챠라랏!
그런 상황에서 탑 라인.
얼음마녀가 라인 주도권을 틀어 잡고 있다.
스맥의 리픈이 포탑을 끼고 허깅하는 신세다.
〈초반에 정글몹 스타트를 했던 게 오히려 악수가 됐습니다. 아직도 회복을 못하고 있어요.〉
〈그걸 감안해도 마포고 선수가 워낙 잘했어요. 가수 숲?훈씨의 팬클럽 Forset도 오셔서 응원해주고 계신데 그래서 더 힘이 나는 듯한 모습입니다.〉
-숲?훈은 왜?
-숲?훈도 마포고 출신이잖아
-마포고가 유서 깊은 곳이네
-마포고 매콤 주먹!
이전 세트가 탑과 미드의 캐리력 경쟁.
그런 구도였다면 지금은 대놓고 유리하다.
상체는 확실히 서울팀의 우세가 돋보이지만.
푸슝!
하늘에서 포격이 떨어진다.
때 아닌 슈팅 게임이 펼쳐지고 있다.
해강고의 핑크스가 복날 개처럼 두들겨 맞는다.
〈제가 아까 말을 하다가 끊긴 교수님! 프라이 선수가 폼이 제대로 올랐어요. 바텀 CS 벌써 20개 차이납니다.〉
〈그런데 그걸로 용을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그렇게 큰 의미는 없습니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큰 차이다.
바텀 주도권을 생각한다면 더더욱이다.
용 주도권과 직결되는 경우가 많다.
부왁!
그것도 미드가 적당히 밀릴 때다.
마왕의 파사딘이 흩뿌린다.
랄라의 체력바가 갈려나간다.
-괴물?
-나물까진 아직 남았다
-시간 문제지
-구로 지목한 새키덜 롤알못행ㅋㅋㅋ
엄청난 성장 기대치를 지닌 파사딘이 벌써 컸다.
힘의 차이가 느껴지는 듯한 상황이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미드 차이.
〈물론 게임이 터졌다! 이런 건 아닌데 많이 힘들어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GOO Tigers에게는 시간이 필요해요. 그것도 꽤 많이!〉
* * *
난생 처음 경험해보는 대형 경기장.
그 압박감은 오직 겪어본 이들만이 알 수 있다.
그렇게 뻣뻣하게 굳었던 몸이 조금은 풀린 상태다.
'생각보다 할 만한데?'
'평소대로만 하면 별 거 없네.'
'이대로 굳히기만 하면 2세트도 이기겠다.'
첫 번째 세트의 승리.
긴장을 완화하기엔 충분한 계기다.
이어진 두 번째 세트도 별 탈 없이 진행되고 있다.
"아니, 아…… 점멸 쓸게."
"상체 잘해주고 있는대 사려야지. 죽지만 말자."
"……어."
그런 상황에서 바텀.
원딜 차이가 눈에 띄게 난다.
범인이 이미 있다는 사실이 마음을 가볍게 해준다.
'해강고 저 새끼 지가 그렇게 떠들고.'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활약하는지도 중요하다라…….'
'하긴 요즘 세상에 눈에 안 띄면 그냥 묻히는 건 맞지.'
불과 얼마 전까지 일개 아마추어였던 서울팀의 선수들.
이제는 몇몇 프로팀들에게 오퍼도 받아봤다.
그렇다고 별 생각을 당장 할 리가 없다.
당장 개스파컵이 급급한 마당이다.
이후의 미래까지 고민하기엔 골 때린다.
그런데 얼마 전, 이야기를 들은 것이 있었다.
《니들도 어? 버스만 타지 말고 잘 좀 해. 대회 끝나면 우리도 프로팀에 들어갈 텐데 누구는 몇 천 받고, 누구는 억을 받을 수도 있는 거야.》
달리 복잡한 고민을 해본 적이 없다.
대회가 끝나도 팀에 있을 수 있는 거 아니야?
이대로 LCK에 도전해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명백히 마음이 떠나있다.
자신의 미래가 걱정되는 건 누구라도 마찬가지다.
하물며 성공이라는 두 글자가 코앞까지 다가온 상황이다.
「얼어붙어라!」
시작은 탑이었다.
살짝 애매하게 보이던 킬각.
실현해내기 위해 과감한 판단을 서슴지 않았다.
─적에게 당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실패한 시도가 되었다.
리픈이 한 끗 차이, 점멸로 살아나갔다.
정글 백업이 도착하며 역으로 잡히고 만다.
하지만 큰 손해라고는 볼 수 없다.
라인을 밀어둔 상황이고, 스펠도 뺐으니까.
문제는 같은 생각을 한 명만 한 게 아니었다.
─아군이 적에게 당했습니다!
─포탑이 파괴되었습니다!
손해가 누적된다.
물론 일방적인 손해만은 아니다.
득점을 거두는 부분도 분명히 있다.
─KGS 마왕님이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본래부터 격이 다르던 선수다.
