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니저러니 해도 인센티브는 결국 승격을 해야 한다.
승격하지 못하면 계약금 60만 위안이 끝이다.
나로서도 살짝 배짱을 부리는 게 맞다.
근데 어느 쪽이 잃을 게 많을지 너무 자명하지 않나?
막말로 나는 여기서 져도 명성에 금이 0.1마이크로미터도 안 간다.
'기록된 전적이 16승 전승이거든.'
기용을 하지 않은 코치 지분이 99%다.
계약 시기도 오늘 결승전이 마지막이다.
이만한 배짱 싸움도 못하면 중국에서 돈 벌 생각은 말아야 한다.
"기존 인센티브에 60만을 더해 300만 어떤가?"
"4백.
"320!"
"4백."
"미치겠구만…… 좋아. 대신 반드시 이겨주게."
무엇이든 돈으로 통하는 나라.
그 원리만 알고 있다면 자연스러운 협상이다.
즉석에서 계약서가 오가며 추가 인센티브를 확정 짓는다.
'한국인은 4딸라가 국룰이야.'
작정을 했다면 더 받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도 그럴게 쫄리는 건 구단주니까.
하지만 잠재적인 적을 만들어서 좋을 건 없다.
이 정도가 명분으로 올릴 수 있는 마지노선이다.
계약금을 합하면 460만 위안(한화 8억원).
중국에서의 첫 선전을 기념하기에 나쁘지 않다.
"그런데 정말 이길 수 있겠지 선생?"
"글쎄요. 제 평판에 어째서 '무조건'이 들어가는지 알아볼 기회가 아닐까요?"
"오오……."
물론 이겼을 때의 이야기.
리스크가 높은 무대이기에, 화제성도 더욱 깊어진다.
이를 떠들어줄 스피커를 하나쯤 마련해두는 것도 괜찮은 선택이다.
* * *
발등에 불이 떨어진다.
그 시점을 지나 이미 모락모락 연기가 나 낯이 뜨겁다.
'제길…….'
벼르고 벼린 결승전의 결과가 0 대 2.
압도적으로 수세에 몰렸다.
선수 한 명 빠졌다고 밑천이 드러나고 있다.
패배의 지분이 누구에게 돌아갈지.
왕쯔이 감독이라고 모를 수가 없다.
물론 그것이 인정하다는 소리는 아니지만.
'출전 기회를 줬더니 겨우 그 정도밖에 못하고 무능한 것들.'
운이 나빴다.
선수들이 못했다.
그 이상은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
그보다 왕쯔이의 머릿속을 지배하는 건 이해타산이다.
결승전이 끝나고 자신이 어떤 처지에 놓일지.
구단주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는 그다.
'이미 돌이킬 수 없어.'
이제 와서 역전을 한다고 한들.
생돈을 쓰게 된 구단주가 가만 있을 리 만무하다.
연봉의 50%에 해당하는 인센티브는 고사하고, 목이 잘려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
최악의 경우 팀을 옮기는 것조차 힘들어질 수 있다.
무능의 표상.
구단주가 꽌시들에게 입을 털고 다니면 업계에서 낙인 찍히는 것도 순식간이다.
「밴픽 노트」
상대 주요픽: 탈리반 3세, 고르키-쓰렉귀
아군 주요픽: 리심-야흐오, 람블-탈리반
.
.
.
자신의 손아귀에 그 답이 들려있다.
만약 마왕이 나섰음에도 패배한다면?
상대가 강해서, 어차피 질 게임이었을 뿐이 될 것이다.
광저우 LDL 그 결승전.
정말로, 정말로 많은 의미를 가진다
금일 경기의 결과로 수십억 가치를 지닌 LPL 시드권이 오간다.
하아!
두 번째 세트의 하이라이트 장면이다.
경기의 승기가 뒤집히게 된 바로 그.
바론 앞 한타, 마라샹궈의 리심이 진입한다.
〈리심이 들어오는 순간, 고르키가 자연스럽게 부스터로 빠지면서 이미 Team CC에게 너무나 유리한 상태로 한타가 시작됐어요.〉
잘 큰 리심의 자신감이 독이 되었다.
그렇게 단순한 스로잉이라 볼 부분이 아니다.
실수가 생길 수밖에 없을 만큼 견고한 포지셔닝.
「얼려주지!」
그리고 각 포지션의 한타 이해도가 바탕되어야 한다.
리심과 교차하듯 진입한 얼음마녀가 존재감을 뽐낸다.
몰려오는 적진 한복판에서 궁극기, 조냐로 시간을 끈다.
