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7화 (97/201)

"최소한 국내에서 2년은 뛰어보고 그 다음 고려해."

〈2년이나요?〉

"그때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지나 걱정해라."

해외 리그라고 만만히 보면 큰 코 다친다.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낙원이 있을 리가 없다.

한국 일류 선수들 중 해외 가서 실패한 케이스가 성공한 케이스의 3~4배는 된다.

'실력 뿐만 아니라 갖춰야 할 게 좀 많아.'

아무것도 모르는 생초짜는 오죽할까?

웬만한 각오로 선택할 일이 아니다.

돈 조금 더 준다고 혹하는 순간 인생도 훅 갈 수가 있다.

하물며 아직 해외 시장이 활성화되지 않은 시기다.

내가 팀원들의 해외 진출을 일축한 가장 큰 이유다.

2014년의 엑소더스는 수많은 부작용을 낳게 된다.

'대부분의 선수가 사기를 당했지.'

흔히 알려져 있지 않은 이야기다.

하지만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알 수가 있다.

원래는 알려지면 안되는 이야기임에도 말이다.

대부분의 계약이 기밀 유지를 반드시 넣는다.

그럼에도 입이 많아 막지 못하고 새나간다.

나 같은 경우 직접 들은 것도 적지가 않다.

'전쟁이야, 전쟁. 모르고 가면 잡아먹혀.'

당하지 않은 선수들도 운이 좋았던 케이스다.

그 정도로 초기의 엑소더스는 막장이었다.

그 막장의 한복판에 과감히 내디디려 한다.

「대한항공 중국 노선- 12:05 출발」

출국까지 2시간이 남았다.

* * *

충격적인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대체로 수긍하는 분위기다.

Keg 서울의 공중분해.

아니, 애초에 없던 팀이기도 하다.

팀명 자체가 빌려 쓴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우승팀이다.

든든한 후원을 받아 정식 프로팀이 되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그러한 팬들의 기대가 물거품이 되었다.

─좆강고가 쏘아 올린 작은 공

1. Keg 서울 해체

2. 팀원들 뿔뿔이 흩어짐

3. 환멸 느끼고 마왕 해외 감

└3번은 아직 아님?

글쓴이-어떤 관계자가 국내 관심 없다던데?

└딱히 갈 팀도 없긴 함

└이미 상위권팀들은 전력이 갖춰진 상태라……

불과 두 달 전, 롤드컵 우승팀이 해체된 마당이다.

연이은 우승팀의 해체는 화제가 될 수밖에 없다.

커뮤니티를 반쯤 폭파시키는데 이른다.

가장 지탄을 받는 이는 해강고원딜킹.

사실상 팀 해체의 방아쇠를 당긴 원흉이다.

팬들의 입장에서는 가장 지분율이 크게 보인다.

확실한 진상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제멋대로 추측하며 민심이 기울고 있다.

그에 준할 정도로 마왕에 대한 이야기도 많다.

「'마왕' 최창민 국내팀 오퍼 無응답…… 해외 이적 확률 높아」

「익명의 관계자曰 최창민 선수 국내 리그 생각 없어 보여」

「[토론] 만약 '마왕' 최창민이 LCK팀에 간다면 어디에?」

그도 그럴게 가장 관심이 집중됐다.

이번 개스파컵이 낳은 스타이기도 하다.

시기가 조금만 잘못되어도 뭇매를 맞았을지 모른다.

─솔직히 내가 마왕이라도 국내팀은 안 감ㅋㅋ

이전 팀원들 다 다른 팀에 흩어져 있는데

상대로 만날 때마다 개빡칠 거 아니야~

└어쩌다 지기라도 하면……

└거북하긴 할 거야

└마왕은 손가락이 10개인데?

글쓴이-좆까

이성적으로 따지면 선수 재량이다.

그것이 맞지만 국민 여론이라는 게 분명히 있다.

긁어 부스럼 만들면 팬들의 눈총을 피하기 힘들다.

그런데 상황이 묘하게 흘러간다.

다른 선수들이 먼저 이적을 밝혔다.

마지막까지 의리를 지켰다는 점에서 한 표.

이제 와서 옮겨도 거북할 거라는 점에서 두 표.

이미 다른 탱커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세 표.

물론 비판적인 시각도 있기는 하다.

「[기자석] '마왕' 최창민까지? 한국 선수의 엑소더스 막을 길 없나」

[Best Comment]- 이런 건 협회에서 돈 받고 쓰는 기사인가?

[Best Comment]- 기자도 평점 먹여서 못하면 짤려야 하는데

[Best Comment]- 딴 선수는 몰라도 마왕은 냅둬라 진짜ㅋㅋㅋㅋ

기사라는 것이 중립적인 관점에서만 쓰여지지 않는다.

여론을 흔드는 편파적인 성향의 기사도 나온다.

하지만 댓글들이 현재의 민심을 나타낸다.

팬들도 바보가 아니다.

상황이 어지간해야 흔들리지.

