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끼리 룸메 하면 싸울 일만 생긴다.
이런 썰들이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팀이라고 무조건 사이가 좋은 게 아니다.
여러가지 이유로 불화가 터진다.
설사 팀의 성적이 좋다고 해도.
─마왕은 지가 제일 탈출해야 하는 거 아님?
다음 시즌에도 혼자 똥꼬쇼 하는 건 끔찍한데ㅋㅋㅋ
└좌강고 우천고
글쓴이-시발련ㄴ아!
└갈수록 힘들듯ㅋㅋㅋ
└빨리 강팀 가서 행복롤 해야지
커뮤니티에서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글이다.
그 대상은 비단 나 뿐만이 아니다.
이른바 고통 받는 포지션.
팬들이 오히려 팀을 옮기라고 성화다.
이러한 생각을 선수들도 실제로 한다.
자신의 가치와 미래를 진지하게 고려한다면.
'이직 같은 건 직장인들도 많이 생각하잖아.'
하물며 프로게이머다.
선수 생명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
잘 나가는 선수도, 못 나가는 선수도 고민하는 문제다.
자신을 보다 인정해주는 팀.
자신이 보다 활약할 수 있는 팀.
조건이 좋은 쪽으로 혹하는 게 사람 마음이다.
'그래서 계약 기간이 남은 선수와 협상을 못하게 하는 템퍼링 금지 정책이 있는 건데, 아마추어들은 해당이 안되지.'
다 알고 있었다.
개개인별로 오퍼가 들어올 거라는 걸.
사실 나에게 있어서도 형편 좋은 이야기다.
보다 좋은 팀으로 옮기는 건 문제가 안된다.
애초에 그건 마음만 먹으면 가능하다.
진짜 문제는 다름 아닌 여론.
「[취재] 2014년 지배한 삼선 레드-블루, 10명 모두 떠났다.」
「사실상 공중분해…… LOL 강호 삼선 갤럭시, 껍데기만 남았다」
「[LOL] `세체원` 임프트 구승민, 삼선과 결별. "우울해서 술 마셨다"」
바로 얼마 전 팀 하나가 공중분해 되었다.
롤판에서 익히 유명한 삼선 왕조 해체 사건이다.
엑소더스까지 겹치며 선수 유출이 수면 위로 부상했다.
한두 명도 아니고 무려 수십 명의 선수.
우리나라 팬들로서는 민감하게 반응할 문제다.
해외로 이적한 선수를 역적 취급하는 일까지 생겼다.
'관심이라는 게 양날의 검이야.'
그 칼날이 자신을 향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유명한 선수가 갑자기 해외팀으로 이적한다?
팬들이 돌연 안티로 등을 돌릴 수 있다.
저 구승민 선수가 술을 마신 이유일 것이다.
동정심을 자극하는 언플.
조금만 해주면 여론이 확실하게 누그러진다.
'정치인, 대기업 총수 이런 사람들이 괜히 사건만 터지면 휠체어 타고 마스크 쓰고 나타나는 게 아니라니까?'
분명히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그 정도까지 하는 건 에바참치다.
하지만 하지 않는 것도 멍청하고 미련하다.
─개스파컵 우승한 Keg 서울 근황.Real
진짜 원맨팀됨
└마왕 혼자 남았누ㅋㅋㅋㅋㅋ
└탑 마왕! 미드 마왕! 정글 마왕! 원딜 마왕! 서폿 마왕!
└든 든 하 다
└와씹 철새처럼 다 빠져나갔네
가만히 있자 알아서 여론이 조성된다.
팀 선택에 눈치를 볼 이유가 사라졌다.
다른 팀원들은 이미 대부분 이적을 마쳤다.
〈근데 진짜로…… 재훈이가 아무 말도 없이 계약했을 줄은 몰랐어요.〉
"지도 나름대로 생각이 있겠지. 지 인생인데."
그 분기점은 해강고원딜킹의 이적이 되었다.
어느 정도 눈치는 채고 있었던 부분이다.
무슨 감독한테 들었다고 말도 꺼냈고.
이후로 개인적인 상담이 있었다.
프로팀에 들어가면 어디가 좋을까요?
선택지 중에서 괜찮은 곳으로 추천해줬다.
'아무데나 가면 절대로 안돼.'
그냥 돈 많이 주는 곳 가면 되겠지.
적당히 생각하다가는 피눈물 흘린다.
1년 하고 프로 때려 칠 게 아니라면 말이다.
신인은 경험치 쌓기 좋은 팀이 추천된다.
갑자기 대형팀 SKY T1!
들어가 봤자, 1년 내내 한 경기도 못 나올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다들 무난한 선택을 했다.
최소한 나쁜 선택을 한 녀석은 없다.
