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에 나루에게 희생이 강요되는 구도였다.
결과가 안 좋은 건 나루를 탓할 게 아니다.
이렇듯 선수의 입장.
"아~~ 억울하긴 하겠다."
"물론 다리우스 선수가 아예 CS를 포기하면 또 몰랐는데 그건 솔직히……."
"알았어. 알았어! 니 잘났다 정말."
"……."
이상 내가 레오파드와 척을 진 이유다.
'아오 이 애새끼.'
e스포츠판에선 그렇게 드문 타입이 아니다.
자기 잘난 맛에 살아가는 사람.
솔직히 나도 비슷한 성향이다.
그러다 보니 차후에는 3대장 드립도 생긴다.
롤판 이단아 레오파드, 치맥, 나 이렇게.
내 입장에서는 억울하기 그지없다.
'난 누구누구처럼 이순신 장군이 명량 해전을 이길 수 있었던 건 폭탄 목걸이를 걸었기 때문이다, 5252 Let the Killing begin이라구? 이런 흑역사를 만들진 않았어.'
싸이월드병 걸려서 헛소리를 하거나.
급식 여자애 마냥 SNS에서 칭얼대거나.
뭐, 나도 개인 방송에서 점잖았던 건 아닌데.
"레오파드형은 코치가 천직이에요."
"그래? 그래 보여?"
"감독은 절대 안 했으면 좋겠어요."
나는 코치고, 저 사람은 감독이라 그렇다.
개인적으로 감독은 그러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촐싹대는 감독들은 우승 커리어가 없어요.'
감독은 팀의 대들보다.
땅이 흔들리고, 지붕이 무너질지언정 대들보만은 굳건해야 한다.
결승전에서 선수들 멘탈 터질 때 같이 터져서는 안된다는 소리다.
내 개인적인 철학이다.
물론 그것이 절대적으로 맞다는 건 아니다.
일정 이상의 능력을 가진 사람은 그냥 그 사람의 스타일이 있다고 보기 때문에 존중을 한다.
"너는 다른 라인도 잘 아네? 구도를."
"제가 감수성이 깊어서 그래요. 형도 공감 능력을 기르세요."
"너 혹시 그런 커뮤니티 하니?"
"……안 합니다."
마찬가지로 나도 나만의 스타일이 있다.
LOL이라는 게임이 굉장히 복잡하게 굴러간다.
모든 것을 이성적으로만 따져서는 해석에 한계가 있다.
'선수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직감인데, 그걸 조금 더 구체적으로 풀어낸 거지.'
뭔가 설명하기가 묘하다.
그냥 공감해!!
약간 모 커뮤니티 같은 특성이 묻어난다.
레오파드씨가 오해를 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어차피 선수들은 다 알아서 납득을 한다.
느낌적인 느낌으로 끄덕끄덕 하며 통한다.
재능도 있고, 어린 나이대라 공감 능력이 풍부하다.
"그럼 우리 경기 말인데, 베네티오전은 어떻게 생각해?'
"뭐 웬만하면 이기지 않을까요? 그냥 체급 차이가 너무 커서."
"그렇지. 근데 나는 그 체급 차이를 믿고 결승전에서 패배했단 말이야~."
"하하하."
Veneto e-Sports Club.
터키 지역을 대표해 나왔다.
메이저라 불리는 4대 지역을 제외하고도 출전팀이 있다.
'근데 메이저는 메이저인 이유가 있어.'
기본적으로 체급이 다르다.
어른과 아이라고 보면 된다.
어른끼리 실력 차이가 난다고 해도, 아이와는 엄연히 다르다.
럭키 펀치.
이변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이긴다.
이변이라는 건 흔히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이변인 거다.
강자의 방심이 전제돼있는 현상이다.
"우리가 방심은 안 했어."
"게임이 더 타이트하게 갔으면 저희가 좀 힘들긴 했을 거에요."
"하, 그거……. 아쉬운 부분이 없진 않았지."
감독과 코치는 이론적으로 게임을 하는 입장이다.
딱딱, 유리한 타이밍에만 싸워주길 바란다.
'그게 틀리다는 건 아니야.'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씬이다.
모두가 다 잘하는 게 전제다.
정답과 오답이 아닌, 더 잘하고 더 잘하지 않고만이 있을 뿐이다.
안정적인 뼈대가 아닌 그 이상의 전략.
이를 만들어내는 게 바로 코치의 역할이다.
각 라인별 입장에 파고들어서 세부 조율을 하는 것이다.
"입롤이라면 입롤인데 정글도 그냥 리심 같은 거 해서 초반부터 설계했으면 어땠을까 해요."
"맞아~. 너 입롤이 너무 심해."
