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2화 (122/201)

가서 엄청 잘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의, 한국 선수의 위상을 드높인다.

합법적인 국뽕은 허용 범위 내에서라면 취할 만하다.

이~쿠우!

특이하기 그지없는 챔피언 활용.

아무거나 해도 이겨버리는 실력.

더욱이 중국인들이 그리도 좋아하는 무술인이다.

─쿼드라 킬!

전설의 출현! JCG 마왕!

마교 교주라는 이명이 농담 같지가 않다.

리심의 플레이가 신들린 수준을 넘어섰다.

바론을 스틸하고, 후반 한타까지 캐리해버린다.

보는 이를 한눈에 매료시키는 스타성.

이슈가 되지 않는 것이 도리어 이상하다.

일각에서는 쿼드라라 부족하다는 억지도 있었으나.

「大?」

1일 전。

응, 정글 미달리로 펜타 했어ㅋㅋ

「瓜子?酒?泉水」

1일 전。

마왕이 나까지 쓰러지게 했으니 펜타킬 맞음!

「??№?香烟」

1일 전。

여친과 직관을 가고 싶다면 조심해

마왕이 네 여친까지 스틸해버릴지 몰라……

급속도로 불어난 팬덤.

차고 넘치게 증명한 실력.

중국 전역에서 파장을 가볍게 일으킨다.

압도적이다.

압권이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JCG Games가 아니라 마왕의 단독 승리 아니냐?

그러한 해석이 붙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패패승승승이라는 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화제의 과정 속에서 스멀스멀 이견이 제기된다.

「虹之?」

10초 전。

마왕만 아니었으면 상대가 우승했겠는데?

「八脚?」

10초 전。

찌바르고 있던 걸 마왕 하나 때문에ㅋㅋ

억울할 만하지

「越?.越久」

10초 전。

진짜 역대급으로 불쌍하다

스폰도 없는 소규모 적자팀이래ㄷㄷ

.

.

.

드넓은 광저우도 중국 전역에서 보면 한낱 지역이다.

때 아닌 화제가 계기가 되어 일련의 이슈가 퍼져나간다.

중국은 넓다.

넓어도 좀 심각하게 넓다.

지금 내가 가려는 광저우-청두만 해도 1,578.9km가 떨어져 있다.

'서울-부산이 325km인데 미쳤냐고.'

숫자로만 보면 거진 5배 차이.

하지만 체감적으로 그렇게 심하지 않다.

왜냐?

이유는 간단하다.

고속 열차가 일상화 되어있기 때문이다.

대중적인 교통 수단의 기본이 다른 것이다.

'자동차처럼 막힐 일도 없고, 우회할 필요도 없고, 시속도 자동차보다 몇 배는 빨라서.'

거리만 보면 비행기를 타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KTX급으로 빠른 고속 열차를 타고 간다.

서울-부산을 차로 가는 거랑 비슷한 체감이다.

체력적으로도, 금전적으로도.

이런 고속 열차가 우리나라 지하철처럼 퍼져 있다.

큰 부담 없이 이동할 수 있다는 건 확실한 장점이다.

「商?座候?? Business Class Lounge」

값비싼 비즈니스석이라 금전적인 부담은 있지만.

도착하니 마치 공항처럼 라운지가 존재한다.

간단한 식사와 스낵바가 보인다.

'이것이 돈지랄의 참맛인가?'

탑승 시간을 기다리며 적당히 배를 채운다.

표값만 대략 30~40만원.

음식도 커피를 제외하면 별도로 내야 한다.

나라고 돈 아까운 걸 모를 리 없다.

많이 벌었다고 던지듯 쓰는 것도 아니다.

그저 중국이란 나라가 돈을 써야 편하다.

'편하고 말고 이전의 이야기지.'

얼덩쭤(二等座), 일반석에 타면 부대낀다.

사람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사는지 알 수 있다.

좋게 말하면 그렇다는 거고, 양보라는 개념이 없다.

진짜 굉장히 많이 불편하다

아니, 한국이었으면 불편 정도로 끝났겠지만 중국은 생존과도 직결된다

입석으로 탄 사람에게 좌석을 뺏기는 일도 부지기수다.

어느 나라나 잘 모르는 여행객은 좋은 먹잇감.

한국이 돈이 있으면 살기 좋은 나라라면.

중국은 돈이 있어야 살 수 있는 나라다.

「그땐 그랬어 막 잘 나갈 때라서, 돈에 환장해 독이 찰 때라서…….」

열차가 도착하기 5분 전.

