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2화 (92/201)

'그래서 기세가 중요했던 건데 안타깝기는 해.'

스스로 허영심, 욕망에 빠져 그르치고 말았다.

극단적인 비판도 딱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아무리 선수들이 빠지기 쉬운 착오라고 해도.

알고 있기에 만에 하나의 상황도 상정해두었다.

최악의 상황이라도 이길 수 있는 보험.

오히려 그렇기에 빛을 발하는 전략.

'롤이라는 게임이 정말 별의별 전략이 다 있거든.'

아무것도 안 해도 이기는 전략도 존재한다.

* * *

한 치 앞을 알 수 없다.

일련의 속담은 비단 경기 내용만을 일컫는 게 아니다.

커뮤니티의 여론도 한 세트 단위로 계속해서 역변하고 있다.

─???: 밥식당? 대세는 패스트푸드지!

'맥' 딜리버리 오픈이다 새끼들아ㅋㅋㅋ

└스맥 맥도날드 차렸누ㅋㅋㅋㅋㅋ

└고퀄 빌런은 개추지

└글쓴이 슼??내가 봄

글쓴이-아득바득 반박하는 씨불얼충^^

실제로 은근하게, 아니 일정 부분 대놓고 존재하는 일이다.

팬들 사이에서 알력 다툼이 심심치 않게 터진다.

상대팀 선수를 비하하거나 깎아내린다.

근데 그걸 대놓고 하면 호응해줄 리 없다.

그래서 우스꽝스러운 별명을 만들어 유도한다.

스맥에게 '맥'도날드라는 별명이 순식간에 정착한다.

〈이게 진짜 어느 정도로 잘 컸냐면…… 솔로랭크에서 가끔 트롤 있잖아요? 아, 나 게임 하기 싫다!〉

〈있더라고요. 저는 랭크 게임은 안 하지만.〉

〈그런 트롤 잡고 10킬, 20킬씩 먹어도 이 정도로 성장이 안돼요. 특히 레벨링 부분은.〉

그만큼 탑 격차가 엄청나게 났다.

마왕의 말카림이 게임을 지배했다.

……라든지 그 어떤 표현을 해도 부족할 정도다.

-무슨 탑이 라인이랑 정글을 다 먹어

-20분에 16레벨ㅋㅋㅋㅋㅋ

-맥도날드가 퍼블도 갖다 바침

-맥도날드갑ㅋㅋㅋㅋ

단순히 킬이나 더티 파밍으로 이룰 수 있는 성장이 아니었다.

경기가 끝났음에도 그 후유증이 가시지 않는다.

듣도 보도, 상상도 못한 충격과 공포.

비교 어린 시선이 나오는 것도 당연한 수순이었다.

탑 차이가 승패를 가른 분기점이 되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다른 시선도 있다.

─???: 여기까지다 서울팀……

내가 줄 수 있는 도움은

└대 용 준

└치트키 들고 오네

└아아……, 그저 '준'

└야흐오도 한 수 접어준다는 그 '과학'

어쩔 수가 없었다.

애초부터 필연이었다.

진용준 캐스터의 중계 날이면 경기가 길어진다는 '용준하다'는 신조어는 e스포츠팬들에게 익숙하다.

그것이 금일 결승전에도 영향을 미친 건지.

오직 과학의 신만이 알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하다.

〈오늘 같은 날에는 용준해도! 전~~~혀 상관 없는 거 아니겠습니까? 팬분들도 그러시죠~~?!〉

진용준 캐스터의 힘찬 외침과 함께 관중들의 환호가 쏟아진다.

최종 우승팀을 가릴 마지막 한 세트.

그 끝은 어설픈 예측을 불허한다.

매 세트 여론이 뒤집히는 이유가 있다.

경기의 내용이 도저히 갈피가 안 잡힌다.

물론, 단 한 명 좌우하고 있는 듯한 선수는 있지만.

〈정말 파격적이었고, 상상 이상의 활약을 해냈습니다. 때문에 마지막 세트도 마왕 선수의 활약을 기대하는 팬분들이 많을 거에요.〉

그의 엄청난 활약이 승리의 열쇠가 되었다.

허나 그것이 마스터키가 아니라는 것도 증명됐다.

GOO Tigers는 이를 대적하고도 남을 기량을 가졌다.

〈하지만 서울팀도 이 정도까지 마왕 선수가 캐리를 안 해도 평소 경기력을 보여줄 수 있다면 충분히 접전이 가능합니다. 진심으로요.〉

〈반대로 GOO Tigers 입장에서는…… 사실 여기까지 온 것 자체가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아마추어팀답지 않게 느껴져서 그렇지 아마추어팀이 상대잖아요?〉

〈그렇죠~ 압도적인 모습 보여주고 싶을 거거든요~!〉

약팀의 입장을 변호하는 클끼리.

강팀의 입장을 대변하는 김서준.

각각 팬들의 입장에서 하고 싶은 말을 전달해준다.

어느 쪽도 양보하고 싶지 않다.

어느 쪽도 승산을 논하자면 할 말이 많다.

오직 결과만이 이 치열한 승부의 종지부를 찍을 수 있다.

