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9화 (129/201)

동쪽보다 전반적인 실력도, 연봉 수준도 낮다.

주요 도시인 베이징, 상하이 등이 동쪽에 있는 탓이다.

한국의 S급 선수들도 거의 대부분 동쪽에 갔다.

여기서 한가함을 즐기는 것도 좋겠지만.

'내가 원하는 길이 그런 게 아니라는 걸 눈치챈 거겠지.'

사업하는 분들은 기본적으로 눈치가 빠르다.

내 행보는 '돈'을 가장 우선 순위로 놓고 있다.

그 점까지 감안하여 다음 행선지를 추천해주셨다.

"상하이로 가. 연락은 했으니 픽업이 받아줄 거야."

"네, 짧은 기간이지만 신세 많이 졌습니다."

사실 별로 안 지긴 했는데 왠지 해야 될 말 같아서.

만족하셨는지 어깨를 툭 치면서 안아온다.

남사스럽지만 할 때는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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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일자   계좌 번호   입금액

2014/12/24  2532-*    600,000

2015/01/23  2532-*  4,000,000

2015/01/25  6737-*    500,000

2015/02/02  6737-*  2,5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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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액 7,596,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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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금도 깔끔하게 되었으니까.

지금까지 중국에서 번 돈이 760만 위안.

생활비로 다소 사용하긴 했어도 대충 13억원은 된다.

'한국에서 번 게 9천만원 정도 있고.'

약 14억원 가량이 손아귀에 들어왔다.

사실 내 개인적으로는 만족이란 단어를 쓰기에 충분하다.

나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코치, 선수들이 그럴 것이다.

돈 버는 것에 혈안이 되는 것도 처음 뿐이지.

일정 이상 벌게 되면 돈 욕심이 안 난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진짜 진성 겜돌이들만 모여있는 업계라.'

클린이라는 척도로 따지면 그 어느 업계와도 비교할 수 없다.

감히 그런 말을 입에 담아도 될 정도라고 생각한다.

가장 높게 치는 가치가 명예욕이다.

한 마디로 우승하고 싶다고.

유명해지고, 롱런하고 싶다는 욕망이 크다.

하지만 내가 처한 상황은 그것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100,000,000,000\」

아직 자릿수도 달라지지 않았다.

회귀라는 두 글자를 감당하기엔 가벼운 듯하다.

더욱, 차원이 다를 정도로 채워주는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선택한 상하이행이다.

* * *

상하이(上海).

중국 e스포츠 산업의 중심지다.

대륙이 아무리 넓다 한들 뿌리가 되는 지역은 있는 법이다.

그 다음, 역사적 경쟁 관계이며 수도인 베이징이 발달했다.

두 거대 도시를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뻗어 나갔다.

중국 전체에서 봤을 때 동부쪽에 힘이 실린다.

중국 LPL이 동과 서로 양분된 이유이기도 하다.

경쟁을 하기에는 대놓고 균형이 맞지 않는다.

실질적인 거리도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홈&어웨이 제도」

야구나 축구 등 각종 스포츠에서 흔히 쓰이는 연고지 제도의 일환이다.

중국에서 가장 먼저 시행했으며, 이후 북미나 유럽처럼 파이가 큰 리그로 번지게 됐다.

각 팀마다 연고지가 있고, 연고지마다 홈 경기장이 존재한다.

홈&어웨이는 홈 경기장을 오가며 원정 경기를 치르는 것을 말한다.

홈스테이지로서 이점을 살릴 수 있으며, 팬들 입장에서도 응원의 열기가 더해진다.

문제는 그 물리적 이동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다.

아무리 고속 열차와 비행기가 상용화되어 있다고 해도 과하다.

연고지 제도 초기 단계인 현재는 운영의 간소화를 겸해 동과 서로 나뉘었다.

「베이징」- EDC, Royal Club

「상하이」- IC, V5 Esports Club

「텐진」- Vlcl Gaming

「항저우」- LCD Gaming

「하얼빈」- QG Reaper

이하 다섯 개 지역, 총 일곱 팀이 LPL East에서 경기를 펼친다.

이외 일곱 개 지역, 총 일곱 팀이 LPL West에서 경기를 펼친다.

동서의 상위 네 팀이 플레이오프에서 복합적으로 겨뤄 최종 우승팀을 선출한다.

중국이라는 넓은 대륙에서 열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합리적인 방식이다.

하지만 실상은 조금 다르다.

각 팀이 가진 기대치와, 힘을 봤을 때 동부 리그에서 우승팀이 나올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다.

즉, 경쟁이 과열된다.

동부 리그의 모든 팀들이 한국 선수&코치&감독을 영입해 몸집을 부풀린 이유였다.

* * *

"주문 도와드리겠습니다."

"마이라지투이한바오, 세트로 주세요."

