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1화 (131/201)

'갑자기'라는 개념이 와 닿지 않는 것이다.

게임을 안 해본 사람은 그렇게 생각할 만도 하다.

상황이 순식간에 확확!

이동기나 점멸을 쓰면 0.1초만에 급변한다.

감독님 눈에는 그것이 너무 갑작스럽다고 보였다.

'그 전후 상황을 분석해서 설명하는 게 코치진의 역할인데.'

얼핏 던지는 것 같은 플레이도 판단의 근거가 존재한다.

만약 내가 피드백을 했다면 일단 최소 30분은 잡고 들어간다.

정글 위치에 따른 딜교환 강점부터 시작해, 어쩌고저쩌고 하다가 서로 호흡 맞춰보라고 솔로랭크 듀오로 던져 놓는다.

서로가 가진 생각의 차이를 이론으로 풀어내고, 실전에서 다시 한 번 맞춰보라는 방식이다.

여기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V5 Esports Club의 코칭 스태프들은 최소한도 하지 못하고 있다.

"솔킬 안 당했으면 이겼겠다."

"정글 차이 때문이라니까요?"

"그래, 정글 잘못도 있긴 해. 갱킹 좀 적극적으로 해주고 역갱도 쳐주고 그래."

감독에 이어 코치들도 우리나라 사람이다.

비교적 중국어를 할 줄 아는 코치 한 분이 나름대로 열심히 지적한다.

듣고 있자니 입이 간질간질 해진다.

'그게 쉬웠으면 LOL이라는 게임이 인성파탄 게임으로 악명을 떨치지도 않았겠지.'

코치와 감독이라는 직업이 필요하지도 않았을 테고.

해주고 싶은 말이 한두 마디가 아니다.

총체적 난국이 아닐 수 없다.

JCG Games는 그래도 서로 잘해 보려다 지랄병이 난 케이스다.

여기는 어디부터 따지고 들어야 할지도 난감하다.

사실 일련의 사태가 그렇게 드물진 않다.

'이게 왜 드물지 않아야 하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어.'

솔직히 코치로서는 도저히 용납이 안된다.

하지만 업계 사정이라는 게 있다.

현재 중국은 그야말로 개판이다.

안 그래도 개판이데 엑소더스가 터지면서 더 뒤죽박죽이 된 거지.

그 와중에 파이가 커지니까 돈 노리고 온 인간들도.

이곳 같은 팀이 엄청나게 많다.

대부분은 2부나 3부 리그.

1부 리그인 LPL은 비교적 청정해야 한다.

카드를 좀 심각하게 잘못 뽑았다는 사실은 인지하고 있다.

"오! 창민이. 스크림 수고했어."

"감독님도 수고하셨습니다. 코치님들도."

"창민이가 들어오고 스크림 승률이 많이 괜찮아졌어. 이대로면 LPL 우승도 꿈이 아니야!"

대단한 포부에 몸 둘 바를 모를 지경이다.

감독님께서는 만족스러운 모양이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낸다.

"뭐, 불편한 건 없고?"

"없습니다. 밥도 맛있고, 잠자리도 편하네요."

"그렇지~ 여기가 선수 복지가 정말 좋아. 라떼는 말이야……."

Latte is horse.

스타크래프트 시절 이야기를 쏟아내신다.

개인적으로 흥미는 있는데 그걸 새겨들을 만큼 한가하진 않다.

"개인 연습을 더 하고 싶어서 실례하겠습니다."

"연습 좋지! 감독은 창민이만 믿고 있어."

적당히 실례한다.

마음 같아서는 감독 얼굴에 실례를 하고 싶지만 그렇게 감정적으로 나서서는 될 일도 안된다.

'중국에 온 한국 선수들이 가장 흔하게 범하는 실수지.'

누가 봐도 팀이 막장이다.

뜯어 고치지 않으면 답이 없겠다.

일부 선수들은 자발적으로 팀 운영에 개입한다.

소년 만화, 혹은 영화 한 편 찍는 것이다.

코치진과 물밑 협상을 시도한다.

선수들을 설득해 연습시킨다.

한국 사람들이 원래 매사에 적극적이다.

나라면 이 팀을 바꿀 수 있어!

그렇게 인생의 쓴맛을 본다.

'혼자 할 수 있는 건 한계가 있는 법이야.'

개인의 능력과는 무관하다.

능력이 엄청나다고 쳐도, 따라주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무엇이든 사소한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V5에서 보낸 일주일의 시간.

결코 의미 없이 썩히지 않았다.

팀원들에 대한 데이터를 차곡차곡 축적했다.

"정말이지? 난 딱 50위만 찍으면 그만둘 거야."

