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6화 (106/201)

상대 정글의 위치, 미니언 웨이브, 딜교환 과정.

킬각이라는 게 사람마다 다르긴 해도, 최상위권 기준에서는 어느 정도 공통된다.

특히 프로 레벨에서는 극명한 무리수는 안 둔다.

한 마디로 위험한 순간이 한정돼있다.

그 타이밍에 뒤를 봐주는 것이다.

전문 용어로 이를 '시팅'이라고 부른다

적절한 바텀 시팅으로 상대의 시도를 역으로 잡아먹었다,

─퍼스트 블러드!

아군이 적을 처치했습니다!

이 시팅을 정교하게 해내는 것.

최대한 동선 낭비 없이 하는 것.

게임의 판을 읽는 능력과 정밀한 설계가 복합돼야 가능하다.

'사실 정글러보다 코치가 잘하는 분야인데.'

입롤을 오지게 해야 되기 때문이다.

근거를 찾아 조리 있게 갈궈야만 한다.

정글러는 이를 자신의 재량껏 최대한 실현한다.

사무와 현장 정도의 관계일 것이다.

지금의 나에게는 의미가 없는 구분이다.

적절하게 게임의 흐름을 원하는 대로 조정한다.

「파멸의 비를 맞아라!」

람블의 궁극기가 나루를 노리고 쭉- 떨어진다.

어쩔 수 없이 빠지는 점멸.

포탑을 끼고 사리려는 나루를 향해 걸어가.

고오오오오!

얼음덩이를 톡 던지고 기를 모은다.

두두의 궁극기가 3초에 걸쳐 충전된다.

생존기가 빠진 빈약한 미니 나루는.

─적을 처치했습니다!

불쌍하리 만큼 처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어쩌면 한 방에 터져 고통이 없었을지 모른다.

이렇듯 균형이 무너진 라인에 결정타를 가한다.

'라인 주도권을 만들고, 시팅을 해주며, 숟가락을 얹는 교과서적인 두두 플레이지.'

자그마한 균열이 쩌적-! 번져나가게 만든다.

프로 레벨에서 좋은 정글러로 꼽히는 이유다.

솔로랭크에서 안 쓰이는데도 너프 먹는 이유이기도 하고.

S급 정글러들이 날뛰게 되는 차후의 일이다.

현재는, 특히 중국은 알아보기가 쉽지 않다.

잘한다는 건 보여도,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샤라라락-!

그보다는 가시적인 파괴력이 와 닿는다.

스펠을 빼주고 선취점을 먹여준 바텀 라인.

꾸준한 압박이 한 가지 필연을 만들어낸다.

모르피나가 속박을 적중시켰다.

점멸 궁을 연계해 상대를 묶었다.

그 위로 이즈레알의 궁극기가 무섭게 스쳐 지나가자.

─아군이 적을 처치했습니다!

더블 킬!

JCG 와야님이 학살 중입니다!

긴장감 넘치게 이어지던 교전.

이즈레알의 더블 킬 승리로 막을 내린다.

살결에 느껴지는 진동이 현장의 반응을 알려준다.

'그냥 죽여버리는 게 멋지잖아.'

라이트팬들 입장에서는 그렇게 받아들인다.

아무래도 좋은 일.

아군이 주목 받아야, 이후의 협상도 쉬워진다.

키울 만한 가치가 없는 선수들도 아니다.

JCG Games는 투자금이 어마어마하다.

돈을 들인 만큼 기본기는 받쳐준다.

전형적인 중국 선수들이다.

상대도 그렇게 유별날 것은 없다.

무난하게 라이너들이 개인기를 뽐내는 와중.

와구와구!

꾸준하게 이어지는 버프 컨트롤과 카정이 상대의 숨통을 조인다.

* * *

의아한 지적을 낳을 수밖에 없던 밴픽.

사실상 現JCG Games의 탑 에이스라고 평가 받는다.

그런 마왕이 두두 같은 픽을 했으니 어울리지 않을 만도 하다.

챔피언의 특성상 슈퍼 플레이가 나오기도 힘들다.

피지컬로 어떻게 비벼볼 수 있는 부분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에 띄는 존재감.

와구와구!

소환장의 전장을 동네방네 쏘다니고 있다.

정글을 해본 유저라면 그 짜증이 공감된다.

상대 정글 몬스터를 제 것인 마냥 먹어 치운다.

-10성의 흡성대법ㄷㄷ

-전설의 마공을 사용하다니

-대자연의 모든 기가 빨려 들어가고 있어……

-미친놈들ㅋㅋㅋㅋ

실력과 결과가 받쳐주면 밈은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두두가 할 수 있는 이상향.

그 정도까지는 라이트 시청자들의 눈에도 들어온다.

진짜는 고작 그 정도가 아니다.

괜히 카정 간다고 아군 귀찮게 만들면 역효과다.

