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된 탑의 특성상 로밍을 가는 것도 제한된다.
라인전만 하다가 게임 끝나는 경우가 허다하리 만큼 잦다.
그래서 차후에는 기도 메타라는 농담도 생긴다.
기도가 하늘에 닿는 쪽이 게임을 이긴다!
이기는 쪽이 신앙심이 보다 투철하다!
어느 쪽 신이 더 영험한지 겨루는 진풍경도 펼쳐진다.
농담 같은데, 농담이 아닌 그런 메타가 찾아온다.
하지만 현재 시점에서는.
콰라락!
언월도가 풍차처럼 돌아간다.
세 번째 세트에서 선택한 챔피언이다.
정글이 아닌 탑 말카림으로 경기에 임한다.
'사실 챔피언은 딱히 상관없어.'
중요한 건 챔피언이 아니다.
어떤 플레이를 하는지다.
1레벨에 정글 몬스터를 잡고 귀환해, 신발을 산 후 탑라인에 텔레포트를 탄다.
쿠러렁!
대기하고 있던 네네톤이 반갑게 맞이해준다.
똑같이 풍차를 돌려도 딜교환에서 손해가 난다.
네네톤이 말카림의 하드 카운터로 꼽히는 이유다.
'근데 2레벨이야.'
현재는 정글 몬스터의 경험치가 제한돼있지 않다.
라이너가 잡아도 한 캠프만에 2레벨이 찍힌다.
살짝 발걸음을 빼며 간을 보고 재차 진입한다.
콰라락!
레벨 차가 있음에도 딜교환이 밀린다.
상대가 라인 관리를 적절히 해놓은 탓이다.
미니언이 깡패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긴 한데.
─퍼스트 블러드!
적을 처치했습니다!
오히려 끼고 싸워 잡아버린다.
말카림의 W스킬 흡수하는 원혼.
가한 피해량의 일부를 회복하는 능력은 오히려 다수를 상대할 때 유용하다.
'물론 그것만이면 최소 죽지는 않았겠지.'
세컨드 스펠로 점화를 들었다.
말카림은 유체화를 드는 게 상식이던 시기다.
선 2레벨에 점화까지 더해지자 아무리 의식을 해도 딜계산이 안된다.
차라리 정직하게 쫄았다면 사릴 수는 있었을 것이다.
상대는 말카림-네네톤 구도에 어설픈 이해를 가졌다.
초반 라인전을 압박해야 한다는 심리를 역이용했다.
단 한 번의 솔로킬.
결코 작은 의미를 가지는 해프닝이 아니다.
상대 정글은 정버프 시작을 했고, 3분 30초 경에 탑에 도착한다.
'이러면 정글러도 실직자가 되거든.'
초반 동선이 말리는 건 프로 레벨에서 엄청난 노이즈다.
연습 과정 때 세웠던 계획과 어긋나고 만다.
어떻게 수정해야 할지 앞길이 막막해진다.
웬만큼 경력이 쌓인 선수들도 힘들어하는 문제다.
현 시점에서 그것이 가능한 정글러는 극소수.
적어도 짐에어 정글러는 해당 사항이 없다.
쿠워어어어-!
6레벨을 찍자마자 쏟아진다.
궁극기로 역공포를 걸며 언월도를 돌린다.
네네톤은 뒤늦게 도망가지만 발굽에 짓밟혀 터질 뿐이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주도권을 잡았을 때.
비로소 말카림의 진가가 드러난다.
라인전 리스크를 짊어진 만큼 리턴 또한 차고 넘친다.
궁극기와 점화에 의한 강제 킬각.
물론 아무리 각이 나와도 함부로 들이대긴 어렵다.
적 정글러가 탑 라인을 집중적으로 시팅할 게 뻔하긴 했는데.
'초반에 말렸잖아.'
이득 보기도 힘든 탑 라인을 주구장창 봐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어설프게 오면 갱승이 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이렇듯 커버리면 탑은 캐리 라인으로 변모한다.
애매하게 유리할 때는 할 게 없다.
대놓고 유리하면 이야기가 전혀 달라진다.
그 유리함을 극대화하는 방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입장이다.
정글몹 스타트도 그 중 하나.
라인 관리로 솔로킬 확률을 더욱 높였다.
10년 가까이 쌓인 노하우는 비교 선상에 놓일 대상조차 없다.
─아군이 당했습니다!
더블 킬!
그럼에도 어쩔 수 없는 것도 있다.
반대쪽 라인이 갱킹을 당해 죽었다.
이런 점이 확실히 탑솔러가 가진 한계이긴 하다.
'그렇긴 해.'
괜히 기도 메타가 생기는 게 아니다.
탑을 탈탈 털어도 결국 솔킬과 타워가 전부다.
