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기라도 할 듯 곤란해 보인다.
하지만 곤란한 건 나도 마찬가지다.
마치 어떻게 챌린저를 찍었나요? 라는 질문을 들은 기분이다.
'차라리 어떻게 마스터를 찍나요, 라고 물으면 게임을 최대한 갖다 던지면 된다고 답변이 가능한데.'
왜 잘하냐고 물으면 대답하는 게 난감하다.
특히 나 같은 경우 '과거에서 돌아왔습니다' 라고 말할 수도 없는 거니까.
그렇다고 대답할 말이 없다는 소린 아니다.
"앞으로도 계속 할 겁니다."
"네?"
"보시는 여러분이 익숙해지면 됩니다."
간단한 이야기다.
* * *
광저우 LDL.
중국 전체적으로 보면 그렇게 주목 받는 지역은 아니다.
기존 LPL팀도 없고, 엄청 유명한 선수가 있는 것도 아니고.
적어도 중국팬들의 시선으로 보면 그러하다.
「[충칭 LDL] M2 첫 경기 임박! 삼선 다대기, 한국 vs 사천 매운맛 대격돌」
「[베이징 LDL] 크르릉! 알파카 vs 우즈 兩雄相爭! 전문가들 "예상 쉽지 않아"」
「[상하이 LDL] IC의 한국인 에이스 까까오曰 "누가 와도 난 막을 수 없어 으컁컁!」
마왕이 지난 개스파컵을 계기로 엄청나게 인지도가 상승한 것은 사실이다.
국내에서는 웬만한 기존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거나 그 이상이다.
해외 전문가들도 혀를 내두르며 '약점은 없고 강점만 있는 선수'.
어느 지역에서도 고평가를 받지만 팬덤으로 한정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해외팬들 중 LCK를 챙겨보는 시청자층은 정해져 있다.
마니아층이나 찾아보지, 라이트층에게는 생소하다.
한국에서 해외 축구팬이 많기는 많아도, 월드컵 시즌과 비할 수 없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세계적으로 인정해주는 대회는 결국 롤드컵.
지난 롤드컵에서 활약한 스타 선수들이 LPL에는 한두세네 명이 아니다.
갑작스러운 제도 변화로 전국 각 지역에서 대회가 열리고 있기도 하다.
화제성이 떨어지는 지역에 대한 관심은 적을 수밖에 없다.
그것이 분명 당연한 수순이지만.
「小城」
22분 전。
이 세상 리심이 아니다.Gif
「木二木?」
21분 전。
한국에서 온 무림인이 격공장을 시전했다.Gif
「超?笑的眉宇」
21분 전。
우리 한국의 리심은 세계 제이이이일―!.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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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이보는 난데없는 파문으로 들끓고 있다.
광저우 LDL에 출전한 한 선수의 활약.
이전부터 은근하게 조명되었다.
금일 치러진 경기.
그리고 논란을 낳는 인터뷰.
그 두 가지가 화제에 기름을 부었다.
「see you ?」
3일 전。
ㅋㅋㅋㅋㅋㅋㅋㅋ
100만 위안 내놔
물론 가장 큰 계기는 따로 있다.
한 푸얼다이의 내기에서 비롯됐다.
그렇게 별 일이라고 볼 일은 아니다.
친구들끼리 하는 가벼운 내기.
만원빵, 떡볶이빵, PC방빵과도 같다.
다만 그 액수가 억이 넘어가서 문제지.
-ㅅㅂ 운도 좋은 자식
웨이보主- 운이 아니지. 현안이 뛰어나다고 말해줘
-근데 진짜 대단하네
-어떻게 저런 플레이를 매 경기 할 수 있는 거지?
우연에 불과하다.
그런 슈퍼 플레이를 또 하면 내가 100만 위안 줄게.
콜!
웨이보를 타고 단숨에 화제가 됐다.
사실 중국에서는 그렇게 드물지도 않다.
푸얼다이들은 돈이 썩어나게 많으니까.
평소 씀씀이가 굉장히 헤픈 편이다.
그러고 다니는 이유도 존재한다.
중국의 갑작스러운 급성장.
공산주의 국가라는 배경.
중국의 재벌들은 역사가 매우 짧다.
99.9%가 벼락부자라고 볼 수가 있다.
2세에 대한 교육이 제대로 될 리 만무하다.
'푸얼다이'는 중국 내부에서 어마어마한 골칫거리임과 동시에 아이러니하게도 선망의 대상이다.
한국에서 연예인 보는 감각과 비슷하다.
그렇기에 일어난 파급 효과다.
이~쿠우!
듣도 보도 못한 리심의 풀콤보.
마치 철권의 연속기를 때려박는 느낌이다.
탈리반 3세가 찍소리도 못하고 당해버린다.
-EQ 안 써?
-쓰면 바로 따라가잖아 멍청아!
