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의 필사적인 이니시를 가볍게 흘려 넘긴다.
〈아자르 죽창! 죽창! 죽창!〉
〈아자르 완전 괴물이에요. 스치면 죽어요!〉
《마왕! 마왕! 더블 킬! 트리플 킬~!》
해설진들의 합창이 울려 퍼진다.
아자르를 물려던 시도가 실패했다.
그 시점에서 이미 돌이킬 수 없다.
─트리플 킬!
전설의 출현! KGS 마왕!
일방적인 추격전이 되고 만다.
잔당은 도망가지만 뒤가 없다.
첫 번째 세트의 승자가 정해진다.
〈왜 자꾸 아자르만 언급하냐? 저희가 의도한 게 아니라 정말로 아자르밖에 안 보였어요. 딜량 보세요.〉
〈와아아-! 분당 천을 훌쩍 넘겼죠?! 어처구니 없는 딜량입니다. 팔이 빠져라 때렸어요!〉
〈아자르가 병사를 세 명 소환하잖아요. 정말로 혼자 4인분 한 겁니다.〉
-미터기 뚫어버렸누ㅋㅋㅋㅋㅋㅋ
-아군 다 합친 것보다 많네
-아, 8:5 게임은 비겁한데;;
-미드 혼자 겜함?
MVP는 따질 것도 없다.
MVP 하이라이트 장면이 송출된다.
선취점과 미드 솔로킬 이후 문제의 그 장면까지.
-바론 어리둥절잼
-얍시 자리 보소ㅋㅋㅋㅋㅋ
-저건 뭐 대체 어떻게 찾아낸 거야 시발!
-아자르 지속딜 미쳤네
GOO Tigers로서는 상상치도 못했다.
심지어 개복치까지 먹어둔 상태였다.
그런데 2인 바론도 아니고 솔바론을 하다니.
〈저런 자리를 찾아낸 것도 신기하지만 딜이 안 나왔으면 또 말짱 도루묵이잖아요?〉
〈그렇죠.〉
〈보통 아자르가 네크로노미콘을 올리는데 바론의 이빨을 왜 올렸을까? 확실히 오브젝트 딜을 보니 체감이 되네요. 푹푹 찌르는 게 아니라 푹푹푹푹! 찌릅니다.〉
-푹푹푹푹!
-입딜 오지게 박네
-저렇게 먹은 거였구나
-밸런스 직원 최소 야근각ㅋㅋㅋㅋ
그렇게 바론이 먹혔다.
게임의 흐름이 완전히 뒤틀렸다.
GOO Tigers는 최대한 대응을 했지만 기세가 기울었다.
"우리가 어떻게든 아자르부터 물어야 했는데……."
"빨려 들어가는 구도라 물 수가 없었어."
"생각보다 너무 세더라. 뭐 저렇게 세?"
아자르에 대한 면역.
부족했다는 것도 한몫했다.
평소 스크림이나 솔로랭크에서 겪어본 수준이 아니었다.
GOO Tigers로서는 당황스럽다.
분명 예측 가능한 구도라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기 내에서 상대의 영향력은 상상을 뛰어넘었다.
"변수는 변수지만 우리가 대응 가능한 것도 분명 있었다고 생각하거든?"
이런 상황일수록 침착해야 한다.
그렇기에 존재하는 게 코치라는 직업이다.
객관적인 시점에서, 감정을 배제하고 상황을 분석한다.
"초반에 미드가 억제력이 너무 없었어. 그렇지?"
"……네."
"정글도 그거 생각 안 하고 한 발짝 더 들어갔어. 그렇지?"
"네……."
경기를 하다 보면 사고는 터질 수밖에 없다.
실수를 하지 말라고 하는 건 말 같지도 않은 소리다.
코치진은 사고가 터진 원인을 분석하고, 대처법을 마련한다.
선취점과 미드 솔킬은 이어지는 것이었다.
