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도 제법 반반해서 언럭키 성소다.
일반적인 20대 전후의 남자라면 동정심이 일었을지도 모른다.
'어림도 없지.'
나한테는 당연히 해당 사항 없다.
"매력적인 제안 감사하지만 저와는 인연이 없는 것 같습니다."
"잠깐만요!"
"애석하게도 제가 곧 출국이라."
"한 번만 더 생각해주시면 안될까요? 최창민 선수의 경기 정말 인상 깊게 보았습니다. 이런 우연이 아니더라도 꼭 찾아뵙고 싶었어요."
일단 던져보는 말은 아닌 듯싶다.
나에 대해 생각보다 잘 알고 있다.
매니저라길래 별 기대 않고 있었는데.
'근데 그건 그거고.'
돈 벌려고 중국 가지.
고생하려고 중국 가는 건 아니잖아.
그래도 마음 한 켠에 짠한 감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e스포츠판에서 약소팀의 취급.
알고 있는 입장이기에 더더욱이다.
이야기가 정말 사실이고, 계약도 제대로 한다면 메리트는 분명히 있다.
"제 솔직한 심정을 말씀드릴게요. 저는 도와드리고 싶어요."
"그럼……!"
"아 좀 쳐들어보시라고요."
"……."
"중국어가 미숙해서 말이 좀 헛나왔습니다."
"네……, 이해해요."
딱히 전혀 미숙하진 않지만.
혹시 몰라서 휴식 기간 동안 연습도 하고 왔다.
'어디 어린노무 쉬키가 어른 말씀하시는데 끊고 있어.'
한국의 장유유서 맛을 못 봤나 보다.
동방예의지국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아무튼 상당히 진지하게 고려해봤다.
이야기를 들은 대로 Team CC의 지역 팬층이 두텁다.
승격만 하면 대기업 후원이 약속된다.
그 두 가지 전제 하에 매력적인 제안이 아닐 수 없다.
만약 위기에 빠진 팀을 부흥시킨다?
타지에서 든든한 지지 기반을 확보하는 셈이다.
한 번 파급력을 낳으면 다른 계약에도 어드밴티지로 붙는다.
"그런데 생각을 해보셔야 돼요."
"어떤 걸요?"
"그게 정말로 팬들이 원하는 것인지."
"아……."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할 만큼 벽창호는 아닌 모양이다.
실제 중국에서도 상당히 민감한 문제다.
'외국 용병을 팬들이 달갑게만 보는 게 아니야.'
특히 역사가 있는 팀.
한 지역에 뿌리내려있는 팀.
그냥 딱 봐도 폐쇄적인 성향이다.
물론 광저우는 열린 지역이지만, 내가 만약에 가면 그냥은 안 끝낸다.
혼자 깽판을 쳐놓을 것이다.
외국인 용병에게 의지하는 게 과연 팬들이 원하는 방향일까?
"사실…… 저희 선수들의 실력을 믿지만, 최근 엑소더스로 시끄럽다 보니 불안했던 것 같아요."
"그럴 만해요. 근데 제가 알기로 광저우 쪽에 딱히 인지도 있는 한국 선수는 없어요."
"그래요?"
수많은 선수들이 엑소더스 했다고 해도, 인지도 있는 선수는 셀 수 있는 수준이다.
정보를 알아보는 건 나에게 어렵지 않다.
사전에 조사를 끝마쳐 놓았다.
'원래 개꿀 지역을 사람들이 잘 몰라.'
한국에서 유명한 상하이나 베이징으로 많이 빠졌다.
그 아래 지역은 소외돼있다.
몇몇 있기는 하겠지만 네임벨류에서 한참은 밀린다.
정말 실력에 자신 있다면 자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
한국 선수를 영입하는 게 결코 만능이 아니다.
안타깝다는 마음이 들어 조금 알려주기로 했다.
"한국 선수 입장에서는 중국이 생소하잖아요?"
"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생활에 적응할 시간도 필요하고, 게임에서 소통이 차지하는 비중도 상당히 커서……."
한두 마디 회화나 핑으로 대신할 수 있다고 착각하기 쉽다.
실제 관계자들도 처음에는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역사가 증명한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어설프게 한국 선수 끼는 것보다 그냥 현지 선수들끼리 하는 게 나아.'