다른 라인에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에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현재 시점에서는 그렇지 않다.
한 가지 아이템이 탑라인의 캐리력에 날개를 달아준다.
글자 그대로 날개를 단 듯한 미친 속도.
두구두구두구두-!
한 줄기 섬광과도 같다.
의병대를 달고 텔레포트를 탔다.
말발굽이 캡잭의 치비르를 스치듯 지나간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이동 속도가 곧 공격력인 말카림이다.
반피 남은 원딜 따위 삭제 시켜버린다.
그대로 궁극기가 빠진 리심과 인어까지.
─트리플 킬!
KGS 마왕님을 도저히 막을 수 없습니다!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었다.
상대도 바텀 갱킹에 투자값이 컸다.
체력과 스펠, 궁극기를 소모한 적들을 손쉽게 쓸어 담는다.
'이래서 이때는 탑 캐리하기 좋았지.'
의병대라는 신발 업그레이드 덕분이다.
텔레포트를 탔을 때 킬 결정력을 미친 듯이 높여준다.
네네톤도 약간 늦게 텔레포트를 탔지만 상황이 종료된 후다.
"대박, 대박! 대박!!"
"몸 비틀면서 점멸 빼두길 잘했다……."
"탑 웨이브는 제가 막을게요!"
주도적인 플레이를 하기에 최적화된 메타.
잡기술과 더해진다면 사실상의 필승을 만들 수 있다.
물론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짓도 아니긴 하다.
'상대가 짐에어니까 통하는 거지.'
상체가 빈약하고 바텀에 하중이 쏠렸다.
초중반에 승부수라 할 만한 것을 안 던진다.
두 가지 전제가 깔렸기에 가능한 안정적인 캐리다.
당하는 입장에선 그래 보이지 않겠지만.
* * *
짐에어 그릴윙스의 부스 안.
숨 돌릴 틈도 없을 만큼 긴장이 흐른다.
그 이유는 비단 한국 킥복싱 페더급 랭킹 1위의 혼자 세계관이 다른 듯한 감독이 지켜보고 있어서만은 아닐 것이다.
자신들이 하고 싶은 주장을 충분히 했다.
대응책을 안 짠 것도 아니고, 의식도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왕의 말카림이 게임을 지배한다.
"네네톤 버틸 수 있어?"
"포탑 끼면 어떻게든. 나오진 못해."
아쉬움을 주고 받을 여유조차 없다.
게임이 더 굴러가는 걸 막기 위해 필사적이다.
상대의 위치와 노림수를 파악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는데.
두구두구두-!
기동력에서 항상 손가락에 꼽히는 챔피언이다.
말카림이 질주하기 시작하자 순식간이다.
기세에 눌린 리심은 방호로 피하며 일단 찼다.
궁극기가 빠져도 죽는 것보단 낫겠지.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판단은 분명 틀리지 않았다.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한다.
쿠워어어어-!
치지직……!
그림자의 습격이 코앞에서 쏟아진다.
리심의 궁극기를 상쇄시켜 버렸다.
그 상태에서 언월도를 내리 찍자.
─전장의 화신! KGS 마왕!
리심은 아무것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터진다.
기껏 빠르게 온 백업의 의미가 사라진다.
이미 3대4 구도가 되어버린 탓이다.
"아니, 이게 죽네! 점화 때문에……."
"쟤네 바론 칠 거 같은데. 일단 합류해 빨리, 빨리, 빨리!"
불리한 상황에서 정글러가 끊겼다.
서울팀은 바론 트라이를 안 할 이유가 없다.
역시나 치고, 짐에어는 서둘러 모이고는 있지만.
〈강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억제력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이거는…… 먹었죠. 확실하게 먹었죠!〉
-짐에어 특) 안 들어감
-오또케! 오또케!
-말카림 좆되게 세네
-점화로 킬각 오지게 잘 잡음ㅋㅋㅋㅋ
기묘한 기용과 기묘한 스펠 선택.
두 가지가 맞물리며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는다.
안 그래도 높은 마왕의 캐리력에 날개를 달아줬다.
〈하지만 짐에어도 딜러진 성장에 브레이크가 걸리진 않았어요. 수성에도 탁월한 조합이라 아직은 할 만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긴 한데…….〉
김서준 해설의 말이 끊긴다.
화면에 무언가가 보였기 때문이다.
상대가 압박해오기 전에 라인을 밀어두려던 캡잭의 치비르.
슈우우웅……!
뒷골이 싸하다.
이변을 알아챘을 때는 한참 늦었다.
텔레포트를 탄 마왕의 말카림이 빛처럼 쏘아져 박아버린다.
쿠워어어어-!
쫓아가 엎질러진다.
상황을 되새겨볼 틈도 없다.
