 달군다.

보기만 해도 뜨거워 보이는 이펙트.

기가 갤럭시 람블 스킨이 가진 특징이다.

─퍼스트 블러드!

아군이 적을 처치했습니다!

그리고 그 불길은 실제로 더 뜨겁다.

탑라인에서 그만 사고가 일어난다.

그것도 기분 좋은 쪽의 사고다.

"와, 와! 와! 살았어…… 대박."

"오~~~ 솔킬??"

"웬일이냐. 당연히 미드인 줄 알았는데."

아무리 대회라도, 설사 프로게이머들도 모든 라인의 상황을 전부 시팅하진 못한다.

그것이 예측하기 힘든 방향이라면 더더욱.

재호의 람블이 사이의 잭트를 잡아냈다.

그것도 정글 개입이 없는 순수 솔킬이다.

한 끗 차이로 잡고 사는데까지 성공했다.

단 한 세트만에 180도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스킨 바꿔서 그런가? 진짜 뭔가 세."

"개소리 하지 말고 귀환이나 잘 해. 꽁킬 주지 말라고."

"알고 있거든?"

두 번째 세트가 끝나고 조언을 해줬다.

스킨을 기가 갤럭시 람블로 바꿔봐라.

얼빠진 표정을 지은 재호는 일단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장인충들 대부분이 그렇지만 남들과는 달라 보이고 싶다는 쓸데없는 똥존심을 가진다.

개나 소나 쓰는 전설급 스킨은 정이 안 가.

평소에는 단종된 옛날 스킨을 사용해왔다.

'근데 진짜로 더 강한 스킨이라는 게 존재해.'

대부분은 판정에 관련된 부분이다.

하지만 아주 간혹 다른 스킨도 있다.

특정 스킨 착용시 실제 딜량이 올라가는 버그.

─만약에 돈슨이 LOL 운영했으면

슈퍼 방장 기능

능력치 있는 스킨

프리미엄 패키지(공격력, 공속 증가)

씹가능?

└5252 닝겐, 그 정도 상상력밖에 안되는 거냐?

└게임 중에 캐시 질러서 아이템 구입 가능. 물론 확률ㅇㅇ

└+16 축복 받은 야흐오 : 바람 속성 추가

글쓴이-아니, 그건 좀……

└Fact) 돈슨은 밥 먹듯이 하는 거다

└N가문식 과금 방식을 아직도 모르누ㅋㅋㅋㅋ

누구나 한 번은 해보는 상상이다.

그만큼 학창 시절 돈슨의 추억이 강렬하다.

학창 시절이 끝난 이후로는 더더욱 강렬해진다.

괜히 확률형 아이템의 시초가 아니다.

LOL 유저들로서는 상상도 못할 짓을 펼친다.

하지만 버그는 간혹 그 상상을 일부 실현시킨다.

? 람블

Q - 고장난 분사구: 기가 갤럭시 람블을 제외한 나머지 스킨에서 화염의 피해량이 적어지는 버그를 수정했습니다.

E - 기가 갤럭시 미사일: 기가 갤럭시 람블이 위험 상태가 아닐 때도 위험 상태 효과가 적용되던 버그를 수정했습니다.

E - 어이쿠: 미사일 두 개를 던지는 사이의 재사용 대기시간이 기가 갤럭시 람블 스킨 사용시 짧아지는 버그를 수정했습니다.

기가 갤럭시 람블.

게임사가 야심차게 내놓은 전설급 스킨이다.

너무 공을 들이다 보니 시스템 알고리즘에 문제가 생겼다.

그것도 한둘이 아니다.

무려 세 개나 붙어있다.

진짜로 딜 보너스가 붙은 초유의 스킨이 탄생하게 된 비화다.

'물론 화염 데미지는 원효대사 해골물 드링킹이긴 해.'

다른 스킨들이 오히려 데미지가 낮아지는 이상이 있었다.

오히려 불리한 악조건 속에서 경기를 치렀던 것이다.

약간의 계기로 본래의 실력을 백분 발휘한다.

「안면 폭발 광선!」

두 번 연속으로 미사일이 클린 히트.

불길로 지져버리자 잭트는 발걸음을 뺀다.

상대를 숨도 쉬지 못하게 라인 주도권을 틀어 잡았다.

'유튜브에 흔하게 올라오잖아.'

프로게이머도 털어버리는 XX장인!

프로도 속수무책…… 야흐오 그 자체 누구누구!

테이커도 당했다? 알고도 못 막는 킬각. 1만 시간이 낳은 기적의 숙련도.

이런 식으로 어쩌고저쩌고 약 파는 영상들.

하지만 아예 근거가 없는 헛소리까지는 아니다.

그만큼 솔로랭크에서는 상당한 기량을 자랑하는 장인들이 있다.