영입할 거라면 최소 반년은 바라보는 장기 플랜이다.
당장 열릴 승강전을 위해 한국 선수를 영입한다?
오히려 자충수가 될 가능성이 몇 배는 크다.
스폰서 입장에서도 불편할 수 있다.
기존의 지역팀 색깔이 옅어질 테니까.
후원금이 적어질 수 있다는 단점도 인지해야 한다.
"그런 측면들은 생각도 못했어요. 그런 걸 어떻게 그렇게 잘 아세요?"
"어쩌라고."
"……네?"
"중국말을 잘 못합니다."
"……네."
아무튼 류샤오씨도 납득하셨다.
돈이나 동정, 그런 걸 다 떠나서 현실적인 조언이다.
문제가 생겼다고 반드시 해결하려 드는 것보단 관점을 바꾸는 게 때로는 정답이다.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일이야.'
본인을 매니저라고 소개했지만, 책임감과 팀에 대한 애정은 그 정도가 아닌 것 같다.
자세한 사정은 귀찮아서 듣기 싫고.
슬슬 비행기 시간도 되었기에 작별 인사를 나눴다.
"덕분에 눈이 떠진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뭘요.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해요."
"아니에요. 팬들도 저희가 극복하길 원할 거에요. 혹시 광저우 오시면 꼭 한 번 연락 주세요!"
어떤 분야든 후배는 귀엽게 느껴진다.
넓게 보면 정말로 업계 후배인 셈이다.
중국에서 매니저는 세미 코치도 겸한다.
실적이 좋으면 정식 코치로 승진하는 거지.
LPL로의 승격은 차고 넘치는 실적이다.
쉽지 않은 길이지만 극복한다면 분명.
'굳세게 살렴.'
내가 괜히 친절하게 대해준 게 아니다.
* * *
광저우의 겨울은 눈이 내리지 않는다.
하지만 높은 습도 탓에 체감 온도가 싸늘하다.
그런 환절기 속에서도 류샤오의 마음은 가벼워졌다.
'정말이네.'
금일 낮 발표된 광저우 LDL의 로스터.
살펴보던 류샤오는 감탄을 삼킨다.
사흘 전 들었던 이야기 그대로다.
한국 선수를 기용한 팀은 많다.
하지만 위협적인 선수는 보이지 않는다.
냉정하게 보면 충분히 승산을 찾을 만하다.
'의사소통의 문제도 있을 테고.'
이제 와서 의심한다는 생각은 없다.
오히려 전적으로 믿고 싶은 마음이다.
자신들의 승격이 유력하다는 소리니까.
마지막 한 팀.
가장 신경 쓰이는 팀이 남아있다.
이전에는 그렇지 않았지만 그 성장세가 무시할 수 없어졌다.
「JCG Games」
본래는 광저우와는 전혀 상관이 없던 팀이다.
연고지 제도를 계기로 갑작스레 끼어들었다.
곧 치러질 광저우 LDL의 라이벌이기도 하다.
'대부분 알려진대로…….'
유명 선수들을 대거 영입했다.
한국 선수를 영입한다는 소문도 있었다.
소문은 소문이었는지 기존과 큰 변화는 없다.
아니, 한 명.
.
.
.
JGL- JCG Satan
'??'
익숙한 아이디가 눈에 뗬다.
복건성 하문시.
"건방진 녀석들이지?"
"예, 뭐……."
한 대형 빌딩의 사무실.
시끄러운 잔소리를 들으며 서류를 읽고 있다.
쓰여있는 내용이 가관이 따로 없다.
'살다 살다 예산 규모까지 정리한 건 처음 보네.'
광저우 LDL.
LDL은 참고로 LPL의 하위 리그다.
리그에 소속된 팀들의 자료가 쭉 정리돼있다.
「JCG Games」
코치- 8
선수- 10
연습생- 14
예산- 4700만元……이상
「Moss Club」
코치- 3
선수- 7
연습생- 3
예산- 900만元……추정
「Team CC」
코치- 1
선수- 5
연습생- 0
예산- 120만元……추정
.
.
.
파악하는 것이 그다지 어렵진 않다.
다만 삭막하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
기업에서 시장을 보는 시각이 대개 이러하다.
