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9화 (79/201)

자드가 3초 동안 박은 풀딜을 버틸 수가 없다.

〈엄청난 피지컬 컨트롤~~!!〉

-강민철도 인정하는 피지컬……

-엄피컨은 아무 때나 나오는 게 아닌데

-율천고 잘하네

-자드 하나는 테이커급으로 하는 애지 원래

분명 부진한 모습을 보여줬던 게 사실이다.

솔로킬을 따이는 등 체면도 구겼다.

하지만 첫 술에 배부를 수 있을까?

람블 장인 마포고도 분명 그러했다.

한 번의 계기로 실력에 안정감이 붙었다.

방금 전 장면은 그만한 기대를 심어주기 충분하다.

물론 상황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짐에어는 재빠르게 판단해 바론을 쳤다.

랙싸이와 자드가 없다면 할 만하다는 심산이었지만.

꾸웨에에엑-!

기괴한 울음소리가 울려퍼진다.

랙싸이가 궁극기를 썼다는 신호.

짐에어 그릴윙스는 바론에서 즉시 손을 떼는 수밖에 없다.

〈글로벌 궁극기를 통한 운영이 정말 예술의 경지에요. 이 선수 지금까지 왜 정글 안 했나요? 제가 말하고 자문자답하기 뭣하지만 미드도 그만큼 잘하죠.〉

〈원래 미드 하는 선수에요! 정글도! 잘하는 거 아닙니까~?〉

-김서준 행복사

-혼자 운영 다 해먹네 ㄷㄷ

-마왕은 못하는 게 뭐냐?

-바텀 억제 포탑 나감ㅋㅋㅋㅋㅋ

바론 트라이를 포기한 이상 손해도 감수해야 한다.

자드가 빠른 속도로 억제 포탑을 철거한 후.

챠라락-!

표창을 던지며 얄밉게 빠져나간다.

기세는 다시 서울팀을 향해 기울었으나.

* * *

대회 경기에서 흔하게 나오는 상황이다.

조합의 균형이 무너지고, 운영이 산으로 간다.

전력이 비등비등해 보여도 결국은 허무하게 밀린다.

'심지어 최상위권팀들도 예외가 아니지.'

프로게이머들이 운영을 엄청 잘한다고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의외로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해진 방식 내에서만 게임 풀이를 배운다.

수학 문제를 공식으로 풀듯, 보다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생기는 문제점도 있다.

예기치 못한 사고가 터지면 대처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웬만한 수준이면 모를까.

원딜 중심의 조합인데 원딜이 망했다!

그런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갈피를 못 잡고 흔들리기만 한다.

"바텀은 미드만 계속 지켜. 시야 무리하게 안 잡아도 되니까."

"네!"

"탑은 푸쉬하면서 한 명이면 대치하고, 두 명이면 시간 끌어."

나한테는 전혀 해당하지 않는 일이다.

고작 선수 수준의 얄팍한 지식이 아니다.

코치로서 근본적으로 게임을 이해하고 있다.

'정글은 결국 바둑이랑 비슷한 거니까.'

굉장히 복잡하고 변수가 많은 바둑이라고 보면 된다.

물론 이창호 9단 같은 경우 100수 앞까지 본다고 한다.

단순하게 비교할 수 없는 개념이지만 아무튼 대충 그러하다.

상대가 가진 카드.

우리가 가진 카드.

비교하며, 최선의 결과를 최대한 빨리 정확하게 판단하는 게 요지다.

'사실 좀 치트키 치고 하는 느낌은 있긴 해.'

당연하게도 본래는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이 정도로 판이 흔들리면, 상대가 똑같이 던져주지 않는 이상 그냥 망했다고 보면 된다.

정말 나이기에 가능한 치트키다.

주궤도에서 벗어난 게임을 다시 붙든다.

다른 궤도로 수정해 게임을 억지로 진행시킨다.

「버거킹!」

그런 똥꼬쇼를 해도 수정이 안되는 상황이 분명 있다.

미드 라인에서 있어서는 안될 사고가 났다.

딱히 또 뇌절을 했다기 보다는.

─아군이 당했습니다!

제우스의 포킹을 지나치게 허용했다.

탈리반의 점멸 깃창에 띄워졌다.

이어진 궁극기에 갇히고 말았다.

그렇게까지 해도 살 수 있었다.

랜턴만 어떻게든 탔다면 말이다.

핑크 와드 사이에서 랜턴을 클릭하지 못했다.

'뭐, 시발 대체 얼마나 병신 같이 죽은 거야.'

늘여 놓고 보니 참 어처구니가 없다.

그런데 이런 게 또 대회 경기의 묘미다.

이렁 상황이 대회를 하다 보면 의외로 흔하다.

소위 말하는 멘탈이 터진 경우.

경기 도중에 수습하는 건 중견 선수들도 어려움을 호소하는 문제다.

일개 아마추어가 어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군 포탑이 파괴되었습니다!

