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0화 (120/201)

바텀 듀오의 귀환을 체크한 Team CC는.

〈바론 쳤어요!〉

〈일단 모르고 있습니다. 아직 들키지 않은 것 같거든요?〉

몰래 바론을 실행하고 있다.

일발역전으로 통하는 최고의 수.

성공만 한다면 역전승도 꿈이 아니다.

그만큼 어려운 일인 게 사실이다.

상대라고 넋 놓고 내줄 리가 없다.

도박이 아닌 해볼 만한 노림수였다.

"와드 박혔다. 뺄까?"

"아니야. 쟤네 멀어."

"버스트 해 버스트!"

상대의 합류가 한참은 걸린다.

바론은 거의 잡은 상태다.

변수가 있다면 단 하나.

「여긴 내가 다스린다!」

정글을 마크하기 위해 쓰렉귀가 희생한다.

점멸로 바론 벽을 넘었다.

궁극기를 깔며 농성한다.

아주 잠깐만 버티면 되는데.

하아!

음파를 적중시킨다.

와드 방호로 접근한다.

쓰렉귀를 차버린 채로 날아간다.

─레드팀이 바론 백작을 처치했습니다!

마치 스케이트 보드처럼.

잠시간의 정적.

리심은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

─CC 시앙(랙싸이)님이 JCG 마왕(리심)님의 대량 학살을 종결시켰습니다!(추가 골드 : +500G)

너무나도 싸게 먹힌다.

이런 죽음이라면 몇 번이라도 환영이다.

모든 정글러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것이다.

〈마지막 희망이…….〉

〈리심의 막대한 제압 골드도 위로가 전혀 안됩니다!〉

마지막 한 번이었을 수 있는 기회.

그조차도 단호하게 허락하지 않는다.

아무리 시도가 좋았어도 결과가 나쁘다면.

─블루팀의 포탑이 파괴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결승전  마지막 세트라면.

기울어져 있던 경기에 종지부가 찍힌다.

키잉-!

날카롭게 맞은 스킬샷.

그리고 빠른 판단의 획일화.

좋은 코칭 하에, 오래 훈련 받은 팀들만이 가질 수 있는 특징이다.

이는 한타에서 엄청난 강점으로 작용한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해버린다.

쓰렉귀의 선고가 적중하자 망설이지 않는다.

「얼어붙어라!」

선고에 걸린 르풀랑을 놔주지 않는다.

얼음마녀의 궁극기가 칼같이 연계된다.

그 위로 포격이 쏟아지자 어쩔 수가 없다.

─CC 고고라(고르키)님이 JCG 클리버(르풀랑)님의 대량 학살을 종결시켰습니다!(추가 골드 : +432G)

만약 딜 집중이 조금만 덜 됐다면.

분신과 스펠 활용으로 살아나갔을지 모른다.

빨려 들어가는 구도가 되며 한타 대패로 이어졌을 것이다.

이상적인 팀호흡 덕분이다.

불리한 상황에서 역전의 발판을 만들어낸다.

상대가 웬만한 수준이었다면 분명.

이~쿠우!

어느새 리심이 파고들어 왔다.

별 생각 없이 대충 차는 것 같음에도 각도가 절묘하다.

점멸로 날아간 랙싸이가 고르키를 띄우고.

「퇴각을 저지하라!」

이랠리야가 미니언 웨이브를 타고 들어간다.

그것만으로도 진영이 완벽히 무너진다.

한타 구도가 극명하게 불리해진다.

리심이 합류하지 않는다 해도 말이다.

유유히 구경하며 한 때.

쿨타임을 기다린 음파로 재진입한다.

─아군이 당했습니다!

적 쿼드라 킬!

전설의 출현! JCG 마왕!

적팀의 주요 딜러를 자르고 시작했다.

포탑도 채 무너지지 않은 상황이었다.

할 수 있는 최대한을 했다고 봐도 무리가 아니다.

그럼에도 속수무책이다.

JCG Games가 고삐를 늦추지 않는다.

쌍둥이 포탑이 무너지고, 넥서스가 깨질 거라는 미래가 자명해진 시점에.

'…….'

류샤오는 덤덤하게 지켜보고 있다.

이제 와서 피드백거리를 찾을 리 없다.

당연히 하기는 하겠지만, 그런 이성적인 판단은 우선 순위가 밀린다.

감정의 격분, 분하다.

그 분함의 이유는 패배 때문이 아니다.

패배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실력에서 밀렸다?

전략에서 손을 못 썼다?

하다 못해 게임이 말려서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 어느 것도 아닌 단순한 농락이었다.

지금까지 해온 노력을 부정 당한다.

단 한 사람을 극복하지 못한다.

'단 한 세트만 이기면 됐는데…….'

단 한 걸음만 내디디면 달라졌다.

솔직하게 욕심이 없다고는 말하기 힘들다.

