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4화 (104/201)

「封云」

12시간 전。

의(義)와 협(俠)을 아는 정파 군도들은 금일 반드시 응원을 오도록!

-거품세가와의 비무회 말이지?

웨이보主- 잘 알고 있구만

-샤오 낭자의 계책을 믿고 있다네

-틀림없이 비무의 승리를 쟁취할 수 있을 것일세!

'그만해 미친놈들아!'

우리나라 SNS도 미쳤지만, 중국 SNS도 만만치 않기는 커녕 그 이상이다.

대체 왜 이러고 노는 건지.

하필 내가 한국 사람이라 모를 수가 없다.

무협지의 클리셰다.

학창 시절 친구들끼리 돌려봤다.

비뢰도, 묵향, 화산질풍검 같은 가벼운 신무협 소설들.

그 본고장인 중국은 더할 만도 하다.

중국의 SNS 웨이보.

동향을 살펴보자 굉장히 독특한 화법으로 이야기가 오간다.

「天磨神敎」

11시간 전。

지존께서 마도천하를 선포하셨으니 정파놈들은 씨가 마를 것이다.

「??的?」

11시간 전。

강호 어디에도 간악한 마교도가 발 붙일 곳은 없다!

.

.

.

그렇게 드문 일은 아니다.

팬덤간의 싸움은 한국 커뮤니티에서도 다반사다.

흔한 수준을 넘어 24시간 서로 시비거리를 찾지 못해 안달이다.

'그런 놈들한테 컨셉을 쥐어줬으니 당연히 미쳐 날뛰겠지.'

한국에서도 무협 소설이 유명하긴 해도 대중적이진 않다.

하지만 중국은 완벽히 보편화가 되어있는 장르다.

지들끼리 북 치고 장구 치고 난리가 났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입장.

하필 내가 악역쪽인 마교 쪽이었다.

그것도 가장 악의 축이라고 할 수 있는 마교교주가.

사실 묵향의 천마신교를 좋아하긴 한다.

그래도 악역은 역시 찝찝한 기분이 든다.

무협지를 본 짬밥으로 한 가지 추측이 떠올랐다.

'정파도 알고 보면 다 나쁜놈들이거든.'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Team CC의 그 건방진 계집.

개인 방송을 한다는 정보가 있었다.

중국의 개인 방송은 질이 상당히 안 좋다.

한국에선 상상도 못할 짓들이 펼쳐진다.

특히 여캠은 입에 담기도 끔찍하다.

〈우리가 왜 이런 조합을 했냐면…….〉

도유TV에서 검색을 하니 나온다.

나름 코치인지 복기 방송을 하고 있다.

치렀던 경기에 대해 설명을 하는 그런 컨텐츠다.

'하지만 여캠에서 컨텐츠는 중요하지 않지.'

중요한 건 물소들이다.

남성 시청자들에게 돈을 뜯어낸다.

일련의 과정이 한국보다 훨씬 퇴폐적이다.

여캠들은 어째서 별풍선이 쏟아질까?

나도 방송을 했기 때문에 알고 있다.

업계에 있다 보면 다 전해 듣는다.

홀딱 반해서 패가망신 하는 열혈팬.

그냥 순수하게 돈이 많은 열혈팬.

그렇게 쏘는 이들도 있지만 그것만으로도 설명이 안되는 규모다.

'별풍선이 수천 만원, 심지어 억 단위로도 터지는데 누가 봐도 이상하잖아?'

조폭이나 유흥업소와 연결된 돈세탁, 혹은 성상납의 결과물이다.

시청자가 몇 되지도 않는 여캠들이 별풍을 쓸어담는 이유다.

문제는 이러한 유착이 중국은 아예 썩어있다.

중국에서는 연예인들의 성상납이 일반적이다.

연예인도 당연시 되는데 여캠 따위가 뭐라고 안 할까?

플랫폼에서 밀어주고, 돈세탁도 하려면 서로 신뢰할 수 있는 '꽌시'가 돼야 한다.

'소위 첩제도라고 하는데 이 녀석도 인기 있는 여캠이면 분명…….'

나쁜놈이어야 내 마음이 편하다.

그래서 최대한 열심히 찾아봤다.

하지만 찾아보면 볼수록 죄책감에 찝찝해진다.

-샤오님 설명은 귀에 쏙쏙 박혀서 좋아요

-와…… 그렇게 많은 생각으로 고른 픽이었구나

-롤방송 중에 제일 수준 높음

-누나 방송 보고 마스터 찍었어요!

채팅창이 매우 건전하다.

여캠 주제에 메인 페이지 홍보도 없다.

도네 유도도 아까부터 전혀 하지 않고 있다.

들어보니 복기의 질도 나쁘지 않다.