파트를 재조립하는 건 가능해도, 없는 파트를 만들어 붙이는 건 안된다.

이렇게 되면 미드가 갑자기 뻥 뚫린다.

제지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

"야, 그걸 다 맞아주면 안됐지."

"사이드 빨리 안 오면 억제탑 생으로 나가."

"……."

'유명'하다고 할 수 있는 아마추어들은 대부분 자신을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프로씬에 나가기만 하면 캐리할 자신이 있다.

팬들까지 부추기면 정말 그런 줄 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속담이 괜히 있을까?

현실과 이상의 벽은 한 번쯤 느껴 봐야 한다.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일도 있는 법이다.

'누구나 한 번은 겪는 질풍노도의 시기지.'

심지어 나 자신도 예외는 아니었다.

내가 별 말을 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이번 사고가 정신적 성숙의 계기가 되어줄지.

어떻게 흘러갈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한 번의 기회를 담담히 던져줄 뿐이다.

솔직하게 밝은 전망은 하지 않는다.

'그 정도로 깨달으면 인생 사는 게 뭐 그리 어렵겠어.'

경기의 승패는 그런 사소한 변수와 전혀 상관없다.

* * *

선수가 경기에서 실수했을 때.

허허, 그럴 수도 있지!

넘어 가줄 만큼 우리나라 팬문화가 성숙하진 않다.

사실 성숙함을 따지기 이전의 이야기다.

전세계 어느 팬덤도 생각보다 별 차이가 없다.

커뮤니티에서는 역시나 아픈 부분을 꼬집고 있다.

─오늘자 개스파컵 방송 사고……

"아, 씨발?"

└그 지랄을 하고 욕까지?

└와 이 새끼 가지가지 한다

└Fact)씨발 아저씨의 PPL이다

└서울팀 PPL이었누ㅋㅋㅋㅋㅋ

하필 그 장면이 방송에 송출되고 말았다.

그만큼 임팩트 있는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경기 중의 욕설은 간간히 생기는 사고지만, 나올 때마다 화제를 불 지핀다.

원래 남 좆되는 것만큼 재밌는 게 없으니까!

그와 180도 상반된 모습을 보인다.

말 한 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게 어떤 건지 보여준다.

─오늘자 클끼리 의문의 1패……

마왕: 이즈한테 일단 궁 쓴 분도 있으니까 신경 쓰지 말고 경기나 집중해

└앗, 아아……

└갑자기 별 것도 아닌 것 같네

└북한어로 욕하는 것보단 훨씬 건전하지!

└이걸 이렇게 포장한다고??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그냥 웃기지만, 선수들 입장에서는 보다 가시적으로 와 닿는다.

생각해보니 씨발 정도는 별 것도 아니네!

그런 생각이 무럭무럭 샘솟게 만든다.

자칫 흔들릴 수 있었던 멘탈을 부여 잡을 계기를 줬다.

어디까지나 계기.

장본인이 잡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이다.

패배의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했다.

유쾌하게 넘어갈 만큼 팬들이 인자하지 않다.

조롱성 글들이 눈에 띌 정도로 흔하게 올라온다.

─해강고 이 새끼 딜만 못 넣는 게 아니네

스로잉에도 재주가 있었누ㅋㅋㅋㅋㅋ

└다 이긴 게임 갖다 던져버리기~

└기프트도 3연속으로는 안 던질 텐데

└킬 먹이고 키워줬더니 기사 뺨 때림

└마왕팬인데 개빡친다

그만큼 유리했던 게임이다.

의아한 스로잉이 연속으로 튀어 나왔다.

비판적인 시각을 감내하지 않기는 힘든 일.

[Best Comment]- 잭선장이 쓰러지지 않아ㄷㄷ

[Best Comment]- 캡잭이 존나 잘한 건 맞는데 해강고 킬딸 욕심은 역겹네

[Best Comment]- 정글, 원딜 CS 같은 거 실화냐ㅋㅋㅋㅋㅋㅋㅋㅋ

두 번째 세트가 끝나고 올라온 기사에는 벌써 댓글들이 도배됐다.

그 정도로 관심이 집중되는 화두다.

갖가지 슈퍼 플레이와 슈퍼 스로잉이 맞물린 결과.

그것도 개인 욕심에 의해 터져버린 사고다.

팬덤을 구별 않고 역적으로 몰려 까이고 있다.

대다수의 여론은 분명 그러하지만 일각에서는 다른 시선도 산재했다.

─마왕이 지금까지 무조건 이겨왔던.EU

추구하는 것은, 확실한 승리……!!

「최강」인 이유!!

└마소카ㅋㅋㅋㅋㅋ

└바로 이거였누ㅋㅋㅋ

└얘 이제 곧 거품 빠진다

└마왕 한 번이라도 지면 진짜 존나 깔 거임. 탄창 준비 중

그 어떤 선수라도 안티는 존재한다.