그로 인해 아자르가 폭발적인 성장을 했다.
성장에 비해 지나칠 정도로 활약한 감은 있지만, 애시당초 성장을 안 했다면 해프닝 정도로 끝날 수 있었다.
〈GOO Tigers가 랄라를 가져오네요?〉
〈탑&미드 스왑이 가능해서 선픽하기 정말 좋은 카드인데…… 그렇죠. 미드 랄라죠. 스맥에게 리픈을 쥐어주네요.〉
-역시 무당준ㄷㄷ
-저건 당연했지
-지금 스맥한테 랄라 주는 건 탑에서 도 닦으라는 거지
-도 닦으래 ㅁㅊㅋㅋㅋ
이어지는 두 번째 세트의 밴픽.
약점을 보완하며 안정감을 보탠다.
그러면서도 탑 라인의 강함은 여전히 유지한다.
하지만 밴픽 보완을 GOO Tigers만 할까?
서울팀도 첫 번째 세트와는 변화가 있었다.
람블이 아닌 얼음마녀로 맞춤 대응을 해왔다.
〈마포고 선수가 람블 장인이긴 하지만, 리픈을 상대로는 상성이 안 좋아요. 이거는 좋은 선택이라고 봅니다.〉
〈동의합니다. 물론 그 상성이 솔로랭크처럼 극단적인 건 아니고, 6 대 4 정도로 약간 앞서는 거긴 한데…….〉
상성을 유난히 타는 챔피언들은 3티어 이하로 분류되어 대회에서는 잘 나오지 않는다.
1,2티어 픽들은 플레이 여하에 따라 상성이 극복 가능하다.
GOO Tigers는 이미 앞서 이 점을 극대화시켰다.
"처음에 2레벨 찍고 두란검 5포션 스타트하면 오히려 이기던데요? 이거 너무 사기야."
"그러면 동선도 맞춰서 짜줄 테니까 너는 네 플레이 해. 알았지?"
"저만 믿으세요. 스맥인데."
탑솔러가 정글 몬스터를 먹고 스타트한다.
포션을 다섯 개 든든하게 사오면 상성이고 나발이고 없다.
오히려 적을 유지력과 레벨업 주도권으로 찍어 누르는 게 가능하다.
안 그래도 높은 스맥의 캐리력에 날개를 달아주고 있다.
앞선 첫 번째 세트에서 증명을 하고도 남았다.
이번 두 번째 세트도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챠라랏!
부쉬에 숨어있던 얼음마녀가 튀어나온다.
탑라인에서 기묘한 일이 펼쳐진다.
치라는 직업은 고단하다.
경기는 선수가 펼치고, 욕도 거의 선수가 먹는데 왜?
'그게 꼭 장점만은 아니야.'
선수는 개인의 평가가 따로 나뉜다.
팀이 못하고 져도, 선수가 잘하면 인정 받는다.
하지만 코치의 평가는 팀의 성적과 그대로 연결된다.
역대 최고의 커리어를 자랑하는 김다균 감독.
그의 발언 중 인상 깊은 것이 있다.
개인적으로 명언이라 생각한다.
「모든 스포츠에서 정답은 우승밖에 없다.」
경기력이 부진하거나, 성적이 안 나올 때.
질문을 받으면 이런 식으로 대답한다.
자신이 못했다고 쿨하게 인정한다.
팬들 입장에서는 그냥 립 서비스 같다.
선수 생활할 때는 별 생각 안 들었다.
하지만 코치 생활을 하며 알게 됐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답은 승리밖에 없더라고.'
사실 코치랑 감독 중에 쌓인 말 없는 사람이 없다.
능력 있는 코치든, 적은 코치든 마찬가지다.
그런데 뭐라고 하든 변명밖에 안된다.
적어도 팬들 입장에서는 그렇게 해석된다.
김다균 감독은 일찌감치 깨달은 듯싶다.
이해해줄 사람 없는 고독한 전쟁이다.