"그러던가. 나도 보너스 때문에 하는 거니까."

"크큭! 하긴."

그리고 누구부터, 어떻게 공략해야 할지도.

모든 팀이 그런 건 아니지만 과도기인 팀들은 대부분 있다.

스크림 고성적, 혹은 솔로랭크 일정 등수 달성시 특별 보너스 혜택.

'한 마디로 돈이지.'

이곳 선수들이 가장 절실하게 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그것이 쉬웠으면 진작 타갔다.

수준이 받쳐주는 선수들도 50위권은 각 잡고 하지 않는 이상 힘들다.

수준이 받쳐주지 않는다면 더더욱.

V5의 평균 점수는 챌린저와 마스터를 왔다갔다 한다.

노력도 하지 않으니 자력 달성은 그림의 떡밖에 되지 않는다.

"진짜로 한국 서버 1위 찍은 적이 있어?"

"한 세 달 전에?"

"오~~."

나와 듀오를 한다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쉽게 꼬드길 수 있었던 연유다.

꼬드긴 대상은 팀의 서포터를 맡고 있는 강첸.

'원딜러가 수동적이고, 점수 올리기 힘든 포지션인 건 맞아.'

근데 한 번쯤 곱씹어볼 일이다.

솔로랭크 최상위권 랭킹을 보면 원딜러가 가장 많다.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솔로랭크에서 가장 이기기 힘든 포지션은 어디일까?」

롤을 잘 안 하는 유저는 서포터라고 대답한다.

롤을 좀 해본 유저는 원딜러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롤을 진짜 잘하는 유저는 결코 바텀을 꼽지 않는다.

'물론 이걸 일반화시키기는 좀 그래.'

마지막 유저는 못해도 상위 200위권 내의 챌린저들이다.

일반 유저들과 너무 동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상식과 개념이 다른 것은 당연지사다.

중요한 건 내가 그 해당 사항이다.

나 뿐만 아니라 프로게이머라면 전부.

원딜러라는 포지션은 결코 방관자가 아니다.

'오히려 주인공에 가깝지.'

흔히 까다롭다고 오해하는 조건만 달성시키면 된다.

과거의 나는 이를 해내지 못했다.

현재의 나라면 못할 것도 없다.

그를 위한 첫 걸음.

일단 서포터를 하나 조련시킨다.

2015 LPL 스프링 시즌 정규 시즌 1주차가 진행된다.

더욱 더 방대해진 규모.

훨씬 화려해진 연출과 무대.

지방 정부의 막대한 지원 하에 연고지 제도까지 펼쳐진다.

팬들의 기대가 무르익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런데 시작부터 벌써 말이 많다.

「柳??」

7일 전。

안섹을 탑으로 보내더니

마왕도 이제 원딜로 보내네ㅋㅋ

「Lz?」

7일 전。

얼마나 창의적으로 트롤하는지 코치진끼리 경쟁 붙었나?

.

.

.

도저히 믿을 수 없던 찌라시.

LPL팀 엔트리 공개와 함께 진상으로 판명되었다.

마왕을 영입한 V5 Esports Club에게 팬들의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저게 진짜였다니ㅋㅋㅋ

-혹시 빵즈 선수들을 견제하는 건 아닐까?

-빵즈 견제설은 멍청한 소리지. 한국 선수가 있는 팀이 한두 팀도 아니고

-돈 주고 사온 아군을 왜 견제해!

팀을 옮긴 것 자체는 의외로 별 일이 아니다.

돈을 더 많이 주나 보지!

황금만능사회인 중국에서는 자연스럽게 이해한다.

문제는 포지션 변동.

정글러가 아닌 원딜러로 등록돼있다.

상식을 벗어나도 너무 아득히 벗어났다.

「?醉心」

5일 전。

마왕이 정글 말고 다른 라인도 잘하긴 하지

원딜 빼고!

「香霖堂的茶?」

5일 전。

V5는 상체가 너무 못하잖아?

바텀은 파밍만 하다 게임 끝나;;

.

.

.

한국에 있던 시절.

탑도, 미드도, 정글로까지 활약했다.

중국의 일부 팬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당시에도 원딜은 하지 않았다.

누가 봐도 숨이 턱턱 막히는 결정이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런 짓을 저질렀는지.

-안섹 난리 난지 얼마나 됐다고……

-무언가 생각이 있는 결정이 아닐까?

-마교주 피지컬이면 원딜도 잘할지도

-뭐, 본인은 잘할 수도 있겠지

이해는 안되지만 한 켠에서 혹시나 하는 마음도 든다.

온갖 악조건 속에서도 엄청난 실력을 보여줬다.