내 기준으로는 평범하지만, 중국 기준에서는 충분히 상위권이다.

일단 못 본 걸로 하기로 했다.

'……원래 무림맹주도 알고 보면 마교 끄나풀인 경우가 있거든?'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그렇게 합리화를 하기엔 좀 추하다.

엿 먹일 의도는 없었지만 결과적으로 미안하게 됐다.

그런데 뭐 어쩌겠어.

세상 사는 일이 다 그런 거지.

각자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 하다 보면 부딪힐 일도 생긴다.

"창민. 연습 시간이다."

"큐 잡고 있습니다만?"

1부 리그와 달리 2부 리그는 여유가 적다.

특히 중국은 스케줄이 상당히 빡센 편이다.

급조된 시드 선발전의 성격상 본래보다 더하다.

거의 사흘에 두 경기씩 치르는 형국.

코치진이 날이 바짝 선 것도 이해는 된다.

하지만 팀의 에이스한테 할 소리는 아니다.

'연습 시간에 한 눈 팔면 안되긴 하지만, 나를 파는 건 더 안되잖아.'

어느 정도 유도리가 적용돼야 한다.

팀 성적도 여유가 넘치는 상태다.

세트 6연승으로 1위를 달리고 있다.

"……주의해라."

"네~."

사실 프로팀에서 굉장히 흔한 경우다.

에이스, 혹은 주장과 코치의 신경전.

팀 내의 주도권을 잡는 알력 다툼이다.

'보통 팀 성적이 안 나올 때나 생기는 일인데.'

게임 이론이라는 건 정답이 존재하기 힘들다.

작은 변수나, 선수의 특성에 따라 달라지곤 한다.

실전을 통해 최대한 근삿값을 찾는다는 느낌이다.

좀 독특해도 결과가 좋으면 코치도 용인해준다.

이렇듯 시비를 거는 일은…… 사실 꽤 많다.

어떤 회사든 사내 정치는 있을 수밖에 없으니까.

"창민."

"왜요."

"코치 회의로 다음 경기의 방향이 결정됐다. 연습에 참고해라."

그 정도가 심하면 문제가 되겠지만.

말을 걸어온 이유는 따로 있었다.

내용이 왠지 벌써 짐작이 간다.

"Moss Club전은 최대한 수비적, 후반 한타를 지향할 예정이다. 그러니까 혼자서 튀는 플레이는 삼가도록."

"네."

"뭐?"

"마음대로 하세요."

"……."

내 플레이를 묶어 놓겠다.

슬슬 밑밥을 깔아 놓겠다.

대충 그런 의도일 것이다.

물론 거절하고자 하면 할 수 있다.

안 들어준다?

구단주한테 말해서 듣게 만들면 된다.

'그러면 팀 내에서 반발을 사게 되겠지.'

안 그래도 미운 이미지가 더 단단하게 박힌다.

흔하디 흔한 고리타분한 수법이다.

선수들이 가장 스트레스 받는 일이기도 하다.

해외에 갔던 선수들이 한국에 돌아오는 이유의 95%.

진짜 존나 쓰잘데기 없는 싸움에 진절머리가 난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닳고 닳은 감정은 못 고친다.

"Moss Club은 LSPL부터 우리가 수비적으로 잡았던 팀으로……."

"팀 모였을 때 설명하세요. 굳이 저한테 브리핑 하지 말고."

"……."

대의명분은 당연히 만들어뒀을 것이다.

설마 그 정도도 생각 안 하고 일을 벌였을까?

Moss Club을 포함해 광저우 LDL에 출전하는 모든 팀의 정보는 이미 보았다.

'적어도 댁보다는 잘 알아요.'

어디 믿고 맡길 수가 있어야지.

그런 게 아니더라도 사전 준비는 철저한 편이다.

이곳 중국은 무슨 일을 당해도 이상하지 않은 나라다.

그것을 감안하고 찾아온 중국이다.

오히려 덕분에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적어도 내가 마교교주, 악당은 아닌 듯싶다

광저우 LDL.

최근 대륙의 관심이 쏟아진다.

그 이유는 오직 한 명의 선수에서 비롯됐다.

〈Moss Club이 리심을 살렸습니다?〉

〈또다시 마왕의 리심이 미쳐 날뛰는 걸 볼 수 있겠는데요!〉

-저걸 살리네ㅋㅋㅋㅋ

-미쳤나?

-속보) 코치 빡대가리

-철권 본좌한테 리심을 주다니……

철권 리심.

웨이보를 떠들썩하게 만든 키워드다.

더 나아가 '마교교주'라는 이명으로도 알려져 있다.

정말 무협 영화 내지 소설에서나 볼 법한 움직임이다.

리심의 숙련도가 듣도 보도 못한 지경이다.

시청자 입장에서는 밴을 열어준 게 이해가 안 가지만.