바로 옆에서 지켜본 만큼 누구보다 잘 안다.
저 정도로 탑스타가 되는 건 원하지도 않는다.
그저 조금, 어느 정도.
눈에 띄는 활약만 해도 족하다.
엄청난 욕심을 내서 무리수를 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상대는 프로팀이다.
사소한 허점도 기회로 작용한다.
그 실수를 받아먹으며 프라이의 꼬그모가 무럭무럭 성장한다.
GOO Tigers.
첫 번째 세트에서는 보여주지 못했다.
채 보여주기도 전에 말도 안되게 굴러간 탓이다.
「얼어붙어라!」
얼음마녀의 궁극기가 들어간다.
스턴에 이은 속박.
지옥 같은 CC기 연계가 리픈을 붙든다.
그 위로 포격이 떨어진다.
리픈의 체력바가 금세 녹는다.
분명 잡아볼 만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쿠! 챠앙!
「버거킹!」
GOO Tigers의 백업이 도착한다.
서울팀의 예상보다 한 발 빨랐다.
이런 합류 구도는 1,2초 차이가 생사를 가른다.
탈리반 3세의 깃창이 선을 긋는다.
이어진 궁극기가 아예 장벽을 쌓는다.
어쩔 수 없이 시도를 포기하고 발걸음을 빼던 도중.
"막타 이 자식아~."
꼬그모의 평타 한 방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곡사포도 깔끔하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딜계산이다.
─GOO 프라이님이 학살 중입니다!
결국 리픈은 간발의 차이로 살았다.
반대로 얼음마녀는 시체가 되고 말았다.
GOO Tigers가 가장 자신 있어하는 구도다.
여타 프로팀들과는 색깔이 조금 다르다.
정식 운영이 아닌, 합류전이 주특기.
개개인의 기량과 노련함 덕분이다.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침착하다.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만들어 보인다.
물론 팔다리만 좋아봤자 한계가 있는 법.
"숲을 보라고 숲을. 앞에 있는 애를 보지 마."
"오늘도 인생의 가르침 감사합니다 교수님!"
든든한 사령탑이 멘토 역할을 톡톡히 해준다.
교수님이라는 세 글자는 결코 별명만이 아니다.
팀 내의 기강과 교육도 도맡듯이 하고 있다.
이렇듯 팀이 하나가 되어 움직인다.
GOO Tigers가 가진 진가가 발휘된다.
그에 반해 플레이가 하나씩 아쉬운 서울팀.
〈이런 시도가 나쁜 건 아닌데…… GOO Tigers가 항상 한 발이 빨라요.〉
〈서울팀 왜 이렇게 조급하죠? 라인전 단계에서 쌓은 이득 다 사라졌고, 이제 긴장을 해야 됩니다.〉
-김서준 빡침ㄷㄷ
-소노
-좆같이들 던지네
-교수님 앞에서 어딜 지휘봉을 휘둘러ㅋㅋㅋㅋ
시도가 족족 실패하며 유리한 고지에서 내려온다.
어느새 동등, 아니 기세에서 밀린다.
GOO Tigers는 확신을 가지고 시야를 장악한다.
"무빙을 알아 나는~ 쪼끔 위에다 쏜단 말이야."
그 중심에는 역시나 프라이가 있다.
프라이의 꼬그모가 자신감 있게 들이댄다.
랄라의 버프를 받고 한 대씩 톡톡 건드린다.
교과서적인 카이팅과 포지셔닝이다.
떨어지는 곡사포는 빗나가는 일이 없다.
물론 너무 신내다 보면 혼쭐이 나는 수가 있다.
구웅!
부왁-!
어느새 접근한 파사딘의 강렬한 한 방.
동시에 서릿발 길이 싸늘하게 그어진다.
위기 의식을 느낀 꼬그모는 본능적으로 점멸을 뺐다.
그리고 그건 옳은 판단이었다.
0.1초 차이로 희비가 교차한다.
얼음마녀가 빙판길을 만들었을 때는 아무도 없었다.
「얼어붙어라!」
반억지로 걸어버리는 이니시.
어설픈 끝맺음을 맺기엔 이미 글렀다.
어쩔 수 없이 시작한 한타는 아비규환이다.
당연하게도 좋은 결과가 나올 수는 없다.
서로가 가진 힘이 동등하다 해도 불리하다.
하물며 기세와 성장마저 밀리게 된 형국이다.
─전장의 지배자! KGS 마왕!
KGS 마왕님이 GOO 프라이님의 대량 학살을 종결시켰습니다!(추가 골드 : +432G)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눈 뜨고 코 베인 느낌으로 죽어있다.
파사딘이 꼬그모를 즈려밟고 유유히 적 진영을 가로지른다.
〈어↗ 어-?? 꼬그모 터졌어요! 꼬그모 터졌어요오!!〉
〈프라이 Out~!〉
〈마왕님 축지법 쓰신다. 궁점멸로 가뿐히 밟아 삭제시켰어요. 랄라도 깜짝 놀라서 궁극기도 못 써줬고, 하지만. 하지만!〉
-축지법ㅋㅋㅋㅋ
-와 뭐야 저건
-교수님도 반응을 못하네ㄷㄷ
-시야 없는데서 0.1초만에 튀어나오는 걸 어떻게 반응함?
