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기에 말이지. 이번에 배인 하면 딱이야!"
"……네?"
이어지는 두 번째 세트의 밴픽.
간만의 승리에 덩실덩실 신이 난 감독이 밴픽에 개입해온다.
"우리가 배인을 뺏어오는 거지. 상대는 절대 생각도 못하고 있을 걸?"
"확실히 절대 생각도 못할 만하네요."
나도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아니, 한 번쯤 있을 만도 하다고 생각했다.
'갑자기 깨달음을 얻으신 거지.'
V5도 코치진이 밴픽 지도를 한다.
근데 아는 게 별로 없다 보니 사실상 선수들의 자율에 맡기고 있다.
그렇게 쭉 닥쳐주면 오죽 좋으련만.
"배인이 캐리력 제일 좋잖아~. 뺏어와서 키우기만 하면 더 쉽게 이길 수 있다니까? 상대팀이 하는 거 우리가 똑같이, 더 잘하면 돼!"
아는 게 없으면, 깨닫는 것도 쉽다.
고민할 비교 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백지나 다름없는 상태에선 뭐든 참신해 보인다.
지금까지 이긴 게임이 다 내 캐리다.
그러니까 나만 몰아줘서 잘 키우면 된다.
그것이 정답이라고 철썩 같이 믿고 있다.
심지어 그 모범 답안을 눈앞에 있다.
Royal Club이 그런 색채를 띈 팀이다.
오해를 할 만도 하기에 말하기 더 언짢다.
'원딜이 잘하면, 원딜만 키우면 된다는 생각에 빠지기 쉬운데.'
실제로 커뮤니티에서도 자주 나오는 이야기다.
바텀갱만 존나 가서 키우면 원딜 캐리 나오겠구만.
당연하게도 세상 일이라는 게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프로 레벨에서는 한 가지 반드시 가져야 할 마인드가 있다.
내가 아는 건 상대도 안다.
이 하나의 전제 하에 다시 한 번 곱씹어보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바텀만 키우면 동선이 뻔해지고, 강팀들은 그걸 역산해서 카운터를 쳐버려.'
스타크래프트로 치면 상대가 4드론이야?
그럼 난 9드론 하면 쉽게 막고 이기겠네.
큰 틀에서 봤을 때 그거랑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하필이면 배인.
이 또한 흔히 가질 수 있는 오해다.
하드 캐리형 원딜러라고 생각해버리는 것이다.
"그거 참 기똥찬 생각이시네요."
"그러취이~?"
"근데 저는 잘 모르겠어서 감독님 말씀대로 한 번 해볼게요. 감독님 말씀대로."
나 또한 배인에 대해 애착이 있다.
숙련도가 부족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코치의 시선에서 보자면 냉정할 수밖에 없다.
배인은 조건을 엄청나게 탄다.
단적으로 말해서, 강팀만의 전유물이다.
성장의 과정부터 한타 포지션까지의 난해한 요소들을 개인기와 피지컬로 커버하는 건 한계가 있다.
'전설의 레전드급 피지컬이 아닌 이상 예외는 없어.'
리치가 짧다.
라인 클리어가 안된다.
기타 등등의 단점은 잡기술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일련의 단점.
설명을 하는 것이 어렵다.
배인이 캐리형 원딜러 중에서 유일하게 생존기가 특출남에도 프로씬에서 안 쓰이는 이유를 브론즈한테 납득시키려면 최소 한 시간은 잡아야 한다.
'그것보다는 차라리 선례를 만들어두는 게 낫겠지.'
무능한 상사 말 무시하고 일사천리로 진행할 수 있으면 오죽 좋을까?
당연하게도 그런 이야기는 아침 드라마에서나 나온다.
* * *
Royal팬들로서는 입안이 바싹 마른다.
첫 번째 세트의 패배.
그 의미가 무겁다는 사실이 이미 웨이보, 커뮤니티에 파다하다.
「看、灰太狼」
3분 전。
Royal팬들은 각오 단단히 해
유입들은 모르겠지만 우즈는 원래 기복이 심하다
「斯??」
3분 전。
기복은 개뿔 그냥 실력이지
원딜 차이로 털린 건 언급도 안 하지 R갈들은?
「歌?好?」
2분 전。
우즈 멘탈 승천ㅋㅋㅋㅋ
.
.
.
팬들도 알고, 안티들도 안다.
멘탈 관련한 사고들을 숱하게 쳐온 탓이다.
한국이었으면 프로 생활 못할 만한 수준도 몇몇 끼어있다.
그렇게 멘탈이 무너지면 경기력에도 영향을 미친다.