그 사이 리심이 먼저 잡히자 구도가 확 달라진다.
무리하게 몰려온 JCG Games의 진영은 좋을 수가 없다.
글로벌 골드 차이를 뒤집고 한타를 이겨낸 근본이 보인다.
〈얼음마녀의 진입각도, 고르키의 침착한 프리딜도 예술이네요!〉
〈Team CC의 호흡 점검 시간이라는 느낌이 들 만큼 완벽한 한타였습니다.〉
해설진의 극찬.
결코 과장이 아닌 경기력을 선보였다.
5전 3선승제의 결승전은 벌써 2 대 0으로 Team CC가 일방적으로 리드하고 있다.
〈1세트는 완벽하게 고삐를 잡고 몰아친 게임이었잖아요?
〈그렇죠.〉
〈2세트는 예상치 못한 반격에 흔들렸지만 침착하게 재정비해 반격에 성공했고요.〉
〈그렇습니다.〉
〈각기 다른 모습으로 승리를 거머쥔 만큼 JCG Games의 고민이 심화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심지어 승리의 과정에서 약점이 나타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실수를 경기력으로 극복하는 모습을 보였다.
JCG Games의 돌파구가 점점 더 묘연해지는 가운데.
와아아아아-!
초죽음이던 JCG Games의 응원석.
갑작스레 회광반조하며 환호성이 쏟아진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짐을 싸는 관중들이 카메라에 보일 정도였다.
이러한 분위기의 변화는 팬들 스스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가능성을 보여줘야만 한다.
등장 하나로 온갖 기대와 각광, 희망을 불러일으키는 이유가 있다.
〈세트 스코어 2대0으로 Team CC가 앞서나가는 이 상황에 팀 프로필이 드디어 바뀌었습니다!!〉
해설자가 적나라하게 지적한다.
그만큼 그의 등장에 이목이 쏠려있었다.
대체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에이스가 나오지 않아.
-드디어?
-아니, 이제 와서……
-대체 왜 안 나왔던 거지
-주인공은 원래 늦게 등장하니까?
온갖 추측들이 오갔다.
그럼에도 짐작 가는 이유조차 없다.
팀이 벼랑 끝까지 몰리고 나서야 선수가 교체됐다.
「JCG Games - Substitution」
■ JGL 마라샹궈 -〉 JGL 마왕
하지만 그것이 경기의 승리로 이어질지.
결승전 시작 당시만 해도 그러한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현재는 상황이 달라져도 조금 심각하게 달라져서 문제다.
〈결과론적인 측면도 있지만, 아직까지는 JCG의 의중이 파악이 안돼요.〉
〈마왕 선수의 어깨가 무겁겠습니다.〉
사실 이런 교체 기용은 선수에게 엄청난 실례다.
그냥 실례도 아니고 엄청난 실례.
왜냐?
마지막 경기가 가장 인상에 남을 수밖에 없다.
구원 투수로 임했으니 관심 또한 쏠린다.
평소 기대 받는 선수였다면 더더욱.
작은 실수도 세세하게 관찰된다.
화풀이의 대상, 범인으로 몰리기 십상이다.
안 그래도 부담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밴픽조차.
〈탈리반 3세와 고르키-쓰렉귀…… 이러면 하체가 너무 완벽한데요?〉
〈Team CC는 이 조합을 가져가서 진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해설진이 대놓고 난색을 표할 만큼 의아하다.
지금껏 밴이 되거나, 나눠 가지던 1티어 픽들.
특히 Team CC가 잘 다루던 챔피언들이 대거 열렸다.
-밴픽 조졌네
-저걸 왜 다 줘?
-지금 0승 2패 3세트라는 걸 잊었나
-확신했어. JCG 코치 새끼들은 빡대가리야
물론 밴픽이라는 게 간단하게 볼 영역이 아니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관중석이 술렁인다.
밴픽을 이겨도 불안한데, 이렇게 불리하게 가버리면.
〈미달리? 탑미달리인가요?〉
〈지금 픽을 보면 정글 미달리가 유력해 보이긴 합니다.〉
그 난장판에 기름을 끼얹는다.
선수가 할 마음이 없어 보인다.
극단적인 추측이 오갈 만도 하다.
그도 그럴게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적어도 중국에서는 드문 일이 아니다.
밴픽이 산으로, 강으로, 우주로 가버리는 건.
-정글 미달리ㅋㅋㅋㅋ
-차라리 트롤하는 게 낫지
-JCG는 이길 자격이 없어
-大國을 욕 보이는 팀이다. 대신해서 사과한다
한국과는 달리 자유분방하다.