안 그래도 동정을 받을 만한 상황이고, 현실적으로 갈 팀도 없다.

─마왕은 국내팀에 가봤자 낙동강 오리알이지

갈 거면 해강고처럼 진작에 손들었어야 함

└딱히 상체 보강이 시급한 팀이 없으니까

└ㅇㅇ 연봉 후려칠 듯

└저요옷!

└해강고가 ㅈㄴ 영악함. 순진한 놈이 손해 보는 세상이지ㅋㅋㅋ

뿌리내린 여론은 쉽게 흔들려주지 않는다.

오히려 적지 않은 팬들이 응원하고 있을 정도다.

그런 호의적인 여론에 불구, 아직도 근황이 올라오지 않는다.

* * *

2015년.

LOL의 가장 큰 분기점으로 손 꼽힌다.

게임의 기본적인 전략과 틀이 정립된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는 e스포츠적으로도 마찬가지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전세계 리그의 운영 방식이 달랐다.

한국만 해도 윈터 시즌이 존재했고, 플레이오프 같은 게 없었다.

보다 체계적인 운영을 위해 규격이 하나로 통일됐다.

정규 시즌과 포스트 시즌이라는 익숙한 방식이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e스포츠라는 시장 자체도 급성장을 이룬다.

안 그래도 급격한 성장세가 주목 받고 있었다.

투자자들이 판단하는 미래 가치가 대단히 매력적이다.

향후에 가지는 e스포츠의 위상이 이때 확립되었다고 봐도 무리가 아니다.

특히 중국에서 엄청난 자본이 일시에 투입됐다.

엑소더스 현상이 일어난 근본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이 비단 좋은 쪽의 변화만 부르는 건 아니었다.

"지원이 더 힘들 수 있다고요?"

희생, 혹은 도태가 되는 팀들도 생길 수밖에 없다.

리그의 제도가 확연히 바뀐 영향이다.

류샤오는 기존 스폰서의 요구에 적잖이 당황했다.

"자네도 알고 있겠지만 연고지 제도가 확정되었네."

"그러니까 저희에게 지원을 더 해주시면……."

중국 광저우.

류샤오는 영세 프로팀의 코치다.

갑작스러운 변화는 극단적인 이지선다를 요구했다.

리그의 규모가 커지며 운영비가 급상승한 결과다.

소규모 클럽팀은 팀을 유지하는 것조차 버겁다.

대신 스폰서의 규모도 엄청나게 커졌는데.

"익지도 않은 열매를 따먹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승강전이 끝나면 우리도 긍정적으로 고려해보겠네."

"……."

1부 리그인 LPL팀에 한해서다.

그 관문이 비할 수 없게 좁아졌다.

수많은 팀들이 강제적인 경쟁 상태에 놓인다.

류샤오의 팀도 예외가 아니었다.

승격한다면 막대한 스폰서를 얻을 수 있다.

반대로 떨어지는 순간 팀이 해체될 위기에 놓였다.

'용병이 필요해. 그것도 강력한.'

현재 중국의 시장에선 천문학적인 금액이 움직이고 있었다.

해외에 진출하는 한국 선수들이 가장 많이 실수하는 부분.

그것은 다름 아닌 계약에 관련된 것이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긴 한데.'

조금만 생각해봐도 자연스럽다.

사기 같은 극단적인 사안과 연결되려면 다른 선택지가 별로 없으니까.

있다고 해도 계약이 가장 크다.

당하기 쉬운 여건이기도 했다.

선수들 나이가 기본적으로 어리다.

해외팀과의 계약도 해봤을 리가 만무하다.

'멍청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

아니, 노예 계약하고 싶어서 안달난 것도 아니고 철저하게 확인해야 하는 거 아니냐?

그런데 막상 그런 상황에 처하면 안된다는 소리다.

유명한 팀이고 큰 기업이나 알아서 잘해주겠지.

그렇게 생각하는 게 의외로 보통이다.

별 생각 없이 이야기만 듣고 사인을 한다.

독소 조항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하고.

'열에 아홉은 그래.'

지금 국내 포털 사이트에 XX 선수 OO과 계약 체결! 이런 식으로 기사 뜬 선수들은 나는 곧 사기 당할 예정이라고 대문짝만하게 홍보한 거나 다름없다.

과장 약간 포함하면 정말로 틀린 말이 아니다.

정도의 차이일 뿐 작게든 크게든 대부분 당하고 온다.

안타까운 현실이긴 하다.

계약이 끝난 선수들의 입을 통해 나중에나 밝혀진다.

팀을 지인의 소개로 받다 보니 심적으로 허술해지는 감도 있다.

계약을 서면, 심하면 통화나 이메일로 끝낸 탓도 크다.

비행기 타고 중국에 오고 나서야 후회를 한다.

'그래서 차후에는 무조건 법무인과 통역사를 끼고 하지.'

물론 나에게는 상관없는 부분이다.

계약은 찾아가서 따져보고 할 예정이다.

딱히 그래서 어색한 대치를 이루고 있는 것은 아니다.

