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 할 말이 없을 정도로 그냥 잘한다.
마치 10년 정도 굴러먹은 노련함을 보인다.
상대의 허를 찌르는 동선과, 빵테온 정글의 이해도까지.
스노우볼이 이미 볼이 아니라 록(Rock)이 돼버렸다.
가볍게 지나가기만 해도 깔려 죽어버릴 만큼.
물론 아직 미드 라인이 건재하긴 하다.
쿠루룽!
한 줄기 섬전이 미니언과 함께 자드를 꿰뚫는다.
제우스가 자드를 숨도 쉬지 못하게 압박한다.
체력 상태가 아직은 여유가 있어 보이지만.
〈어?! 포킹 맞았거든요? 뿅뿅뿅각 한 번 나오나요!〉
-김동준은 안 한다는 바로 그 뿅! 뿅! 뿅!
-김서준 판독기
-이걸 갱붐이?
-팀운의 벽을 넘나요ㅋㅋㅋ
갱붐의 두 번째 시그니처 챔피언이다.
특출난 스킬샷 적중률은 자타공인 인정을 받고 있다.
─갱붐이 제우스를 잘하는 이유
벽을 넘을 필요가 없기 때문에
└아, 아앗……
└우린 그런 것도 모르고
└Fact) 뿅뿅뿅으로 벽을 넘었다
└뿅뿅뿅은 ㅇㅈ이자너~
특히 궁극기 적중률이 엄청나다.
세 줄기의 물대포는 그의 상징이 돼버렸다.
해설진은 물론 관중들까지 함께 외치는 효과음.
뿅! 뿅!
푸우웅-!
마지막 하나의 뿅은 이어지지 못했다.
스킬샷 사출에 집중했던 탓이다.
빵테온에 대한 대비가 잠시 옅어졌다.
─KGS 마왕님을 도저히 막을 수 없습니다……!
그 순간을 정확하게 노리고 떨어진다.
궁극기를 끊으며 면전에 창을 꽂는다.
마왕의 빵테온이 미드 라인마저 쐐기를 박았다.
〈뿅뿅뿅에 고취되어 본인 화면을 잠시 놓쳤던 거 같습니다. 점멸 반응도 못하고 그냥 터져버렸어요.〉
〈빵테온은 다이브를 할 수 있습니다! 이거 방심했네요~.〉
-그럼 당연히 다이브를 할 수 있지
-역시 강소리
-궁각 미쳤네ㄷㄷ
-제우스 하드 카운터인데?
상대와 거리를 벌리고 안정적으로 포킹하는 게 바로 제우스의 진면목이다.
짐에어 그릴윙스의 색깔과도 정확히 맞아 떨어진다.
이를 빵테온으로 보란 듯이 카운터 친다.
─블루팀의 포탑이 파괴되었습니다!
게임의 스노우볼이 미친 듯이 굴러간다.
빵테온이 가진 유통기한이라는 약점.
하지만 그만큼 엄청난 초반 영향력을 행사한다.
보통 팀 게임에서는 대비를 하기 마련이다.
라인에서 사라진 순간 핑이 미친 듯이 찍힌다.
라인이 아닌 정글인 탓에 대비가 한층 난해하다.
〈이게 진짜 난리 난 게 뭔지 알아?〉
같은 시각.
클끼리는 자신의 개인 방송으로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해설 로테이션이 아닌 날이면 늘 그러하다.
-미드 1차 깨진 거?
-짐에어 미드 1차 죽자고 지키잖아
-갱붐 잡힌 게 크지ㅇㅇ
그의 해설을 좋아하는 애청자들이 함께 한다.
유감스럽게도 단 한 명도 정답자가 안 나왔다.
─레드팀이 용을 처치했습니다!
힌트가 대놓고 떠오른다.
그럼에도 아직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
클끼리 해설이 의미심장하게 상단 용의 숫자를 언급한다.
〈지금 용이 벌써 3스택이야. 15분에 3스택이라고. 드래곤볼 완결이 10권만에 나는 느낌이라면 이해가 가나? 원래 30권인데.〉
-Fact) 34권이다
-Fact) 초사이어인 블루라고 요즘 이상한 거 나왔다
-팩트충들 쳐내!
프리 시즌 패치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다.
용을 잡으면 스택이 하나씩 오른다.
미래의 원소 드래곤과 흡사하다.
1스택이 화염용
2스택이 대지용 비스무리
3스택이 바람용
4스택이 대지용 비스무리
5스택이 장로용
대충 비슷한 효과를 지녔다.
한두 개 뺏겼다고 치명적이지는 않다.
그렇기에 짐에어는 대처할 생각도 안 하고 있다.
"용…… 나갔겠지?"
"시간만 체크해. 줄건 줘."
"용 두 개까지는 상관없잖아."
첫 번째 용이 너무 빠르게 나갔다.
