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7화 (117/201)

한국 사회는 보수적이다.

e스포츠 업계에서 쭉 일하고 싶으면 선을 지켜야 한다.

로쿠도쿠라던지 선 넘은 인간들이 좀 있다.

그런데 중국은 워낙 넓고, 워낙 크다.

광저우에서 일어난 일.

3,300km, 서울-부산의 10배 거리 떨어진 하얼빈에서는 모를 만하다.

과거 좀 세탁하는 게 어렵지 않다는 소리다.

─JCG 마왕(구리가스)님이 CC 창유(탈리반 3세)님을 지목!

알고 있었던 만큼 대비 또한 해두었다.

딱히 유별난 계획을 세운 게 아니다.

그냥 평범하게 찍어 누른다.

투웅!

배치기 점멸.

알고도 반응하기 힘든 콤보다.

눈치를 보고 있던 탈리반 3세가 날벼락을 맞는다.

─아군이 적을 처치했습니다!

이랠리야의 칼 같은 호응이 더해진다.

점멸을 써도 이미 살아나갈 수가 없다.

상대 입장에서는 어처구니가 없을 킬각이다.

'듣도 보도 못했을 테니까.'

구리가스 정글.

이때만 해도 정글로 쓰이지 않았다.

미래의 지식을 선점하고 있기에 별 일은 아니다.

당하는 입장에서 별 보는 일인 거지.

배치기-점멸의 강제 킬각.

상대의 대비를 묵살하며 갱킹을 성공시킨다.

촹!

촹!

탑라인 구도가 확- 달라진다.

이랠리야가 미니언을 타며 압박한다.

킬을 먹은 덕에 라인전이 탄력 받는다.

'물론 이 게임의 요지는 결국 바텀이지.'

상대의 조합이 그러하다.

전형적인 원딜 캐리 조합이다.

물론 이를 파훼하는 방법이 있다.

상체를 터트리고 굴린다거나.

하체를 똑같이 봐줘 이긴다거나.

그런데 현재 게임은 두 가지를 다 해야 한다.

'밴픽이 또라이거든.'

코치 시절에 이런 밴픽 봤으면 연상이든 나발이든 그 코치 멱살 잡았을지도 모른다.

농담이 아니라 나는 진짜로 해버린다.

선수들이 불쌍하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그 불쌍한 게임을 하고 있다.

상체가 워낙 불안한 챔피언 뿐이다.

그에 반해 상대는 갱호응까지 좋다.

어찌저찌 상체를 터트려줘도 문제다.

적 정글이 거미여왕이라 대각선의 법칙이 너무 쉽게 이루어진다.

게임 구도 자체가 아예 맛이 갔다.

─아군이 당했습니다!

개개인의 월등한 실력이 전제가 된 것도 아니다.

야흐오가 벌써 다이브를 당해 죽었다.

솔로킬로 인한 스노우볼이다.

'재밌잖아.'

밴픽이라는 게 분명 정답은 없다.

얼핏 보면 아무거나 가져 놔도 비슷하다.

하지만 프로 대회는 생각 이상으로 정교하게 굴러간다.

고작 중국 2부 리그에서 이런 고찰을 하게 될지는 몰랐다.

그만큼 상대를 인정하고 있다.

그렇기에.

─JCG 마왕(구리가스)님이 CC 창유(탈리반 3세)님을 지목!

최대한 처절하게 때려 부순다.

라인을 몰아넣고 두 다이브.

거미여왕은 미드에서 턴을 소비했다.

단순한 동선 및 위치 예측이다.

물론 예측을 한다고 다가 아니다.

탈리반 3세는 생존기가 우월하다.

아래쪽으로 빠져나가려고 한다.

우물에서 거미여왕이 오고 있을 것이다.

합류한다면 실패 내지, 갱승이 되겠지만.

쿠! 챠앙!

투웅!

LOL이라는 게임은 '판정'이란 개념이 있다.

그 판정에 따라 챔피언의 티어가 갈리기도 한다.

탈리반 3세의 깃창은 분명 손가락에 꼽힌다.

