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일일이 정색을 해.
사실 전부터 이상 징후는 있었다.
최근 스크림 시간이 유독 짧게 잡혀있다.
그렇게 희한한 일은 아니다.
원래 중국팀은 스크림 시간이 짧다.
길게 된 팀들은 99%가 한국 코치들이 건의를 하루종일 때려서 바뀐 케이스 뿐이다.
'근데 그걸 감안해도 짧아졌어.'
나도 다 귀가 있다.
지들끼리 모여서 스크림을 한다더라?
열심히 한다면 좋으면 좋았지, 나쁠 것은 없다.
하지만 숨긴 의도가 명백하다.
구태여 자세하게 알아볼 필요가 없을 정도다.
오랜 기간 공들여 준비한 계획에 고춧가루 뿌리고 싶진 않다.
"이견이 있다면 지금 말해라."
"없는데요."
"뭐?"
"음~~~ 오모시로이! 알아서들 하세요. 화이팅!"
"……."
뭐, 지들이 하고 싶다는데.
내가 여기서 안 하고 싶다고 해도 북 치고 장구 치고 할 거잖아.
애초에 상정하고 있던 일이기도 하다.
'계약부터 이미 복선을 깔아 두셨잖아.'
예고편은 이미 보았다.
본편의 오프닝이 딱히 놀랍지는 않다.
실제로 한국 선수들은 가장 많이 당황하는 사태다.
어제까지만 해도 우리 친하게 지내지 않았어?
갑작스레 파벌이 갈리며 낙동강 오리알이 된다.
그 이유를 모르니 왕따라고까지 생각을 해버린다.
"우리가 너를 엔트리에서 제외하려는 건 상대 Team CC의 코치가 너에 대한 정보를 모았기 때문에……."
"어련히 생각이 있으시겠죠. 참새가 어찌 대붕의 뜻을 알리오리까. 그죠?"
"……."
중국인들은 실리를 추구한다.
자기 잇속을 위해 편을 갈라서는 일.
그렇게 드물지도 않고, 애초에 생각 안 하는 쪽이 바보다.
속는 쪽이, 당하는 쪽이 나쁜 것이다.
장사에서는 굉장히 흔하게 듣게 되는 논리다.
그것이 실생활에 뿌리 깊게 박혀있다고 보면 간단하다.
'결승전이 재밌어지겠네.'
물론 그것이 옳은 선택으로 작용할지.
그 답을 알고 있지만 말해줄 의리까진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모든 선택에는 리스크가 따른다.
특히 알량한 배신에는 더더욱.
광저우 LDL 시드 선발전.
정말 공교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분명 시작 단계에서는 가장 관심이 저조한 지역이었다.
하지만 어느새, 자연스럽게.
열두 지역에서 열리는 LDL 중 가장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그야말로 태풍의 눈이 되고 있는 팀.
〈16승 0패 조 1위! 잠룡의 출세입니다. JCG Games의 기세가 하늘을 찌릅니다!〉
등장하자 팬들의 환호성이 울린다.
잠룡(潛龍).
결승전 직행을 자랑하는 JCG Games의 별명이다.
현시점에서는 괜찮은 느낌이 됐지만,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의미가 전혀 달랐다.
돈은 엄청나게 쓰면서 성적은 못 거둬.
그래서 잠만 자는 용이라 놀렸다.
현재는 이견의 여지가 없는 용龍.
강팀이 되자 팀의 인기도 급상승했다.
물론 가장 큰 지분은 한 명의 선수에게 몰려있다.
〈지난 경기들의 하이라이트 장면들이 나오네요.〉
〈정말……, 리심 정점이라는 네 글자가 전혀 어색하지 않습니다.〉
시드 선발전이다.
정규 시즌보다는 간소하다.
하지만 대략적인 구색은 갖췄다.
지난 순위 결정전의 명장면들.
사실상 한 선수의 매드무비나 다름없다.
팬들의 탄성과 환호성을 절로 불러일으킨다.
-탈리반 3세도 수준급인데?
-교주께선 못 다루는 병기가 없지
-心劍의 경지를 이루셨네!
-컨셉충들 진짜ㅋㅋ
JCG Games의 유일한 한국 용병이다.
압도적인 개인 기량으로 먼저 주목 받았다.
리심을 마치 격투 게임하듯 미친 숙련도로 다룬다.
웨이보를 타고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마교 교주라는 독특한 이명까지 생겼다.
인지도 상승이 불이 붙듯 번지게 됐던 연유다.
하지만 이는 타 지역팬들 시선이다.
광저우 현지팬들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한국 선수가 싫어서, 혹은 유입팬을 배척해서라기 보다는.