'완전 숫자, 돈으로만 보고 있잖아.'
이 팀이 e스포츠를 어떻게 보는지.
다른 부연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다.
이러한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지껄여온다.
"선생이 보기에도 어느 팀이 승격해야 할지 자명하지?"
"그런가요?"
"허허, 다시 한 번 찬찬히 살펴보게. 그러면 보일 게야."
그러니까 한 마디로 그거다.
답은 정해져 있다.
너는 대답만 하면 된다.
'답정너라고.'
사회 생활에서 눈치는 기본이다.
구태여 물주의 심기를 거슬릴 이유는 없다.
물론 내 물주가 됐을 때의 이야기다.
"선수와 코치진도 우수하고, 예산까지 받쳐주는 훌륭한 팀이네요."
"크하하! 역시 보는 눈이 있어."
"그럼 저는 필요 없는 거 아닌가요? 왜 불렀어요?"
"……."
그렇게 잘나셨는데 나는 왜 불렀냐고.
시끄럽던 양반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그 대답은 들어볼 것도 없이 이미 알고 있다.
'봤으니까.'
돈을 쏟아부었다.
선수도 영입하고, 코치진도 확충했다.
기타 시설도 휘황찬란 멋들어지게 꾸몄을 것이다.
그런데 성적이 원하는 만큼 나오지 않아.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롤은 돈을 펴바른다고 이기는 게임이 아니다.
"오기 전에 JCG 게임즈의 경기를 체크했습니다. 선수들 기량도 좋고, 유니폼도 멋진데……."
"역시 그렇지?"
"경기력은 그냥 그렇더라고요."
"……."
딱히 못하는 건 아니다.
비유를 하자면 유명한 돈가스집에 가서 3만원 주고 썰었는데 동네 돈가스집 8천원(포장 가능)과 별 맛 차이가 없다는 느낌이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린 소설이 기억난다.
솔직히 제목만 기억 나고 내용은 모른다.
아무튼 가성비가 쓰레기인 것이다.
예산 900만 위안의 Moss Club을 간신히 이긴다.
예산 120만 위안의 Team CC에게는 완패했다.
섬머 시즌 LSPL South 성적이 중위권.
'그렇게 드문 이야기도 아니지.'
얼마 전, 결승전에서 상대한 GOO Tigers.
지금 서류 차트로 정리하면 이렇게 된다.
「GOO Tigers」
코치- 2
선수- 5
연습생- 0
예산- 300만元……추정
예산은 아마 5~6억 근처겠지.
적어도 나머지 숫자들은 확실하다.
감독 한 명, 코치 한 명, 선수 다섯 명이 끝이다.
'근데 이 팀이 중국에 오는 순간 중국 멸망이야.'
그것도 1부 리그인 LPL에서 말이다.
중국이 수십억 위안 갖다 부어도 못 이긴다.
돈으로 살 수 있는 경기력의 한계는 명확하다.
그럭저럭 쓸만한 팀은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상위권팀이 되는 건 별개의 문제다.
돈을 펴바른 당사자가 누구보다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구단주님께서는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다는 것까지 예견해 저를 부르셨으니까요."
"바로 그걸세. 난 항상 철저하게 준비하지."
"암요."
바로 그거는 개뿔이.
적당히 비위를 맞춰줬을 뿐이다.
구단이 무능할수록 나도 돈벌이가 생기니 환영하는 바다.
"한 가지 여쭤보고 싶은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 뭔가?"
"연고지를 따지면 JCG 게임즈는 항저우에 가깝지 않나 싶은데."
"……."
중국의 1부 리그 LPL의 지역 연고제.
당연하게도 모든 도시에 다 있는 게 아니다.
인지도 있고, 협력이 잘되는 열두 도시가 선정된다.
그리고 국가에서 밀어주는 도시.
실제로 중국 정부에서 정책적으로 지원한다.
야구나 축구 등의 기타 스포츠와도 같은 맥락이다.
'경쟁이 심할 수밖에 없지.'
선정된다면 막대한 홍보 효과를 누린다.
지방 정부와 긴밀한 협력 관계도 구축된다.
최대한 가능성 높은 지역을 찾아 출전한 것이다.
"내가 광저우에서 준비하는 사업이 있어서 그렇다네."
"그렇군요. 그럴 수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