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1화 (91/201)

잘해야 한다.

팬들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

현재 경기의 흐름은 실로 경이롭지만, 아직 승리와 거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말카림을 중심으로 이득 보는 구도가 만들어져야 하는데, 지금까지는 GOO Tigers의 대처가 영리해요.〉

〈맞습니다. 운영을 하기 위해서는 날개를 펼쳐야 되고, 그 과정에서 방금 같은 잘라 먹기를 통해 시간을 벌고 있습니다.〉

〈파사딘 때도 그랬잖아요. 한 명, 두 명 계속 끊기고~!〉

두 번째 세트의 파사딘도 따지고 보면 말이 안됐다.

눈 뜨고 코 베이는 게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줬다.

원딜러가 생으로 끊기면 보통 못 이긴다.

하지만 실력 차이도 보통이 아니다.

이런 큰 무대의 경험치 차이 또한.

팀적인 실수가 쌓이고 쌓이면 캐리에도 한계가 있다.

〈그래서, 그래서! 바론 치나요?〉

〈치네요. 근데 딱히 근거는 없어서, 한타각을 만들어볼 생각으로 치는 것 같습니다.〉

유리한 쪽, 주도권을 쥔 쪽.

오브젝트를 교전의 빌미로 사용한다.

소위 '바론 애무'라 불리는 LCK식 운영이다.

-응 못 먹어

-적당히 치다 빠지겠지

-에라, 모르겠다 치는 거 같은데?

-아마추어팀 아니랄까봐 근거도 없이ㅋㅋㅋ

시청자들의 눈에도 익숙하다.

어떤 그림이 그려질지 숱하게 보았다.

서로 적당히 눈치 보다 물러나는 합의점을 가진다.

〈합의하겠죠? 바론 끼고 5대5 일어나면 양쪽 다 확신은 없을 거거든요?〉

〈아마 합의할 것 같긴 한데 이러면 결국 GOO Tigers에게 웃어주는…….〉

마지막까지 버스트를 하기엔 부담이 된다.

한타각도 GOO Tigers가 쉽게 주지 않는다.

한쪽이 유난한 실수를 하는 게 아닌 이상 이대로 끝이 난다.

설사 실수가 나온다 쳐도, 그건 서울팀 쪽이 될 확률이 높다.

전략적인 관점에서 GOO Tigers가 아득히 우월하다.

그 기본 뼈대를 박살내는 듯한 판단.

하아!

리심이 바론에 음파를 맞춰뒀다.

합류도 진작에 끝나서 대치 상태를 이뤘다.

이 정도 하면 적당히 빼는 것이 순리인데.

─레드팀이 바론 백작을 처치했습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다.

2천이 넘게 남아있던 바론의 체력.

갑자기 1천대로 뚝- 떨어지고 말았다.

리심은 부랴부랴 일단 들어갔다.

워낙 급박한 상황이다 보니 누가 스킬을 썼고, 누가 위험하고 이런 게 안 보인다.

그럴 때일수록 중요한 것은 결과.

〈서울팀 바론 먹었어요오!!!〉

〈끝까지 쳐서 결국 먹었고! 리심 죽었고! GOO Tigers는 이대로 보내면 절대 안되거든요?!〉

스틸 시도가 실패했다.

그 시점에서 리심의 운명은 자명하다.

1+1 이벤트로 염가 행사 땡처리가 되고 만다.

나머지 네 명의 GOO Tigers 선수들.

포위망을 좁히며 무언가 건져 가려고 했다.

그런 그들의 앞을 떡하니 버티고 서있다.

콰라락!

말카림이 시위를 하자 물러나는 수밖에 없다.

때려봤자 딜도 안 박히고, 때려도 궁극기로 빠진다.

그렇게 상황이 정리되자.

〈바론 트라이의 근거가 무엇인가 곰곰이 생각을 해봤는데…….〉

〈근거요?〉

〈그냥 와아아-! 기세로 먹었다고 보기에는 결과가 너무 산뜻하잖아요? 마치 계획했던 것처럼!〉

근거 좋아하는 김서준 해설이 말을 잇는다.

리플레이도 방금 전 상황을 보여준다.

다시 보자 이거 혹시나.

-마왕이 먹었네

-뭘로 먹었지?

-강타ㅋㅋㅋㅋㅋㅋ

-이래서 강타 들었누ㅋㅋㅋㅋㅋ

워낙 드문 상황이다.

아니, 있을 수가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말카림의 강타가 요긴하게 사용됐다.

〈말카림이 17레벨이에요. 리심은 성장을 하도 못해서 아직도 10레벨. 7레벨 차이면 칠 만했네요. 칠 만했습니다.〉

〈정글러가 선강타 쓰고 탑솔러가 먹어버리는 광경이 참…….〉

차후에는 심심치 않게 생긴다.

봉풀주 등 선택지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현재는 도저히 그렇지 않고, 해설진도 차마 생각을 못했다.

GOO Tigers도 마찬가지다.

무난한 대응을 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런다고 다가올 상황에 봐준다는 선택지를 주진 않는다.