-철권고인물이 왜 롤까지 와서 연속기 쓰냐?
-Q와드W평E평QR?? 미친 거야?
상상만 해도 손이 꼬이는 콤보가 1초만에 작렬한다.
단순한 겉멋이라 보기에는 실용성도 뛰어나다.
안 그래도 지릴 만한 영상에 파급력까지.
[Weibo ???搜榜]
1. 철권 리심 1298940
2. 아이유 팬미팅 1226477
3. 왕위보 전화번호 유출 929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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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이보의 실시간 Hashtag 조회수 랭킹 1위에 등극한다.
비록 잠시였지만 그 자체가 말이 안되는 일이다.
선수 이름은 몰라도 철권 리심은 들어봤다.
자연스레 선수 본인에게도 관심을 가진다.
그 선수가 뛰고 있는 지역, 그리고 팀 또한.
'마왕'이라는 독특한 이명은 중국이기에 더욱 와 닿는다.
「???」
1시간 전。
속보!
마교교주 광둥성 일대에서 발견
괴이한 무공을 앞세워 광저우 일대 문파를 멸문 中
이에 무림맹은 아직 공식적인 대응을 내지 못하고 있다
-ㅋㅋㅋㅋㅋㅋㅋ
-명호는 '마왕(魔王)'으로 추정
-대체 어떤 마공을 익힌 거야?
-키보드를 1초만에 연타하는 뇌전신공(雷電神功)이겠지!
무협의 산지 중국이다.
'마魔'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마교(魔敎).
공교롭게도 광저우가 위치한 광둥성이 바로 그 마교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무협 소설이나 영화에 감초처럼 등장하는 마교의 본거지 십만대산(十萬大山)이 광둥성과 광시성 일대니까.
그 자체만으로도 스토리텔링이 되고도 남는다.
물론 결정적인 것은 리심의 숙련도다.
이~쿠우!
보기만 해도 시원함이 느껴지는 일격이다.
리심의 당구킥 한 방에 한타가 터져나간다.
한 대회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명장면.
매 경기마다 뽑아내니 화제가 안될 수가 없다.
푸얼다이가 100만 위안(1억 7천만원)을 괜히 선뜻 내걸었던 게 아니다.
그만큼 나오기가 힘든 초-슈퍼 플레이다.
《앞으로도 계속 할 겁니다.》
《네?》
《보시는 여러분이 익숙해지면 됩니다.》
파격적이기 그지없는 슈퍼 플레이 예고까지 선언했다.
독특한 별명까지 정립되자 관심이 쏟아진다.
대체 누구고, 왜 이렇게 잘하는지.
「Espresso先生」
1시간 전。
마왕이 누구인지 한국 Wiki에서 찾아봤는데 알면 알수록 미쳤어!
아무리 단기간에 화려한 커리어를 쌓았다고 한들.
해외에서의 인지도는 보잘것없을 수밖에 없다.
일련의 계기를 통해 물살이 거세게 일렁인다.
「Espresso先生」
1시간 전。
마왕은 무조건 승리한다는데?
「天磨神敎」
58분 전。
긍지 높은 천마신교의 교주라면 패배를 두려워해서는 안되지!
「徐志平」
53분 전。
한국 선수라 그런지 세련되게 생겼어
실력도 좋고, 이런 사람을 오빠라고 부르는 거지?
.
.
.
인상적인 슈퍼 플레이.
잊혀지지 않을 만한 별명.
그럼에도 아직 보여줘야 할 게 많은 것이 사실이다.
Wiki 같은 걸로 대충 훑어보는 것과 실제 와 닿는 체감은 다른 법이니까.
하지만 관심이란 이름의 계기는 분명 시작됐다.
물꼬가 트인 광저우에 관심이 집중된다.
「封云」
1시간 전。
타 지역팬들은 JCG Games가 어떤 곳인지 몰라
안다면 결코 응원하지 않을 텐데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고, 그림자가 있으면 빛이 있는 법.
정파 또한 고개를 들이민다.
인터넷 방송은 e스포츠와 함께 급격한 성장을 이루고 있다.
이는 한국은 물론 북미, 유럽, 중국도 마찬가지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방송의 방향.
소위 여캠이라는 게 존재한다.
한국에서는 최소 모르는 사람은 없는 개념이다.
서양권에도 당연히 있지만 마이너하고, 어덜트한 영역으로 취급된다.
중국은 굳이 따지면 한국과 비슷하다.
각 개인 방송 플랫폼에서 여캠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수익에 관해서도 더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 않는 대륙 스케일을 보여준다.
─샤오바라기님이 ?翅 100개를 선물했습니다.
힘내세요!
마교 우두머리한테 지면 안돼요!
도유TV.
중국의 개인 방송 플랫폼이다.
파프리카TV의 별풍선과 비슷하게 상어 지느러미(?翅)를 통화로 사용한다.