"……."
상당히 어려운 부분이다.
짐짓 입롤로 비쳐질 수도 있다.
'그 입롤을 매우 잘하면 실전에서도 먹혀.'
코치들도 타입이 나뉜다.
선수 메이킹형, 분석형, 실전 설계형…….
나 같은 경우 실제 게임 내에서의 전략에 중요도를 높이 친다.
자잘한 경기는 체급과 기본기가 가장 잘 먹힌다.
하지만 결정적인 경기는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이래 봬도 큰 무대일수록 강해지는 타입이다.
"농담이야 농담. 근데 그 피드백을 받아들이기에는 지금 시간이 없잖아."
"그렇죠. 저도 그냥 해본 소리에요."
"일단……, 우리팀이 얼마나 센지 봐봐."
EDC가 어떤 팀인지.
자부심이 느껴지는 말이다.
코치로서 공감하지 않을 수가 없지만.
'내가 이 형을 결코 싫어하지 않아.'
약간 꺼리는 이유.
단 한 가지가 너무 힘들어서다.
코앞까지 다가온 경기 직전, 레오파드는 조용히 아무도 들리지 않을 만큼 작은 목소리로 주문을 외웠다.
"자아, 살육을 시작하지!"
Let the Killing begin의 하지마루였다.
* * *
2015 MSI.
총 여섯 팀이 참가한다.
풀리그로 진행되며, 상위 네 팀이 토너먼트로 최종 우승팀을 가리는 방식이다
「[MSI] 포나틱 '파비밴-엘보우스타', "유럽이 북미보다 강하다"」
「[MSI] 한 명의 황제가 되기 위한 여섯 왕의 전쟁, 먼저 웃은 EDC」
「[MSI] MSI 개막, 롤 여신 조은나래 관심 급증! ‘비키니 몸매도 완벽!’」
그 관련 기사가 이미 쏟아지고 있다.
첫날이 이미 지나가 버렸기 때문이다.
만족하건, 만족하지 않건 성적표를 받아 든다.
「?山之石」
10시간 전。
역시 EDC!
믿고 있었다고 젠장!!
「@花」
10시간 전。
SKY T1은 완전히 부활했네
그래도 예전만한 위상은 아니야
「何斌斌」
10시간 전。
13시즌 때는 완전히 답이 없었지
하지만 지금은 전력적으로 동등해
.
.
.
그 반응은 지역별로 다르다.
적어도 중국에서는 만족하는 분위기다.
Veneto e-Sports Club, 포나틱을 연이어 잡으며 2승을 기록했다.
그리고 MSI 2일차.
포나틱과 TSL을 잡고 복병으로 부상한 LMS의 Aho Esports를 상대로도 승리를 거둔다.
〈벌써 3연승입니다! 그야말로 적수가 없다는 느낌인데요?〉
〈물론 TSL과 SKY T1이라는 과제가 남아있긴 한데…….〉
TSL은 기세가 완전히 저조하다.
사실상 문제가 안된다고 보고 있다.
SKY T1을 제외하면 이제 적수가 없을 정도다.
물론 그 SKY T1이 문제다.
중국이 못해서 준우승만 했던 게 아니다.
지금까지 한국에게 다 져버렸기 때문이다.
-테이커? 응, 우리는 궆이야
-테이커의 천적이잖아ㅋㅋ
-작년과는 다르지
-EDC! EDC! EDC! EDC! EDC! EDC!
하지만 이번 만큼은 자신이 있다.
이길 수 있는 선수들을 영입해왔다.
테이커의 천적이라 불리는 궆을 말이다.
"꾸웨에에엑!"
든든한 원딜러 알파카까지.
Aho전을 승리하고, 인터뷰에서 자신감을 드러낸다.
SKY T1전을 반드시 이기겠다는 각오가 서려있는 외침이다.
와아아아아-!
그 시간이 다가왔다.
SKY T1 대 EDC의 혈투가 펼쳐진다.
현장에 찾아온 수많은 중국팬,, 수천만의 온라인 시청자가 그 열기를 방증한다.
중국의 국가 대항전은 큰 의미를 가진다.
자국 리그에서는 투닥거려도, 일단 대표가 정해지면 한 마음, 한 뜻으로 응원하는 특성이 있다.
한국을 이기는데 전력을 쏟아부은 이유이기도 한데.
─트리플 킬!
SKY 하드훈님을 도저히 막을 수 없습니다!
예상치 못한 변수가 터지고 만다.
EDC는 강한 팀이다.
일일이 따질 것도 없이 당연하다.
'딴 거 다 둘째 치고 미드&원딜이 말이 안돼.'