짐에어는 아예 꿈에도 모르는 상태다.
이제 겨우 두 번째 용이라고 철썩 같이 믿는다.
상대 챔피언을 눌러보기만 해도 알 수 있는 사실.
의외로 경기 중에는 신경 쓰기 힘들다.
스타크래프트에서 드라군 사거리 업그레이드를 은근히 자주 빼먹는 것처럼, 당연히 그럴 거라고 생각하는 게 보통이다.
〈전황이 진짜 말도 안되게 불리하긴 한데, 버티고 버티고 버티면 조합상 유리한 것도 사실입니다. 버티기 좋은 조합이라서 일단 짐에어 그릴윙스도 초장기전을 노리고 있긴 하거든요?〉
〈버티는 거 하나는 엄청 잘하는 팀이잖아요!〉
-'용준' 잘하는 팀이지
-용준이 인정한 용준팀
-어차피 버티는 거 말고는 할 줄 아는 거 없잖아
짐에어 그릴윙스의 유일한 희망.
버티고 버텨서 후반을 노려보자.
그리고 이는 실제로 아예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제우스와 치비르는 수성에 특화돼있다.
서울팀의 조합은 시간이 갈수록 분명 힘이 빠진다.
빵테온은 물론이고, 자드도 망한 순간 실업자 신세다.
문제는 드래곤.
용을 벌써 3스택 모았다.
짐에어 그릴윙스는 아직도 착각 속에 빠져있다.
〈5스택 모으면 어떻게 되는 건가요? 지금까지 나온 적이 없잖아요.〉
〈한 마디로 말씀드리면…… 소원을 이뤄줍니다.〉
김서준 해설의 설명은 한 치의 과장도 없다.
* * *
빵테온이라는 챔피언은 분명 한계가 있다.
상대는 그 점을 노리고 잔뜩 웅크리고 있다.
그것이 일반적인 상대법인 것도 사실이지만.
푸우웅-!
자드와 모르피나가 대치하는 사이드 라인.
그 균형을 가볍게 무너뜨린다.
글로벌 궁극기의 이점을 철저하게 이용한다.
─아군이 적을 처치했습니다!
조냐로 한 턴 시간을 벌어봤자다.
조냐가 빠진 시점에서 죽은 목숨이다.
율천고의 자드가 무난하게 잡고 빠져 나온다.
'정글 빵테온과 라인 빵테온은 달라.'
스플릿 이해도에 따라 챔피언의 색깔이 180도 달라진다.
단순한 깡패 챔피언에서 운영 챔피언으로 변모한다.
굳이 비슷한 픽을 찾자면 쇈 정글.
만약 클끼리 해설이 은퇴하지 않았다면 빵테온을 쓰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 만큼 운용 메커니즘이 흡사하다.
물론 한 가지는 확실하게 다르다.
구르륵-!
뒤늦게 괴성을 지르며 도착한 랙싸이.
바텀 2차의 수호를 위해 땅굴을 파고 들이댄다.
상황이 말리면 무심코 저지를 수 있는 판단 미스다.
터엉!
촤자자작-!
빵테온의 풀콤보가 들어간다.
그것만으로도 반피.
자드의 WQE호응이 겹치며 순식간에 터져버린다.
─더블 킬!
KGS 율천고님이 학살 중입니다!
잘 큰 중반 타이밍의 빵테온은 괴물이다.
어마무시한 AD계수가 미친 딜을 만든다.
사이드 라인에 무게추를 더해 무너뜨렸다.
'정글러가 글로벌 궁극기를 쓴다는 개념이 아직 정착되지 않은 시기지.'
차후에는 여러 챔프, 여러 연구가 되며 대처법도 나온다.
와드를 전진해서 박는 등 신경 써줄 것들이 있다.
하지만 현재 시점에서는 흔하지 않은 플레이다.
더욱이 이렇게 주도권을 잡은 상황.
이득을 만드는 것이 보다 간단하다는 소리다.
결정적으로, 방금 전의 이득은 가벼운 잽에 불과하다.
─용을 처치했습니다!
진짜는 이미 차근차근 쌓아왔다.
게임 시간이 고작 28분 경.
다섯 번째 용을 잡고 몸에 불길을 두른다.
그 이펙트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LOL에 존재하는 가장 사기적인 버프다.
진격하는 것만으로도 상대의 발걸음을 물리게 만든다.
하지만 바론에 도달하자 이야기가 달라진다.
막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이도 저도 못하고 서성인다.
간간히 날아오는 스킬샷만이 애타는 속마음을 대변한다.
「얼어붙어라!」
고민할 필요가 없도록 만들어준다.
철옹성처럼 버티던 상대에게 틈이 생겼다.
현준의 얼음마녀가 점멸까지 사용해 파고들며.
푸우웅-!
하늘에서 떨어진다.
스킬 연계는 완벽하지 못했다.