챠라랏!
탑라인 1차와 2차 포탑 사이.
숨어있던 얼음마녀가 튀어 나온다.
2레벨 스타트 전략은 절대로 만능이 아니다.
'어떤 전략이든 다 대처법이 있어.'
그러한 대처법은 나오는데는 시일이 걸린다.
제아무리 유능하다고 한들.
나오지도 않은 걸 분석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챠라랏!
얼음 칼날이 미니언을 뚫고 둔화시킨다.
그렇게 첫 미니언 웨이브를 잠시 붙든다.
기다리면 아군 미니언이 포탑에 도착하며.
"와…… 이거 생으로 다 태울 수 있네. 개꿀인데요?"
"진짜 악마 같은 발상이다."
"그래서 사탄인가?"
"……."
정글 몬스터를 먹는데 소요되는 시간.
그 사이 미니언을 포탑에 태우는 전략이다.
정글몹 스타트를 오히려 손해로 만들 수 있다.
'악마적인 발상이긴 해.'
2015년 초, 대회는 물론 솔로랭크에서도 정글몹 스타트 전략이 성행했다.
안 할 이유가 없을 만큼 탑솔러 입장에서 좋았다.
하지만 일련의 파훼법이 생기며 막히고 만다.
단 일주일 만에 전략을 분석해 실전에 투입한 GOO Tigers의 코치.
알고 있는대로 유능한 사람이 아닐 수 없다.
그 유능함이 오히려 악수로 작용한다.
'이런 인위적인 경우가 아니더라도 실제로 간간히 있지.'
이렇듯 시즌 초.
메타가 정립되지 않은 시기.
데이터를 최대한 긁어모아 이상적인 전략을 구축한다.
그런데 자그마한 변수가 나비 효과를 낳는다.
메타의 해석이 180도 달라져 버린다.
코치가 너무 유능해서 경기를 그르치기도 한다.
물론 결국은 제자리 찾아가게 돼있겠지만.
단편적으로 그런 경우도 있다는 소리다.
하필 그 순간이 상대에게는 결승전.
부왁-!
미드 라인에서도 격한 딜교환이 펼쳐진다.
무난하게 가기 위해 뽑았을 랄라 픽.
플레이도 소극적으로 변해버렸다.
'라인전은 기세가 반은 먹고 들어가.'
앞전 첫 번째 세트의 영향이다.
그 정도로 차이가 나 패배하면 흔들린다.
강철 멘탈을 가진 선수라도 영향이 가기 마련이다.
구웅!
써컹!
거리 조절 감각이 느슨해진다.
지체 없이 앞궁극기를 박으며 썬다.
더욱이 현재 시점의 파사딘 궁극기다.
'이동 거리가 무려 700이었던 때라.'
상대하는 입장에서 여간 난감한 게 아니다.
이전 세트에서도 초반에 아주 죽여 놨다.
서로 무난하면 나쁠 것이 전혀 없다.
푸웅-!
부왁!
랄라와 CS를 맞춰서 먹었다.
아이템 차이가 나지 않자 뚫린다.
시도 때도 없는 딜교환으로 걸레짝을 만든다.
'그래도 텔도 있고, 못 버틸 건 없다고 생각하겠지.'
아무리 잘 풀려도 공격적인 픽은 아니다.
파사딘이 왕귀 챔피언으로 분류되는 이유가 있다.
결국은 킬을 따낼 만한 결정타가 부족하다는 부분인데.
구웅!
써컹!
화면 저 끝에서 끝.
아자르의 WEQ에 준하는 거리다.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면 반응을 할 틈 자체를 안 준다.
─퍼스트 블러드!
적을 처치했습니다!
파사딘의 궁극기와 점멸을 응용한 콤보다.
소위 R - 점멸 테크닉이라 불린다.
차후에는 당연해지는 응용기다.
하지만 현재 시점에서는 그렇지 않다.