내가 판단한 거니 아마 확실하다.
'내가 판단하지 않은 KTX는 모르겠지만.'
* * *
새로운 시작.
사람을 들뜨게 만드는 울림이다.
그것이 꿈에도 그리던 프로 생활이라면 더더욱일 것이다.
'와아……, 내가 이런 유명팀에 입단하게 되다니!'
재훈은 숙소 내부를 둘러보며 감탄을 삼켰다.
스타크래프트 시절부터 유명하던 프로팀이다.
롤판에서도 지난 섬머 시즌에 우승을 차지했다.
KTX 롤러코스터.
결승전을 망치고 입단 제의가 끊어질 줄 알았다.
하지만 감독님께서는 괜찮다며 허심탄회하게 말씀하셨다.
《나는 당장이 아니라, 너의 가능성을 봤으니 걱정 마라!》
물론 조건은 있었다.
시즌 시작이 얼마 안 남았으니 바로 연습을 해야 한다.
그러려면 계약을 서두르는 수밖에 없다.
기존 팀원들과 상담하기에는 눈치 보이는 일.
결승전이 끝난지 채 이틀도 안됐었기 때문이다.
쇠뿔은 단김에 빼야 한다고 재훈은 마음을 먹었다.
"감독님은 어디 계시죠?"
"감독님은 자네의 계약 문제로 사무국에 가셨네."
"아, 네……."
그래서 당일에 바로 계약을 했다.
그리고 다음날인 지금 숙소에 도착했다.
어째선지 이야기를 나눴던 감독님은 보이지 않는다.
재훈이 이적을 결심한 이유의 절반이었다.
감독님의 인상도, 말씀도 워낙 와 닿았다.
그런데 첫날에 감독님이 안 계시다니.
다소 불안하긴 하지만 다른 분들이 계신다.
나이에서 미루어 보아 선수는 아닌 것 같다.
세 남자는 자신들의 정체를 속 시원히 밝혔다.
"우리는 2년간 자네를 가르칠 간손미 브라더스라고 하네."
"그렇군요. 잘 부탁드립니다!"
간손미 브라더스.
KTX 롤러코스터의 코치진이다.
각각 간씨, 손씨, 미씨 성을 가졌기에 그리 불리고 있다.
선수의 성장에 있어 코치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영입은 감독이 결정해도, 키우는 건 결국 코치이기 때문이다.
팀에 따라 다르기도 하지만 구단의 지원이 상당한 KTX는 분업이 돼있다.
"그럼 코치님들께 바로 가르침을 구해도 될까요?"
"그래, 뭔가?"
"제 경기를 보셨을 것 같은데 어떤 점을 개선해야 성장할 수 있을까요?"
전문 코치가 무려 세 명이나 있다!
재훈이 KTX라는 팀을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대기업팀답게 좋은 지도를 해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그건 자네가 알아서 할 일이지."
"네?"
"자네가 실수한다면 그때 가서 지적해주겠네."
"네……."
첫 술에 너무 배부르길 바란 걸까?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지만 어쩔 수 없다.
이미 계약도 했고, 코치님들이 어련히 알아서 해주시겠지.
'창민형은 물어보면 이것저것 이해하기 쉽게 잘 가르쳐줬는데…….'
재훈은 믿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결승전이 끝난지 어언 열흘.
팀원들의 근황이 하나둘 전해져온다.
예상대로 대부분 앓는 소리를 하고 있지만.
'원래 다 그래.'
세상에 안 어려운 일이 어디 있겠어.
프로게이머가 절대로 날로 먹는 직업이 아니다.
최상위권 선수만 보여서 그렇지, 그 아래서 고생하는 선수가 훨~~씬 더 많다.
하물며 게임만 잘하면 되는 직업도 아니다.
단체 생활이라는 게 여러가지 고충이 많다.
아무튼 뭐 이제는 남남이긴 한데.
'이제 팀 아니잖아.'
그렇긴 하지만 이야기 정도는 들어줄 수 있다.
그래도 노력한다고, 잘 지낸다고 하더라.
해강고에게도 연락이 왔다.
KTX 롤러코스터.
롤판의 명문팀 중 하나다.
개인적으로 그리 추천하는 팀은 아니다.
'간손미 브라더스…… 그분들은 코치라기 보다는 그냥 노후대책 하시는 분들 아닌가?'
어디 가서 말하면 큰일 날 소리다.
속으로 하는 말이니까 하는 거지.
다들 쉬쉬하지만 그런 분들이 좀 계신다.
스타크래프트 시절부터 해먹으신 분들.
이제 와서 자르기는 구단과 친해진 분들.
롤판으로 넘어가서도 그냥저냥 쓰는 거다.
왜냐면 팀 입장에서도 그게 편하니까.