월드 클래스의 선수들이다.
그 둘이 무난하게만 커도 유리하다.
롤은 결국 딜러 게임이기 때문에 든든한 보험이 된다.
후반에 갈 안전 장치도 충분하다.
클래식러브의 존재가 이를 가능케 만든다.
이렇게 톱니바퀴가 딱딱 들어맞도록 윤활유를 치는 것.
─EDC 알파카(갈리스타)님이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코치의 역할이며, 강함의 비결이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사실이다.
Aho전까지 3연승을 해버리자.
"이제 그만. 대충 알았다……. 세카이의 레벨."
레오파드 코치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린다.
유감스럽게도 바로 옆이라 들리고 말았다.
"시시해서, 죽고 싶어졌다."
"…………."
굉장한 자아도취에 빠진 모양이다.
팀의 승리, 선전.
선수들도 기쁘겠지만 코치와 감독에겐 그 이상으로 뿌듯한 순간임은 맞는 소리다.
'쳐맞는 소리기도 한데.'
처음이라면 당황했을 것이다.
세상에 별의별 사람이 다 있구나.
그 별의별 사람 중에서도 천외천의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과거, 그가 쓴 자작 소설도 기분이 안 좋으면 날이면 읽어보았다.
스트레스 해소에 탁월한 효능을 보인다.
그걸로 언제 현실 드립 치고 싶어서.
"정말로 살육을 시작해버렸네요."
"너……, 내 소설 읽어봤구나?!"
"아, 뭐 예."
"혹시 내 팬이야? 사인해줄까?"
"……."
하지만 하면 안될 일이다.
흑역사는 커녕 자랑스러워 하신다.
'저 녀석, 귀찮아.'
이 또한 반응을 알고 있었다.
언제 한 번 빡쳐서 일부러 비꼬듯이 놀렸는데 노 데미지.
그런 중2병 생활이 일상화가 되신 분이다.
모 축구 만화에서 '축구는 살인이다…….' 이 지랄을 하는데.
레오파드는 고작 살인이 아니라, 살육을 시작하는 Let the Killing begin의 창시자다.
아예 비교가 안된다.
「2015 MSI 6강 풀리그 순위표」
1. EDC 3승 0패
1. SKY T1 3승 0패
3. Aho Esports 2승 2패
4. Ponatic 1승 2패
4. Team Solo Line 1승 2패
6. Veneto e-Sports Club 0승 4패
실제로 성적도 살육에 가깝다.
SKY T1과 공동 1위.
경기의 내용도 흠잡을 데 없이 좋았다.
"이대로 '우승' 해버리는 거 아니야? 나, 멋있음, 확정."
"……."
이해가 안 갈 수도 있다.
이 정도로 흥분에 가득 찬 걸.
오히려 나는 그 심정을 공감하는 입장이다.
'선수보다 자뻑이 오기 좋은 게 코치야.'
선수가 하는 건 팀 게임이다.
내가 잘해도 나머지가 못하거나, 상대가 팀적인 합을 너무 잘 맞추면 질 수가 있다.
하지만 코치가 움직이는 건 하나의 팀이다.
패배했다면 그 팀이 약했을 뿐.
승리한다면 그 팀이 강한 것이다.
그 팀을 만든 나는 멋있음 확정~♪ 신이 난 것도 이해는 간다.
"시시해, 시시하다고……. 좀 더 나를 흥분시켜줘. 안 그러면 정말 죽어버리니까."
"……."
물론 저런 사람은 흔치 않지만.
그렇다고 또 없는 건 아니다.
'세상은 넓고, 또라이는 많아서.'
선수의 목에 폭탄 목걸이를 씌우거나.
검투사 마냥 지면 죽는다고 윽박지르거나.
이런 류의 코칭 방식은 확실히 효과가 있다.
그 말이 심하거나, 틀리거나 이전에 받아 들여진다.
아, 이 사람은 나에게 이렇게 진지하구나.
나도 연습을 정말 진지하게 해야겠구나.
나는 그런 코칭을 선수 메이킹형이라고 정의한다.
동기 부여를 통해 선수의 포텐셜을 끌어올린다.
그러다 보니 성적도 상당히 잘 만들어낸다.
"이제 SKY T1만 남았네. 이기면 최강이 돼버리잖아. 왜 세상엔 그 이상으로 강한 팀이 없는 거지?"
"……."
이러니저러니 해도 팀에게 중요한 건 체급이다.
팀 게임으로서의 기본기와 기량.
이 두 가지가 갖춰지면 하나의 팀이 탄생된다.
'그렇게 약점이 없는 팀을 만들어버리는 거지.'
자신이 최고의 팀을 만들 자신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