과정도, 노력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결과를 위함이다.

돈, 명예, 지위.

우승한다면 모든 것을 손에 넣는다.

하지만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따로 있었다.

자신들이 있을 장소.

우습게도 들릴 수 있는 소리다.

대부분의 중국인은 이를 가지지 못했다.

조금 과하게 말하면 중국인의 삶은 배우와도 같다.

빛나는 주연과 이를 받쳐주는 조역.

그리고 대다수에 해당하는 단역.

단역으로의 삶은 고달픈 수준이 아니다.

올라가기 위해 무슨 짓도 서슴지 않는 사람들.

오직 돈만을 따지는 사회 풍조는 여기에서 비롯됐다.

자신은 그에 순응하고 싶지 않았다.

정말 정직하게, 또 정직하게 노력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돈만을 따지는 외국인 한 명에게 무너졌다.

'저 사람에게는 정말 아무것도 아닐지도 모르지만…….'

수많은 중국인들이 도박에 돈을 탕진한다.

모 아니면 도.

도박이 나쁘다, 아니다 이전에 그만큼 절실하다.

그 정도가 아니면 어차피 평생 단역이기 때문이다.

인생에 단 한 번 찾아올까, 말까 한 도전이다.

다음 기회는 결코 약속되지 않는다.

'부족하긴 해도 행복한 시간이었어.'

팀의 해체는 불가피하다.

우후죽순 생기는 팀들에 밀려 도태된다.

하지만 아쉬움을 삼키는 건 자신만이 아니다.

─아군 포탑이 파괴되었습니다!

마지막 경기가 마무리되어 간다.

류샤오는 훔쳤던 눈물을 조용히 닦아낸다.

* * *

결승전의 우승.

당연한 것이다.

그로 인해 야기되는 보상도 마찬가지다.

"우리 JCG Games도 차기 시즌부터는 당당한 LPL팀으로 합류할 수 있게 되었어. 이게 다 선생 덕분이야."

"저라는 인재를 알아보신 구단주님의 안목 덕분이죠. 입금은 혹시 오늘 안에 되나요?"

"하하! 이미 보내 놨으니 걱정 말게. 뭣하면 지금 확인해보고."

대뜸 보수부터 물어보는 건 실례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곳은 중국이다.

돈 얘기를 꺼내는데 거리낄 게 없다.

이 나라의 모든 원리는 돈으로 시작해 돈으로 끝난다.

그런 점에서는 오히려 편한 감이 있다.

확인해보니 400만 위안, 약 7억원 가량이 추가로 입금됐다.

"자네들은 알아서들 회식해. 많은 일이 있었지만 오늘은 아무래도 좋아. 모든 고민이 장강의 물결에 떠내려간 이 날에 다른 고민을 만들어서는 안되겠지."

"……알겠습니다."

"선생은 별 일 없으면 나랑 가세나!"

물론 모든 일이 수월하게 풀린 건 아니다.

잔뜩 죽을상이었던 코치가 회광반조한다.

구단주 입장에선 크게 대수롭지 않은 듯하다.

사실 나한테도 딱히 별 일은 아니라서.'

남을 조지는데 의미를 두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이미 가장 큰 벌은 스스로 받고 있을 것이다.

별다른 계기 없이 일평생 그렇게 살아간다.

삶의 태도를 바꾸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죗값이라 생각한다.

구단주를 따라 경기장 밖으로 나선다.

지난 번과 달리 꼭 가야 하는 곳인지 따질 필요도 없다.

"저번의 그곳인가요?"

"어허! 오늘이 어떤 날인데 훨씬 좋은 곳에 가야지. 암, 그래야 하고 말고."

명백한 차별이라면 차별이다.

하지만 그리 드문 일도 아니다.

중국은 공산주의 나라.

모두가 평등한 이상향을 생각하기 쉽지만 실상은 한국에서는 상상도 하기 힘든 격차 사회다.

'물론 한국도 넓은 의미에서는 크게 다르진 않은데.'

돈이 많은 부자.

권력에 찌든 정치인.

사회가 정해주는 지위가 있어도, 그것이 실생활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진 않는다.

그런 사람들도 일반인들에게 갑질 한 번 했다가는 SNS 타고 인생 좆될 수가 있다.

중국에서는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을 뿐이지.

선수들, 그리고 코치들과 헤어져 구단주와 둘이 굉장히 비싸 보이는 식당에 왔다.

"음식은 맛있네요."

"그렇지? 사실 말이야. 이곳은 아무나 올 수 있는 곳이 아니야. 나 같은 VIP의 소개가 아니면 입장도 할 수 없거든. 선생도 오늘부터 올 수 있게 됐구만."

"구단주님을 따라다니니 한국에서는 맛볼 수 없는 산해진미를 다 경험합니다."

"크크크! 중국이 세계 모든 음식의 기원이라는 사실이 이제야 입감되나?"