"최창민 선수 맞으시죠?"

수하물 위탁을 끝내고, 적당히 앉아 쉬고 있었다.

출국 시간까지 워낙 여유롭게 시간이 남았다.

그런데 낯선 여자가 갑자기 말을 걸어온다.

"Hello? Nice to meet you?"

"중국말로 해주세요."

"……."

1년 반 정도 중국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중·고등학교 때 배우기도 해서 쉽게 익혔다.

중국어로 대답하자 무안한 듯 입을 다물었지만.

"저는 Team CC의 류샤오입니다. 당신을 영입하고 싶습니다. 진지한 이야기이니 시간을 내어주실 수 있을까요?"

생각보다 굳센 성격인 듯 바로 말을 이어온다.

억양에서 추측하건데 북방계 사람은 아니다.

내가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남방이 페이도 좋고, 생활 여건도 좋아서.'

중국이란 나라가 굉장히 넓다.

지역 또한 신중하게 고려할 부분이다.

하지만 일단 첫 번째 조건은 통과했다.

어차피 시간도 남아돌던 차.

한 번 이야기를 들어주기로 했다.

공항 내 있는 카페로 장소를 옮겼다.

* * *

중국 광저우.

대충 홍콩 근처에 있는 도시다.

류샤오씨가 속한 Team CC는 그곳에 위치해있다.

선수들도 대부분 광저우 출신.

지역 내에서 두터운 팬층을 가졌다.

그런데 최근 LPL이 지역 연고제를 실시하며 입장이 모호하게 됐다.

"그리고 여기서 만난 건 우연이고?"

"네."

"그런 걸로 해두죠."

"진짠데……."

인천국제공항.

일일 이용객만 20만 명에 달한다.

전세계에서 손가락에 꼽히는 국제 만남의 장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엄청난 우연이 있을 수도 있는 노릇이다.

하지만 그런 걸 일일이 믿을 만큼 바보도 아니다.

그래도 말하는 사정이 구체적이고, 있을 만도 한 일이었다.

'뭐니 뭐니 해도 머니인데 돈에 밀리는 팀이 생기지.'

지역 연고지는 LPL에 있는 특수한 제도다.

한국으로 따지면 서울팀, 부산팀 나눠져 있다.

국내 야구로 생각한다면 그렇게 드문 이야기도 아니다.

중국 리그, LPL에서는 그걸 e스포츠로 하고 있을 뿐이다.

직접 경험해보면 재미있는 요소다.

단순한 팀전도 구장을 옮겨 가며 치르다 보니 홈스테이지라는 개념이 존재한다.

"원래 저희가 가장 유력했는데 갑자기 경쟁팀들이 우후죽순 생겨버려서……"

"이기면 되잖아요?"

"JCG 게임즈라는 대기업팀이 한국 용병을 영입했다는 정보가 있습니다. 저희도 이대로 있을 수 없다는 생각에 매니저인 제가 출장을 오게 되었어요."

다만, e스포츠는 아직 초기 단계.

각 지역을 대표하는 팀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예를 들면 충청권 팬들이 어느 팀을 위해 "나는 행복합니다"를 부르짖을지 결정이 안 났다.

'아무튼 사정은 알겠네.'

e스포츠에서 드문 여성 관계자인 이유 또한.

한국에는 많지 않지만 중국에는 꽤 간간히 있다.

인건비도 싸고, 팀 규모도 커서 매니저를 각 팀마다 둔다.

현재 시점에서는 아예 파견자가 없는 팀도 수두룩하다.

그런 만큼 매니저급이 오는 것도 이상할 건 없다.

페이만 맞는다면 제안은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안 그래도 광저우는 꽤 좋아하거든'

흔히 중국인이라고 색안경 끼고 보기 쉽다.

당연하게도 중국은 넓고, 지역 별로 다 다르다.

홍콩과 가까운 광저우는 문화적으로 많이 개방돼있다.

그냥 까놓고 말하면 탈짱깨스럽다.

중국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이기도 하다.

남방 지역임에도 음식이 맛있다는 점도 가산된다.

해외 생활에서는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부분이다.

100m 달리기가 아닌 마라톤.

사정에 알맞게도 마침 광저우에서 오셨다고 한다.

"근데 저희가 아직 클럽팀이라서요."

"네?"

"정식 후원은 승격 이후에 기대할 수 있어서 당장은…… 많은 페이가 약속이 안돼요."

"잘 못 들었습니다?"

물론 지역이 부자라고 본인도 부자라는 법은 없다.

클럽팀은 특정 기업에 소속되지 않은 프로팀이다.

유명한 팀 중에는 북미의 명문 TSL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팀들이 괜히 소속되는 게 아니다.

보장 받을 수 있는 후원금의 단위가 달라진다.

아직은 아니고, 승격을 해야 보상이 가능하다.

"어떻게 안될까요? 팀의 존폐가 걸려있어요. 창민씨의 도움이 절실해요."

진지한 표정으로 감정에 호소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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