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화 (99/201)

이 또한 변명이라고 생각할 것만은 아니다.

기업들은 사업적인 관점에서 접근한다.

판매 물품이 특정 지역에 집중돼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기준.

부산우유의 판매처는 당연히 경상도다.

이러한 지역 개념이 땅덩이가 큰 중국에선 일반적이다.

'아무튼 사정은 알겠는데.'

오늘 낮에 안타까운 사연을 들었다.

Team CC.

전해 들은 대로 형편이 옹색하다.

하지만 실력 하나는 확실하다.

광저우 시드권을 획득할 자격이 있다.

결정적으로 이 구단주 성격이 마음에 안 든다.

"어차피 그런 거지들이 올라가 봐야 LPL의 전반적인 수준만 떨어질 것 아닌가?"

"아~ 그런 관점도 있군요."

"우리 같은 대기업팀이 시드권을 획득하는 게 대국적으로 좋은 일이지."

너무 확신을 가지고 말하니까 반박도 못하겠다.

이런 중국 사람을 보면 '의와 예를 아는 한족은 천안문에서 다 돌아가셨구나~' 그런 위험한 생각이 절로 든다.

'정말 중국스러워. 나의 기대 그대로야.'

의외로 중국에서는 드물지도 않은 사고방식이다.

무슨 짓을 하든 돈만 벌면 돼!

이런 합리화가 사회 전반 깊숙이 스며 들어있다.

사람이 할 짓이 있고, 안 할 짓이 있는 법이다.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

아무리 돈이 절실해도 양심을 저버릴 수는.

"승격만 한다면 선생께 200만 위안까지도 지불할 용의가……."

"사인이 좋을까요, 인감이 좋을까요?"

"……."

이건 해야지.

개나 소나 돼지가 되더라도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다던데 무조건 해야지.

'아니, 한두 푼이 아니잖아. 소크라테스 센세도 이해해줄 거야.'

200만 위안이면 한화 3억원이다.

그리고 내가 양심을 파는 것도 아니다.

지금만 약간 세일하고, 나중에 채워 놓을 생각이다.

"무조건 승리한다는 선생에게 기대가 크네. 우리말을 할 줄 아는 것도 아주 호감이고."

"탁월한 선택하신 겁니다. 그 어떤 한국 선수도 저보다는 캐리력이 안돼요."

"하하! 그런 자신감 좋아."

굉장히 많은 금액이라 보일 수 있다.

사정을 알고 나면 사실 그렇지도 않다.

중국 LPL의 시드권은 그냥 비싼 게 아니라, 졸라게 비싸다.

'시도하다가 파산하는 기업도 있을 정도로.'

그만큼 LPL의 중국 내 홍보 효과가 엄청나다.

벤츠, 인텔, BMW, 나이키 등 할리우드나 메이저리그를 후원할 법한 글로벌 거대 공룡들이 괜히 눈독 들이는 게 아니다.

차후에는 수백억원을 호가한다.

현재는 그것보다는 당연히 안된다.

그럼에도 말이 안되는 금액이고, 다소의 출혈은 기분 좋게 감수할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더 내는 것도 가능하겠지.

하지만 이 정도 선에서 만족하는 것이 옳다.

나는 아직 '꽌시'가 없으니까.

'너무 욕심 내다가는 모처럼 굴러 들어온 기회가 사라질 수 있어.'

꽌시란 한 마디로 인맥 사회다.

한국에도 있는 개념이지만 중국은 특히 심하다.

인구가 너무 많다 보니, 다른 사람은 상관없고 내 주변만 챙기자는 잇속이 팽배하다.

중국에서 제대로 된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필수불가결이다.

성공을 위한 첫걸음이기도 하다.

신뢰를 만들기 위해서는 작은 실적부터 쌓아갈 필요가 있다.

"중국에 온지도 얼마 안됐는데 계약 같은 딱딱한 이야기보다 식사부터 어떤가?"