라운지에서 떠나려던 차에 전화가 걸려온다.

발신인이 썩 반가운 사람은 아니다.

〈야!〉

"반말하지 마시라구연."

뭐, 사실 신체 나이만 따지면 연상이다.

근데 그건 그거고.

나는 Foreigner인데 예의 준수 하셔야지.

기분 탓인지 악에 받쳤던 지난 번과 달리 들뜬 어조다.

〈혹시 알고 말했던 거에요?〉

"뭐가요."

〈닭이랑 계란…… 그거요.〉

며칠 전, 표독스러운 처자를 만났을 때.

여러 이야기를 나눴던 기억이 얼핏 난다.

닭과 계란 중 무엇이 먼저인지 놀려 먹기도 했다.

'딱히 의도해서 한 말은 아니야.'

내가 무슨 봉이 김선달이겠냐고.

중국으로 따지면 삼천갑자 동방삭.

설마 그런 큰 그림을 그리고 여론을 뒤흔들었겠는가?

〈광저우팬들한테 욕 많이 먹으시더라고요.〉

"……."

〈다른 지역 팬들에게는 인기가 많으시고.〉

"내 일은 이기는 거지, 팬들을 만족시키는 게 아니에요."

광저우 LDL 시드 선발전.

본래라면 그렇게 큰 대회가 아니다.

2부 리그이기도 하고, 전국 각지에서 동시다발 열렸다.

주목도가 그리 높기가 힘들다.

하지만 몇몇 이벤트가 생기면서 달라졌다.

결승전은 한 달에 걸친 화룡점정이라 볼 수 있다.

〈당신이 나간 이후 저희팀이 주목 받고 있어요.〉

"잘됐네요."

〈요즘 엄청나게 연락이 오고 있어요. 눈길도 안 주던 기업들이.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당신 덕분이에요.〉

그런데 팀의 승리가 아닌 개인의 승리가 돼버렸다.

JCG Gamses의 인과응보다.

패패, 벼랑 끝까지 몰린 상황에서 여유가 있을 리 없다.

나로서도 힘을 상당히 준 캐리력.

세간에 퍼지며 화제를 낳게 되었다.

패배팀에 동정 여론이 쏠린 건 어찌 보면 필연일 수 있지만.

"댁들이 할 만큼 했으니 기업들도 관심을 가지는 거겠죠."

〈저희는 언제나 최선을 다 했어요. 다 하지 않았던 적은 없어요.〉

기회라는 건 결코 로또가 아니다.

준비된 자에게만 허락된 보상이다.

간혹 어떤 이들은 그 준비가 보잘것없다고 폄하한다.

나도 그 정도는 할 수 있는데?

잠깐이 아니라 항상 준비된 삶을 산다.

자기 자신을 채찍질했기에 기회가 오는 것이다.

'물론 그래도 결국 운은 맞아.'

영영 오지 않을 수도 있다.

시간은 결코 무한하지 않다.

나는 어디까지나 그 가능성을 조금 밀어준 정도다.

〈지금 어디에요?〉

"청두로 떠나기 3분 전. 졸라 바빠요."

진지한 얘기 중이라 차마 못 말하는 거지 발에 땀 나도록 뜀걸음질 하고 있다.

나름 돈 써서 비즈니스 티켓 끊었는데 뛸 수는 없잖아.

옆에 돈 많은 아줌마, 아저씨들 투성이다.

"그거 알죠? 힘들 때 말 걸면 진짜 죽여버리고 싶은 거."

〈헤~ 진짜?〉

"반말하지 마시구연."

이제 보니까 확신범이네.

동방예의지국의 후예로서 혼내주고 싶지만 그러기에는 숨 넘어갈 것 같다.

일방적으로 대화를 이어온다.

〈근데 몇 살이에요?〉

"꽃다운 열아홉인데요."

〈……진짜?〉

"반말하지 마시라구연."

올해로 스물이라고 한다.

다른 업계였다면 스게~~~!

놀라울 수 있지만 e스포츠 업계에서는 스탠다드하다.

'선수 나이가 다 20 전후지. 가끔 노땅들 있는 거고.'

물론 코치는 좀 더 나이대가 있다.

언제나 예외는 있고, 어린 노무 쉬키였다.

애초에 나이 정도는 한눈에 알아본지 오래다.

〈왜 제가 그렇게 모질게 대했는지 안 궁금해요?〉

"안 궁금해요."

〈처음에 너무 잘 대해주셔서 배신감을 크게 느꼈어요.〉

"굳세네 시발."

꺾이지를 않네.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사는 타입이네.