설사 아무런 문제가 없는 선수도 말이다.

하물며 짧은 기간에 갑작스레 유명세를 탔다.

남 잘되는 꼴 못 보는 인간들이 고개를 들이민다.

마왕은 무조건 승리한다고?

패배하는 순간을 정말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서울팀 입장에서는 사고, 그것도 정말 대형 사고가 터진 건데…… 이런 상황일수록 멘탈을 수습하는 게 중요합니다.〉

〈멘탈 잡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제 겨우 1대1, 절대로 불리한 게 아니거든요!〉

-마왕은 피해자지

-응 캐리 안돼

-저렇게 싸재끼면 테이커 할애비가 오면 캐리함?

-할머니도 롤잘알이라 할애비면 또 모른다 ㄹㅇ

대회는 현재 진행형이다.

그것도 다전제로 진행된다.

세트 스코어 1대1로 다시 동일 선상에 따라잡힌 상황이다.

하지만 기세라는 면에서, 멘탈적인 측면에서 흔들린다.

극복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아 보인다.

위기의 순간 마왕이 내린 선택.

와아아아아-!

경기장이 술렁이는 이유가 있다.

서울팀이 또다시 파격적인 결단을 내린다.

솔로 라인, 마왕이 탑으로의 출전을 선언했다.

작되는 세 번째 세트의 밴픽.

아니나 다를까 조커픽이 튀어 나왔다.

하지만 김서준 해설의 반응은 태연자약하다.

〈탑 말카림! 메이저한 픽은 아니지만 솔로랭크에 유명한 장인들이 몇몇 있죠. 캐리력 측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그런 만큼 충분히 나올 수 있는 픽이다.

마왕이라면 그 잠재력을 살릴지 모른다.

언뜻 기대감을 부추기는 것처럼 보여도.

-말카림은 챌카림 미만 잡이지

-응, 그 니혼징은 마왕한테 좆털림

-후지산 적토마 돼버린지가 언젠데ㅋㅋㅋ

-말카림은 피맥이 진짜임. 피맥은 진짜 챌린저

이미 몇몇 스트리머들이 주력픽으로 사용하고 있다.

메이저하진 않아도 정보가 부족한 건 아니다.

일반 시청자들도 은근히 알고 있는 이야기.

자료 준비에 깍듯한 김서준 해설이 모를 리가 없다.

즉, 단점과 한계에 대해서도 이미 보았다.

말카림은 리스크를 안고 가는 픽이다.

〈상성을 심하게 타서 선픽감이 아니라는 점이 역시 걸리네요.〉

물론 김서준 해설이니 아는 것이다.

강민철 해설만 해도 전혀 모르는 눈치.

옆에서 묵묵히 쿨감 90% 조냐를 켠 상태다.

마찬가지로, 짐에어 그릴윙스도 모를 수 있지 않을까?

조커 카드는 상대의 방심을 유도할 수 있다.

애석하게도 정글 빵테온 때와는 달랐다.

"쟤네 말카림 뽑았는데?"

"상대할 줄 알아. 네네톤 줘."

짐에어 그릴윙스의 탑솔러 트레이드.

그가 가진 독특한 색깔 탓이다.

실력적인 면에서 S급이라 보기엔 아쉬운 선수다.

그 부족함을 이색적인 전략으로 채운다.

'사파 탑솔러'라 불리고 있을 정도다.

말카림에 대해서도 꿰고 있다.

상대법은 물론 카운터 픽까지.

탑라인은 피지컬이 전부가 아니다.

상성과 라인 이해도가 더욱 중요하다.

〈네네톤……! 이건 확실히 카운터로 뽑은 느낌이죠? 사실 이런 사파픽은 트레이드의 선수의 전문 분야라고 할 수 있거든요.〉

〈원래 특이한 거 많이 하는 선수 아닙니까? 특이한 거 상대하는 법도 누구보다 잘 알 거에요!〉

-말 되네

-트레이드한테는 안 통하지ㅋㅋㅋ

-사파 탑솔러의 본좌

-그래도 어떻게 실력으로 못 비비나?

같은 솔로 라인이라도 미드와는 다르다.

탑이 캐리 라인으로 꼽히지 않는 이유 중 하나다.

상성을 많이 타고, 정글도 많이 타고 귀찮은 점이 한둘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 정글보다는 개인 플레이에 최적화된 라인이기 때문에 뚜껑을 열어봐야 알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대가 이는 선수다.

무언가 보여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기대 반, 우려 반, 양팀의 세 번째 세트가 막이 오른다.

─퍼스트 블러드!

그 대답은 3분도 걸리지 않았다.

* * *

탑(Top).

미드와 같은 솔로 라인이다.

혼자 CS를 몰아 먹으며 성장을 하기에 최적화되어 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캐리와 가장 동떨어진 라인이기도 하지.'

그런 성장을 상대도 똑같이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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