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군이 당했습니다!
때문에 일말의 기대도 없었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는 소리다.
하지만 딱히 필요치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애초에 이 조합은 원딜이 필요 없어.'
얼핏 보기에는 원딜 중심 조합이다.
아니, 대놓고 분석해도 분명 그러하다.
한 가지, 이 시점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발상이었다.
희한한 전략, 독특한 메타.
그 특이성이 높을수록 받아 들여지기 힘들다.
실제 효율, 사기성과는 전혀 무관하게 말이다.
'지휘관의 깃창이라는 아이템이 특히 그랬지.'
아이템 효과가 붕- 떠있다.
뭔가 왜 있는지 이해가 안 간다.
게임사의 설계 미스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지휘관의 깃창」
체력 +200
기본 체력 재생 +100%
주문력 +60
마법 저항력 +20
재사용 대기시간 감소 +10%
고유 버프- 수호자: 근처 아군의 마법 저항력과 체력 재생력을 상승시킵니다.
고유 사용 효과- 승급: 사용한 미니언의 힘이 대폭 강해지며, 마법 피해에 대한 면역이 생깁니다.
옵션이라도 그럴 듯하면 써보겠지만 완전히 뒤죽박죽 섞여있다.
딜러도 애매하고, 탱커도 애매한 존재 이유를 모르겠다.
그렇게 몇 년 동안 방치되다시피 한 아이템.
갑작스레 사기성이 조명됐다.
사용 방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그냥 써두면 미니언 한 마리가 깡패로 변한다.
─적팀의 포탑을 파괴했습니다!
미드에서 사달이 난 사이.
강화된 미니언과 바텀 2차를 철거한다.
안 그래도 주도권이 밀리는 리픈에게는 치명타다.
유유히 포탑을 깨고, 상대의 백업까지 유도시킨다.
희한하다면 희한한 능력.
지휘관의 깃창은 LOL 최초의 '공성형' 아이템이다.
'내가 올리지 않아도 된다는 게 좋지.'
다른 코어템 뽑기도 급급한 마당이다.
딜로스를 자처해서 만들기는 부담된다.
일반적인 조합이라면 분명 그것이 맞다.
하지만 노딜 조합.
마치 원딜 중심처럼 보이는 조합을 구성한 이유다.
율천고의 타이온이 지휘관의 깃창을 올렸다.
"써두기만 해도 사이드 푸쉬에 도움이 되나 보네요."
"그렇지."
"은근히 미니언도 먹어주고."
"……."
이를 내 스플릿 푸쉬에 활용하고 있다.
2차 포탑을 수월하게 돌려 깎는다.
그것만으로도 의미는 있지만.
'한참은 부족해..'
결국 미니언은 미니언이다.
움직임이 정직하기 짝이 없다.
바깥쪽 타워면 모를까 파고들수록 한계가 명확하다.
상대가 대비를 하기 때문이다.
어, 미니언 강화됐으니 잡아야겠네?
확인하고 대처하는 게 딱히 어렵지 않다.
아무리 희한한 전략이라도 프로팀이 바보가 아니다.
솔로랭크라는 야생에서 그런 임기응변을 기른다.
어지간한 변수로는 프로 선수를 흔들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괜히 승리를 확신하고 짠 전략이 아니다.
지휘관의 깃창이 가진 묘미는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 * *
바론 대치.
프로 대회에서 정말 숱하게 나온다.
사이드 라인의 균형이 기운 상황 또한.
〈랄라가 독자적 작전권을 가지고 역할 수행을 하고 있지만 챔프가 챔프다 보니 한계가 있잖아요.〉
〈독자적 작전권 크하?!〉
-'군필자'
-전문 용어 나오네
-틀린 말은 아닌데 웃김ㅋㅋㅋ
-응 군필자만 웃어^^
밴픽 단계에서 이미 예견되었다.
성장 격차가 있다 해도 마찬가지다.
태생적 한계가 분명 올 거라고 봤는데.
─블루팀의 포탑이 파괴되었습니다!
벌써 바텀 억제 포탑까지 뚫려버렸다.
실력으로 그 한계를 극복해버리는 것인가?
라고 말하기에는 포탑을 부순 건 미니언이었다.
〈아니, 잠깐만요. 이건 리픈 입장에서 억울하죠?〉
〈양측 미니언이 입은 군복이 다릅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예비군 가서 디지털 군복 봤을 때 이런 느낌 들었거든요.〉
-아 2절은 좀
-아재……
-거 민방위 되셨으면 그만 합시다
-인민군이 국군 봤으니 까무러칠 만하지~
마치 그러한 느낌이다.