'하지만 구리가스의 배치기는 그냥 1등이라.'

더욱이 너프도 받지 않은 현재 시점.

선판정이 후판정을 이겨버릴 지경이다.

두터운 뱃살에 깃창 돌진이 끊기고 만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본래라면 안정적이었을지 모를 탑라인 구도.

강제로 뚫어내며 첫 단추를 꿴다.

* * *

Team CC의 부스 안.

아무리 보일러가 작동하고 있다고 해도 한겨울, 경기장 내 온도는 추울 수밖에 없다.

선수들이 일회용 핫팩을 손에 달고 사는 이유이기도 하다.

똑.

그럼에도 얼굴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다.

고무된 감정, 눈에 핏줄이 설 정도의 집중력.

그만큼 경기에 임하는 자세부터가 필사적이다.

"다이브 해?"

"정글 위치는?"

"위쪽이야. 확실해!'

높은 집중력에서 기인한 날카로운 판단이다.

순식간에 의견을 정리하고, 실행에 옮긴다.

거미여왕이 폭탄 거미를 풀며 앞장선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더블 킬!

JCG Games의 바텀은 격렬히 저항했다.

하지만 바톤처럼 주고 받는 포탑 어그로.

실수 없이 확실하게  다이브를 성공시켰다.

그 의미는 결코 적지가 않다.

게임의 승패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미드가 이미 잘 컸을 뿐더러, 원딜까지 풀리면.

─아군이 용을 처치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용쪽 주도권을 가진다.

운영에 있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용 숫자가 밀리지 않으면 여유가 생긴다.

파아아앙-!

미드 라인.

어처구니 없는 광경이다.

술통 폭탄이 랄라의 뒤통수를 가격한다.

─아군이 당했습니다!

JCG 마왕님이 학살 중입니다!

상정을 했음에도 눈 뜨고 당해버렸다.

마왕이 또다시 가져간 독특한 픽.

구리가스가 미쳐 날뛰고 있다.

"점멸 아끼고 죽었어."

"잘했어."

"라인은 내가 막을게."

하지만 이전 세트처럼 큰 압박은 아니다.

더욱이 챔피언의 한계도 명확하다.

AP도 아닌 탱커 구리가스.

정글은 아니어도 탑으로는 간간히 쓰인다.

그런 만큼 챔피언에 대해 안다.

경기는 명백히 유리하다.

"우리는 이대로 성장만 해도 돼. 절대 조급해 하지 마."

주장 겸 메인 오더, 정글러인 청윈이 방향을 말한다.

속도의 문제일 뿐, 승리 플랜은 이미 실행되었다.

경기는 의도했던 대로 착착 풀려나가고 있다.

LOL은 팀 게임이다.

전원이 잘 성장할 필요가 없다.

방향만 맞는다면 승리라는 결과에 도달한다.

원딜러의 성장이 가히 만족스럽다.

상대가 내세울 건 사이드 주도권 뿐이다.

그마저도 크게 밀리지 않을 수단을 가졌다.

챠라랑!

텔레포트를 든 랄라가 바텀으로 내려간다.

한 번 죽기는 했으나 성장은 잘돼있다.

라인 관리라는 목표를 이룰 수 있다.

그리고 진짜는 본대.

차근차근 시야를 장악해간다.

원딜러가 편하게 성장할 환경을 조성한다.

토이치가 3코어만 완성돼도 질 수가 없다.

상대팀 브루저는 그리 위협적이지 않다.

그 예상이 틀렸다고 보기는 힘들다.

투웅!

상상도 하지 못했을 뿐.

미드 라인 3 대 3 대치.

결코 위험천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구리가스가 갑자기 점멸로 들어왔다.

화면의 절반 이상을 순식간에 좁힌다.

문제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파아아앙-!

배치기에 이은 술통 폭탄.

점멸을 쓸 잠깐의 틈도 없다.

그대로 배달 당하며 적진에 떨어진다.

─아군이 당했습니다!

어떻게 살리는 게 불가능했다.