V5의 코치진도 생각이 있을지도 모른다.

─퍼스트 블러드!

얄짤없이 무너지고 있다.

LPL 개막식 당일 두 번째 경기.

V5 대 EDC전은 허무할 정도로 일방적이다.

〈클래식러브 선수가 탑에서 선취점을 만들었습니다!〉

〈라인전 CS도 그렇고, EDC가 너무 기분 좋게 리드하는데요?〉

초반 라인전부터 삐그덕댄다.

상체 싸움이 아예 상대가 안된다.

하체가 어지간히 힘을 내주지 않고서야 불리한 흐름인데.

푸슝!

타, 탕!

그런 기행이 가능하다.

최근 중국에서 가장 떠들썩한 선수다.

개인으로 한정하면 이만큼 캐리력 넘치는 선수는 없지 않을까?

마왕의 부시안이 무섭다.

서슴없는 앞대쉬로 때리고 본다.

선고가 빗나간 쓰렉귀가 숨 넘어갈 지경으로 허우적댄다.

와아아아아-!

하지만 그에 못지 않다.

상하이 경기장 관중들이 흥분하는 이유가 있다.

중체원 우즈를 찍어 누르며 존재감을 과시했던 알파카.

"꾸웨에에엑!"

야성미 넘치는 괴성을 지르며 프리딜을 쏟아낸다.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이성을 잃지 않는다.

이즈레알이 침착하게 툭툭 응전하자.

〈서로 한 치도 양보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야말로 포연탄우(砲煙彈雨)!〉

총포의 연기와 비 오듯 하는 탄알.

한타를 방불케 하는 치열한 접전이 라인전 단계에서 펼쳐진다.

그러면서도 사상자가 나지 않는다.

오직 일류 선수들이 맞붙었을 때만 나올 수 있는 곡예다.

난장판 같은 딜교환이 아슬아슬 합의점을 찾는다.

보는 이들의 감탄사를 자연스럽게 이끌어낸다.

-딜 넣는 클라스가 서로 미쳤네

-더 들어 갔으면 다 죽었다ㄷㄷ

- (ㅡㅅㅡ)

-마왕 원딜도 미치게 잘하는데?

포지션을 바꿨다는 사실이 무색하다.

탑클래스 선수만이 가지는 패기를 내뿜는다.

하지만, 안섹도 결코 탑을 못해서 논란이 됐던 게 아니다.

─더블 킬!

EDC 클래식러브님이 학살 중입니다!

탑에서 또다시 정글 차이가 난다.

이번에는 더블로 크게 들어간다.

만약 마왕이 정글이었어도 이런 장면이 나왔을까?

팬들로 하여금 만약이란 생각이 들게 만든다.

그렇기에 논란이 됐던 것이다.

심지어 미드에서는.

─EDC 궆(르풀랑)님이 V5 퍼즐(자드)님을 처치했습니다!

솔로킬이 터지고 말았다.

일련의 광경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EDC는 2015 LPL Spirng의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다.

중체정으로 손 꼽히는 클래식러브.

테이커의 라이벌이라 불리는 궆.

야생 동물 같은 원딜러 알파카.

캐리 라인이 맛이 간 수준으로 든든하다.

상하이 LDL 결승에서 중국 최고라 불리던 Royal Club을 3 대 0으로 꺾으며 파란을 몰고 왔다.

〈바텀이 굉장히 분전해주고 있긴 하지만…….〉

〈상체가 이렇게 무너지면 답이 없죠! 입장을 뒤바꾸어 생각해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하체가 다소 분전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역전의 희망이 될지.

기대를 하기에는 차이가 나도 너무 난다.

-바텀 불쌍하네

-바텀이 뭘 한 게 있다고?

-할 게 없으니까 불쌍한 거지ㅋㅋㅋ

-상체 터지면 원딜은 답이 없어

원딜러가 활약하기 이전에 게임이 끝난다.

상체 차이에 의한 스노우볼.

─블루팀의 포탑이 파괴되었습니다!

온갖 방향으로 굴러간다.

피지컬로 비비는 것도 어느 정도다.

중반 타이밍의 상체와 하체 레벨 격차는.

사앗……!

11레벨 르풀랑이 갑작스레 나타난다.

금빛 사슬을 이으며 풀콤보.

9레벨 부시안은 스치기만 해도 죽는다.

아니, 스치지 않아도 죽는다.

레벨 차이와 점화로 강제 킬각이 가능하다.

이미 알고 있는 듯한 움직임이다.

타, 탕!

푸슝!

역으로 공세를 쏟아 붓는다.

사슬을 피하며 계속 두들긴다.

총구에서 불이 쉴 새 없이 뿜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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