대회에 나오면 그 챔프를 잡아도 생각보다 활약하지 못한다.

사람이 긴장감을 드링킹 하면 위축될 수밖에 없다.

기세가 붙자 드디어 평소의 플레이가 나온다.

「기가 갤럭시 브레이커!」

궁극기가 도주 경로를 예상하며 깔끔하게 깔린다.

그리고 측면으로 리심이 파고든다.

가로등을 돌려보지만 음파를 맞은 시점에서 이미.

─아군이 적을 처치했습니다!

깔끔하게 마무리된다.

두 번 연속 굴욕의 죽음을 맞이한다.

모략을 꾸민 입장에서 할 말은 아니지만 안타깝긴 하다.

'사이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솔킬을 따야 했으니까.'

두 세트 연속 유일하게 리드했다.

부담감을 가지고 라인전에 임해야 했다.

람블의 반격이 생각 이상으로 매섭자 역으로 비벼지고 만다.

사실 그것까지 감안해서 배치한 밑그림이기도 하다.

선수 출신으로서 선수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안다.

심리를 꿰는 수 읽기는 내 전매 특허였다.

코치 시절, 악명이 자자했던 부분이다.

경기의 승리도, 기세도 한껏 무르익었다.

앞전 두 세트와 다른 느낌으로 유리하게 진행된다.

─아군이 맛밤 앰빠따(탈리반 3세)를 지목!

미드에서 솔킬을 따지 않아도 상대가 알아서 올라온다.

탑라인 주도권을 굴리는 팀이 가지는 이점이다.

수풀에 대기하자 접근하는 탈리반 3세.

사앗……!

르풀랑의 사슬을 잇는다.

평소의 금빛이 아니라 푸른색이다.

까치 환영 르풀랑이라는 스킨을 착용한 효과다.

'이건 딱히 데미지가 세지는 건 아니고.'

스킬 이펙트가 단조롭고 흐릿하다.

스킬 사운드도 조금 애매하게 작다.

상대하는 입장에서 반응이 늦어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쿠! 챠앙!

반 박자 늦게 깃창으로 도망간다.

똑같이 이동기로 따라갈 시간이 생긴다.

그 사소한 차이로 인해 사슬이 팽팽하게 이어지며.

─적을 처치했습니다!

이어지는 풀콤보에 요단 강을 건넌다.

사실상 경기에 쐐기가 박힌다.

맛밤 엔투스의 바텀은 시간이 느리게 흘러간다.

'솔직히 상성이 잘 맞지가 않지.'

피지컬이 장점인 매일라이프.

안정감을 지향하는 스페이드.

서로 시너지를 낳는 타입은 아니다.

팀 전체적으로 보면 괜찮을지 몰라도 단순한 라인전은 우세를 점하지 못한다.

이렇듯 상체가 무너지면 할 수 있는 게 없다.

이미 이긴 경기다.

* * *

상암 e스포츠 경기장.

유난히 조용한 이유가 있다.

관중석 어느 한 곳도 빈 자리를 찾아보기 힘듬에도 불구하고.

-여기가 상암 도서관인가요?

-상암 식당입니다. 주문 받아요

-삐슝빠슝! 말을 하면 안되는 식당이 있다?

-맛밤팬들은 여전하누ㅋㅋㅋㅋㅋㅋㅋㅋ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지고 있다.

하물며 그 상대가 엄청난 강팀도 아니다.

고작 아마추어팀에게 패배하는 모습을 보는 팬들의 상실감.

─KGS 마포고(람블)님이 맛밤 사이(잭트)님을 처치했습니다!

이전 세트보다 더한 광경이다.

팬들이 그토록 믿고 있던 버팀목.

사이의 잭트가 두 번째 솔로킬을 당한다.

〈This was Shi……. 오늘 맛밤 수난의 날이네요.〉

-과거형이 돼버렸누ㅋㅋㅋㅋ

-사이(였던 것)

-이젠 돌아가면서 무너지네 참나

-와…… 우승권 드는 건 옛적에 포기했는데 어떻게 아마추어팀한테

해설을 하는 입장에서도 난감하다.

딱히 친정팀이라 그러는 게 아니다.

그 누가 이 상황을 놓여도 좌불안석일 수밖에 없다.

현장팬이 이렇게 많은데 비판을 어떻게 해.

그리고 이 정도 털리면 측은한 것도 사실이다.

이야기가 조금 세게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마포고가 롤판의 명문이거든요?〉

〈바로 그 테이커가 나온 고등학교 아닙니까?.〉

〈참고로 알파카 선수도 마포고 출신이에요. 그 탓에 웃지 못할 일화가 있다고 합니다.〉

2012년, LOL이 한창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때다.

챌린저를 찍은 알파카는 의기양양 친구들에게 자랑했다.