카정과 동시에 각 라인에서도 압박이 이루어지고 있다.

샤라라락-!

이즈레알의 궁극기.

미니언과 함께 적들을 가로지른다.

무시무시한 기세로 미드 라인에서 견제를 퍼붓는다.

〈와야 선수의 스킬샷 적중률이 아까부터 너무 좋은데요?〉

〈이렇게 미드를 계속 압박하면 정글과 날개가 너무 편하죠!〉

이것이 의도된 설계인지.

단순한 라이너의 기량인지.

진품명품 판별해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해설자들 또한 1군이 아니다.

2부 리그에 해당하는 광저우 LDL이다.

이즈레알의 자극적인 딜이 더 눈에 와 닿는다.

─JCG 와야님이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라인전 단계에서 3킬을 먹은 이즈레알.

과감한 앞비전으로 결국 킬까지 따낸다.

그 찰과상이 치명적인 상처로 번져 나간다.

이미 정글 지역 장악이 끝났다.

바론 버스트를 할 근거가 충분하다.

그렇다 해도 판단이 느리면 자충수가 될 수 있는데.

─레드팀이 바론 백작을 처치했습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뿜어져 나오는 강팀의 면모.

그 상징은 여러가지 있지만 스노우볼이 결정적이다.

〈Moss Club이 시야가 하나도 없어서 먹히기 직전까지 몰랐던 것 같습니다.〉

〈갈 수도 없었죠. 아무래도 성장 차이가…….〉

물꼬가 막혀있던 이전 세트와는 다르다.

누가 봐도 줄줄 새고 있고, 무너지는 건 시간 문제다.

Moss Club은 버티고 있을 뿐, 보이는 차이 이상으로 처참하다.

피융!

이즈레알의 마법 화살.

한 대 스친 랙싸이의 허리가 휘청인다.

즉시 땅굴로 도망가지만 앞비전과 평타 한 방이 스치고.

샤라라락-!

정조준 사격이 지나가자 점멸이 빠질 수밖에 없다.

그 임팩트 있는 장면에 관중들의 환호가 쏟아진다.

지금껏 존재감이 가려져있던 선수들이 수면 위로 드러난다.

「파멸의 비를 맞아라!」

탑에서 잘 큰 람블도 마찬가지다.

미드 2차를 끼고 버티고 있던 상대.

그 위로 불바다 미사일이 아름답게 떨어진다.

펄펄 끓는 용암처럼 대지를 적신다.

그만한 표현이 과장이 아닐 정도다.

JCG Games 각 선수들의 활약이 눈에 띈다.

-이렇게 보니 강팀인데?

-마왕만 잘하는 게 아님

-그동안 저평가 당했네

-마교교주 휘하 4천왕ㄷㄷ

개인 기량을 유감 없이 뽐낸다.

주린 배를 움켜쥔다고 막을 수 있는 격차가 아니다.

첫 세트보다 훨씬 더 이르게 경기의 승패가 결정된다.

〈MVP는 와야 선수!〉

〈초반 라인전부터 쉴 새 없이 때렸습니다. 딜량이 미터기를 뚫었고, 충분히 받을 만하죠!〉

사실상 처음이다.

JCG Games의 MVP가 바뀐 건.

이전까지는 마왕의 리심이 1인 독주하는 체제였다.

정말 격이 다르다.

2부 리그에 있을 선수가 아니다.

갑작스레 웨이보에 화제가 되기에 차고 넘쳤다.

드디어 다른 선수들도 조명 받는다.

JCG Games의 향후 평가에도 직결된다.

상대하는 팀과, 팬들에게도 그렇겠지만 가장 절실했던 건 장본인이다.

"MVP 축하드립니다 와야 선수! 2세트 플레이가 평소보다 훨씬 매서웠어요?"

"제가 원래 공격적인 성향인데 드디어 본실력을 발휘할 수 있지 않았나……."

출세(出世).

분명 전세계인 누구라도 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의미에 대해 중국 사람들이 느끼는 바는 각별하다.

웬만한 선진국 국민은 출세를 안 해도 삶의 질이 보장된다.

그런데 중국은 대학 졸업생의 평균 초봉이 월 70만원이다.

일반적인 노력으로는 평생 삶이 나아질 수가 없다.

때문에 무슨 짓을 해서라도 성공만 하면 된다.

일련의 풍조가 사회 전반 깊숙이 만연해있다.

이를 이뤄줄 수 있는 단 한 사람.

'오?'

'와야 자식 MVP 꽁으로 받네.'

'나도 저렇게 밀어주면 캐리할 수 있는데…….'

JCG Games의 선수들은 생각이 바빠진다.

다른 이들은 몰라도 자신들은 안다.

정글러가 잘해도 너무 잘해.

언뜻 보기에는 바텀 캐리다.