진행되는 두 번째 세트의 경기.
아니나 다를까 라인전이 위태위태하다.
챵!
데구르……!
투웅!
평타 끝 사거리에서 친다.
구르기로 안전 거리를 확보하며 또 친다.
상대의 반격을 불허하는 선고는 감탄사를 절로 자아낸다.
-일방적인 딜교환
-스펠 실드 반응도 못하네
-멘탈 터졌어. 피부 달아오른 거 봐봐
-붉은 돼지ㅋㅋㅋ
오프라인상에서만 성화다.
현장 관중들은 애타는 표정으로 지켜본다.
Royal팬이라는 것 자체가 사실상 우즈팬의 동의어다.
「이거나 먹어라!」
치비르로 파밍을 하는 게 고작.
처량한 라인전을 진행하고 있다.
중체원이라는 석자가 어울리지 않는 광경이다.
─Royal 사오후(르풀랑)님이 V5 퍼즐(아링)님을 처치했습니다!
문제는 다른 라인이다.
상체 구도가 지극히 불리하다.
미드&정글 주도권이 완전히 무너져 있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예견된 일이다.
첫 번째 세트도 딱 이런 구도였다.
라인전만 어떻게든 끝나면 된다.
〈Royal Club! 지금 4인 다이브 설계하는 그림이죠?〉
〈그러니까 V5 바텀도 쭉 빼긴 하는데…… 이러면 미니언 손해가 막심해지는데요.〉
그 라인전을 가만히 좌시하지 않는다.
미드&정글이 바텀 로밍을 간다.
버텨보기에는 숫자 차이가 확연하다.
미리 뺀 판단은 분명 옳다.
하지만 차악이지, 최선은 아니다.
채팅창에서 이야기가 안 나오기 힘들다.
-첫 세트에도 저렇게 좀 해주지
-우즈를 키우란 말이야!
-못하니까 팀빨로 크는 수준ㅋㅋㅋ
-근데 진짜 바텀갱을 왜 안 갔던 거지?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다.
갱킹이라는 게 그냥 간다고 갱킹이 아니다.
동선 낭비, 턴 낭비 같은 용어가 괜히 사용될까?
어정쩡한 라인에 갱킹을 가봤자 견적이 안 나온다.
첫 세트는 라인 관리가 제대로 되고 있었다.
현 세트는 라인 관리가 되지 못하고 있다.
데구르……!
챵!
라인에 돌아온 배인.
열심히 막타 계산을 하며 받아 먹는다.
감탄이 나올 만큼 깔끔하지만, 반대로 보면 그게 끝이다.
오직 평타로만 CS를 관리할 수 있다.
그 단점이 팀게임에서는 적나라하다.
하물며 상체가 약하기까지 한 상황에서는.
'어?'
파르르 떨리던 볼살이 멈춘다.
눈을 떠보니 게임이 할 만하다.
아니, 자신만 정신 차리면 이길 것 같다.
타랑! 탕, 탕탕!
「이거나 먹어라!」
치비르 특유의 라인 클리어.
그것만으로도 바텀은 반반이 된다.
그러자 게임은 자연스럽게 상체 차이로 기운다.
'스타랑은 다른가? 내가 왕년에 카운터 빌드 하나는 기가 막히게 찾았는데…….'
V5의 코치진.
그런 생각이 안 들 수가 없다.
그렸던 것과는 구도가 많이, 상이하게 흘러간다.
─레드팀의 포탑이 파괴되었습니다!
앞라인 차이가 심각한 대치 구도.
배인이 할 수 있는 것은 없다시피 하다.
어쩔 수 없이 사이드에서 파밍이라도 하고 있으면.
─더블 킬!
어김없이 패전보가 들려온다.
본대가 물리며 게임이 휙휙 터진다.
제대로 된 한타 구도 자체가 나오지 않는다.
와아아아아아-!
긁적긁적 흐름을 간신히 따라가던 우즈도 정신을 차린다.
붉었던 얼굴이 선홍빛으로 생기를 되찾는다.
적당한 흥분과 긴장, 감정의 고조는 경기력에 오히려 좋다.
Royal! Royal! Royal! Royal! Royal! Royal!
쏟아지는 팬들의 응원 또한 마찬가지다.
홈 어드밴티지.
현장을 가득 메운 Royal팬들의 응원은 의미가 없지 않다.
멘탈이 나가있던 우즈에게는 더더욱이다.
팬들의 응원과, 두 번째 세트의 승리로 회복한다.
이는 이어지는 세 번째 세트에도 유의미한 영향을 미친다.
─퍼스트 블러드!
여전한 상체 차이.