딱히 알려져 있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다.
그냥 단순히 쓸 필요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궁극기 거리가 워낙 길어서.'
파사딘의 전력을 굳이 끌어 쓰지 않아도 됐다.
차후 너프가 되며 궁여지책으로 쓰인다.
안 쓰면 안될 만큼 짧아지고 만다.
그 응용기를 너프가 되지 않은 지금 사용했다.
랄라는 궁극기도 쓰지 못하고 순삭.
가벼운 솔로킬로 라인전을 리드한다.
* * *
GOO Tigers의 충격적인 패배.
하지만 경기 내용이 밀렸던 건 아니었다.
패인을 굳이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마왕은 무조건 승리한다. 일련의 농담을, 농담 같지 않게 만들었어요. 정말 강제로 이겼다는 느낌이 물씬 들었습니다.〉
-갑자기 바론을 왜 먹냐고ㅋㅋㅋ
-어어?? 하다가 게임 끝남
-진짜 또라인 줄 알았다니까
-강제 캐리가 아니라 '강제 승리'
해석이야 여러가지로 갈릴 수 있다.
적어도 GOO Tigers 입장에서는 사고다.
단판제가 아닌, 다전제인 만큼 충분히 만회가 되는.
그런데 현재 진행되고 있는 두 번째 세트.
첫 번째 세트와는 다른 의미로 유리하다.
라인전 단계부터 리드하고 있다.
─퍼스트 블러드!
적을 처치했습니다!
선취점까지 가져가는데 이른다.
미드 라인.
마왕의 파사딘이 랄라를 글자 그대로 찍어 눌렀다.
〈그것도 결국 자유로운 팬문화, 커뮤니티 드립에서 파생된 건데 최근 재미있는 드립 중 하나가 교수우우우!〉
-교수가 왜ㅋㅋㅋㅋ
-프라이 별명?
-랄라 왜 죽어?
-미드 솔킬 났는데?
다소 격하긴 해도 위기 상황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시답잖은 잡담을 늘여 놓던 클끼리 해설이 당황을 숨기지 못할 만큼 갑작스럽다.
〈솔킬! 솔로킬 나왔어요. 아니, 뭐죠오?!〉
〈킬각은 아예 생각도 못하고 있었는데…… 번쩍! 하더니 랄라가 픽- 쓰러졌어요. CS 손실 대량으로 일어났고, 미드 차이가 엄청나게 벌어지겠는데요?〉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참사다.
리플레이로, 느린 화면으로 다시 보자 그제야 이해된다.
프로 출신인 클끼리는 얼핏 들은 바는 있었다.
〈이론상 가능하다고 어디선가 본 기억이 나는 것도 같아요. 그런데 그래도…… 보통 저런 거 안 쓰잖아요? 그것도 저렇게 과감하게.〉
〈이래서 무조건 승리하는 거 아닙니까? 남들이 안 하는 걸 하거든요!〉
-저게 됨??
-쇈 도발 점멸 같은 거인 듯
-ㅁㅊ 저러면 어떻게 반응해;;
-구로 그냥 숨도 못 쉬고 털리네
하지만 아는 거랑, 쓰는 거랑, 실전에서 써먹는 건 각각 다 다른 이야기다.
하물며 긴장감이 턱 끝까지 차오르기 쉬운 대회에서는 더더욱.
무슨 정규 시즌도 아니고 결승전이니 말할 것도 없다.
〈이번 세트는 그런 변수가 아니라, 라인전 단계부터 착실하게 포인트를 쌓아나가고 있다고 말씀을 드리려고 했는데 솔로킬까지 터져서 서울팀이 많이 유리해졌습니다.〉
김서준 해설이 이전 세트 이야기를 꺼낸 건, 누구처럼 드립을 치려고 했던 게 아니라 경기의 핵심을 집기 위함이다.
그런데 갑자기 상황이 달라졌다.
미드 균형이 완전히 무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