바로 옆에서 보고 있던 랄라도 채 반응을 못했다.
프라이도 입만 뻐끔거리며 아쉬움을 삼킨다.
GOO Tigers의 주요 딜러가 죽어버린 상황.
"슈벌탱! 정 없네 이 친구. 정 없이 살아왔어 너무……."
그 정도로 냉철하기 그지없는 플레이였다.
교수의 지식으로도 풀 수 없는 변칙 문제였다.
하지만 옛말에 '청출어람'이라는 사자성어가 있음이다.
「커져라~♬」
구로의 랄라는 사실상 서포터나 다름없다.
팀을 보조해주는 것이 전부.
한타를 캐리할 수 있는 GOO Tigers 선수는 이제 한 명 뿐이다.
─트리플 킬!
GOO 스맥님이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프라이를 대신해 온갖 보조 버프를 입었다.
후진입하여 미쳐 날뛰기 시작한다.
해설진의 목청이 점점 다른 방향으로 높아진다.
〈스맥이! 스맥이! 스맥! 스매액-! 〉
〈쓸어 담았는데요?! 물론! 물론 아직 이긴 거 아니에요. GOO Tigers도 신내면 안됩니다.〉
스맥의 리픈이 점멸로 핑크스를 끊었다.
그리고 한타 한가운데 진입했다.
공격이 쏟아졌지만 랄라가 슈퍼 세이브.
리픈이 결국 트리플 킬을 쓸어 담았다.
하지만 체력 관리가 전체적으로 안 좋다.
그대로 진영을 갖추며 물러나는데 성공한다.
〈와…… 이게 얼음마녀가 너~무 안 좋게 진입해서 완전 대패하는 그림이라 봤는데. 빙하 무덤 써서 시간 끌었고, 마왕이 꼬그모를 순삭시키면서 이게 또 뒤집히나 했거든요?〉
너무나 갑작스레 열린 이니시.
한타의 내용도 뒤죽박죽이었다.
소강상태에 접어들자 김서준 해설이 리플레이를 체크하며 정리에 들어간다.
〈파사딘과 싸먹는 식으로 길게 봤다면 서울팀한테 유리할 수도 있는 구도였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스맥이 핑크스를 끊은 것도 컸고, 애초에 너무 조급했어요. 서울팀 선수들이 한타 이겼다! 우르르 몰려들어간 게 다시 봐도 아쉽네요.〉
-랄라 3인궁이 컸다
-역겹네
-마왕이 판 다 짜줬는데
-마왕 오열ㅋㅋㅋㅋ
무려 열 명의 챔피언이 뒤엉켜 싸우는 게 한타다.
글자 그대로 아비규환, 개판이 따로 없다.
그렇기에 프로게이머는 침착해야 한다.
분위기에 취해 누구 죽여! 그냥 죽여! 젠부샤쓰!
그러는 게 아니라 역할을 수행하는 게 먼저다.
때로는 과감한 판단으로 반전을 도모한다.
아마추어, 서울팀의 선수들도 알고 있다.
평소에는 부족하지 않은 한타를 치렀다.
조급해졌다는 클끼리 해설의 지적이 더없이 와 닿는다.
"학생들, 본교수는 믿고 있었어요~."
"교수님 저 학점 A+ 나오나요?"
"물론이죠. 스맥 학생은 조기 졸업해도 되겠는데요? 하지만 궁극기 못 쓴 구로 학생, 내일까지 반성문 써오세요~."
""네, 교수님~~!""
그에 반해 GOO Tigers는 침착하다.
한타는 급박했지만, 뒤처리는 화기애애하다.
어처구니 없는 변수가 터졌음에도 한 점 흐트러짐이 없다.
프라이라는 구심점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있다.
팀 게임의 경험치가 다르다는 사실이 느껴진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해지면 더해졌지, 덜해지진 않는다.
-굿바이 프라이한 줄 알았는데……
-로를자래 교수님ㄷㄷ
-계절학기 개강이다 ㅆ벌럼들아!
-종강한 줄 알았더니 계절학기 신설했누ㅋㅋㅋ
그것은 팬들에게도 마찬가지다.
한때 은퇴하여 후학 양성에 힘을 기울였지만, 다시 복귀하여 제 2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자랑스러운 교수님의 모습에 제자들도 감개무량하다.
하늘과도 같은 스승의 은혜에 조금이나마 보답하고자 현장은 물론, 커뮤니티, 채팅창 모두 응원의 열기로 뜨겁다.
그의 개인 방송, 유튜브 시청자라면 모두 제자나 다름없다.
심지어 그 수업의 대상은.
"해강고 학생, 계절학기 수강 하셨어야죠~."
적팀조차 예외가 아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