〈어째서 리심을 밴 하지 않은 걸까요?〉

〈실제 관계자들의 말에 따르면 리심 같은 픽에 밴카드를 소비하면 전체적인 픽밴이 꼬인다고 합니다. 여차하면 자신들도 쓸 수 있는 그런 픽이다 보니…….〉

리심의 취급은 계륵보다 살짝 못하다.

음식점으로 비유하면 계란말이 밑반찬이다.

굳이 이런 걸로 배 채우기는 아깝고, 메인이 맛없으면 먹을 수도 있는 정도?

리심이 살고, 안 살고로 밴픽 난이도가 완전히 달라진다.

코치 입장에서는 밴으로 깔고 가기가 쉽지 않다.

더욱이 결정적으로.

〈우연인지, 실력인지에 대해서도 아직 분분하다고 합니다.〉

각 챔피언의 매드무비.

찾아보면 온갖 신묘한 플레이가 다 나온다.

하지만 정작 대회에서는 가뭄에 콩 나듯 하다.

실력만 따지면 프로 선수들이 그 이상임에도 말이다.

그런 플레이 자체가 리스크가 워낙 높다.

할 만한 구도도 쉽게 안 나온다.

그런 우연 같은 신들림을 매 세트 연출하고 있다.

본인 입으로 익숙해지라는 선언까지 했다.

악에 받쳐서라도 믿고 싶지 않았는데.

하아!

음파를 타고 날아가.

땅을 찍고, 평타를 묻히고.

물 흐르듯 이어진 방호로 적에게 따라붙는다.

일련의 플레이가 매끄러움을 넘어섰다.

철권의 연속기와 같은 느낌을 준다.

리심이 미드 갱킹을 성공시켰다.

〈세상에…….〉

〈익숙해져야 하는 거죠?〉

-ㅋㅋㅋㅋㅋㅋㅋ

-마교교주가 허공답보를 시전했다!

-십만대산에서는 평범한 경공이지

-무슨 붙여 놓은 것처럼 따라가……

많이 본 챔피언이다.

최소 두 경기 중 한 번 꼴로 나온다.

플레이에 대한 평가가 깐깐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 시청자들의 입맛을 여유롭게 만족시킨다.

한 땀, 한 땀 느껴지는 장인의 숨결.

하지만 그 가치가 자칫 빛이 바랄 수 있다.

「숨어보시지!」

바텀 라인.

치비르의 부메랑이 미니언을 쓱싹- 훑고 지나간다.

하지만 챔피언을 긋는데는 실패한다.

이렇듯 라이너들이 소극적이다?

딜교환 보다 파밍에만 주력한다?

정글러 입장에서 갱각을 잡을 변수가 줄어드는 셈이다.

〈선취점도 좋았고, 시야 장악도 좋은데…… 별 다른 교전이 안 나오네요.〉

〈서로 무난하게 라인전을 끝낼 생각 같습니다.〉

중국 리그 특유의 잦은 개싸움이 나오지 않는다.

사실 이는 그렇게 드문 일이 아니다.

이미지가 그럴 뿐, 운영을 좋아하는 팀들도 있다.

소위 원맨팀들.

원딜바라기 전략을 구사하는 팀들도 꽤 보편적이다.

Moss Club의 경우가 그러했다.

─블루팀이 용을 처치했습니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

용을 먹어도 딱히 견제하는 움직임이 없다.

몇 마리 내주더라도 상관없다는 계산이 섰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니 Moss Club도 리심을 괜히 열어준 게 아니라는 생각도 듭니다?〉

〈실제로 흥미로운 데이터가 있는데…….〉

지난 섬머 시즌 LSPL South.

남부 지역 2부 리그에서 전적이 있다.

JCG Games가 승리했지만 그 과정이 흥미롭다.

후반 지향형 조합으로 카운터를 친 것이다.

현재 게임의 조합도 그런 느낌이다.

단 한 명의 선수만 빼놓고.

이쿠, 이쿠!

카정까지 치며 성장하고 있는 리심.

하지만 결국 한계가 있는 챔피언이다.

서로 조합이 완성되면 리심의 힘이 빠진다.

암살을 한다거나.

원딜을 뻐엉-! 배달한다거나.

그런 변수 창출이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경기가 길어지면요. 리심의 플레이에서 자신감 뚝뚝 떨어집니다.〉

플레이의 리스크가 높아진다.

리심을 픽한 의미가 퇴색되고 만다.

반대로 Moss Club의 정글러 탈리반 3세.

성장이 밀리긴 해도, 후반에는 훨씬 할 게 많다.

커버를 다니다 보니 레벨링도 나름 되었다.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답답한 흐름이다.

-왜 안 싸움?

-개쫄보 LCK처럼 게임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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