와아아아아아-!
이견의 여지가 없을 정도다.
앞선 팬들의 함성이 잡아먹힌다.
플레이오프를 뚫고 올라온 Team CC.
광저우 지역팬들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다.
지역팀으로서 그 역사가 뿌리 깊다.
더욱이 악연이 알려져 있다.
JCG Games의 선수 빼가기.
기존 팬들 입장에서 반발 심리가 안 들 수가 없다.
광저우 LDL이 막바지에 접어들며 팬층은 둘로 양분되었다.
「?王殷?」
1시간 전。
개막전의 복수를 할 수 있을까?
「menu5i」
1시간 전。
지금 Team CC의 기세를 보면 충분히 가능해
「?竟我我科」
57분 전。
마지막에 이기는 자가 진정한 승자야!
근 1주일.
수많은 팬들이 두 팀의 결전으로 불타올랐다.
과연 마지막에 웃는 팀은 어디일 것인가?
〈기묘하면서 흥미로운 부분은, 사실 두 팀은 가장 먼저 만났었습니다.〉
〈무려 개막전이었죠?〉
경기 시작에 앞서 주요 포인트를 짚는다.
두 팀의 스토리 라인은 극명하게 색이 다르다.
글자 그대로 폭풍과도 같은 연승을 밟아온 JCG Gamees.
그에 반해 Team CC는 개막전 2패로 시작해 흔들렸다.
그 다음 난적 Light Gaming을 만나 1승 3패.
조 최하위권의 최악에 가까운 시작을 했다.
「버거킹!」
탈리반 3세의 궁극기가 한타를 개시한다.
결과는 좋았지만 투박하다는 느낌이 있다.
하이라이트 장면이 최신에 근접할수록 달라진다.
-와 한타력이……
-운영 잘하는 팀이 한타까지 잘하면 끝장이지
-이 단기간에 어떻게 저런 성장을 할 수 있었을까?
-코치 덕분이잖아!
안 그래도 LSPL에서 인정 받는 강팀이었다.
광저우 LDL의 과정에서 더욱 무르익는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역시 정파!
무협지에 나오는 클리셰다.
사파, 마교의 대척점에 해당한다.
정파 무공의 특징은 한 마디로 대기만성이다.
1. 무공 수련의 속도가 매우 느리다.
2. 엄청난 인내심과 끈기, 노력을 요구한다.
3. 하지만 절정에 이르면 사파와 비교도 안되는 위력을 가진다.
실제 Team CC가 성장해온 과정이 그러하다.
개막전은 물론 아쉬웠다.
하지만 대회가 진행되며 그 이상의 발전을 해냈다.
현재의 Team CC는 예전의 Team CC가 아니다.
정파의 무공을 대성한 이상 마교는 끝장이다!
팬들 사이에서 그러한 밈이 나오는 이유가 있는데.
〈아니, 이건…….〉
〈조금 의아함이 생기는 기용이네요. 물론 JCG Games도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겠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그 장본인이 출전하지 않았다.
명실상부 JCG Games의 슈퍼 에이스.
스토리 라인에서도 막대한 비중을 차지하는 선수다.
-교주님을 왜?
-JCG 코치 미침?
-카드를 숨기는 건가……
-카드를 숨긴데 결승전에서ㅋㅋㅋㅋㅋ
채팅창, 커뮤니티, SNS 가리지 않고 불똥이 튄다.
그만큼 의문을 낳을 수밖에 없는 결정이다.
하지만 왈가왈부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본인들이 그러고 싶다는데 뭐.
혹은 정말로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
쏟아지는 우려 속에서 일단 첫 세트가 막이 오른다.
* * *
굉장히 뜻밖.
아니, 상정하지도 않은 상황이다.
류샤오는 진심으로 당황해 눈을 꿈뻑꿈뻑 멍때렸다.
'왜?'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에이스를 쓰지 않을 이유가 없다.
JCG Games의 전력은 마왕의 비중이 매우 높다.
지금껏 교체 기용한 전력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갑자기 엔트리를 바꾼 이유가 무엇인지.
짐작 가는 게 아예 없지는 않다.
위협적인 선수인 건 인정한다.
때문에 특별히 칼을 박박 갈았다.
개인적인 원한도 있는 류샤오로서는 더욱.
'선수 분석이 되어있을까봐? 겨우 그런 이유는 아닐텐데……'
여러가지 가능성을 생각해봤지만 같은 코치로서 도저히 납득하기 힘들다.
결국 한 가지 가능성만이 남게 된다.
가장 생각하고 싶지 않은 가능성.
"샤오, 눈이 무서운데……?"