지휘관의 깃창.
사용한 미니언을 크게 강화시킨다.
정말 재미있는 효과지만, 반대로 말하면 재미만 있는 쓰레기다.
아무도 안 쓰는 이유가 있다.
그런데 그걸 세 명이 올리자.
─레드팀이 바론 백작을 처치했습니다!
미니언 군단이 바텀을 쑥대밭으로 만든 사이.
위에서 본대가 바론을 트라이했다.
다소의 손신을 보았지만.
「전~~지인~!!」
율천고의 타이온이 궁극기로 파고들었다.
브레이크가 고장난 폭주 기관차.
리심에게 맞고 나서야 멈춘다.
하지만 시간 문제다.
아무리 탱커라도 다구리에 장사 없다.
벌 수 있는 시간이라 해봤자 몇 초 안팎이다.
〈패시브로 부활해서 한 턴 더 시간을 끌었습니다. 이건 율천고 선수가 희생을 한 거죠.〉
-드디어 언급해주네
-길었다……
-'예'
-율천고 희생 좋았다!
패시브 부활로 리심을 끈질기게 붙들었다.
바론을 먹고 어찌저찌 철수했다.
하지만 그 이후의 손해.
─블루팀의 포탑이 파괴되었습니다!
미드 1차와 2차가 동시에 나간다.
간신히 서있던 탑 1차도 파괴되었다.
해설진들이 누차 언급한 안 좋은 흐름이다.
〈독특한 전략을 바탕으로 바론을 먹는데까진 성공했어요. 서울팀 대단합니다. 근데 바론을 먹었다! 게임을 이겼다! 이게 아니잖아요?〉
〈결국 한타를 한 번은 해야 하는데…… 불안 요소가 조금 많습니다.〉
독특한 전략을 꺼내 충분한 재미를 보았다.
하지만 그에 대한 투자값이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원딜이 부진하다는 게 크다.
-어림도 없지! '해강고'
-갑 갑 하 다
-지휘관 저거 한타 가면 무쓸모잖아
-응 원딜 차이가 캐리해~
결국 결정타를 먹이기는 힘들다.
한타 힘에서 GOO Tigers가 확실하게 앞선다.
수비 모드로 들어가면 더 뚫릴 일은 없을 거라는 분석.
뻐엉!
뻐엉-!
정면으로 부정하고 있다.
서울팀이 정면으로 밀고 들어간다.
바론 버프를 두른 대포 미니언이 성문을 두들긴다.
〈어, 어? 이게 이렇게 되나요?〉
〈그래도 결국 대포만 잡으면 어떻게든…….〉
심지어 지휘관의 깃창으로 강화됐다.
대치 상황이라 대놓고 잡는 것은 힘들다.
보다 못한 리심이 얻어 맞으면서 강타를 썼지만.
〈힐라카 힐 있어요. 어어-??〉
〈계속 두들기는데요? 대포 미니언 또 왔어요. 이거 생각보다 출혈이 심합니다.〉
강화된 미니언은 쉽게 죽지 않는다.
힐라카가 힐까지 쓰자 새것처럼 수리된다.
대포 미니언 두 마리가 성문을 뻥뻥-! 두들긴다.
─블루팀의 포탑이 파괴되었습니다!
억제탑으로 향하는 성문이 열린다.
컴퓨터가 조종하는 미니언은 멈추지 않는다.
아니, 어느새 그 수가 네 마리로 불어나버렸다.
─블루팀의 억제탑이 파괴되었습니다!
바텀에서도 미니언 웨이브가 합류했다.
한타 한 번 없이 포탑이 밀리고 있다.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괜찮다.
〈GOO Tigers는 3억제탑만 아니면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아니, 근데 이게 어디까지 가죠? 설마 더 가나요?〉
그런 GOO Tigers를 향해서 멈추지 않는다.
강화된 미니언 군단이 몰려 들어온다.
최후의 보루인 쌍둥이 포탑.
─포탑이 파괴되었습니다!
하나가 순식간에 무너진다.
해설진도 말을 잃고 쳐다본다.
하지만 이대로 말을 하지 않기에도 눈치 보인다.
〈이걸 보고 수학의 천재 피타고라스가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피타고라스가 롤을요?! 어떻게 정의했죠?〉
〈답이 없다?.〉
-0 아니면 1ㅋㅋㅋㅋ
-가끔 -1
-저걸 어떻게 막아!
-미니언 씹OPㅋㅋㅋㅋㅋㅋㅋ
클끼리 해설의 헛소리가 유난하게 와 닿는다.
우승이 걸린 마지막 한 세트.
물러날 곳이 없는 외나무다리.
