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오프 첫 번째 세트.
선취점이 나왔던 녹화 영상을 틀고 있다.
쿠! 챠앙!
탈리반 3세의 2렙갱이 매섭게 들어간다.
라인을 밀던 테러스티나는 그대로 당한다.
승패를 가른 가장 큰 요소였던 정글 차이다.
〈똑같이 역버프 해도 랙싸이는 무조건 3캠프 3레벨이라서 각 나오면 2레벨에 확! 찔러보라고 했는데 잘 먹혔던 것 같아.〉
-확?
-확ㅋㅋㅋㅋ
-확 찢어버려야지!
-젠부샤쓰! 샤오 신났네
코치 본인이 흥분할 만도 하다.
선수 스스로 하기는 힘든 플레이다.
객관적인 시점에서 요구해야 가능하다.
비단 결과론적으로 볼 것도 아니다.
중요한 건 결과가 아닌 과정이었다.
바텀이 초반 라인을 당겨 상대의 실수를 유도한다.
만약 잡지 못했어도 목적은 이룬다.
최소한 상대의 스펠은 뺄 수가 있다.
바텀 주도권이라는 거시적인 첫 단추가 꿰어진다.
〈미드가 죽은 건 아쉽지만……, 그래도 원하는 구도를 가져갈 수 있었어. 이후로는 우리가 쉽게 이기는 게임이었어.〉
-고작 그 정도로?
-샤오말이면 믿어야지
-게임 진짜 복잡하게 한다……
-그러니까 이긴 거잖아!
챔피언별 라인전 구도.
상대팀의 성격과, 선수의 습관.
기타 등등 여러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해석된다.
'정답은 없는 이야기지.'
상황에 따라, 선수에 따라 각각 달라진다.
구체적인 설명을 들어야 입감이 간다.
실제로 코치들 사이에선 잦은 화제다.
그런 이야기를 중국에서 들을 줄은 몰랐지만.
생각보다 능력이 없지는 않은 코치다.
그렇다고 많은 코치도 아니고.
〈와오신 선수가 초반갱이 날카롭긴 하지만, 우리도 지난 경기들을 토대로 충분히 대비를 했고 와드 위치만 이렇게 깔아주면…….〉
하지만 중국이다.
코치 불모지로 악명 높은.
시기와 위치를 감안하면 대단하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힘들다.
플레이오프의 승리를 엄청나게 기뻐하고 있다.
결승전의 각오와 의지도 불태우고 있다.
과거 순수했던 시절이 조금 떠오른다.
'그래봤자 결말은 정해져 있지만.'
생각이 많아지게 된다.
조금 화제가 되고 있다.
그도 그럴게 흔치 않은 일이다.
광저우 LDL의 플레이오프도, 이를 복기하는 코치의 방송도.
〈고르키가 주도권 가진 채 첫 귀환 타이밍만 잘 잡으면…….〉
너무나도 생소한 것이다.
특히 중국 유저들에게는 더더욱이다.
아니, 게임을 무슨 그리 복잡하게 하고 있어?
「?默已久」
2시간 전。
와……, 여자 롤잘알 첨 보네
「再?」
1시간 전。
챌린저들도 저렇게 복잡하게는 안 할 듯
「突然想起?」
1시간 전。
중남들은 이런 것도 몰라?
물론 아는 사람은 안다.
대부분의 유저들이 모를 뿐이다.
웨이보를 타고 입방아에 오르게 됐다.
그 파급력이 엄청난 수준까지는 아니다.
고작해야 지역 리그의 2/3위전.
하물며 진의를 이해하는 것도 쉽지 않다.
몇몇 게시글에서 논란이 된 정도.
그만하면 알 만한 사람은 알게 된다.
광저우 LDL 코치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솔직하게 놀랐다.」
「일부 억측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수긍할 만한 분석이다.」
「정규 시즌 경기 진행에 참고해볼 생각이다.」
긍정적인 반응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한 사람.
JCG Games의 왕쯔이 감독은 혀를 찬다.
'돈만 받으면 나도 그 정도는 해.'
조금 특이할 수도 있는 사고 방식이다.
일을 잘해야 돈을 더 받는 거 아니야?
중국 사람들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받은 만큼만 일한다.
일련의 풍조가 뿌리 깊이 박혀있다.
박봉인 코치는 당연히 일을 열심히 안 한다.
자신이 저렇게 안 하는 건 급여가 적어서다.
왕쯔이 감독은 그래서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안도를 의미하진 않는다.
'최창민만 없으면 실적을 인정 받는 건 우리 코치였어.'
다른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나보다 잘하는 사람의 것을 빼앗으면 된다.
