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에 맞을까 모르겠네. 매울 텐데."
"한국 사람들도 매운 거 좋아해서 괜찮아요."
"그래? 그럼 먹으면서 마麻와 랄辣을 느껴봐. 그게 사천 음식의 백미거든."
KF eSports의 구단주.
약속 자리가 바로 음식점이다.
만나자마자 식사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매워 뒤지겠는데 무슨 맛을 느껴.'
라고 생각하기에는 정말로 맛이 있다.
기분 좋은 매운맛이 혀를 얼얼하게 자극한다.
사천 음식은 전반적으로 한국 사람 입맛에 잘 맞는다.
"마麻가 뭔지 몰랐는데 이 알알한 감각이구나. 묘한 중독성이 있네요."
"음식은 중국에 있고, 맛은 사천에 있다는 소리가 괜히 있는 게 아니지. 천천히 음미해."
그렇다고 최고라는 뜻은 아닌데.
매운맛에 대한 감상이 마음에 들었나 보다.
중국 사람들은 출신 지역 요리에 자부심이 심각하게 대단하다.
'역시 요리는 OO이죠. 이 레퍼토리는 분명 중국 전역에서 한 번씩은 들을 거야.'
내가 일하러 온 건지, 미식 여행을 온 건지.
살짝 헷갈리기도 하지만 식사 자리는 매우 중요하다.
중국인과 함께 음식을 먹는다는 건 친분을 도모한다의 동의어다.
"이야기는 들었어. 감독한테도 전달 받았고."
"아, 스크림 한 거요?"
"어. 잘한다던데? 물론 잘해서 영입한 거긴 하지만."
이미 스크림 보고도 올라갔는지 분위기는 화기애애하다.
생각보다 훨씬 젊다.
JCG 사장씨가 40대 초인데 반해, 이분은 20대 후반 정도다.
꽌시라는 걸 생각하면 이상한 측면도 있다.
그런데 중국은 우리나라와 달리 나이가 크게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지금 우리팀이 상당히 바쁜 시기라 고생은 좀 해야 할 거야."
"이미 오자마자 겪었죠."
"알고 있으면 다행이고, 계약은 법무팀 통해서 내일 내려갈 테니 오늘은 식사 하고 푹 쉬어도 돼."
성격 또한 차이가 있어 보인다.
현실 감각 있는 똑 부러진 성격이다.
그만큼 추가 수당을 뜯어먹기는 힘들어 보인다.
'그래도 시간 대비 효율을 생각하면 나쁘진 않지.'
단순히 시간만 본다면 말이다.
상대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미래의 고민은 잠깐 내려놓고 식사를 즐긴다.
"3분만에 뚝딱 만드는 마파두부 말고 본격적인 건 처음인데 화끈하네요."
"뭐? 마파두부를 3분만에 만든다고?"
조금 얼빠진 모습도 있는 듯하지만.
이야기를 나눠보니 게임을 꽤 잘 알고 있다.
사업 아이템으로만 보던 JCG 사장과는 다른 면모다.
'친해지는 건 어렵지 않겠네.'
나에게도 좋은 방향이다.
아무리 돈을 벌려고 왔다고 한들.
비위만 맞춰주는 건 원형 탈모 오는 지름길이다.
게임을 아는 사람과 대화를 하는 게 편하다.
팀 내 상황과, 내 의사도 확실하게 전달할 수 있다.
적어도 광저우처럼 그지 같은 일은 없을 것 같은 예감이다.
임용 계약서』
■ 제1조 조건
소속팀 : KF eSports
경기 종목 : Lord of Lords
직책 : 선수
보수 : 일금 오십만 元정 (元 5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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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5조 특이사항
KF eSports가 청두 LDL에서 우승할시 을은 갑에게 250만 위안의 인센티브를 지급한다. 정상적으로 경기가 치러졌을 경우에 한하며, 팀 내의 사정으로 계약 이행이 불가능해질시 인센티브에 해당하는 금액을 위로비로 보상한다.
JCG Games때와 마찬가지로 계약서를 썼다.
이것저것 많이 적혀있지만 요지는 간단하다.
'승격하면 5억원 준다고.'
그렇게 끝내면 오죽 좋을까?
그 이것저것이 계약에서 엄청나게 중요한 부분이다.
다행스럽게도 지난 번과 달리 계약 내용이 매우 흡족하다.
「단, 갑이 확실한 활약을 증명한 경우에 한한다.」
이런 어쩌고저쩌고 함정 조항도 없다.
오히려 보험 조항까지 새기는 등 신경을 많이 써줬다.
이것이 꽌시가 가진 힘이다.
내가 만약 여기서 지랄 맞은 일을 당한다?
그것은 소개를 해준 사람의 체면을 깎는 일이다.
미엔쯔(面子), 중국인들이 가장 중요시 여기는 관념이다.
'보수가 지나칠 정도로 많은 것도 그래서고.'
