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0화 (130/201)

그런데 그런 분들이 순순히 사라져줄까?

자신이 적폐라고 생각하는 적폐가 있을까?

일부는 e스포츠 협회로 빠지고, 일부는 타 종목 혹은 타 지역으로 건너갔다.

바로 이곳 중국에 말이다.

사실 엑소더스를 가장 환영한 건 선수들이 아니다.

1세대 e스포츠 스타크래프트가 사라져 일자리를 잃은 코칭 스태프들이다.

'이게 참 롤팬들한테 알려지기도 부끄러워.'

KF eSports의 한국 코치님처럼 노력하신 분도 있지만, 대부분은 하지 않고 도태됐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새로운 것을 배우기 힘들다.

자신이 맞다는 옹고집도 늘어만 간다.

"이게 오늘 연습 스케줄인가요?"

"깔끔하지? 이대로만 하면 돼 이대로만!"

상하이에 도착한 첫 날은 적응을 겸해 쉬었다.

그리고 둘째 날.

스크림이 잡혀 있다길래 감독을 따라 연습실에 가고 있다.

코치진이 하는 가장 대표적인 일이 선수들 스케줄 관리다.

연습의 효율성, 선수의 컨디션, 기타 등등 신경 쓸 요소가 많아 생각보다 어려운 작업이다.

'경력 있는 분들이 이런 건 잘하지.'

개인 연습 시간, 스크림 시간, 휴식 관리도 흠잡을 데 없다.

깔끔한 서식은 참고해볼 생각까지 들 정도다.

문제가 있다면.

"근데 상대가 다 LPL팀들이 아니네요?"

"전략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서지. 전략 유출 알지?"

"뭐……, 네."

정상적으로 초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그런 시답잖은 소리를 프로팀 감독의 입에서 들을 줄은 몰랐지만.

'술을 마시지도 않았는데 취한 느낌이 드는 경험은 처음이네.'

현지팀들이 스크림 유출을 밥 먹듯이 한다는 건 둘째 친다.

그런 거야 한국 사람 입장에서 모를 만도 하니까.

문제는 아예 중요성을 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주목! 본 사람도 있겠지만 오늘부터 새로 팀에 합류하게 된 최창민이다."

"잘 부탁드립니다."

""와아~~~.""

건성으로 치는 박수 소리가 연습실을 자잘하게 울린다.

이곳 선수들과 첫 만남임에도 설레임이 없다.

그 이유를 왠지 알 것만 같다.

선수들의 눈동자가 흐리멍덩하다.

코치로서 일하다 보면 느끼게 된다.

오늘 선수들의 컨디션이, 스크림에 임하는 마인드가 어떠한지.

'눈깔이 뒤졌잖아.'

썩은 동태 눈깔이 더 생기가 있을 지경이다.

팀 꼬라지가 정상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계약서에 사인도 안 했는데 그냥 튈까?

그런 극단적인 생각까지 떠오른다.

안타깝게도 고를 수 없는 선택지다.

이렇게 많이 주는 팀이 드물어서가 아니다.

'10억, 20억이 많아 보일 수 있지만 업계에서 S급 선수를 취급할 때는 기본 단위야.'

일일이 감동할 필요가 없다는 소리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건 고작 그 정도가 아니다.

JCG도, KF도, 심지어 이번 팀도 아직은 과정에 불과하다.

발을 빼는 것이 불가능한 이유다.

중국인들이 중요시 여기는 체면 문화.

꽌시의 소개를 받고 온 만큼 책임감도 무겁다.

'여기 팀이 생각보다 너무 막장이라 못하겠더라. 그런 말을 꺼내기 힘들어.'

어느 정도 고민은 할지 모른다.

하지만 결국 결과가 정해진 결말이다.

왜냐?

구단주 사이에 얽힌 꽌시가 훨씬 더 끈끈하다.

내 말이 옳다고 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괜히 힘들게 쌓은 꽌시가 무너질 수 있다.

독사과를 베어 무는 수밖에 없다.

"감독님."

"어, 그래. 우리 정글러!"

"저 최창민이란 선수 정글 아닙니까? 웨이보에서 본 적 있는데요."

나에 대해 아는 선수가 있는 모양이다.

혹시 자신의 주전 자리가 위태로운 건 아닌지.

속내가 드러나 보이는 건 기분 탓이 아닐 것 같다.

"원래 정글을 하긴 했는데 원거리 딜러로."

"원딜요?"

"그래, 원딜로 종족을…… 아니 포지션을 옮기기로 했어. 기특한 친구야."

"하하……."

물어본 당사자도 어이가 없는지 웃는다.

연습실 내에 웃음이 전파된다.

순식간에 화목해진다.

선수들이라고 모를 리 없다.