큰 구단은 코치 월급 정도는 충분히 챙겨준다.
그리고 그런 분들도 나름대로 쓸 구석이 있다.
'인맥이 좋아서 스크림 같은 건 기가 막히게 잡거든.'
프로팀들은 스케줄 짜는 것도 전쟁이다.
특히 바쁜 시즌 중에는 사실상 영업전이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친한 팀과 우선적으로 잡게 된다.
더군다나 게임을 아예 모르는 것도 아니다.
그럭저럭 밥값은 해나간다는 소리다.
문제는 밥그릇을 너무 지킨다는 거지.
'KTX도 유능한 코치가 꽤 있었는데 다 잘렸어.'
원래 세상이 다 그러하다.
어떤 업계든 사내 정치로 살아남는 부류가 있다.
e스포츠판이라고 특별히 더 하거나 덜하진 않는다.
문제는 KTX는 그런 인간들끼리 모여있다는 점이지.
간손미 브라더스는 업계에서 유명하다.
현재 시점에서는 그렇지 않겠지만.
"그래도 거기 베테랑 선수들이 많아서 조언 잘 해줄 거야. 힘내."
〈근데 형은 어떻게 그리 잘 알아요?〉
"몰라, 미래에서 보고 왔나 보지."
재훈과의 통화를 끊는다.
애도 아니고 하나하나 다 챙겨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본인 미래는 본인이 만들어나갈 일이다.
기회 정도는 공평하게 가졌으면 할 뿐.
e스포츠판이 알면 알수록 참 골 때린다.
그래서 내가 여론에 특히 민감한 것이기도 하다.
아무리 본인 능력이 뛰어나도 살리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이다.
그것은 단순하게 보면 팀운일 수 있다.
깊게 파고들면 필연이기도 하다.
'LOL이 게임도 팀 게임이지만, 프로팀 운영도 팀 게임 그 자체야.'
손발이 안 맞으면 될 팀도 안된다.
선수 시절 알지 못했던 비하인드 스토리.
코치가 된 이후로 알게 된 것이 적지 않게 많다.
〈형.〉
"어."
〈여기 감독님이 너무 무서워요. 맞으면 어떡하죠.〉
"……."
율천고에게도 연락이 왔다.
짐에어 그릴윙스.
내가 한 때 몸 담았던 팀에 소속됐다.
'확실히 권상용 감독님이 남다르긴 하지.'
한국 킥복싱 페더급 랭킹 1위.
그냥 대놓고 롤이랑 아무런 연관이 없다.
하지만 편을 드는 게 아니라 정말로 좋은 감독이다.
KTX처럼 전부 그럴 때 문제가 되는 것 뿐이지.
한 명 정도는 그런 분이 계셔야 편하다.
맞고 스크림 할래, 그냥 스크림 할래…….
'원래 비대칭 전력이라는 게 우리팀일 때는 든든해.'
물론 그럴 일까지는 없겠지만 말이다.
아마도 Maybe, Probably.
그리고 선수들을 때리는 일은 단언컨대 없다.
"내가 어디서 들은 건데, 절대 안 때린다니까 걱정 마."
〈그렇겠죠?〉
"운동한 사람이 일반인 함부로 때리면 진짜로 죽거든."
〈………….〉
굳이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스스로 느낄 것이다.
육감을 기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팀이다.
그런 농담이 아니더라도 상당히 괜찮다.
감독님 성향이 오픈돼 있어 출전을 잘 시켜준다.
신인이 경험치 쌓기에는 이 이상이 없다.
내가 괜히 추천해준 것이 아니다.
'잘 됐으면 좋겠어.'
본래의 미래.
울천고는 실패한 선수였다.
솔직히 실패할 만한 선수이기도 했다.
실력이 없는데 뭐 어떡해?
그냥 순수하게 게임을 잘 못했다.
딱히 다른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갈 때 가더라도 기회 한 번 정도는 괜찮잖아.'
하지만 조금 더 일찍 데뷔했다.
그리고 좋은 경험도 쌓게 되었다.
결승전 경험치는 진짜로 존재하는 개념이다.
프로팀들도 실제로 비중 있게 평가한다.
조금은 성장한 게 있을 것이다.
결국 본인 하기 나름이겠지만.
〈형은 해외팀 간다면서요?〉
"어."
〈아…… 나도 해외로 갈 걸 그랬나. 저도 사실 오퍼 온 거 있거든요. 같은 팀이면 진짜 좋았을 텐데.〉
"지랄 마."
상상만 해도 끔찍하니까.
방금 소름 돋았어.
'아 지랄 노 진짜.'
나는 개고생을 해서 돈 벌 생각이 절대로 없다.
가능한 편한 길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다만 험한 길도 보상이 충분하다면 고려할 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