중국 사회에서는 이러한 생각이 굉장히 보편적이다.
지나치게 많은 인구와도 연관이 깊다.
목소리가 큰 놈만 자기 권리를 챙겨간다.
과정보다는 결과, 이윤만을 추구하게 되었다.
"선수들에게 전달해."
"뭐라고 할까요?"
"일단 다 모여. 이야기는 내가 한다."
자신을 포함한 8명의 코치.
그들 사이에는 이해관계가 통한다.
서로 워낙 공감대가 깊게 형성돼있다.
『마(魔)』
자신들의 공로를 빼앗아가는 악마와도 같은 존재다.
실제 그 공로가 누가 한 건지는 중요한 게 아니다.
적어도 코치들은 빼앗기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하지만 선수들 입장에서는 다르다.
마왕 덕분에 자신들의 명성을 높일 수 있었다.
추구하는 실리의 방향을 한데 엮어 공동 전선을 펼친다.
"이건 위에서 직접 들은 사실이다. 시드 선발전이 끝나도 너희에게 떨어질 보상은 거의 없다."
""…….""
"억울하지? 이유는 그 빵즈 때문이다."
e스포츠 업계에서는 선수들의 연봉이 공개되지 않는다.
이는 상당히 복잡한 사업 관계가 얽혀있다.
회사의 수익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당연히 민감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다.
그 이전에 계약 서류에 명시가 돼있다.
가끔 기사를 통해 나오는 건 오피셜이 아닌 관계자 찌라시다.
"아니, 그렇게나 많이……."
"나는 그 반에 반에 반도 못 받아."
"뭐? 나는 그거의 또 반인데?"
아직 뿌리가 깊지 않은 업계.
괜한 분쟁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함도 있다.
그만큼 어떤 스포츠든 에이스에 대한 대우는 각별하다.
얼추 비슷하게 받겠지.
더 받는다 해도 별 차이는 없겠지.
JCG Games의 선수들은 충격을 받는다.
"그러니까 내 말만 따르면……"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간다.
왕쯔이 감독은 선수들을 설득한 자신이 있었다.
중국 사람은 중국 사람이 잘 아는 법이다.
물론 가장 큰 난관은 따로 있다.
구단주.
다른 모든 사람을 다 설득해도 마지막 한 명이 고개를 저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사장님도 아시겠지만……, 최창민과의 계약은 시드 선발전이 끝입니다. 정규 시즌에 쓰려면 계약 연장을 해야 하고, 성적을 근거로 더 많은 금액을 요구해올 게 분명합니다."
"흠……."
이 또한 설득할 방안을 모색했다.
결국 돈이다.
중국이라고 사람 대 사람의 신뢰 관계가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다.
'꽌시'에 한정될 뿐.
구단주는 최창민을 꽌시라고 생각한다.
그 단계가 아직 하오펑요우(好朋友), 좋은 친구에 해당될 뿐이다.
그냥 친구, 친한 친구, 부랄 친구 단계가 있듯 중국도 마찬가지다.
꽌시 또한 등급이 존재한다.
최소 라오펑요우(老朋友)는 돼야 배신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한다.
그 위는 결코 배신을 생각하지 않는 시옹디(兄弟).
삼국지에 나오는 도원결의가 바로 이에 해당한다.
당연히 웬만하면 성립되기 힘든 깊은 관계다.
중국인은 실리를 추구한다.
자신에게 이득이 된다면 극단적인 선택도 거리끼지 않는다.
일반적인 업종이 아닌 사업가라면 더욱.
'결승전만 어찌저찌 통과할 수 있다면 이쯤에서 관계를 끊는 게 나을 수도 있겠어.'
사업가이기에 저울질도 더욱 철저하게 따진다.
리스크와 리턴을 세심하게 비교해본다.
생각하면 할수록 나쁘지 않은 장사.
사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다.
돈을 쏟아부어도 LPL 진출이 불투명해.
그럴 바에야 몇백만 위안 정도 투자할 만하다.
조금 지나치게 대박이 터져버렸다.
이를 유지할 코스트가 너무하다.
일단 인센티브로만 240만 위안.
실상은 그 배 이상의 돈이 든다.
왜냐?
엄청난 세금에 더해 기타 관리금까지 포함되기 때문이다.
이를 건네고 또 추가 계약을 한다?
최소 1천만 위안(한화 17억원) 이상이 깨진다.
승산이 있다면 왕쯔이의 행태를 눈감아줄 수도 있겠다.
"당연히 대안이 있어서 하는 소리겠지?"
"있습니다."
아무리 사리사욕에 눈이 멀었다고 한들.
일반 코치도 아니고 헤드 코치, 감독이다.