본인 나름대로 사연이 있었던 모양이다.

〈드라마에서 보던 오빠…… 같다고 생각했어요.〉

"한국말도 아네? 가지가지 하네."

어색한 한국어 단어가 들려온다.

처음 들었으면 놀랐겠지만 이미 알고 있다.

해외에 가면 흔히 접하는 한국 드라마의 폐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콩글리쉬 하는 거랑 마찬가지야.'

솔직히 우리나라 남자들 입장에선 한국 드라마 질색을 한다.

김치녀 양산 프로그램 맞잖아.

근데 전세계적으로 보면 그 영향력이 엄청난 것도 사실이다.

오죽하면 세계 3대 드라마가 미드, 영드, 한드겠는가?

이게 오피셜일 정도로 문화적 파급력이 미쳤다.

전세계 많은 남자들의 불만 또한 사고 있다.

「오빠 ?巴 [?ub?] 」

1. 오빠. 한국어 발음과 유사하여 유래됨.

2. (한국)오빠. 가수,드라마등의 한류열풍으로 한국남자들을 지칭하는 말

우리나라 앙 기모띠! 같은 신조어다.

본래의 의미와 같게 사용되지 않는다.

잘생긴 한국 남자에 대해 환상을 가지고 하는 말.

"반하면 곤란한데."

〈그런 거 아니거든요?〉

"아, 변명 추한데."

〈아니라니까요!!〉

왜 소리를 질러 소리를.

고막 떨어지겠네.

이런 과민한 반응이 의심을 더 불러일으킨다는 걸 진정 모르나?

물론 장난삼아 하는 소리다.

내가 잘 생겼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실제 나이가 있으니 깔끔하게 하고 다니는 정도다.

'근데 세상이 다 상대적인 거라.'

아인슈타인이 괜히 상대성 이론을 부르짖은 게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평범하게만 잘 입어도 중국 가면 상당히 세련됐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러니까 이 처자 입장에서는.

1. 처음 만난 한국 남자

2. 잘해주고, 고민도 들어줌

3. 그런데 뒤통수 존나 세게 맞음

배신감을 크게 느꼈던 것이다.

그것이 옳고 그르고 이전에 이해는 된다.

"드라마 보고 환상 가지고 나한테 화풀이 했네."

〈죄송하다고는…… 조금 생각해요.〉

"아오~~ 자존심 센 거 봐."

어디 가서 굶어죽지는 않겠어.

처지가 나아졌다면 다행인 일이다.

나도 찝찝한 것보다는, 찝찝하지 않은 편이 낫다.

"저 이제 열차 시간 다 됐거든요?"

〈무슨 열차 타요?〉

"까오티에."

고속 열차.

우리나라의 KTX와 같은 급이다.

아니, KTX는 정차를 하도 해서 신칸센이 더 비슷하겠다.

"일본 열차랑 달리 안전성은 약간 신뢰가 안 가지만."

〈일본 열차는 느려서 안전한 거에요.〉

"어련하시겠어요."

뻔한 질문, 뻔한 대답이 오간다.

중국 열차라 그런지 정시에 오지 않는다.

약간 더 담소가 이어진다.

"가서 사천식 훠궈 먹을 거에요. 맛있겠죠?"

〈요리는 광동이 훨씬 더 맛있어요.〉

어디서 많이 들어본 소리다.

자기네 지역 음식에 자부심이 강한 건 중국 사람 공통인 듯싶다

빼애애애앵-!

고막을 찌르는 소리.

머리가 날릴 정도의 바람이 기차가 온다는 걸 알려준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 밥 먹을 때요."

〈네.〉

"이빨에 풀 끼었어더라고요."

〈야!〉

"뷰, 티, 풀. 한국 드라마 좋아한다고 해서 립서비스 한 번 해봤어요."

〈……제가 원하는 방향은 아닌 것 같지만 그래도 고마워요.〉

뭐가 고마운진 모르겠지만 본인이 그렇다고 한다.

실제 내 의도가 어땠든, 받아들이는 사람이 어찌 생각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사람 관계라는 게 다 그래.'

그래서 어려운 것이기도 하다.

인연이라는 게 쉽게 생기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고.

내가 중국 온 이후로 꽌시꽌시 따지긴 했지만 기본적인 정情을 멸시한 건 아니다.

〈광동 오면 사천과는 비교도 안되는 맛있는 음식 대접할 테니 꼭 연락하세요.〉

"밥맛 떨어지는 소리 안 하면요."

〈안 할게요.〉

"그리고 이빨에 풀 안 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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