일련의 상황이 얼마나 말도 안되는지.

알면서도 묵시하는 이유는 아마 간단하다.

'눈깔 뒤진 물고기가 팔딱팔딱 뛰고 싶겠냐고.'

선수&코치 생활을 하며 이런 팀을 들어보기도 했고, 실제로 겪어본 적도 있다.

열에 아홉은 팀에 소속감이 없다.

돈만 챙기자는 마인드가 팽배하다.

지들끼리 싸우기도 엄청 싸운다.

경기에서 졌을 때 범인이 되기는 싫으니까.

최근 정글러로 유명세를 떨치던 내가 원딜러가 됐으니 마음이 편할 것이다.

"니가 마왕이야? 그 마교주?"

"그런 별명도 있더라."

"뭐가 됐든 너는 이 팀에서 신입이야. LPL 뛰어본 적도 없지?"

"그러네."

"그럼 우리 말 들어. 알겠어?"

귀여운 텃세까지 부려온다.

세 번째 팀은 팀원들간의 연대가 끈끈한가 보다.

얼핏 싸가지가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이곳은 중국이다.

'중국에서 광동과 사천은 인성이 가장 괜찮은 도시지.'

가장 괜찮은 도시지.

중요해서 두 번 상기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나마 상식 선에서 행동하니까.

그 상식을 가볍게 엎어버린다.

세간에 흔히 알려진 중국인이 바로 이곳 상하이와 베이징쪽 사람들이다.

각기 다른 방향으로 개념이 알차다.

"원딜러 할 줄은 알아?"

"옛날에 조금 했지."

"크크! 조금 한다는데? 그것도 옛~날에."

"그만해. 쟤도 불쌍한 얘야. 그 롤알못 감독이 시킨 거잖아."

감독에 대한 평가는 이 친구들도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나에 대한 평가도 그리 높지 않아 보인다.

수천km 건너의 일이고, 2부 리그니 안 쳐줄 수도 있다.

아무튼 간에.

'원딜러는 정말 간만이긴 하네.'

오랜만에 주포지션을 잡게 되었다.

Lord of Lords Pro League.

약칭 LPL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시청자 수를 자랑한다.

리그 규모도 비할 바 없고, 자본 규모는 그야말로 돈지랄의 으뜸이다.

하지만 그 투자에 비해 성장이 지지부진하다.

이따금 달성하는 국제 대회 성적도 거진 한국 선수&코치 덕이다.

순수하게 중국 자력으로 무언가를 이룬 적이 없는 이유.

「星仔」

5일 전。

안섹을 왜 탑으로 보내ㅋㅋㅋㅋ

「斯??」

5일 전。

비슷한 일은 몇 번인가 있었지

하지만 이번 사건은 역대급이다!

「官方Qzone」

5일 전。

KF에게 좋을 일 했네

코치가 혹시 스파이 아냐?

.

.

.

네임드급 한국 선수의 충돌.

청두 LDL은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안섹 대 마왕이라는 타이틀만으로도 자극적이다.

높았던 기대 만큼 후폭풍도 어마어마하다.

마왕의 활약상은 물론 눈부셨다.

하지만 나머지 한 명이.

「Park Monte」

4일 전。

안섹이 정글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IEM과 MSI에서 LPL 언급을 하지 않겠다

-안섹팬 아니랄까봐 빡쳤네 LOL

-진심? 중국팬들이 화내면 어쩌려고

-여전히 나베이가 우즈 위라고 생각함? 세체원이라고?

「Park Monte」- Fucking my big miss

해외에서도 비평이 쏟아질 만큼 큰 이슈다.

안섹의 갑작스런 포지션 변경과, 그로 인한 참패는 팬들에게 엄청난 충격이 되었다.

이렇듯 비상식적인 사건이 LPL에서는 심심하면 일어난다.

코치가 정해준 픽에 불응하거나.

선수들끼리 치고 박고 싸운다거나.

기타 등등 팬들의 입에서 '열심히 해도 모자랄 판에' 아쉬운 말이 안 나올 수가 없다.

「大?」

4일 전。

중국의 인적 자원과 자본력은 세계 최고지

그만큼 병크도 세계 최고라 문제일 뿐

-Team King 코치처럼?

-실력만 따지면 LPL이 최고일 텐데

-게임을 대충 해서 그래. 진지하게 했으면 빵즈 따윈 밥이야

웨이보主- 왜 프로 무대에서 그딴 짓을 하냐? 나도 중국인이지만 니 말엔 동의할 수 없다

대외적으로는 자부심이 끓어 넘치는 중국이다.

내부적으로는 비판적인 시선도 끊이지 않는다.

The Golden Shield에 의해 인터넷이 갈라파고스화 되어있다 보니 알려지지 않을 뿐.