광저우에서는 치른 경기 수도 많고, 액수도 협상을 통해 점점 올려갔다.
그런데 여기는 오자마자 BAAM-!
이런 고액이 터질 수 있는 것은 꽌시와 미엔쯔 때문이다.
돈으로 감정의 깊이를 잰다.
돈을 많이 쓸수록 정이 깊어진다.
관계와 체면을 연결된 일에 중국인은 돈을 아끼지 않는다.
그만큼 내 주머니에 쏙 들어간다.
나는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면 된다.
이렇듯 거금을 쉽게 챙기는 게 개꿀띠로 보일 수 있지만.
〈청두 LDL 플레이오프 2·3위전 KF eSports 대 Rogue Gaming의 경기가 시작합니다!〉
사천-청두에 온지 겨우 나흘이다.
플레이오프, 부담감 넘치는 경기가 벌써 시작한다.
무대에 오르자 캐스터의 목청과, 관중들의 함성이 고막을 찌른다.
2부 리그 LDL이라도 플레이오프쯤 되면 어중이떠중이는 아니다.
별도의 연습 기간도 없이 바로 실전에 임해야 한다.
기간이 짧은 만큼 난이도는 더욱 심화된다.
세상에 절대 쉬운 일은 없다.
나 스스로도 미친 짓이라는 생각 많이 한다.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리턴이 있다면 리스크도 있다.
'리턴이 크면, 리스크도 딥따 크지.'
심지어 경기의 난이도만이 아니다.
참고로 중국에서 부자라는 건 지역 유지다.
단순하게 돈이 많은 사람이라 생각하면 큰코다친다.
지역 내에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
사업 뿐만 아니라, 정치, 조폭 쪽으로도 꽌시가 복잡하게 얽혀있다.
티스푼 하나 분량의 과장도 안 섞인 이야기다.
「최창민 선수 中서 실종? 중국 공안曰 보고 받은 기록 없어」
극단적으로 말하면, 돈값을 못했을 때 이런 기사가 떠도 이상하지 않다.
어디로 갔는지는 무서운 사람들만 알겠지.
물론 너무 극단적인 가정이긴 하다.
"최창민 선수! 광동을 떠나 사천의 품으로 오셨군요! KF eSports의 승리를 기대해도 되겠습니까?"
"적당히 열심히 이기겠습니다."
흔히 있는 경기 직전의 사전 인터뷰다.
보통은 주장에게 마이크를 건네는 게 관례인데, 드물게도 나에게 권했다.
적당히 대답하자, 적당하지 않은 환호성이 들려온다.
마두 취급 받던 광저우보다 오히려 더 환대 받고 있다.
좋은 현상이지만, 그만큼 부담 또한 올라간다.
현재 내 인기는 99% 속된 말로 강팀충이다.
'어느 나라, 어느 리그던 일반적인 현상이긴 해.'
중국은 그것이 더 심하다……, 정도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토토충들이 대거 꼬인다.
내가 만약 경기를 진다?
팬을 가장한 토토충들이 들고 일어난다.
누가 봐도 잃은 쪽이 병신이지.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규모가 너무 큰 것이다.
후폭풍이 어마어마할 수밖에 없고, 그야말로 살얼음판 위에 서있다.
하나하나의 가정은 기우(杞憂).
하지만 얽히고설키면 또 모르는 게 인생이다.
단기간에 성과, 이슈를 내고 있다는 것이 비단 청신호만은 아니다.
와아아아아-!
부스 입장과 함께 쏟아지는 함성.
긴장 어린 분위기 속에서 청두 LDL의 첫 경기가 막을 올린다.
* * *
청두 LDL은 여덟 팀이 참가해 진행되었다.
광저우 LDL보다 참가팀 수가 하나 적다.
이는 딱히 규모가 작기 때문이 아니다.
이미 팀 하나가 올라가 있다.
기존 LPL 시드권을 가진 Team King.
청두를 연고지로 선택하며 결승전 자동 진출의 특혜를 얻었다.
「청두 LDL 시드 선발전 STANDINGS」
1. Rogue Gaming 13승 1패
2. KF eSports 10승 4패
3. Team KungFu 9승 5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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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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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따라, 청두 LDL의 경쟁은 심화됐다.
플레이오프를 치르는 건 상위 두 팀 만이다.
KF eSports는 2위로 간신히 진출에 성공했다.
하지만 한 끗 차이의 생존이라는 지적도 생긴다.
전체 전적도, 상대 전적도 1위에게 밀린다.
선수를 추가 영입한 배경이 여기에 있다.
반대로, Rogue Gaming 입장에선 예측이 된다.
어떤 식으로든 전력 강화를 꿈꿀 것이다.
자신들은 맞대응 전략만 짜면 된다.
'설마 마왕을 영입할 줄은 몰랐지만…….'
Rogue Gaming의 코치진.
소식을 듣고 비상이 떨어졌다.
기껏해야 구멍을 메꾸는 정도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서울-부산의 다섯 배 떨어진 청두에도 그 명성이 전해지는 선수다.