자신이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건 괜한 오만은 아니다.
'류샤오, 그 녀석이 하는 걸 나라고 못할 리 없지.'
대략적인 계획은 코치진과 상의를 마쳤다.
이를 실현할 자신감도 가지고 있다.
상응하는 보수만 약속한다면 말이다.
"그래서 나머지 선수들은 얼마를 원하나?"
"어차피 2년 계약으로 묶인 선수들이고, 돈에 대해 잘 모를 나이입니다. 이 정도만 쥐어줘도 될 것 같습니다."
"흐음……."
중국에 간 한국 선수들의 연봉은 놀랄 만하다.
중국에서는 원래 그리 잘 받는구나?
착각할 만도 하지만 현지 사정은 그렇지 않다.
한국 선수들은 연봉을 많이 줘야만 온다.
웬만한 정도로는 올 메리트가 없기 때문이다.
기회 비용을 포함된 상당히 높은 몸값이 책정된다.
그렇지 않은 현지 선수들은 비교할 수 없이 싸다.
한국돈 3천만원도 못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JCG Games는 후한 편이지만 그래도.
'선수들, 코치들 약간 챙겨주는 정도로 후려칠 수 있다면야.'
어차피 줄 인센티브를 약간 더 올려주는 것으로 생색을 내 민심까지 잡을 수 있다.
연봉이 적을수록 세금도 적게 떼기 때문에 실질적인 지출도 훨씬 적어진다.
계산을 마친 사장은 헛기침을 내며 게슴츠레 왕쯔이를 바라봤다.
"창민은 어떻게 납득시킬 거지?"
"그것도 생각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좋아. 단, 나는 모르는 일이네. 자네 알아서 잘 처리하도록. 보고는 꼭…… 하고."
적극적인 협조는 아니다.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는 자세.
그럼에도 충분히 원하는 회답을 들을 수 있었다.
최소한 입막음은 되는 셈이다.
그것만으로도 계획에는 차질이 없다.
팀 내에서 최창민의 영향력을 축소시킨다.
"사장과 이야기는 하셨습니까?
"했다."
"어찌 되셨는지……."
"보수, 추가 보수에 대한 확답이 가장 중요합니다!"
왕쯔이가 구단주실에서 나오자 이미 기다리고 있다.
일곱 명의 코치.
계획에 관해서는 긴 시간에 걸쳐 이야기가 오갔다.
그들이 이렇게 한 뜻으로 모인 건 동질감만이 아니다.
가장 큰 건 역시 돈이다.
최창민에게 떨어질 수백만 위안을 자신들에게 돌린다.
"연봉의 30%. 대신 결승전 결과에 따라 연봉 협상이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쳇!"
"50%는 줄 줄 알았는데."
"사장은 돈도 많으면서 항상 우리에게는 인색하다. 인센티브만 받고 다른 팀으로 옮기던가 해야지."
중국인은 받은 만큼 일한다.
이는 주는 쪽과, 받는 쪽의 견해 차이가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이해득실에는 반드시 돈 얘기도 함께 오간다.
코치 연봉의 30% 인센티브를 약속했다.
그래봤자 채 2만 위안이 안되는 금액.
사장 입장에서는 별 지출이 아니다.
'나한테는 50%를 약속했지만.'
반대로 코치들에게는 꽤 큰 돈이다.
그 비율이 보다 높다면 더더욱이다.
남이야 아무래도 상관없고, 자신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는 이기주의가 팽배하다.
"그런데 그 빵즈한테는 뭐라고 설명할 생각이십니까?"
"정말 보통 내기가 아니에요. 한국 사람인지도 모르겠고……."
물론 목적을 이뤘을 때의 이야기다.
잇속에 눈은 멀었어도 어리석진 않다.
류샤오의 방송을 본 왕쯔이는 번뜩 떠오른 게 있었다.
* * *
시드 선발전은 굉장히 바쁘게 진행되었다.
하지만 마지막 결승전.
어느 대회든 1주일 가량의 준비 시간을 가진다.
나에게 있어서는 휴가나 다름없다.
최근 JCG Games의 경기력이 무난하다.
큰 변화나 선택 없이 이대로 컨디션만 유지해도 된다.
근데 그건 내 생각이고.
달리 생각하시는 분도 있는 모양이다.
한동안 잠잠하다 싶었다.
"코치진 회의 결정사항이다. 결승전 선발 엔트리에서 너를 기용하지 않기로 했다."
결승전을 이틀 앞두고 신박한 소리가 들려온다.
왕쯔이 감독.
간만에 표정에서 활기가 넘치는 게 보기 좋다.
"안색이 좋아지셨네요."
"……."
"그냥 그렇다구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