선수들이 불화를 일으킨다거나.
게임 내에서 이상 행동을 벌인다거나.
노골적인 사건이 잦다 보니 팬들도 안다.
아, 저 새끼들 게임 할 마음이 없구나?
픽과 플레이에서 보이기 마련이다.
물론 일반적으로는 비판 받는다.
아무리 중국이라도 지켜야 하는 선이 있다.
그 선을 넘는 것이 이해가 될 지경.
「二等兵」
37초 전。
JCG는 코치가 대가리가 없는 거야?
대체 무슨 생각으로 한 픽밴인지 모르겠다ㅋ
「人生不相?」
30초 전。
탈리반, 고르키, 쓰렉귀 1티어 픽을 죄다 줬어
어차피 진 게임을 열심히 해줄 필요가 있을까?
「UV^^_KING」
29초 전。
같은 중국인으로서 부끄럽다
한국 사람들 이 경기 보고 있다면 오해 말아줘
웨이보의 여론도 일방적으로 기울어져 있다.
중국인인 코치진이 오히려 쌍욕을 무더기로 먹는다.
자국우월주의가 팽배한 중국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지극히 이례적이다.
국적을 떠나서 롤유저로서 화가 단단히 난다.
1,2세트 다 조져 놓고, 이제는 밴픽까지 망쳐 놨다.
선수가 보이콧을 하는 것도 당연한 인과응보 아니냐?
─퍼스트 블러드!
그 흥분의 도가니를 깨고 의외의 승전보가 들려온다.
* * *
흔히 오해하기 쉽다.
'운영'의 이미지가 안 좋기 때문이다.
LOL팬들이 대회에서 가장 질색하는 것.
'근데 그건 글자 그대로 오해야.'
운영은 선수들의 공격성을 억누르는 게 아니다.
각 팀의 색깔, 선수들의 이해도, 그날의 컨디션 기타 등등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 있지만 기본적인 취지는 강한 타이밍을 살리는 것이다.
원하는 타이밍에 싸울 수 있도록 만든다.
Team CC는 그 운영을 잘하는 팀이다.
앞선 1,2세트의 경기력이 꽤나 훌륭했다.
1세트는 초반 주도권을 바탕으로 바텀을 성장시켰다.
반대로 말하면 약한 초반 타이밍을 잘 흘려 넘겼다.
때문에 이후의 교전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2세트는 초반에 다소 밀리기는 했지만.
'선을 확실하게 그었으니까.'
일방적인 손해를 보지 않았다.
무시할 수 없는 전투력도 유지했다.
그러다가 리심의 힘이 약해지는 시점에 일발 역전.
선수들 스스로 알아가기는 힘든 일이다.
개싸움이 일반적인 중국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그 버르장머리 없는 코치의 실력이 괜찮다는 증거다.
하지만 알아야 한다.
'운영'이란 동실력 하에서나 성립된다.
압도적인 무력 앞에서 세세한 잔재주는 무의미하다.
탁!
2레벨 카운터 정글.
상대 레드 지역에 대놓고 들어간다.
와드로 체크 했는지 이미 알고 있는 눈치다.
'그래서?'
평타로 탈리반 3세를 툭- 건든다.
멈추지 않고 따라가서 계속 건든다.
심기를 자극해도 상대는 방법이 없다.
원거리 대 근거리의 구도.
무작정 진입을 하기에는 리스크가 크다.
하지만 상대도 바보라서 맞아주는 게 아니다.
쿠! 챠앙!
적 미드가 미니맵에서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탈리반의 깃창이 그어진다.
맞았다면 위험한 상황이 연출됐을지 모른다.
'어림도 없지.'
막무가내식의 카정.
얼핏 그렇게 보여도 고난이도 설계다.
상대의 심기를 자극해 스킬샷을 유도하고.
탁!
타악!
점프로 피하며 지속적으로 카이팅한다.
적과 아군의 백업이 모여들고 있다.
깃창이 빠진 탈리반 3세의 운명은.
─퍼스트 블러드!
아군이 적을 처치했습니다!
아군끠즈?점멸을 사용한 끝에 결국 잡는다.
카정으로 만들어낸 강제적인 교전.
유유히 레드까지 챙겨 먹는다.
'억울하겠지.'
서로가 동레벨.
백업도 상대가 빨랐다.
질 이유가 하등 없어 보였을 것이다.
그런데 쌓이고 쌓인 평타 견제.
애매하게 안 맞은 스킬샷 하나.
그 작은 차이가 게임의 판도를 뒤집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