위협이 안된다고 말하면 거짓말.
하지만 이는 동시에 양날의 검이다.
구멍을 메꾸는 것과, 에이스를 넣는 건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기존 KF eSports의 색깔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팀워크 등의 문제가 불가피하게 생긴다.
"팀파이트 정글 위주로 자르면 될 것 같습니다."
"랙싸이, 두두 이런 거 말이지?"
"최근 스크림에서 구리가스를 자주 사용한다는 정보도 있습니다."
집중 견제로 그 약점을 후벼 판다.
평소 마왕이 어떤 챔피언을 사용하는지.
솔로랭크는 물론, 스크림에서도 정보를 수집한다.
물론 스크림 데이터는 기밀이다.
동의 없이 함부로 공개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양 팀에 소속된 인원이 얼마나 많겠는가?
모든 입을 막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밴픽 유출이 공공연하게 벌어진다.
온갖 인맥을 총동원해 정보를 긁어모은 결과.
"블루팀 선픽 이점으로 리심만 봉쇄하면 완벽하겠는데?"
"리심은 저희도 쓰는 픽이니까요."
Rogue Gaming은 이상적인 밴픽을 구축했다.
급조된 상대는 공격적인 수를 취하기 힘들 것이다.
안정적이고, 후반 기대치가 높은 챔피언만 견제하면 된다.
와아아아아-!
경기가 펼쳐지는 DOUBLE-G 스타디움.
현장의 관중들이 미쳐 날뛰는 이유가 있다.
해설진도 기다렸다는 듯 호들갑을 떤다.
〈미달리?! 이건 정글이라 보는 게 맞겠죠?〉
〈이랠리야를 가져오면서 그 가능성이 거의 확실해졌습니다.〉
정글 미달리.
의외의 선택이다.
가장 가능성이 낮다고 여기고 있었으니까.
'자포자기로 가져간 픽이 아니었나?'
광저우 LDL 대역전승의 막을 연 챔피언이다.
하지만 그 실효성에 대해서는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그냥 막무가내로 카정 가서 이긴 거 아니냐?
경기의 내용이 실제로 그러했다.
높은 피지컬과 운빨의 상호 작용.
스킬샷 한 번에 생사가 오고 가는 서커스였다.
"저거 생각보다 별 거 없어요."
"그래?"
"음파만 맞히면 무조건 이깁니다. 카정 와드만 잘 깔아주면 돼요."
만에 하나의 가능성을 대비해 대책도 세웠다.
쫄지 않고 물어서 죽이면 된다.
리심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초반 싸움의 대가.
상대가 들어오지 않는다면 그 뿐이다.
어차피 KF eSports는 라인전 단계만 끝나면 알아서 자멸한다.
'아직 팀워크도 안 맞을 팀이 극단적인 조합을 꾸렸다면 불 보듯 뻔하지. 이건 이겼어.'
Rogue Gaming 코치진의 판단은 분명 옳았다.
* * *
타악!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경기다.
미달리의 창이 리심에게 적중한다.
첫 번째 세트, 교전의 시작을 카정으로 연다.
하아!
이쿠, 이쿠!
상대의 대응은 화끈하다.
당황하지 않고 맞음파를 던져온다.
냅다 들어와 버린 막싸움 구도는 솔직하게 불리하다.
'접근을 허용한 시점에서 유리한 고지를 빼앗기니까.'
원거리 대 근거리.
기본 스펙이 차이가 현저하다.
과감하게 응전한 리심의 판단은 분명 옳다.
그 당연함을 비틀 능력을 가졌을 뿐.
음파는 사실 일부러 맞아줬다.
들어올 테면 들어오라고.
? 미달리
W - 습격
두 번은 습격이 아니죠: 이제 미달리의 기본 공격 동작을 초기화하지 않습니다.
R - 퓨마의 상
빠른 창술&할퀴기: 이제 미달리의 기본 공격 동작을 초기화하지 않습니다.
평타 캔슬.
모종의 방법으로 평타의 후딜레이를 없애, 실질적인 공격 속도를 상승시키는 테크닉이다.
상당수의 챔피언이 흔하게 가지고 있다.
그런데 미달리는 너무 흔하게 가지고 있다.
퓨마폼Q는 물론, W와 R로도 가능하다.
한 마디로 평캔 스킬이 3개나 되는.
─퍼스트 블러드!
적을 처치했습니다!
그냥 미친놈이었다.
침착하게 응용한다면 맞딜에서 질 일이 없다.
인간폼으로 다시 변하며 네 번째 평캔으로 리심을 마무리한다.
'초반 싸움은 결국 평타를 얼마나 더 넣느냐인데.'
그 평타를 진짜 미친 듯이 쑤셔 넣을 수 있다.
물론 숙련도가 받쳐주기에 가능한 일.
어설프게 하다가는 손만 꼬인다.
타악!
당연하게도 이는 정글몹 사냥에도 유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