일부 여캠의 경우 돈을 쓸어 담듯이 번다.
이는 중국이 가진 특수한 환경에서 더욱 기인한다.
지나치게 많은 인구를 통제하기 위해 1가구 1자녀 정책을 펼쳤다.
남아 선호 사상으로 남녀간의 성비가 심각할 정도로 무너졌다.
외모가 뛰어난 여성은 가치는 천정부지다.
중국에서 여캠이 성행하고 있는 이유.
〈감사합니다! 선수들과 맛있는 거 사먹는데 보태 쓸게요.〉
-본인을 위해 쓰시지 ㅠ.ㅠ
-샤오바라기님이 본인을 위해 쓰래요
-샤오는 선수바라기야!
-코치 때려치고 방송만 하면 떼돈 벌 텐데ㅋㅋ
Team CC의 코치 류샤오.
그녀의 방송이 인기 있을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빼어난 외모와 해박한 게임 지식은 LOL팬 입장에서 거부하기 힘든 매력이다.
더욱이 보증이 돼있다.
'엄마 빼고는 다 가짜'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는 짝퉁의 나라다.
중국의 인터넷 방송은 스트리머의 얼굴을 미화하는 프로그램이 만연한다.
톈왕(天網), 하늘의 그물.
독보적인 국민 감시 시스템의 영향이다.
여기에서 파생된 영상 관련 기술이 중국의 편집 능력을 세계 1,2위로 만든다.
하지만 류사오는 이전부터 쭉 Team CC의 ?旼》?활동해왔다.
가짜일래야 가짜일 가능성이 없다.
조금만 사리사욕을 부리면 스트리머로서 부를 축적할 수 있을 텐데.
〈난 시청자들이 나에게 돈을 준다고 생각하지 않아. 선수들이 없었다면 여러분을 만날 수도 없었을 테니까.〉
-마인드가……
-존경합니다
-샤오는 그냥 방송해도 성공할 텐데
-샤오가 시청자 수에 비해 ?翅이 안 터지긴 하지ㅋㅋ
특유의 완고한 방송 태도 탓에 수익은 높은 편이 못 된다.
그럼에도 적은 액수는 아니다.
Team CC의 운영 자금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
넉넉지 않은 게임단 사정이 알려지며 대중의 지지를 얻고 있다.
대외적 이미지가 깨끗하기 이를 데 없다.
최근 사건과 맞물리며 더욱 조명 받는다.
─CC화이팅님이 ?翅 50개를 선물했습니다.
돈으로 모든 걸 이루려는 사악한 마교놈들을 물리쳐주세요. Team CC 화이팅!
안 그래도 이미지가 별로인 JCG Games.
새로 한국에서 온 용병의 별명이 익살스럽게 정착됐다.
Team CC의 팬덤은 스스로를 정파(正派)라 칭하며 마교 타도를 부르짖는다.
〈JCG 선수들도 좋은 경기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비하하지 말고 친하게 지내요.〉
-정파는 이래서 안돼
-이러니까 맨날 지지……
-샤오는 마음씨가 너무 예뻐서 문제야
-판다TV 가서 방송 하면 무조건 대박이라니까?
플랫폼도 판다TV가 아닌 도유TV.
여캠을 하려면 판다TV 쪽이 사행성이 훨씬 뛰어나다.
본인은 어디까지나 방송인이 아닌 코치라며 선을 긋는다.
누가 봐도 보수적이다.
정파라는 이미지가 생겨버린 연유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녀와 Team CC가 굳건한 팬층을 자랑하는 것이기도 하다.
〈걱정되시는 건 이해하지만, 저희 선수들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곧 치러지는 경기들 모두 이겨서 기대에 부응할게요.〉
-오오!
-복수혈전!
-마교가 사악하다고 우리까지 괴물이 되어선 안되지~
-믿고 있었다고 젠장!
한 번의 패배.
라이벌팀의 선전.
흔들릴 수 있는 상황임에도 굳건한 의지를 표출한다.
* * *
중국에 온지도 어언 일주일.
LDL에서도 제법 경기를 뛰었다.
역시나 필연적이게도 팬들 사이에서 반응이 올라온다.
'살다 살다 별의별 소리를 다 들어보네.'
무슨 전전긍긍 마교교주도 아니고.
독특한 별명으로 인지도를 다지게 됐다.
과정이야 차이가 있지만, 결과론적인 면에서는 사실 예상을 했다.
내가 마왕이란 이름을 괜히 받아들인 게 아니니까.
한국에서도 그랬지만 원래 나쁜 쪽 소문이 더 감칠맛이 난다.
시점은 몰라도 언젠가 터질 거라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예상하지 못한 것도 있다.
무협은 중국인들이 워낙 좋아하는 기믹이다.
사파(邪派)의 우두머리인 마교는 반대되는 개념이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