〈말카림을 역시 자르네요. 강타텔……,  말카림이니 가능한 스펠 선택이었는데 만약 다른 챔피언으로 들고 나와도 GOO Tigers가 가만히 보고 있진 않을 겁니다.〉

〈맞습니다. 한 번 당한 걸 또 당해줄 만큼 만만한 팀이 아니에요.〉

하지만 해설진의 늬앙스가 GOO Tigers에게 치우쳐진 것도 사실이다.

그도 그럴게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을 뿐 알고 있다.

e스포츠판을 하루이틀 전전한 게 아니니 당연하다.

서울팀 선수들의 멘탈이 박살 났다.

세트를 거듭할수록 경기력이 안 좋아진다.

마지막 세트에서도 큰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프로 선수면 모를까 아마추어.

멘탈적인 케어를 해줄 코치진도 없다.

특히 한 명의 선수는 아예 기대치가 존재하지 않는다.

─율천고가 못하는 이유 설명해줌

'천고마비'의 계절이기 때문에

└씹ㅋㅋㅋㅋ

└뜬금없어서 웃기네

└진짜 게임을 다채롭게 못함

└대체 왜 꾸역꾸역 출전하나 모르겠다

최소한 한 번은 이름값을 증명한 다른 선수들과 달리 못했다.

주챔피언인 자드가 항상 열려있다.

상대팀이 견제를 안 해준다.

교체 출전하여 이겨서 망정이지, 졌다면 비난의 뭇매를 맞았을 것이다.

마지막 세트도 차라리 마포고가 낫겠다.

비관적인 여론이 지펴지고 있었다.

〈율천고 선수는 팀을 위한 선택. 랄라를 가져오네요.〉

〈예, 그보다는 마왕 선수의 픽이 궁금한데…….〉

-'예'

-단 한 글자

-한 마디도 아까워ㅋㅋㅋ

-강팀준, 그는 대체 어디까지 잔인해지는가

워낙 강팀, 강한 선수에게만 관심을 주는 해설자다.

김서준 해설의 마음은 시청자들도 이해한다.

그 정도로 어련히 알아서 버프만 줘라.

아예 관심이 없다시피 하다.

그보다는 마왕이 어떤 선택을 할지.

자연스럽게 화두가 넘어가 있었는데.

〈타이온? 타이온 한 번 나오나요?〉

〈리메이크 된지 시간이 꽤 흘렀고, 솔로랭크 픽률과 선수들의 평가도 서서히 오르고 있습니다. 마왕 선수라면 숙련이 됐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아요.〉

역시나 독특한 픽의 기용이 나온다.

마왕의 것이라고 자연스레 확신한다.

하지만 GOO Tigers는 만만하지 않다.

"뭐 할래?"

"저 대응돼요. 리픈 주세요. 시간 조금만 흐르면 사이드 주도권 꽉 쥘 수 있는 상성이에요."

"그래, 그렇게 가자."

변수만 생기지 않으면 무조건 이긴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결승전에 임했다.

타이온 또한 그 변수에 포함돼있다.

〈리픈-?! 리픈 픽했어요?〉

〈초-강수로 대응하네요. 또다시 흥미진진한 구도가 돼버렸고, 탑에서 승패가 결판 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한 번 졌다고 기세에서 밀릴 선수가 아니거든요 스맥은~! 보여줘야죠!〉

-적셔갑

-결자해지 하자!

-맥도날드 이 새끼ㅋㅋㅋ

-빡칠 만하지

자신만만한 리픈 후픽과 함께 현장 분위기는 달아오른다.

그렇게 마지막 세트가 시작되려던 찰나.

갑작스러운 스왑과 함께 미드 라인에 시선이 집중된다.

실 방금 꺼낸 이야기는 처음이 아니다.

며칠 전, 개인적으로 상담해왔다.

"그냥 저 빼고 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나로 인해 서브 미드가 된 율천고였다.

세간의 평가.

선수 본인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런 걸 특히 더 신경 쓰는 선수들도 있다.

딱히 드문 일도 아니다.

이런 상담은 코치의 주된 업무 중 하나다.

'심적으로 여린 선수들이 엄청 많아.'

나이가 나이인 만큼 오히려 평범하다.

커뮤니티 욕설 수위가 너무 높기도 하다.

본인이 읽으면 멘탈 안드로메다로 승천한다.

설사 읽지 않아도 어떻게든 알게 돼있다.

경기에 나가는 게 두려워지고 만다.

코치들이 대부분 달래는 주지만.

"작년 우승팀 기억 나?"

"네."

"작년 1라운드 때 잘했던 팀 기억 나?"

"……."

"그런 거야. 일희일비 하지 마. 지나가면 팬들도 그렇게 세세하게 기억 안 해."

다 욕을 먹으면서 성장하는 거다.

잘해지면 커뮤니티 여론도 변한다.

프로게이머는 실력으로 보여주는 직업이다.

'이런 교과서적인 말로 마음 잡는 선수도 있는데.'

율천고의 경우 그렇지 않았다.

이 또한 그렇게 드물지 않다.

