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 선수들도 어느 정도는 안다.
솔로랭크에서, 스크림에서 학습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회의 긴장감은 그 판단에 오차를 만든다.
미드가 밀리지 않자 평소 플레이에 가까워진다.
물론 그래봤자 약간이다.
그 정도로 따라잡을 수 있을 만큼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탑에 다이브각 좀 볼까요?"
"아니."
"커버만? 속도 좀 내야 하지 않나……."
정글러인 재호의 생각도 틀리지 않다.
아니, 오히려 타당하다.
미드가 탱커인 이상 부작용도 생긴다.
'노딜 조합이니까.'
근본적인 딜러 라인의 부재.
그래서 반드시 탑과 원딜이 잘해줘야 한다.
특히 원딜 의존도가 매우 높다.
그런 기대를 하기에는 좀 애매하다.
분명 해설들도 지적을 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애시당초 상정하고 있었다.
역설적으로, 이 조합에 원딜은 필요 없다.
* * *
마지막 다섯 번째 세트.
진행되는 결승전은 아직 긴장감만이 고요하게 감돈다.
〈근데 이게 첫 번째 세트에서도 말씀드렸지만, 프로팀과 프로팀의 경기처럼 무난하게 간다는 건 진다는 복선입니다.〉
〈그때는 틀렸잖아요?〉
〈첫 세트는…… 아자르가 딜을 너무 폭발적으로 잘했어요. 인정하겠습니다.〉
-그 '펠레'
-크흠;;
-아직도 선견지명 버릇 못 버렸누
-맞는 말이긴 한데ㅋㅋ
아무리 맞는 말도, 근거가 타당한 말도 결과적으로 안 맞으면 신뢰성이 떨어진다.
어쩔 수 없는 사람의 심리.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맞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동의합니다. 솔로랭크에서 타이온이 활약하는 게임을 보면 방관템으로 딜을 극대화하거나, 궁극기 이니시를 기가 막히게 열거든요.〉
현재 진행되는 경기.
미드 타이온의 픽은 채팅창 갈고리를 수없이 수집했다.
그만큼 의외의 기용이고, 어처구니없다는 팬들의 시선이 쏟아졌다.
─율천고 타이온 상상만 해도 기대되네ㅋㅋㅋ
음주운전 보여주겠지?
└음주운전 씹ㅋㅋㅋ
└드리프트 실패!
└에이, 설마 프로인데
└Fact)천고마비의 계절이다
잘한다는 기대치가 없었기 때문이다.
뜬금 조커픽을 하자 반응이 엇갈린다.
대부분은 부정적인 쪽으로 평가가 쏠렸지만.
수웅-!
콰앙!
타이온의 시원한 라인 클리어 능력이 돋보인다.
결과적으로 그럭저럭 소화하고 있다.
미드가 밀린다는 느낌이 없다.
〈이렇게 탱템을 두르니까 라인전 안정감은 생겨요. 하지만! 미드의 딜이 아쉬워지는 시기가 결국 올 거란 말이죠?〉
〈그래서 제가 조심스러운 예측을 할 수밖에 없었던 거에요.〉
김서준 해설도 동의한다.
미드가 이전 세트와 달리 안 밀린다.
CS도 거의 동수고, 시야도 비슷하게 따라간다.
문제는 그 실력 차이를 메꾸기 위한 투자.
탱커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해버렸다.
미드가 딜이 없으면 다른 라인이라도 잘 커야 하는데.
키잉-!
쓰렉귀의 선고가 날카롭게 쏘아진다.
사리고 있던 도라이븐이 드디어 걸렸다.
순식간에 킬각이 잡히는 듯 하였으나.
「생명을 내리소서!」
힐라카가 궁극기를 사용한다.
이어진 침묵 장판과 힐.
바닥까지 떨어졌던 도라이븐의 체력이 뭉텅뭉텅 차오른다.
〈힐라카 슈퍼 세이브! 궁극기랑 힐 연속으로 들어가면 죽은 사람도 살립니다.〉
-죽은 사람도ㅋㅋㅋㅋ
-힐량은 진짜 미쳤지
-엄마 고마워욧!
-작정하고 버티는 픽이네
라인전이 무너지지 않고 있는 이유.
미드 타이온에 묻혔을 뿐 이 또한 드문 선택이다.
대회에는 보통 등장하는 일이 없다.
〈사실 조합이 특이하긴 한데, 불안하진 않아요. 정글이 다이브 봐주는 동선만 짜주면 라인전에서 사고가 터질 확률은 낮습니다. 그런데!〉
김서준 해설의 말미가 끝나기 무섭게 옵저버가 탑 라인을 비춘다.
랄라의 지팡이가 쉬지 않고 흔들린다.