하지만 그 실상은 정글러 덕이다.

킬을 먹고 잘 크자 활약하기 너무 편하다.

대책 없이 잘하라고 강요만 하는 코치들.

시원하게 결과를 내주는 팀의 에이스.

어느 쪽 코인을 타야 할지 명백하게 기운다.

* * *

「[광저우 LDL] 파죽의 4연승! JCG Gamses의 기세 저지할 팀 없어」

「[광저우 LDL] 플레이 변화 성공적……! 바텀 캐리 보여준 JCG」

연승과 함께 높은 관심이 이어진다.

JCG Games는 광저우 뿐만 아니라 중국 전체에서도 인지도가 점점 상승하고 있다.

가장 유력한 우승 후보로 자연스레 손 꼽힌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참가팀은 그 하나가 아니다.

상위권팀들은 다 준수한 경기력을 선보인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의 예상은 하나같이.

〈고점을 봤을 때 JCG를 이길 만한 팀이 없다.〉

〈정글 견제가 실효성 있는 전략이 될 수 있었지만 오늘 경기로 그 가능성도 낮아졌다.〉

JCG Games가 우승할 것이다.

JCG Games는 LPL에 올라갈 만한 팀이다.

기사 혹은, 개인 방송을 통해 소식들이 전파된다.

SNS와 커뮤니티의 반응도 마찬가지.

압도적인 경기력에 밈까지 더해진 결과다.

패배하리라는 그림이 현 시점에서는 그려지지 않는다.

─CC 고고라님이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하지만 희망의 불씨가 꺼진 것은 아니다.

개막전 패배와 함께 기세가 꺾였던 Team CC.

패배의 아쉬움을 씻어내며 다시 상승조를 그리고 있다.

〈고고라 선수가 갈수록 폼이 좋아지는데요? 플레이에서 깨달음이 느껴집니다.〉

〈전부터 생각했지만…… 밴픽과 경기력의 조화가 예술적인 팀이에요.〉

-코치가 잘해서^^

-샤오가 밴픽을 똑 부러지게 하지

-사악한 마교를 토벌할 수 있는 건 우리 정파 뿐이다!

두터운 기존 팬층의 지지.

JCG Games 대항마로 서서히 다시 주목 받는다.

왕쯔이를 비롯한 JCG Games의 코치진.

달라진 공기를 느낄 수밖에 없다.

팀 내에서 영향력이 점점 줄어든다.

"와야, 어째서 연습 스케줄대로 하지 않지?"

"창민형이 이게 더 낫다고 했는데. 코치님이 봐도 그렇지 않아요?"

"별반 다를 바 없다. 내 말대로 해라."

"알아서 하겠습니다."

"……."

선수들이 말을 안 듣는다.

물론 세세한 부분은 선수 재량이다.

하지만 불협화음이 생긴다는 것 자체가 별 일이다.

결국 작당을 하기에 이른다.

꼬투리를 잡을 것을 찾아낸다.

안 그래도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었다.

"사장님 뭔가 이상합니다."

"뭐가?"

"아니, 한국인이…… 우리말을 너무 잘합니다. 취두부 같은 음식도 먹어대고."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취두부는 중국 사람들 사이에서도 취향이 갈린다.

한국 사람이라고 무조건 홍어, 과메기, 청국장을 좋아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물며 외국인이 먹는다는 상상은 잘 안된다.

《전라도 사람이라면 먹어야죠.》

《자네 부모가 전라도 사람인가?》

《아니요.》

유명한 짤이 되어 돌아다닐 만큼.

이상할 수 있는 일이고, 의심이 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위장 취업이 아니냐는 극단적인 가능성까지 제기했는데.

"그래서?"

"네?"

"문제 있나?"

"한국 선수가 아니라면 문제가 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자네는 사업을 안 해봤어. 이런 사기라면 백이라도 환영이야."

"……."

수백만 위안, 억대의 돈이 움직인다.

선수 관리와 세금까지 포함하면 그 이상이다.

책정한 보수의 최소 배 이상은 깔고 들어간다고 보는 게 옳다.

구단주라고 어찌 생각이 없을까?

깊게 생각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만에 하나 우렁각시라도 환영하면 환영하지, 마다할 이유가 하나 없는 실력이다.

되도않는 의심으로 관계를 소원히 만들고 싶지가 않다.

그렇게 선을 그어도 다른 동아줄이 없다.

왕쯔이는 추하게 매달려봤지만.

"아니, 그래도 확인을 해봐야……."

"평소에도 중국을 아주 좋아했나 보지. 더 마음에 드는구만."

"……."

자기 나라 좋아하는 외국인을 싫어하는 현지인은 보통 없다.

그것도 확실히 보여준 게 있다면.

중국말도 잘하고, 중국 음식 잘 먹고, 하는 말까지 마음에 쏙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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