LPL 시작을 열흘 앞두고 중국팬들은 시끌벅적하다.

자신들끼리 입롤을 쏟아내며 발전 방향을 모색 중이다.

화제 대부분이 농담 따먹기와 다를 바 없지만 일부 '진짜'들도 있었다.

「猫街后巷」

3일 전。

아ㅋㅋ 너무 웃기다

본계정으로 말하고 싶은데 걸리면 시말서 써서 뒷계정으로 썰만 풀게!

자칭 업계 관계자의 찌라시.

한국에서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 일이다.

한두 사람 건너면 다 알 만큼 e스포츠판이 협소하다.

그에 반해 중국은 넓다.

업계 종사자가 몇백 명 수준이 아니다.

규모가 워낙 크다 보니 입단속도 잘 되지 않는다.

-응 지랄

-입으로는 나도 코치, 감독이지

-생각 좀 하고 말해라ㅋㅋㅋ

-마왕이 원딜을 왜 하겠어?

이렇듯 믿기지 않는 찌라시가 종종 퍼진다.

대부분은 당연히 글자 그대로 찌라시.

하지만 간혹 진짜가 되는 것도 있다.

또 다른 충격적인 소식이 LPL을 강타한다.

* * *

롤유저라면 한 번씩은 해보는 고민이다.

「솔로랭크에서 가장 이기기 힘든 포지션은 어디일까?」

대부분은 자기 포지션을 격하게 징징댈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진지하게.

진지 좀 먹고 따지면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롤을 잘 안 하는 유저는 서포터라고 대답한다.

롤을 좀 해본 유저는 원딜러라고 대답한다.

'원딜러라는 포지션이 수동적이거든.'

딜은 확실히 세다.

괜히 원거리 '딜러'가 아니다.

하지만 딜을 하기 위해서는 조건이 붙는다.

평균 이상의 성장.

딜을 넣을 수 있는 구도.

최소한 무너지지 않는 게임 상황.

─아군이 당했습니다!

적 더블 킬!

스크림이 진행되고 있다.

상대는 듣도 보도 못한 2부팀.

그럼에도 전황이 썩 좋아 보이지 않는다.

'허허허, 씹새끼들.'

갑질을 하는 건 좋다.

나는 선수들의 실력과 패기를 존중한다.

잘하는 선수가 잘난 척을 하는 건 스타성의 일환이라고까지 본다.

근데 못하면서 아가리만 털면 이야기가 다르지.

탑&정글 교전에서 터져 버렸다.

그 책임을 서로에게 전가한다.

"젠부샤쓰각인데 왜 빼는 거야?"

"눈 사시냐? 라인 안 봐? 콜도 없이 점멸 써놓고 무슨 호응을 하라고."

챌린저라고, 프로게이머라고 각 상황에 대한 판단이 항상 일치하는 건 아니다.

여러가지 따져야 할 요소가 많기 때문이다.

'개인마다 성향도 갈리고.'

이러한 의견 차를 객관적인 입장에서 좁혀주는 것.

그것이 바로 코치진이 해줘야 할 일이다.

그 점을 기대하기가 매우 힘들다.

팀을 이적한지 일주일이 흘렀다.

여러가지 사건이 있었지만 한 마디로 요약된다.

무한한 고통을 받고 있다.

─아군이 찬성 4표 반대 0표로 항복에 찬성했습니다!

게임 시간 20분이 되기가 무섭게 서렌 투표가 시작된다.

내 소중한 한 표의 권리가 의미가 없다.

칼같이 찬성 네 표가 꽂혀버린다.

원딜러는 기본적으로 후반 캐리.

초중반의 영향력은 없다시피하다.

상체가 미친 듯이 터지면 억울하게 지는 경우가 생긴다.

'사실 별 일은 아니지.'

솔로랭크가 아닌 스크림이다.

20분 이상 가는 경우가 오히려 적다.

왜냐?

글자 그대로 연습이기 때문이다.

초반에 BAAM-! 터져 버리면 그냥 끝낸다.

터진 게임 하기 싫은 건 프로게이머도 마찬가지다.

한국도 그럴지언데 중국이 더한 건 딱히 이상할 것도 없으나.

"내가 보기에는 정글이 잘못했어. 갑자기 점멸 쓰면 얼마나 놀랐겠냐."

"아니, 갑자기가 아니라니까요?"

"거봐라~, 내 말이 맞지? 키킥."

언제나 그렇듯 문제는 과정과 해결이다.

감독님께서 친히 피드백을 해주신다.

'나도 깜짝 놀랐어.'

놀라게 한 정글 잘못이라니.

이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야.

실시간 AOS 게임인데 당연히 갑자기 점멸 쓰지.

하지만 내심 이해가 되는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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