가진 바 힘의 격차는 이제는 숨길 것도 없다.
그나마 분전해주던 바텀도.
「애걸해봐라!」
우즈의 갈리스타가 딜교환을 밀리지 않는다.
첫 세트에서 라인전이 약한 배인을 골라서 그렇지.
항상 세체원 후보로 거론되는 이유가 있는 선수다.
그렇게 바텀 균형이 맞아 떨어지자, 전체적인 게임의 흐름이 크게 변한다.
안 그래도 나던 상체 차이가 더욱 두드러진다.
「얼어붙어라!」
사오후의 얼음마녀.
착실한 딜교환은 다이브의 근거가 된다.
정글과 함께 킬을 따내고, 유유히 도주에 성공한다.
정글은 소극적이다.
탑은 캐리력이 없다.
미드는 라인전이 약하다.
V5의 약점 삼중주가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Royal Club이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
유일한 동아줄인 바텀의 변수도 나오지 않는다.
〈바텀 입장에서는 참 답답한 구도네요.〉
〈사실 첫 세트가 기적에 가까웠던 거지……, Royal Club이 어떤 팀입니까? 4승 1패, 정규 시즌 2위의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 중 하나거든요!〉
그에 반해 V5의 성적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해설진의 말대로 기적이란 표현이 적절하다.
하위권팀이 상위권팀 이기는 게 녹록한 일이 아니다.
-LPL의 치타 우즈가 드디어 달린다!
-하위권팀을 상대로 가슴을 졸여야 한다는 게 참;
-졌으면 우즈 멘탈 터지고 큰일 날 뻔했어
-Royal! Royal! Royal! Royal! Royal! Royal!
지금까지 꼴찌를 간신히 면하고 있었다.
오늘 경기의 패배로 진짜 꼴찌가 되고 만다.
안타까운 성적표와 함께 정규 시즌 1라운드가 끝이 난다.
정규 시즌 1라운드가 끝이 났다.
각 팀은 희비가 교차하는 성적표를 받고 있다.
「2015 LPL East 스프링 STANDINGS」
1. EDC 5승 1패 +9
2. Royal Club 5승 1패 +7
3. LCD Gaming 4승 2패 +4
4. Vlcl Gaming 3승 3패 +1
5. IC 2승 4패 -2
6. QG Reaper 1승 5패 -5
7. V5 Esports Club 1승 5패 -6
상위권이 확고하고, 중위권의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하위권도 고군분투하고 있다.
이를 LPL팬들은 짤막한 세 단어로 정리했다.
천상계의 두 팀.
인간계의 세 팀.
심해의 두 팀.
LOL에서 흔히 사용되는 표현들로 말이다.
익살스럽지만, 실제 일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1라운드 정도 끝나면 각 팀의 데이터가 대강 정리된다.
「7777」
3일 전。
일단 Royal이랑 EDC는 플옵 확정이지
누가 우승할지는 봐야 알겠고
LCD가 가장 큰 다크호스일 듯
-먹고 먹히는 사슬 관계ㄷㄷ
-Royal이 LCD 이기고, EDC가 LCD한테 졌지?
-하지만 결국 우승 전력은 아니라고 봄
-인간계에서도 반전 나올 만한데
어느 팀의 우승이 유력하고, 어느 팀이 반전 가능성을 보이는지.
팬들의 시선마다 차이가 있다.
게임을 보는 눈, 팬심까지 고려 대상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반전 없는 천상계의 우승이다.
아니다, 인간계의 혁명이 시작된다.
여러 의견이 대립되지만 딱 한 가지 만큼 공통적이다.
「?13奔三?身狗」
2일 전。
QG랑 V5는 탈락 확정
얘네는 절대 플옵 못 감
신이 도와 4위 진출해도 절대 그 이상은 안돼
가장 낮은 심해로 분류된다.
득점이 -4점으로 암울하기 그지없다.
진짜 문제는 1라운드에서 보인 경기력이다.
〈QG? QG는…… 한 마디로 IC 하위 호환이지.〉
〈날카로운데? 확실히 탑&바텀이 활약하는 게임을 본 적이 없어.〉
엄청난 인구수를 바탕으로 한 e스포츠 시장.
풍부한 인적 자원, 넓은 인프라까지 바탕이 된다.
대회 방송을 제외하고도, LOL관련 컨텐츠가 제법 많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건 LPL 품평회다.
팬들이 가장 궁금해 할 내용이니 자연스럽다.
한국의 BTS 도르쇼와 비슷한 느낌의 방송이다.
〈그러면 V5는 어때?〉
〈V5? 1승 5패 최하위권의 원딜 원맨팀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