"괜찮아."
"괜찮길 바래. 이제 곧 시작이니까."
입술을 질끈 깨문 류샤오는 화를 다스렸다.
얕보고 있다.
1군으로 상대하지 않아도 이기리라 생각할 만큼.
자신이 겪은 최창민은 오만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이었다.
동시에 오만이 이해될 만한 실력을 가지고 있다.
이미 한 번 패배하기도 한 마당이다.
그려왔던 전략이 모조리 읽힌 듯했다.
때로는 정면으로 우습다는 듯 박살냈다.
하지만 패배에서 얻은 교훈이 지금의 Team CC를 만들었다.
'뼈저리게 후회하게 만들어주겠어.'
그 이유가 얕보는 것이든, 무엇이든 상관없다.
상대의 방심은 큰 기회가 될 수 있다.
다전제에서 초반 승점은 유효하다.
플레이오프 상대였던 Light Gaming.
온전한 상태에서 맞붙었다면 쉽지 않았다.
첫 세트 이후 기세가 무너진 덕에 완승을 거뒀다.
일련의 첫 단추를 꿰기가 더욱 쉬워진다.
에이스가 빠지면 밴픽도 훨씬 수월하다.
계륵 같은 리심에 대한 고민을 던다.
〈탈리반 3세를 잘랐네요?〉
〈Team CC가 정말 잘 쓰는 카드입니다. 실제로 결정적인 장면을 수없이 만들어냈죠.〉
하지만 생각이 있는 건 JCG Games도 마찬가지다.
지난 경기들을 토대로 대비책을 세어왔다.
그렇게 말하는 듯한 저격밴이다.
'상관없어.'
반대로 말하면 충분한 예상 내다.
자신들의 주력으로 주목 받은 챔피언.
견제를 당하거나, 카운터를 맞을 수 있다는 건 불 보듯 뻔했다.
다른 카드, 다른 전략.
이를 준비해오는 건 코치의 역할이다.
류샤오의 지도 하에 Team CC는 철저하게 원하던 게임을 펼친다.
와구와구!
두두가 빠른 정글링을 바탕으로 돌아다닌다.
그로 인해 JCG Games의 갱킹 시도가 무위로 돌아간다.
정말 사소하다면 사소한 차이.
〈두두가 항상 한 발이 빨라요?〉
〈거미여왕이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유통기한이 슬슬 압박으로 다가오겠습니다.〉
쌓이고 쌓이자 게임 전체 흐름에 영향을 주고 있다.
공격적인 조합을 택한 JCG Games는 답답하다.
반대로 Team CC는 초반을 무난하게 넘겼다.
토옹!
흐름이 넘어오게 된다.
두두의 눈덩이가 느릿하게 던져진다.
부시안은 생존기를 쓰며 대수롭지 않게 대처했으나.
「씹고! 뜯고! 맛보고! 꿰뚫고! 끄하하하하!」
어느새 은신한 토이치가 궁극기를 켜고 쏜다.
앞점멸까지 활용해 풀딜을 박아 넣는다.
좁게 본다면 갱킹, 혹은 암살의 영역.
─퍼스트 블러드!
CC고고라(토이치)님이 JCG 와야(부시안)님을 처치했습니다!
넓게 본다면 확실한 자신감이 묻어있다.
만에 하나 역갱을 맞아도 지지 않는다.
교전의 결과는 언제나 한 끗 차이다.
'좋아! 원하던 흐름에 올라섰어.'
그 한 끗 차이를 만들어낸 픽.
두두가 초반 라인전에 지대항 영향을 미쳤다.
조금 아이러니하게도 영감을 받은 건 마왕이었다.
팀 게임에서 활용이 괜찮더라?
그의 경기를 보고 깨달은 게 있었다.
한 발 더 나아가 시너지 있는 조합을 갖췄다.
〈한나와 두두의 버프를 받는 토이치가 이렇게 잘 성장해버리면…….〉
〈정면 한타로는 JCG가 쉽지 않아졌습니다.〉
에이스인 고고라의 캐리력에 힘을 더한다.
과정과 결과까지 이상적으로 흘러가고 있다.
물론 그것이 승리의 동의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제부터 실수만 안 하길 제발…….'
선수들이 경기를 치를 때.
코치가 할 수 있는 건 정말로 응원 뿐이다.
게임이 의도대로 풀려도, 비벼지는 재미가 있는 게 또 롤이다.
하지만 쌓이고 쌓인 경험치.
그 가능성을 올려주는 초반 설계.
두 가지가 합해진 Team CC의 경기력은 상정했던 이상이다.
─더블 킬!
트리플 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