틀린 말은 안 했다.

적당한 비위 맞춰주기다.

이런 식당이 중국에나 있지 다른 나라에 또 있겠어?

실제로 맛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전세계 어느 나라에 가든 일정 이상 금액이 넘어가는 코스 요리를 시키면 맛이 없을 수가 없어.'

호불호 이전의 퀄리티를 내놓기 때문이다.

듣도 보도 못한 음식이 어디서 먹어본 듯이 맛있다.

사치와 향락을 누리다 보면 사람들이 어째서 돈에 그리도 집착하는지 조금은 알게 된다.

주채(主菜), 메인 디쉬 격으로 나온 광둥식 랍스터의 속살이 탱글탱글하다.

그러면서도 입에 넣자마자 녹듯이 사라진다.

이렇듯 의미가 없다는 것 또한.

"내가 없는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참……. 선생이 오늘 고생이 많았네."

"출전을 안 시켜주더라고요."

"그놈들이 무슨 작당을 했는지는 몰라도 싹 잊고 만찬을 즐기세나!"

댁은 왠지 알 거 같은데.

아무튼 신경을 안 쓰는 건 아닌 모양이다.

당장 살아남기는 했지만 앞길이 순탄치는 않아 보인다.

'나한테는 딱히 별 일이 아니라서 관심은 없지만.'

만약 LCK 코치진이 그랬으면 화가 났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중국은 전반적으로 다 무능하다.

걔네들이 특별히 더 무능한 게 아니다.

무슨 일이든 상대적인 것.

사장 말대로 일도 잘 풀렸으니 앙금이 남아있진 않다.

하지만 앙금이 남은 이야기도 있는 듯하다.

"그 독한 연놈들을 더 이상 볼 일이 없어졌다는 게 오늘 대회의 가장 큰 수확이야."

"Team CC 말이죠?"

"그래! 나의 호의를 거부한 거렁뱅이들이지."

사정은 대충 알고 있다.

나도 귀가 있고, 업계 사정을 안다.

실제로 본인한테 들은 바가 있기도 하다.

'안타까운 일이지.'

중국에는 엄청나게 많은 신규팀들이 탄생하고 있다.

기존 팀들에 대한 후원도 보다 막대해지고 있다.

그 과정에서 소외되는 팀들은 당연히 생긴다.

'꽌시'로 엮이지 않은.

밑바닥부터 실력만으로 생존해온 팀들은 맛있는 먹잇감이다.

해체하여 먹기 좋은 부분만을 골라 담는다.

"이게 그 유명한 북경 오리인가요? 껍질이 바삭할수록 최고로 친다고 들었는데."

"아니지! 이것이야 말로 원조야. 세간에 알려진 카오야는 이 샤오어의 짝퉁일 뿐이네."

중국인이 짝퉁을 얘기하니까 약간 좀 묘하긴 하다.

오히려 짝퉁 사회인 중국이기에, 더욱 집착하는 감이 있다.

과거 명나라가 베이징으로 천도할 때 요리사들을 데리고 간 게 북경 오리의 시작이라나 뭐라나.

'거위로 만들면 샤오어고, 오리로 만들면 카오야인 거네.'

여하튼 맛있으니 됐다.

껍질이 쫀득하면서도 바삭하다.

맛이 없을래야 없을 수가 없는 산해진미를 대접하는 이유.

"선생은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인가?"

"뭐, 중국에서 계속 활동할 생각입니다만."

"그러면 말일세……. 내 지인 중에 자네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이 있거든?"

당연히 돈이다.

계약금과 인센티브를 더해 460만元.

세금과 기타 공적 자금을 포함하면 실제 경비는 그 배를 넘는다.

'1년 예산 5000만 위안의 1/5를 벌써 써버린 셈이니까.'

추가 계약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놔주기에는 워낙 큰 대어(大魚).

구단주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애초부터 알고 있었다.

알고서 이용한 것이기도 하다.

꽌시, 중국 사람들의 인맥 사회를 뜻한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이는 개인과 개인간의 관계로만 볼 게 아니다.

"지인분도 팀을 운영하시나 보죠?"

"청두의 KF eSports라는 팀이지. 플레이오프까지 진출은 했는데 상대하게 될 한국 선수가 위협적인 모양이야."

"오~ 상대가 엄청 강한가 보네요."

"자네도 들어는 봤을 거야. 안섹이라고."

안섹킥의 창시자라면 모를 수가 없지.

요지는 간단하다.

팀을 소개해주고, 이적료를 챙기는 것이다.

'대충 그런 개념이지.'

오늘 경기의 승리.

아니, 그 이전부터 화제가 되었다.

광저우 뿐만 아니라 중국 전역에 이름이 퍼지고 있다.

언급을 안 했을 뿐 접촉해온 프론트도 제법 있다.

당연히 템퍼링 위반이지만 중국이다.

크게 개의치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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