콰라락!

바론을 먹고 어느새 18레벨이 된 말카림.

바텀 라인 웨이브를 묵묵히 몰아간다.

그 위세를 막을 엄두가 감히 안 난다.

〈점화를 들었을 때 날쌘 스포츠카 느낌이었다면 오늘은 묵직한 트럭입니다 어설픈 경차는 풍압만으로도 흔들려요.〉

〈풍압만으로요~?〉

〈실제로 그렇잖아요. 경차 타면 무서워서 트럭 옆에 못 지나갑니다. 물론 트럭도 급 나름이지만.〉

-20톤 트럭 씹거눙이지

-미국은 경차 날아간다매ㅋㅋㅋ

-말카림 못 막는다 ㄹㅇ

-아모른직다. 원래 바론 먹었을 때가 젤 위험해

하지만 롤이라는 게임은 방심을 할 수 없다.

다 이긴 게임도 종종 역전이 일어난다.

솔직하게 팀 차이도 나는 상황.

서울팀도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잘리지 않기 위해 정말 조심스레 움직인다.

문제가 되는 건 오히려 말카림 쪽이었다.

사라랏…!

서릿발 길이 그어진다.

그것도 뒤에서.

어느새 얼음마녀가 뒷텔을 탔다.

「얼어붙어라!」

팀 게임이다.

과감한 투자도 서슴지 않는다.

GOO Tigers는 전력을 쏟아부어 말카림을 끊기로 결단했다.

〈보스몹 레이드 한 번 할 분위기죠?〉

〈일단 CC기 연계 들어갔어요. 아무리 잘 커도 숫자에는 장사 없습니다!〉

이는 서울팀의 움직임과도 맞물린다.

너무 천천히 조심스레 내려오고 있다.

백업이 한참은 걸린다는 이야기고, 판단 자체는 근거도 넘치고 타당하다.

이~쿠우!

「해일이당!」

CC기 연계가 너무할 정도로 들어간다.

치비르가 궁극기를 켜며 단체로 덮친다.

5대1 레이드의 시작은 분명 성공적이었지만.

─더블 킬!

전설의 출현! KGS 마왕!

상황이 묘하게 흘러간다.

말카림의 체력이 안 다는 건 아니다.

문제는 GOO Tigers의 딜러진 체력도 줄줄 샌다.

〈어, 어? 치다가 죽어요? 더 치면 바늘 갑옷 반사 데미지에 죽겠는데요-?!〉

〈괴물! 짜릿할 걸? 나라는 괴물! 보스몹이 미쳐 날뜁니다!〉

-Nara is Monster

-미친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건 역대급인데?

-아니, 1대5는 좀 아니잖아!

평타를 반사하는 바늘 갑옷.

있다고 해도 조금 이해가 안 간다.

이해가 안 가는 말도 안되는 위력에 삼켜지듯 휩쓸린다.

〈뒤도 안 보고 도망쳐야 돼요. 원래 RPG게임에서도 레이드 실패하면 공대 떼몰살입니다.〉

〈도망치면 뒤 있나요? 없는 거 같은데요?!〉

〈두 명 죽어도 최소 말카림은 잡아야 했는데 이거 난리 났습니다. GOO Tigers 초-비상이에요!〉

회심의 노림수.

레이드 공대 완전 박살났다.

미드에서는 본대가 웨이브를 몰고 들이닥친다.

어처구니없는 강제 캐리가 보는 이 모두를 전율시킨다.

강타텔 탑솔러.

시즌5를 풍미했던 역대급의 탑캐리 메타다.

단순히 성장력이 엄청나다는 것도 있지만.

'백미는 그 이후의 운영이지.'

정글러의 성장이 안 그래도 부실하던 시기다.

대놓고 강탈해 쫄쫄 굶게 만들었다.

그 결과, 레벨 차이가 하늘과 땅.

바론 버스트의 충분한 근거가 된다.

물론 그렇게 먹어도 이긴 게 아니다.

본대가 잘리거나, 내가 잘리면 말짱 도루묵이다.

─더블 킬!

전설의 출현! KGS 마왕님!

적어도 내가 잘릴 일은 없다.

상대의 공격을 고스란히 받아준다.

뒷텔을 탈 수도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1대5도 준비하고 있었어.'

25분에 4.5코어.

만렙을 달성한 괴물 같은 레벨링.

더해서 한 가지 특별한 무기를 장착한 상태다.

독두꺼비의 선물: 공격한 적을 중독시켜 10 + (추가 체력의 10%)의 피해를 3초에 걸쳐 입힙니다.

정글 몬스터에 강타를 쓰면 이로운 버프를 준다.

본래는 성장이 부실한 정글러에게 준 특혜다.

똑같이 강타를 든 덕분에 사용이 가능하다.

'말이 추가 체력의 10%지 사실상 바늘 갑옷 두 개 낀 거야.'

피흡템이 없는 원딜러는 때리다가 오히려 죽는다.

그리고 그 가한 피해 만큼 고스란히 회복한다.

오직 말카림만이 가능한 일대다의 마술.