《님들 저 챌린저임!》

《응, 내 친구 테이커.》

《그래서 님 순위가?》

《ㅡㅅㅡ》

하필 같은 학년에 솔로랭크 1위, 테이커가 있던 탓에 묻히고 말았다.

그런 테이커와 알파카를 배출한 명문 고등학교.

─블루팀 포탑이 파괴되었습니다!

람블이 솔킬을 따고 포탑까지 철거해버렸다.

스토리 메이킹이 충분히 되고도 남는다.

클끼리 해설이 말을 이어나간다.

〈신인 선수들이 처음부터 기량을 뽐내는 게 아니에요. 어느 순간 확 달라지는 계기가 있습니다. 마포고 선수가 사이를 잡고 각성했어요.〉

-마포고는 ㅇㅈ이지

-병신 같은데 설득 당했다!

-원래 챌린저 람블 장인이긴 함

-람블 존나 잘하는 애 아닌가ㄷㄷ

같은 말도 아 다르고, 어 다른 법이다.

확실히 근본이 없는 선수는 아니네.

경기가 분위기가 한결 풀어진다.

지더라도, 이유 있이 지면 뭔가 털털한 게 있다.

이변을 써내리고 있는 Keg 서울팀.

확실히 특별함이 느껴지는 팀이다.

〈마왕 선수는 처음부터 잘하던데요? 제가 보기엔!〉

〈지금까지 딱 두 명 있긴 합니다. 테이커 선수도 당시 한체미라 불리던 앰빠따 선수를 솔킬 내면서 전설의 첫 단추를 파격적으로 꿰었죠.〉

-캬~

-또 다른 전설의 시작인가

-심지어 지금도 앰빠따 있음ㅋㅋㅋ

-롤판 전투력 측정기!

처음부터 전설인 선수, 전설인 팀은 없는 법이다.

특정 사건을 계기로 대중들의 인정을 받는다.

그것이 서울팀에게는 이 순간일지도 모른다.

와아아아-!

사람의 솔직한 심정은 조절을 한다고 숨길 수 있는 게 아니다.

르풀랑의 슈퍼 플레이.

미드에서 익숙한 솔로킬이 터지고 만다.

푸른 사슬이 팽팽하게 연결된다.

랄라는 반항하지만 이미 죽어있다.

아무리 파닥파닥 몸을 흔들어도 점화는 꺼지는 일이 없다.

〈이 선수가 여러가지 재밌는 픽을 많이 하는데 1티어 픽을 못해서 안 하는 건 아니에요.〉

〈슈퍼 플레이 밥 먹듯이 먹이는 선수거든요.〉

-르풀랑 살벌하게 하네

-밥을 먹여버리누ㅋㅋㅋㅋ

-식사 집합 하시랍니다!

-막내야, 올 때 우유만 하나 챙겨와라~

여전히, 한결 같이 잘해주고 있다.

미드 차이가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앞선 두 세트처럼 마구잡이로 솔킬을 딴 건 아니지만 그래서 더 위협적이다.

〈이렇게 상체 캐리로 가니까 안정감이 전혀 다르잖아요. 팀 이름만 가려 놓고 보면 그냥 강팀이에요.〉

〈이걸 누가 아마추어팀이라고 생각하겠습니까?! 그 맛밤을 몰아세우고 있는데!〉

〈정말로…… Keg에서 봤던 그 팀이 아니에요 이제는.〉

원맨팀은 분명히 약점이 있고, 한계가 있는 게 사실이다.

상체 쪽이 전부 잘하자 자연스러운 강팀이 된다.

물론 하체는 맛밤 쪽이 조금은 더 웃어주나.

「기가 갤럭시 브레이커!」

하늘에서 떨어진 미사일이 불바다를 이룬다.

텔레포트로 실행되는 바텀 5인 다이브.

어떻게 살아나갈 여지조차 없다.

확실한 근거와 과감한 판단.

매 세트 지날수록 색깔이 진해진다.

스노우볼이 굴러가는 속도가 범상치 않다.

〈저는 이제 슬슬 무서워요. 지금 이 경기를 보고 있을 LCK 프로팀 관계자분들도 같은 심정일 겁니다.〉

〈동의합니다. 앞으로 더 무서워질 테고 아마추어팀 우승이라는 이변의 가능성이 더 이상 농담으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냥 잘함

-역시 초고교급팀 ㄷㄷ

-색깔 화끈해서 마음에 든다

-진짜 맛밤을 이기네 커뮤니티 터지겠다ㅋㅋㅋㅋ

화제가 집중되던 두 팀의 대결.

서울팀이 맛밤 엔투스를 3 대 0으로 잡아내며 이변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다.

그 어떤 관계자도 감히 예상할 수 없던 이변이 터져버렸다.

아마추어팀이 프로팀을 상대로 승리.

결코 우연이라 치부할 수 없는 엄청난 경기력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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