리픈이 불쌍할 정도로 맞고 있다.
챠락-
쿠훙!
하지만 찰나의 기회.
리픈은 순간적으로 거리를 좁혔다.
2단 대쉬를 통해 스턴을 박아 넣는다.
「변해라~♪」
이를 예상하고 있다는 듯 받아 넘긴다.
침착하게 바깥쪽 무빙을 돌며 때린다.
리픈의 3타는 궁극기로 흘려버리고.
─KGS 마왕님이 GOO 스맥님을 처치했습니다!
역킬각을 잡는데 성공한다.
단순한 킬각, 그 이상의 감흥.
관중들은 물론 해설진까지 감탄을 쏟아낸다.
〈뭔가…… 가지고 놀았죠?〉
〈랄라-리픈 구도의 바이블을 본 듯한 느낌입니다. 못 참게 만들어서 달려들게 했고, 침착하게 스킬 다 흘려 넘기면서 역킬각 잡았어요. 완벽했습니다!〉
-김서준 저건 진심이야
-김동준을 봉인하는 남자……
-그냥 상성 아님?
-해봐야 상성 드립이 안 나오지ㅋㅋㅋ
초반 라인전 구도는 편하지만, 랄라도 결코 방심할 수 없다.
6레벨 이후로는 리픈이 순간 킬각을 잡는다.
몸이 약한 랄라는 맞으면 찢어진다.
그 대처법을 보여주는 듯한 바이블.
하지만 그럼에도 아쉬운 소리가 나온다.
랄라는 결국 '태생적 한계'라는 게 존재한다.
〈테이커 선수 미드 랄라하는 걸 보면 버스 챔피언 소리 쏙 들어가거든요. 그에 부족하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SKY T1과는 전적으로 다르다고 봅니다.〉
〈SKY T1은 황금수염과 왕린이라는 든든한 보험이 있잖아요. 강팀이 이런 식으로 가면 후반 답 없겠다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데 서울팀은…….〉
-다른 쪽으로 답이 없지
-김동준 튀어나올 뻔ㅋㅋㅋ
-그놈의 강팀준!
-해강고, 율천고 키워서 어따 씀?
보조형 챔피언도 잘만 쓰면 암살자 못지 않다.
그렇다는 사실을 플레이로 증명하고 있다.
그런데 그렇게 해도 결국 랄라는 랄라다.
딜러 챔피언을 잡았을 때보다 존재감이 후달린다.
이를 보충해줄 아군 딜러진도 많이 못 미덥다.
해설진도, 시청자도 같은 감정을 느끼는 상황.
"아…… 미안. 내가 미쳤나 보다."
"괜찮아, 괜찮아! 이대로 시간 흐르기만 해도 이겨."
"확인."
GOO Tigers의 부스 안도 마찬가지다.
어지간한 선수라면 멘탈이 깨질 만도 하다.
하지만 스맥은 오히려 더 결자해지를 마음 먹는다.
어차피 랄라가 미칠 수 있는 영향력에는 한계가 있다.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팀적으로 훨씬 유리하다.
그때 자신은 제 역할만 해주면 승리.
〈랄라가 사이드 주도권은 있는데, 이게 말카림을 했을 때처럼 그냥 막 뚫어버리는! 그런 파괴력은 절대 안 나와요.〉
해설진도 같은 부분을 짚고 있다.
아쉬운 말을 하는 것도 미래가 보이기 때문이다.
그전에 이니시를 걸든, 뭐든 해서 격차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분명 옳은 예상이다.
결승을 보는 전문가 100에 99는 그리 생각한다.
한 명이 있다고 쳐도 그 사람이 사이비일 뿐이다.
「타이온 - CS 211 - 0/1/1 망자의 두건, 지휘관의 깃창, 아테나의 신발」
고요한 와중.
반전은 이미 뿌리내려 있었다.
누구나 한 번씩은 꿈꾼다.
특히 자신의 포지션이 원딜러라면.
팀원들이 전부 자신만 바라봐주길 원한다.
'이게 LOL이지.'
팀의 조합이 극단적이다.
재훈도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원딜이 중심이 되는 조합을 하면 좋겠다.
생각만 할 뿐 말을 꺼내지는 못했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캐리 지분을 따진다면 자신은 2인자에 불과하다.
1인자와의 차이가 극명하다는 사실도 인정한다.
동시에 이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원딜러라는 포지션의 특이성.
"나만 지켜 나만. 지금 600스택 넘었어. 한 번만 터트리면 대박이야."
"그렇게 많이 모였어?"
"오케이 확인."
후반 캐리에 치중돼 있다.
그리고 팀적인 케어 차이가 크다.
이렇듯 버프가 든든하면 충분히 캐리가 된다.
'도라이븐 후반이 애매하다는 이미지가 있는데.'