중견급 선수들도 간혹 경기력이 크게 무너진다.

코치들이 전담 마크해서 최대한 으쌰으쌰 해준다.

하지만 그럴 가치가 좀 떨어지는 선수.

냉혹하게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너무 솔직하긴 하지만 그게 현실이야.'

학교에서도 공부 안 할 거 같은 애는 선생님이 신경 안 쓰잖아.

마찬가지로 코치들도 어려운 결정을 내린다.

멘탈도 안 좋은데 선수 생활하기 힘들겠다.

"근데 그럴수록 더 해야 돼."

"그래도 우승하는 게 급선무니까……."

"너 이대로 개스파컵 끝나면 다시 경기 뛸 용기도 안 날 걸? 날 거 같아?"

"……."

네 생각이 그렇다면 존중할게.

열심히 노력해서 다음 시즌 노려보자!

이러는 코치는 '쟤는 올해로 끝이겠구나' 속으로는 생각한다.

팬들이 기억을 안 해줘서 그렇지, 소리 소문 없이 은퇴하는 선수들 진짜 많다.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 저는 이 세상의 모든 굴레와 속박을 벗어던지고 제 행복을 찾아 떠납니다. 여러분도 행복하세요~~!!

이런 한 마디 인사를 할 기회도 없이.

'스스로 인정해서 경기 안 나가면 거기서 끝이야. 마음이 꺾여.'

노력해서 나중에 재도전.

이런 게 될 만큼 만만한 세계가 아니다.

애시당초 결승전 출전 한 번 못하면 스카웃 제의도 안 온다.

서브 선수는 우승팀으로 인정 안 해주는 거랑 마찬가지다.

어찌저찌 2부 팀에 들어간다?

마음 한 구석이 계속 막혀서 뚫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다 알고 있다.

안다고 신경 써줄 이유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간의 오지랖을 펼치는 건.

'신인 선수들이 이런 일을 경험하는 일이 보통 없지.'

단기간에 지나친 주목.

준결승, 결승이라는 부담감.

까놓고 말해서 나 때문에 억지로 올라온 거니까.

책임을 진다거나 그런 생각까진 하지 않는다.

나 먹고 살기도 팍팍한 세상에 무슨.

다만, 누구나 한 번은 기회를 가졌으면 한다.

기회를 가지지 못한 자의 고민.

기회를 가지고도 실패한 자의 고민.

후자는 고민이라고 부르기에는 사치스럽다.

"정 힘들면 경기 내적으로 상담을 해보자. 너도 잘하는 게 있을 거 아니야."

"저 잘하는 거 자드 끝인데."

"……."

정말 재능이 충만하면, 짧은 시간에도 빠른 발전을 이룰 수 있다.

안타깝게도 그런 재능이 부족하다.

시간이 워낙 촉박하기도 하고.

'근데 부족한 거랑 없는 건 또 달라.'

시간이 주어지면 느리지만 천천히 성장이 가능하다.

그게 당장이 아닐 뿐이다.

결정적으로 이런 제안을 했던 건.

수웅-!

밀려난 미니언이 적을 노린다.

타이온의 E스킬, 소위 당구 치기라 불리는 그것이다.

율천고는 내 추천으로 미드 타이온을 하고 있다.

'스킬 적중률은 에바참치지만.'

딱히 맞히지 못해도 상관없다.

라인 클리어만 할 수 있어도 족하다.

이어진 대형 도끼가 시원하게 땅을 분쇄한다.

단순하게 미드에서 버틴다.

그런 개념일 때 이보다 더 좋은 픽이 없다.

탱커임에도 라인 클리어가 워낙 뛰어나다.

'그냥저냥 묻혀가기에 미드 타이온만한 픽이 없어.'

주력픽도 아니고, 숙련도도 부족하다.

하지만 잘하지 못해도 1인분이 손쉽다.

그것만으로도 경기를 뛰는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절실한 사람은 헛바람 들 걱정이 없다.

결승 전에 미리 깔아둔 하나의 선택지다.

그 의미는 미드가 버틴다에서 끝나지 않는다.

챠라랑!

보라색 창이 리픈을 후려친다.

그런 느낌이 들 정도로 거세게 압박한다.

도망가는 걸 놓치지 않고 평타.

'좋아 죽지.'

리치 차이가 심하다.

상성 면에서 지극히 우월하다.

실력적인 면에서도 뒤진다는 생각을 안 한다.

라인 스왑에 의한 상성 격변.

심지어 이는 부수적인 이득이다.

진짜는 탑도, 바텀도 라인전이 한결 풀린다.

파앙!

파앙!

도라이븐의 도끼질에 힘이 느껴진다.

발걸음에 조금은 더 확신이 실려있다.

멘탈이 회복됐거나, 실력이 상승했다기 보다는.

'시야가 없으면 신인 선수들은 무서워. 눈 가리고 게임 하는 것 같거든.'

숙련된 선수들은 어두컴컴한 맵속에서도 잘만 본다.

직감과 몇 가지 근거를 토대로 추측하는 것이다.

그렇게 경기 하는 것 자체가 익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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