치비르는 제대로 된 반항도 못하고 그대로 터져 생을 마감한다.
〈이 선수는 언제 또 텔을 타서 치비르 끊을 생각을…….!! 게임을 쥐고 흔들면서 짐에어가 숨 쉴 여지를 안 주고 있습니다. 박탈하고 있어요!〉
〈이러니까 무조건 승리하죠! 지금 말카림은 여포의 환생이에요~!〉
-또 텔 탔어?
-미친ㅋㅋㅋㅋㅋ
-억 울 하 다
-이제는 갖다 던질 틈도 안 주네……
바론이 먹힌 상황에서 원딜러가 잘렸다.
수성을 해볼 최소한의 근거도 주어지지 않는다.
숨 쉴 여지를 박탈했다는 표현은 다소 과격하긴 해도 틀림이 없다.
세 번째 세트.
반격이란 말조차 어색하다.
기껏 따라잡은 짐에어 그릴윙스로부터 그 희망을 거두어간다.
솔로 킬.
슈퍼 플레이.
사실 그렇게 드문 이야기가 결코 아니다.
매 경기 거의 무조건 터진다.
반대로 말하면 무조건 누군가는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왕이 특별하게 보이는 이유는.
─전설의 출현! KGS 마왕!
이전 세트의 하이라이트 장면이 송출되고 있다.
리심을 잡아내고 바론.
연이은 텔레포트로 핵심 딜러인 치비르를 끊었다.
〈저 장면이 너~~~~무 컸던 게 정글러가 잡혔으면 바론이잖아요. 그리고 원딜러 없으면 한타 못해요. 수성도 안돼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진정하세요. 진정!〉
-행복한 고혈압
-지금 당장 당뇨로 가버려도 좋아!
-경기 달달하다
-마왕 이 새끼 캐리력 상또라이급이네
고작 그 정도의 이야기가 아니다.
김서준 해설이 부르짖는 이유가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괜히 있을까?
경기의 주요 포인트를 헤집어버린다.
플레이 한 번, 한 번이 무려 결정타다.
명치를 얻어맞은 듯 숨도 쉬지 못했다.
─캐리 안된다는 롤붕이들 닥치게 만드는 한 방.gif
필살 "진심 시리즈"-
「진」 「심」 「캐」 「리」
└유성 말카림ㄷㄷ
└스펠 쉴드 없었으면 진짜 한 방임
└진심 캐리 나와버렸누ㅋㅋㅋㅋㅋ
└진짜 원펀맨 모드ㅋㅋㅋㅋ
물론 시청자들이 보는 건 임팩트다.
그마저도 부족하긴 커녕 차고 넘쳤다.
마치 어떤 만화의 '대충 한 방 때리면 이기는 맨'처럼 한 방에 적들을 골로 보냈다.
세 번째 세트의 승리를 가져왔다.
네 번째 세트가 막을 올리기 직전.
짐에어 그릴윙스의 부스 안은 소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초반에 당해주면 안됐는데 그게 너무 컸어요. 주도권 다 뺏기고."
"다시 하면 자신 있어?"
"자신…… 있다고는 확실하게 말씀을 못 드리죠."
코치의 물음에 트레이드가 대답을 망설이다.
프로 선수들이라고 학습 능력이 만렙이 아니다.
한 번 당해봤다고 바로 대응책이 나올 리가 없다.
설사 자신이 있다 해도 확신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만큼 상대의 수는 상상도 하지 못한 부류다.
결국 꺼내들 수 있는 카드는 한 가지 뿐.
〈역시 자르네요. 밴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긴 이게 또 완벽한 해답이라고 보긴 힘들거든요?〉
〈마왕 선수는 다른 거 잡아도 잘하잖아요! 못하는 걸 본 적이 없어요~.〉
〈물론 그것도 있지만 짐에어 그릴윙스의 밴카드에 여유가 없다는 게 큽니다. 없는 걸 쥐어 짠 거에요.〉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밴카드는 결코 무한하지 않다.
말카림을 자른다면 다른 위협적인 픽이 살고 만다.
하물며 '장인'에 해당하는 선수가 많은 서울팀.
밴카드 하나하나의 가치가 보통 큰 게 아니다.
짐에어 그릴윙스로서도 심사숙고를 거친 판단이다.
와아아아-!
관중석이 술렁인다.
큰 파동은 아니지만 눈치 챈 이들은 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풀리지 않을 만큼 집중 견제를 당한 픽이다.
-이걸 살려준다고?
-살려줄 만하지. 난 지금까지 밴한 게 더 어이 없음
-실력 거품 다 빠졌지ㅋㅋㅋㅋ
-어차피 또 갖다 대줄 듯
커뮤니티와 채팅창의 반응이 뜨겁다.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픽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