자신이 잡을 때는 다르다.
그러니까 해강고의 도라이븐이다.
그 사실을 수십만 팬들 앞에서 증명해낸다.
재훈은 경험해보지 못한 흥분감에 가득 차있다.
1킬만, 1킬만 어떻게든 따면 된다.
도라이븐의 패시브.
「적 챔피언을 처치하면 누적된 스택을 모두 소모하여 1스택당 2골드를 획득합니다. 또한, 50골드를 추가로 획득합니다.」
게임 시간 25분이다.
패시브 스택이 벌써 600이 넘었다.
터트리면 무려 1300골드 가량이 들어온다.
사실상의 원딜 캐리 조합.
자신만 크면 게임을 무조건 굳힌다.
맛있어 보이는 엉덩이에 눈이 돌아가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카라락!
심지어 맞혔다.
상대를 밀치며 둔화시키는 대형 도끼.
고르키에게 적중함과 동시에 몸은 이미 움직였다.
파앙!
파앙!
서커스처럼 도끼를 되받으며 스킬쿨을 리셋시킨다.
고르키는 응전하지만 이내 포기한다.
원딜간의 싸움은 선빵 필승이다.
더불어 맞딜이라면 도라이븐이 한참은 우위다.
간을 보던 고르키는 결국 점멸을 썼다.
기분 좋게 이득 보는 그림이었는데.
"야, 야! 빼! 빼! 빼!"
"다 와! 다 온다!"
팀원의 다급한 외침이 고막을 찌른다.
재훈도 그 정도 사실은 알고 있다.
어차피 점멸만 빼놔도 이득이다.
'아, 충분히 빼.'
상대의 노림수.
이 또한 머릿속 계산을 끝내 놨다.
얼음마녀의 궁극기만 수은으로 칼같이 푼다.
「얼어붙어라!」
걸리지 않은 듯 자연스럽다.
아마 시청자들은 난리가 났을 것이다.
도라이븐 장인의 킬각과 캡잭급 수은이라며 아마 격찬이.
솔로랭크였다면 그것만으로도 차고 넘쳤다.
혹은 상대가 조금만 약한 팀이었도.
GOO Tigers는 해강고의 상상으로 잴 수 있는 팀이 아니었다.
파앙!
속박-점멸이 딜레이 없이 땅을 얼린다.
이미 수은은 써버린 상황.
어느새 도착해있는 쓰렉귀가 사형을 선고한다.
〈아~~~ 이건 조냐 있어서 동귀어진도 안되죠.〉
〈…….〉
-좆강고가 또
-저걸 기어 들어가서ㅋㅋㅋ
-김서준 침묵
-역시 교수님! 학생의 심리 따위 꿰뚫어보시는군요!
언제, 어느 때, 어느 선수가 슈퍼 플레이를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용담호혈이다.
어설픈 피지컬 따위 되려 맛있는 먹잇감이다.
소강 상태가 이어지던 도중 사고가 터졌다.
〈이건 꽤 아픕니다.〉
〈날개 펼친 상황이라 백업도 힘들었거든요. 하다 못해 랄라가 잘리는 게 차라리 나았다는 생각이 드네요.〉
김서준 해설이 목소리를 내리까는 이유가 있다.
방금 전 스로잉이 빡쳐서.
그것도 있겠지만 가장 큰 건 역시 조합이다.
원딜 중심 조합에서 원딜이 죽었다.
더해서 죽은 원딜이 하필 도라이븐이다.
가지고 있던 스택이 절반 이하로 뚝-! 깎여버린다.
'좆됐다…….'
해설진, 관중, 시청자들의 생각 이상으로 선수는 절실하다.
부활을 기다리는 해강고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있다.
지금의 상황이 얼마나 치명적인지 안다.
점멸이 빠지더라도 죽는 것만은 안됐다.
그 점멸을 쓸 틈도 없이 연계 당해 죽었다.
힐라카가 아무리 힐을 퍼부어도 한계는 있는 법이다.
눈치가 보일 수밖에 없다.
자신을 믿기 때문에 선택한 조합이다.
죽기 전까지만 해도 꽤 잘해나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눈치를 보며 훔쳐본 창민의 표정.
무슨 일 있었냐는 듯 무덤덤하다.
* * *
코치가 하는 가장 많은 생각.
단 한 가지만 뽑으면 그것일 것이다.
'제발 이기자고.'
바로 기대하는 일이다.
결국 이러니저러니 해도 경기는 선수들이 펼친다.
아무리 준비를 잘해가도 변수는 항상 생긴다.
그게 계획이 무너지는 방향일 수도 있고.
반대로 뜻밖의 이변이 터질 때도 있다.
어느 쪽이든 결과가 좋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