"좋죠! 듣기로 불도장의 기원이 이곳 복건성에 있다고……."

"하하! 제대로 알고 찾아왔구만."

식사 자리 또한 그 연장선이다.

* * *

중국에서 활동하게 된 이상 한 가지 익숙해져야 하는 게 있다.

다름 아닌 사람을 대하는 차별이다.

한국에도 분명 있기야 하겠지만.

"직원분도 같이 식사해도 되지 않을까요?"

"그럴 필요 없네."

JCG Games와의 미팅은 갑자기 하게 된 게 아니다.

1주일 전에 한국에서 이미 약속을 잡아 놨다.

오늘만 해도 앞서 다른 팀과 미팅이 있었다.

'그것 말고도 한 열 개는 더 있었어.'

고르고 고른 팀만 따져도 그 정도다.

3억이란 거금을 선뜻 찔러온 이유다.

그만큼 현재 중국에서 내 주가는 하늘을 찌른다.

「마왕은 무조건 승리한다!」

일련의 이미지가 사장님들의 마음에 쏙 든 덕이다.

개스파컵에서의 선전은 당연히 깔려있는 거고.

그렇기에 나에 대한 대우도 좋을 수밖에 없다.

"선생과 나의 식사지. 저 사람의 식사는 아니야."

하지만 JCG Games의 직원.

본래는 통역을 겸해 왔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내가 중국말을 할 줄 안다.

아까 사무실부터 쭉 옆에 붙어있었다.

배가 고파도 한참은 고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은 한국인이야. 그리고 우리 JCG의 승격을 책임질 굉장히 가치 있는 사람이지. 하지만 저 사람은 가치 없는 조선족에 불과해."

"하……, 네."

너무 딱 잘라 말을 해서 도리어 할 말이 없다.

조선족 직원은 말없이 고개를 땅에 숙인다.

이렇듯 중국은 차별이 도를 넘게 심각하다.

'조선족 같은 소수민족도 그렇고.'

안타깝기는 하나 내가 어찌 할 스케일의 문제가 아니다.

여기서 더 억지로 권유하는 것도 부자연스럽다.

무엇보다 차별의 칼날은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

중국에 간 유명 한국 선수 한 명은 이런 일을 당했다.

처음에는 지금의 나처럼 후하게 대접 받았다.

그러다 성적이 안 나오자 태도가 돌변한다.

「一分錢, 一分貨(싼 게 비지떡).」

이럴 거면 더 비싼 선수를 사올 걸 그랬다~.

말 같지도 않은 말이 구단주의 입에서 나왔다.

나라고 그런 처지에 취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음식 진짜 맛있네요. 역시 세계 3대 미식의 나라인가?"

"3대는 무슨! 가보면 알겠지만 다 중국만 못해."

"구단주님께서는 많이 가보셨나 보네요."

"하하! 가보다 마다."

확실히 음식은 맛이 있다.

빈말이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로.

그래서 더 화가 나는 것은 기분 탓일까.

'정말 재미있는 나라야.'

잘 대해준다고 하하호호 즐겁게, 재밌게 떠들 만한 나라도 아니다.

중국에서의 첫날 밤이 저문다.

* * *

굴러 들어온 돌.

박혀있던 돌이 샘을 내는 건 이 세상 어디든 마찬가지다.

JCG Games의 숙소 근처에 있는 한 술집에서 비밀스러운 토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마(魔)에게 실적을 빼앗겨서는 안된다!"

굴러 들어온 돌의 이름이다.

아이디부터가 대놓고 '마왕'(魔王).

그들에게 있어 정말 악마와도 같은 존재였다.

"승격의 일등공신은 우리가 돼야 한다."

"주객이 전도되는 걸 지켜볼 수는 없다!"

JCG Games의 숙소는 분명 화려하다.

5층 빌딩을 통으로 임대해 쓰고 있다.