─아군이 포탑을 파괴했습니다!

미드에는 이미 미니언 웨이브가 도착했다.

두 명을 잘랐다.

그리고 바론 버프가 있다.

게임의 승리를 틀어 쥔다.

네 번째 세트.

가뿐하게 세트 스코어를 따라잡았다.

""…….""

하지만 그건 내 생각이다.

팀원들은 이미 멘탈이 나가있다.

경기를 이겼음에도 낯빛이 아주 흙빛이다.

'Welcome to LCK. 이게 보통은 데뷔전에 들어야 하는 건데.'

조금 늦게 듣게 됐다.

앞으로 더 들을 기회가 있을 것이다.

아무튼 당장은 멘탈을 바로잡아주는 게 급선무다.

"니들 혹시 올해 스프링 시즌 우승팀 기억 나?"

"……네."

"저도."

"삼선 블루잖아요? 지금은 해체됐지만."

말에 힘은 없지만 다들 그럭저럭 대답한다.

끄덕끄덕 하는 것 보면 기억하고 있다.

당장 올해였던 만큼 이 정도는 쉽다.

"그럼 작년 섬머 우승팀은?"

"SKY T1?"

"스프링은 아마 삼선 화이트였고."

"어…… 윈터는 그러고 보니 마진 소드네요."

말문이 조금 트인다.

아는 이야기가 나온 탓이다.

자기들끼리 알아서 쑥덕쑥덕 떠든다.

"프라이 선수가 캐리해서 우승했었지. 지금 상대팀인."

"그때 매라신은 죽었고, 유일한 신은 도도갓이라고 막 커뮤니티에서……."

일반인들도 아는 이야기다.

프로지망생이 모른다는 건 말도 안된다

당연하게도 퀴즈 대회 열자고 꺼낸 화두는 아니다.

'우리가 역사를 만들자. 이딴 헛소리를 하고 싶은 것도 아니고.'

물론 가끔 있기는 하다.

열혈 스포츠물에나 나올 법한 코치, 혹은 감독.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사람의 손발을 자극시킨다.

《안녕? 내가 너희들에게 롤드컵 우승을 안겨줄 사람이야.》

《영화 '쏘우'에 나오는 폭탄 목걸이 장착한 적 있니?》

《낭만, 전설이 끝났어. 우리는 평범해져 버렸어…….》

막 이런 사람 있다고.

실제로 보면 더 웃긴 사람 있다고.

하지만 나는 현실주의자라서 그런 상상력이 뛰어나진 않다.

"그럼 결승에서 버스 받은 선수는?"

"정글이나 서폿 아닐까요?"

"그럼 못한 선수는?"

"못한 선수요? 우승팀인데……?"

우승팀인 이상 저평가의 대상이 되는 일은 보통 없다.

버스 받은 선수는 따져도, 못한 선수는 안 따진다.

내가 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다름이 아니다.

"그런 거야. 커뮤니티에서 어쩌고저쩌고 떠드는 건 다 졌을 때의 이야기지."

"그럴까요?"

"근데 지금 당장 경기가……."

컨디션이라는 게, 멘탈이라는 게.

옆에서 간바레! 한다고 힘낼 만큼 단순하지 않다.

누구처럼 교수도 아니고, 교육자도 아니라서 그런 부분은 섬세하지 못하다.

'폭탄 목걸이 제조법 같은 것도 몰라.'

나 같은 현실주의자가 가진 단점이다.

하지만 그만큼 현실적으로 알려줄 수는 있다.

결승전이 끝나면 받게 될 세간의 평가와 시선 등.

이겼을 때와 졌을 때가 극명하게 나뉜다.

설사 플레이가 차이나지 않는다 해도 말이다.

김다균 감독의 발언은 언제 생각해도 늘 명언이다.

「모든 스포츠에서 정답은 우승밖에 없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건 비단 왜곡했기 때문만이 아니다.

제 3자의 입장에서 바라봐도 이긴 쪽이 보다 옳아 보인다.

팬들의 시선 또한 우승한 팀에 보다 초점이 실린다.

반대로 준우승팀에 대한 평가는 안 한 것만 못하기도 한다.

아니, 애초에 기억 자체를 못하는 경우도 흔하다.

나는 세상이 우승팀과, 비우승팀으로 나뉜다고 본다.

'물론 그렇게 간단한 것도 아니지만.'

적어도 한 번의 기회를 얻는다는 데는 이견이 갈리지 않는다.

당장 이기는 것이, 우승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흔들렸던 멘탈을 다소나마 붙드는데 성공한다.

"딜교환을 좀 더 해야 되긴 하는데, 하다 보면 설계에 말리는 것 같고 진짜……."

"교수님이 괜히 교수님이 아니더라."

하지만 본질적인 해결책은 안된다.

막상 게임에 들어가면 온갖 고민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어중이떠중이도 아니고 현재 한국에서 최고의 위상을 자랑하는 프로팀이다.

그 중압감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알 수가 없다.

결승전이라는 무대.

실수까지 한 번 해버리면 '뇌정지'라는 게 무엇인지 절실하게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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