청두-상하이 1,952.4km를 고속 열차로 횡단했다.

조금 이르게 도착했는지 픽업이 아직 안 왔다.

중국에서는 딱히 드물지도 않은 일이다.

'지정 시간보다 먼저 출발하는 기차도, 사람들이 시간을 안 지키는 것도.'

전자는 둘째 치고 후자는 한국도 남일이 아니다.

요즘은 나아졌지만 불과 20년 전만 해도 코리안 타임이라는 말이 있었다.

마이라지투이한바오, 한국에서는 상하이 스파이스 치킨버거라 알려진 매운 닭다리 버거를 먹으며 기다리고 있다.

바로 어제 청두 LDL을 끝낸 마당에 바쁜 일상이다.

나라고 이렇게 피 말리게 살고 싶진 않은데 시기가 워낙 성수기다.

이제 곧 1부 리그 LPL이 시작하는 마당이라 단 하루도 지체할 수가 없다.

"오, 오오! 여기 있구만. 한참 찾았네!"

한 후덕한 인상의 아저씨가 뒤뚱뒤뚱 열심히 뛰어오는 모습이 보인다.

나를 찾는다는 사실은 바로 인지할 수 있었다.

그도 그럴게.

"한국인 선수가 온다고 해서 얼마나 반가웠는지 몰라."

"아~ 우리나라 코치님이시네요?"

"코치가 아니고 감독! 날 모르나 보네. 내가 바로 그……."

잘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사람인 듯하다.

같이 온 중국인 매니저 두 명이 내 짐을 들어준다.

기껏해야 코치 한 명 마중 나올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성대하다.

'청두에 이어 또 팀 뽑기를 잘한 건가?'

첫 만남이 나쁘지 않다.

그런 생각이 들려던 참에.

"오자마자 미안한데 네가 꼭 해줘야 할 일이 있어."

"아, 네. 말씀하세요."

"정글 말고 다른 라인도 할 줄 알지?"

"네?"

안섹의 아픔이 남일이 아니게 됐다.

V5 Esports Club.

내가 이곳 상하이에서 들어가게 된 팀이다.

'이름부터 느낌이 오긴 했어.'

무슨 클럽이나 홍대도 아니고.

하지만 느낌은 어디까지나 느낌이다.

무슨 일이든 경험해보기 전까지 확신해서는 안된다.

〈얼마야?〉

"네?"

〈얼마면 내 팀에 들어올 거야?〉

일단 팀의 숙소에 도착했다.

계약을 위해 구단주와 만나기로 했다.

애석하게도 계시지 않아 전화로 연결이 됐다.

걸리자마자 대뜸 설레게 만든다.

20대는 커녕 그 아래일 것 같은 목소리.

왠지 기싸움에서 밀리고 싶지 않았다.

"한 천만 주고, 인센티브 따로 주면 될 거 같은데."

〈그거면 돼?〉

"그거면 돼."

천만=17억원.

슈퍼에서 장이라도 보나 보다.

대수롭지 않은 느낌으로 계약이 성사됐다.

'이제 확신을 해도 되겠지?'

격언대로라면 그래도 될 것이다.

이 팀의 구단주가 어떤 사람인지.

사실 어느 정도 듣고 오기는 했다.

V5 Esports Club의 창단 경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장난감이다.

카지노 재벌 갑부의 아들이 북미 유학 중 LOL에 빠졌고, 귀국해서 자신의 팀을 만들었다.

"사장님은 휴가 중이십니다."

"네."

"계약서는 내일 이 시각 변호사와 진행하시면 됩니다."

"와카리마시타."

그리고 열심히 놀고 있는 모양이다.

딱히 특이할 것도 없는 푸얼다이다.

도시에서 폐차 좀 시키고, 건물도 부수고, 그 정도 사고는 쳐야 중국에서 악동 취급을 받을 수 있다.

'확실히 돈 벌기에는 최적의 팀이긴 해.'

씀씀이가 헤프다기 보다는 그냥 개념이 없다.

모르긴 몰라도 한 2천만 불러도 주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남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계산한 금액이다.

"어때? 통화는 했어?"

"네, 계약하기로 했습니다."

"좋은 분이지~. 봉급도 짜고, 숨도 꽉 막히는 한국팀에 있다가 여기 오니 천국이 따로 없다니까?"

"그러시구나."

팀의 사정이 그리 정상적인 것 같지 않다.

통화를 마치고 나오자 다음 산이 기다린다.

한동안 얼굴을 뵐 수밖에 없는 감독님이시다.

'차라리 중국인이면 웬만큼 무시할 텐데.'

묘한 친근감을 어필해오고 있다.

한국 사람을 만나 반가운 모양이다.

그것까진 좋은데, 자부심이 너무 대단하다.

"원래 이 팀이 작년까지만 해도 없었거든."

"네."