1층은 게임단의 굿즈 판매와 접수처.

2층은 1군 선수들의 연습실과 쉼터.

3층은 1군 선수들의 숙소.

5층은 구단주실과 그 외 사무실.

그리고 4층에는 열네 명의 연습생들이 다닥다닥 붙어 생활하는 좁은 숙소와 2군 연습실이다.

그런 선수들의 생활은 양반에 속한다.

코치들에게는 숙소조차 배정해주지 않으니까.

"마왕은 무조건 승리한다고 들었다. 그의 활약으로 승격한다면 우리의 공로는 그 그림자에 삼켜지듯 가려질 것이다."

"우리 코치들은 아무것도 안 했다는 소리를 듣겠지. 늘 그래왔던 것처럼."

중국은 매정할 정도로 실력주의 사회다.

특이 케이스를 제외하면 시작점이 매우 낮다.

대신 능력을 인정 받으면 신분이 달라지듯 급상승한다.

그 능력을 인정해주는 사람은 구단주.

구단주의 눈에는 선수의 실력밖에 보이지 않는다.

눈에 띄지 않는 코치는 잡무와 다를 바 없는 취급이다.

때문에 JCG Games의 코치진은 승격전에 사활을 걸었다.

자신들의 대우가 하늘과 땅 수준으로 달라질 계기다.

그들에게 있어 새로운 한국 선수는 눈엣가시였다

흔히 게임단의 코치라고 하면 우러러보는 대상이다.

최소 얕잡아 보는 시선은 있을 수 없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그게 당연하다.

스타크래프트 시절부터 이어져 온 e스포츠 종주국.

그리고 나이를 중시하는 유교 사상의 영향.

마치 선생님처럼 근엄한 이미지가 붙는다.

'물론 요즘은 친근한 선생님이 대세지만 기본적인 이미지는 그런 감이 있지.'

선수들의 마음 한 켠에 기본적으로 내재돼있다.

그러다 보니 코치 일을 하는데 편하다.

게임단의 대우도 당연히 잘 해줘야 하는 사람.

하지만 의외로 이는 한국에만 한정되는 이야기다.

북미나 유럽쪽으로만 가도 전혀 달라진다.

코치나 선수나 별 입장 차이가 없다.

'헤드 코치, 감독의 권한도 우리나라처럼 절대적이지 않고.'

중국은 이러한 온도 차가 특히 더 극명한 편이다.

대체 코치들은 무슨 일을 하는 거지?

우리나라처럼 e스포츠가 보편화된지 오래되지 않았다.

투자를 하는 사업가가 코치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한다.

대우 또한 자연스레 박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와 달리 입지가 좁고.

"저 녀석이다."

"사장과 비싼 음식을 먹고 왔겠군."

"배불러 터진 빵즈."

"이봐?"

"어차피 못 알아들어."

본인들의 생각도 머물러있다.

JCG Games 숙소 빌딩의 2층.

선수들이 휴식을 취하는 쉼터에서 코치들이 옹기종기 모여 담소를 나눈다.

사온 음식으로 아침 식사를 하고 있다.

먹으면서 내 뒷담을 시원하게 까고 있다.

중국어를 할 줄 안다는 게 아직 알려지지 않았나 보네.

'오우, 매일매일 사건들이 끊이질 않아.'

중국 생활이 재밌을 건 알았지만, 생각보다 훨씬 익사이팅할 모양이다.

인터레스팅일 수도 있고.

어느 쪽이건 중요하진 않을 것이다.

"하나 먹을게요. 먹어도 되죠?"

"그래. 어……??"

"오~ 취두부!"

내가 불도장만 잘 먹는 게 아니라 웬만한 건 다 주워 먹는다.

안 그래도 중국에서 가장 그리웠던 음식이다.

한국 사람들이 기겁할 만한 취두부.

'그냥 취두부는 나도 못 먹는데 튀긴 거는 없어서 못 먹어.'