토이치가 어이 없는 죽음을 당한다.

Team CC는 고작 그 하나로 손발이 묶인다.

원딜 중심 조합이 가진 약점.

원딜러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한다.

사이드가 부랴부랴 합류해도 포탑이 나가는 것은 정해진 말로다.

"방금 반응할 수 없었어?"

"아니……, 점멸 계속 눌렀는데 안 나갔어."

챔피언 자체는 지극히 익숙하다.

그러나 방금 전 콤보는 듣도 보도 못했다.

스펠도, 서포팅도 충분함에도 생존각이 없었다.

이걸 대체 어떻게 살아?

당하는 입장에서 말이 안된다.

해답이 있다면 알고 싶지만 경기는 진행 중이다.

─포탑이 파괴되었습니다!

운영의 중심인 미드 1차와, 깨끗하게 지켰던 바텀 1차가 동시에 나간다.

그려왔던 승리 플랜에 금이 간다.

불합리한 처사가 목을 죈다

LOL이라는 게임에서 판정은 중요하다.

때로는 상·하향보다 훨씬 더 의미를 가진다.

배치기나 깃창의 판정 같은 것도 그런 부분 중 하나지만.

'그런 건 사실 플레이로 극복이 가능한 수준이고.'

OP라고 느끼는 거지, 사기인 것은 별개의 문제다.

소소한 능력치는 상황에 따라 조정하면 된다.

그 정도로 안 끝나는 이야기도 존재한다.

투웅!

배치기가 거미여왕에게 작렬한다.

스턴이 풀리기 전에 궁극기.

이렇듯 붙어서 써버리면.

파아아앙-!

대응이 아예 불가능하다.

아군 쓰렉귀 쪽으로 배달된다.

CC기가 연계되며 이즈레알이 잡는다.

─아군이 적을 처치했습니다!

가볍게 1킬을 먹여준다.

얼핏 단순한 킬 캐치 같다.

그 실상은 억울함이 섞일 만하다.

? 구리가스

R - 술통 폭탄

착륙 시간이 필요합니다! - 거리에 따라 0~0.58초 ⇒ 0.55초 고정

차후에는 반응이 가능해진다.

배치기를 맞아도 점멸이나 생존기를 광클하면 0.05초 차이로 산다.

하지만 현재 시점에서는 배치기-궁극기가 필중이다.

'이 사기성이 대두되고 나서야 너프된 거니까.'

흔히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저런 세세한 조정은 무엇을 기준으로 할까?

프로씬에서 반응 유무를 보고 아슬아슬하게 맞춘다.

실제로 선수들에게 조언을 받는다.

이건 아예 대처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악명 높은 사기 판정을 경기를 이기는데 써먹는다.

물론 그 각이 언제나 나오는 건 아니다.

점멸의 쿨타임은 5분.

5분마다 1킬 내자고 구리가스를 픽했을리 없다.

"R만 잘 눌러."

"네……."

면목이 없다는 대답이 들려온다.

뭐, 여러가지 할 말이 없긴 할 거다.

아무리 뻔뻔한 중국인이라도 정도는 있겠지.

'중국에서 이 정도면 개념이야.'

아무튼 상대의 조합은 견고하다.

방금처럼 막무가내로 뚫기가 힘들다.

아군의 실력이 믿음직스러운 것도 아니니 당연하다.

파아아앙-!

이를 강제적으로 뚫을 계책.

계책이랄 것도 없다.

단순하게 정교한 스킬샷을 요구할 뿐.

그리고 상대가 이에 대해 방심할 뿐.

LOL에는 시너지 조합이라는 게 있다.

가두고 뿌리는 탈리반-람블

무한 스턴의 셀줄아니-브라운

강제 다이브의 네네톤-거미여왕

그중에서도 가장 악명 높다.

야흐오가 가진 한계를 깬다.

전략적 가치가 수직 상승한다.

「우리에게 돈!」

본래라면 사용하는 것부터 제약이 많다.

그런 야흐오의 궁극기가 즉발이다.

술통 폭탄으로 3인 에어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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