"구단주가 돈은 많은데, 팀을 운영할 줄은 모르는 거야. 그래서 내가 하나부터 열까지 다~~."

공사판 김씨 썰 같다고 말하면 실례일까?

아무튼 이야기는 일목요연하게 정리된다.

자신이 V5 Esports Club의 개국공신이다.

정말로 일처리를 잘 하셨는지.

거기까지는 내가 당장 알 수가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건 킹리적 갓심이 든다는 것이다.

"이제 딱 원딜러만 있으면 돼."

"그럼 원딜러를 영입하시죠?"

"마땅히 없더라고. 너는 피지컬도 좋으니까 원딜도 잘 할 거 아니야?"

오~ 천잰데?

굉장히 신박한 생각을 무려 프로게임단 감독의 입에서 듣게 되었다.

태클 걸고 싶은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혹시 모르니 물어보기로 했다.

"혹시 감독님도 롤 많이 하시나요?"

"난 안 하지! 게임은 선수들이 하는 거고."

"아…… 답변 고맙습니다."

솔로랭크 티어가 브론즈5라고 하신다.

강등된 거고, 원래는 실버였다고 하는데 그게 무슨 차이가 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본인도 잘 모르는 듯하다.

파격적이기 그지없는 제안.

어떻게 그런 생각이 나왔는지 얼핏 이해는 된다.

안섹도 아마 비슷한 상황에 처했었을 것이다.

* * *

상행하효(上行下效).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

V5 Esports Club은 시작부터가 잘못됐다.

나도 LOL팀 하나 가지고 싶어!

구단주가 순수한 흥미 본위로 창단했다.

돈을 쏟아 부어 잘 나가는 선수들과 유명하다는 코치진까지 영입시켰다.

「[상하이 LDL] V5 Esports Club 또다시 패배. 연패의 늪에 빠지다」

「[상하이 LDL] V5 플레이오프 진출 절망적. 선수진은 좋은데 왜?」

하지만 당연히 그런다고 성적이 나올 리가 없다.

상하이 LDL에서 참패.

2부 리그의 벽조차 제대로 넘어서지 못한 것이다.

그럼에도 당당하게 LPL로 승격했다.

왜냐?

구단주가 돈이 너무 많아서 LPL 시드권을 그냥 사버렸다.

「流星雨」

20일 전。

V5가 못해서 강등 당하든 말든 그건 내 알 바 아니다

하지만 기본도 못하는 팀 때문에 LPL이 얕보이는 건 정말 싫다

-그래도 LPL에 투자해주잖아ㅋㅋㅋ

-그 푸얼다이 구단주가 보면 울겠다

웨이보主- 나한테 1만 위안만 주면 당장 닥칠 수 있다

-그건 맞지

LPL팬들 사이에서도 말이 나온다.

자기들이 봐도 웃긴 것이다.

아무리 중국 사회가 돈에 좌지우지 된다고 해도 좀 과해.

비웃음거리.

세간의 평가를 선수들이라고 모를 리 없다.

사기 저하를 넘어, 먹튀 마인드가 팽배해져 있다.

"어차피 이 팀은 글렀어."

"우린 구단주가 가끔 웨이보에서 자랑할 거리만 만들어주면 돼."

이따금 나오는 우스갯소리다.

연봉 도둑, 연봉 먹튀!

연봉을 많이 받는 선수가 성적이 저조할 때 팬들이 비꼬는 말이다.

액수가 많다 보니 진지하게 의심하는 사람까지 있다.

당연하게도 웃픈 오해다.

실력이 안 나올 때 가장 고통스러운 건 선수 본인이다.

하지만 간혹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중국에는 안타까울 정도로 허다하다.

개인주의 색깔이 강한 탓에 협조성이 대단히 미진하다.

"연습 잘하고 있지?"

""오늘 하루종일 했습니다!""

"허허, 그래. 내일 스크림 기대하고 있겠어."

감독이 연습실에 찾아오자 활기가 살아난다.

감독이 나가자 바로 공기가 가라앉는다.

서슴없이 뒷담까지 내뱉고 있다.

"갔냐?"

"그 새끼 갔어."

"야, 벽도 얇은데 들으면 어떡하려고. 욕은 하지 마."

"저 빵즈 우리말 잘 몰라."

겉으로만 하는 척을 한다.

겉으로는 잘 굴러가는 것처럼 보인다.

V5 Esports Club의 감독 이진태는 철썩 같이 믿고 있다.

스스로 확인을 안 하기 때문이다.

LOL이라는 게임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다.

연습실에 있으면 눈치 보이고, 그러니 말로만 대강 타이른다.

그것이 V5 Esports Club의 실상이었다.

* * *

2015년 이전에는 LCK에도 전문 지식이 결여된 코치, 감독들이 많았다.

하지만 역사가 증명하듯 서서히 사라지게 된다.

인맥으로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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