그런 무대일수록 판단에 버퍼링이 생긴다.
그리고 안정감을 지향하게 된다.
GOO Tigers의 판단이 틀렸다고 보긴 힘들다.
「전~~지인~!!」
상대가 생각 이상으로 질척하게 엉겨온다.
타이온이 궁극기로 들이박는다.
그런 아비규환 속에서도.
─GOO 스맥님이 KGS 해강고님을 처치했습니다!
순간적인 포커싱이 예술이다.
적의 주요 딜러.
해강고의 도라이븐을 척살하듯 잡아낸다.
한타력이 한참은 우위를 사실을 보란 듯이 증명한다.
문제는 그 좋은 한타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미니언이 너무 세.
〈어? 어? 넥서스! 넥서스 지켜야 돼요오!!〉
〈넥서스! 넥서스! 아악! 아아악-!〉
상황이 너무 급박하면 해설진도 지적 능력을 잃어버린다.
간단한 단어, 톤 높은 탄성만 내지르는 상태가 된다.
그럴 수밖에 없을 만큼 안타까움이 튀어 나온다.
챠락-!
가볍게 스치는 듯한 평타.
하지만 실제의 묵직함이 느껴지는 상황이다.
부자배인이 묻은 랄라의 평타가 반시계 무빙과 함께 묻혀진다.
〈돌리고! 돌리고! 대장정의 막이 내려갑니다. 넥서스 일점사!〉
《GG~~~!!》
강화된 미니언의 원조와 함께 넥서스가 철거된다.
잠시간의 고요.
이후 현장 수천 팬들의 탄성이 쏟아진다.
어처구니없는 전략.
아마추어팀답지 않은 경기력.
그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일단 탄생하고 말았다.
〈이변, 대이변이 터졌습니다. 날고 기는 LCK 강팀들을 물리치고 아마추어팀이 최종 우승을 차지했어요.〉
〈사실 경기력 측면으로 보면 절대 이변이 아닌데 그래도…… 말이 좀- 안되는 거잖아요?〉
카메라는 서울팀의 부스 안을 비춘다.
반대쪽 부스와는 달리 훤하다.
코치도, 감독도 없기 때문이다.
있는 건 서브를 포함한 여섯 명의 선수 뿐.
너나 할 것 없이 부둥켜 안고 감미로운 기쁨을 맛보고 있다.
-이걸 이긴다고?ㅋㅋㅋㅋ
-초고교급팀!
-버스 달달하다
-율천고도 마지막엔 잘하지 않음?
어마어마한 논란이 예고될 수밖에 없는 건 당연지사다.
해설진도 뭔가 말은 하는데 문장이 취합이 안된다.
마지막까지 설마 설마 하는 분위기였지만 결국.
〈GOO Tigers가 분명 체급에서 앞섰거든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에요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전략에 당황하다가…….〉
〈결국 당했어요! 이겼다는 게 중요한 거 아니겠습니까~?!〉
당장 이 자리에서 어떻게 정리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우승팀이 정해졌다.
우연이 아닌 실력으로 보여줬다.
〈이번 개스파컵, 이변도 터졌고 사고도 있었지만 결국 예측 내의 결말을 맞이할 것 같다고 감히 예상을 드렸는데 제가 틀렸습니다. 틀렸는데 기분이 하나도 나쁘지 않아요.〉
〈누구도 우연이라 치부하지 못할 만큼 엄청난 실력을 보여줬습니다. 앞으로가 더더욱 기대되는 미래의 LCK 선수들이 입장하네요!〉
부산 BEXCO 오디토리움.
중앙 무대에 선수들이 올랐다.
그 중심에 있는 트로피를 높이 든다.
경기력이 부족했던 선수.
아직은 더 보여줘야 할 선수.
있겠지만 적어도 그 가능성은 충분히 증명했다.
데뷔전 첫 커리어를 우승으로서.
물론 그 안에서도 평가는 갈린다.
단 한 명을 꼽는다면 이견조차 없다.
〈소위 전투력을 측정한다고 하는데.〉
〈크하?! 전투력…….〉
〈이 선수의 전투력은 아직도 보이지 않아요. 오늘 이 결승전에서도 모든 것을 봤다는 느낌이 안 납니다.〉
-캬……
-그렇지
-마왕 지분율 90%
-포스트 테이커 아님?
마왕이 트로피를 한 번 높이 든다.
현장의 환호 소리가 최고조로 올라간다.
그럼에도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내려 놓는다.
마치 프로판에서 10년 정도 굴러먹은 듯한 낯익음.
아마추어라는 사실조차 잊게 만들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