일단 각이 나오는 대로 걸어버린 탓이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아군이 적을 처치했습니다!
더블 킬!
KGS 해강고님을 도저히 막을 수 없습니다!
상대로서도 분명 해볼 만한 한타.
그럼에도 불구하고 쓸려나간다.
5스택 드래곤이 가진 위엄이다.
스치기만 해도 싸그리 녹아내린다.
단 한 명만이 악착같이 생존했다.
그런 갱붐의 제우스를 향해.
후욱!
점멸로 던져진 한 자루의 창이 반항의 여지를 강탈한다.
짐에어 그릴윙스.
부스 안에는 초조함만이 감돈다.
경기가 끝나고 코치와 감독에게 피드백을 듣기는 했지만.
"형 괜찮아 보이시네요."
"그러엄 괜찮지. 내가 왜 괜찮지 않을 거라 생각하니 채이야."
반쯤 멘탈이 털린 서포터의 물음에 아무렇지 않은 듯 대답한다.
긴 경력과 숱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평점심!
딱히 그런 것까진 느껴지지 않는다.
《아니……, 그게 말이 돼요? 체력 분명 많았는데.》
《빵테온이 패시브 때문에 피가 별로 안 까졌다니까?》
원딜러인 캡잭은 그냥 멍하니 회상하고 있을 뿐이다.
코치에게서 들은 피드백 내용.
몇 번이나 되새기고 있음에도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는다.
설명은 분명 합리적이다.
이론상 될 거 같다고 이해도 된다.
그럼에도 직접 보지 않으면 납득이 안 가는 일도 있는 법이다.
눈 뜨고 코 베인 듯한 기분.
상대의 전략도, 동선도 어처구니가 없다.
어떻게든 버텨 보려고 했지만 20분대의 5스택 용은 말이 안됐다.
"우리는 용이 먹혔던 것도 몰랐던 거구나 채이야. 이게 어떻게 된 일이니 채이야!"
"제가 체크를 못했어요."
"우리 둘 다 발언권이 없는 것 같구나 채이야."
웬만한 상황은 상정했음에도 불구.
그 이상의 독창적인 짓거리를 해왔다.
상대의 판단이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을 만큼 파격적이다.
이어지는 두 번째 세트의 밴픽.
짐에어 그릴윙스의 판단은 결국 밴이다.
일련의 기행을 가능케 만든 빵테온을 자르긴 했는데.
"랙싸이 정도는 내줘도 되겠지? 대비 되지 애들아?"
"뭘 해도 빵테온 보단 날 거 같아요."
"궁 때문에 라인 푸쉬가 안돼요."
두 번째 세트는 서로의 진영이 바뀐다.
블루팀인 상대는 랙싸이를 가져갔다.
다소 염려는 되지만 그 정도야 뭐.
바로 이전 세트에서 짐에어가 사용한 픽이 랙싸이다.
솔로랭크에서도 자주 보여 적응된 상태다.
선수들도 한층 더 바짝 긴장했다.
구루룩-!
그럼에도 불구하고 얄짤이 없다.
글자 그대로 또다시 눈 뜨고 코 베인다.
탑라인 1차 앞, 엄청나게 두터운 벽을 넘어.
〈아~~ 나루 점프 끊겼어요! 이거는 점멸을 써도…… 네, 살아 돌아갈 수가 없죠.〉
-저게 가능해?
-미친ㅋㅋㅋㅋㅋㅋ
-거의 두 배 거리를 이동하네;;
-점멸로 벽 넘어지는 거랑 같은 판정인가
생각지도 못한 위치에서 툭-! 튀어나온다.
깜짝 놀란 나루는 바로 점프를 써서 도망갔다.
그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고 점멸 에어본으로 칼같이 띄워버렸다.
─퍼스트 블러드!
얼음마녀의 호응이 더해지자 깔끔하다.
선취점이 허무할 정도로 쉽게 나왔다.
문제는 겨우 킬 하나 정도가 아니다.
〈지금 정글 CS차이 거의 2배입니다. 오히려 갱킹은 랙싸이가 했는데. 아니……, 말도 안돼요.〉
〈자꾸 말도 안된다고 하지 말고 말이 되게 하셔야죠! 해설인데!〉
〈정글러가 CS를 만들어 먹고 있습니다. 이게 아마 동선의 차이 같긴 하거든요?〉
랙싸이의 성장 속도가 범상치 않다.
킬은 먹은 것도, 라인을 받아먹은 것도 아니다.
그냥 정글몹을 사냥하는 속도 자체가 확연히 다르다.
구루룩-!
랙싸이는 이동과 동시에 땅굴을 남긴다.
블루팀 정글 지역은 터널 공사가 완료돼있다.
엄청난 속도로 돌아다니며 정글몹을 쓸어 담는다.
-무슨 청소기처럼 흡입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