별로 신기할 것도 없는 게 외국인들이 우리나라 오면 절대 못 먹는 음식 중 하나가 순대다.

선입견이 강한 거지 먹고 보면 별 거 아니잖아.

물론 강렬한 냄새는 분명 호불호가 갈린다.

하지만 홍어도 홍어삼합으로 먹으면 그럭저럭 먹을 만한 것과 마찬가지다.

솔직히 향만 조금 개량하면 한국 사람들도 좋아할 거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고 확신한다.

"하나 더 먹어도 돼요?"

"어, 어……."

"아, 좀 미안한데. 저 때문에 지단삥이랑 비율 안 맞는 거 아니에요?"

"괜찮아, 괜찮아……."

한국으로 따지면 떡볶이에 튀김 묻혔는데 튀김만 빼먹는 꼴이다.

약간 얌체 같은 느낌이 있다.

근데 뭐, 본인이 괜찮다는데.

'나머지 본인들은 얼굴이 씹창 나신 것 같지만.'

그 이유가 비단 2천원도 안되는 취두부 한 접시 때문은 아닐 것이다.

중국 최저 시급에 준하는 코치 월급으로는 부담될 수 있다.

그보다 더 부담이 되는 건 앞서 떠든 대화 내용이겠지.

"잘 먹었어요. 이따 사무실에서 봬요."

"어, 그래……."

어색한 인사가 끝난 휴게실에는 정적만이 흐른다.

내가 딱히 멘탈이 강해서 봐준 게 아니다.

그냥 다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에 이런 속담이 있지.'

중국인은 불의를 보고는 참아도 불이익을 보고는 못 참는다고.

하늘에서 떨어지듯 다른 나라 선수가 와버렸다.

박혀있던 돌들이 움찔하는 건 당연지사다.

그리고 가장 경계하던 부분이기도 하다.

한국 선수들이 중국에 와서 고생하는 1순위.

그것은 계약도, 음식도 아닌 바로 사람이다.

* * *

첫날은 구단주와 식사를 가진 후 그냥 푹 쉬었다.

내 추측이지만 상당히 마음에 든 모양이다.

그도 그럴게 비위를 잘 맞추기도 했고.

''자기네 나라 말 하면 호감 생기는 건 중국도 비슷해.'

그럴 듯한 말로 신뢰를 쌓아줬다.

코치라는 직업도 반쯤 영업직이다.

물론 순수하게 코칭만 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 같은 경우 감독도 준비하고 있어서 여러가지 다 했다.

사장님들이 흡족해하는 말들이 몇 개 있다.

적당한 긴장감 주면서 찔러주면 좋아 죽는다.

그렇게 구단주에게 긍정적인 이미지를 주는데 성공했다.

이는 내가 한국인이라는 점도 크게 작용한다.

중국 상류 계층은 대개 우리나라 사람을 좋아하니까.

한류, 나라의 이미지, 그리고 가장 큰 건 돈이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내가 요즘 한국 선수들은 장비 이런 거 쓰더라.'

이런 사소한 말도 중국 기업가에게는 사업 아이템이다.

중국의 거대한 e스포츠 시장과 한국 선수의 신뢰도.

두 가지가 결합하는 순간 그냥 불티나게 팔린다.

특히 나처럼 현재 인지도가 높은 선수는 귀한 사람일 수밖에 없다.

나 자신을 고평가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그러하다.

하지만 일반적인 중국 사람들에겐.

"아까 취두부 잘 먹었어요."

"……그래."

"앞으로 한동안 보고 지낼 텐데 웃으면서 지내요."

"자네가 하기에 달렸겠지."

대략적인 이야기는 어제 구단주와 나눴다.

오늘은 바빠서 부재일 거라는 것도 들었다.

정식 계약을 위해 5층 사무실에 오자 코치 한 명이 반갑게 맞이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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