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 위해서는 지위가 필요하다.
감독의 길로 나아가는 것도 어찌 보면 자연스럽다.
"잠깐……, 만들면 되잖아 내가! 터무니없어. 이 세상, 지배해버릴까?"
"……."
이런 식으로 말이다.
이번 생에서도 그는 감독의 길을 걸을 심산인 모양이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그런 사람이 만든 팀은 우승을 못해.'
절대로 비꼬는 게 아니다.
그리고 우연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나친 자신감에서 비롯된 필연이다 오마에.
─트리플 킬!
SKY 하드훈님을 도저히 막을 수 없습니다!
'와 모 신데이루…… 이 새끼야.'
시작해버린 SKY T1전.
예상 그대로의 흐름이다.
* * *
EDC는 분명 강한 팀이다.
일일이 따질 것도 없이 당연하지만.
〈괴물! 나라는 괴물! 점점 블러디를 막을 수 없는 그림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LCK 해설진이 흥분에 가득 차있다.
용한타의 대승.
블러디체리의 급성장.
-나물 나온 시점에서 끝났지
-어이어이……, 깨워버린 거냐고
-녀??? 당황했나?
-힘의 차이를 느껴라 잡종놈들
세상에 강팀은 하나나 둘이 아니다.
SKY T1은 두 말할 여지없는 강팀.
고작 '강하다'는 정도로 통하지 않는다.
촤아악-!
블러디체리가 선집입해 피를 적신다.
피웅덩이로 파고들어 적을 붙든다.
「기가 갤럭시 브레이커!」
그 위로 떨어지는 람블의 궁극기.
이글이글 불타는 땅은 하나의 정답으로 귀결시킨다.
〈이건 하~~~.〉
〈속이 시원하네요. 쓸려버립니다. 피바다! 불바다!〉
한타력에서 압도 당한다.
그 EDC가.
LPL팬들 입장에서는 믿어지지 않는다.
-좆발리네……
-에혀, 그러면 그렇지
-또 한국한테 지는 거야? 익숙한 광경이네
-Royal이 나갔으면 이겼긔 ㅠㅠ
믿고 싶지가 않은 광경이다.
이번에는 엄청난 자신감이 있었다.
그도 그럴게, 돈을 쏟아 부었으니까.
무엇보다 자국 리그의 경기력이 치솟았다.
스프링 시즌은 가히 용담호혈이었다.
그렇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EDC의 밴픽도 훌륭했거든요. 근데…… 처음부터 단추가 꼬여버리니까!!〉
맞서 싸워줬을 때의 이야기.
김서준 해설이 경기의 구도를 되짚는다.
이미 SKY T1의 승리로 끝나고 하이라이트 장면이 송출된다.
〈라인 스왑 의도를 읽고 영리하게 받아쳤어요. 이후로는 게임이 일사천리죠.〉
〈밴픽에서도, 인게임 플레이에서도 SKY T1이 한 수 위! 모 메이커의 침대처럼 편안~한 느낌이었습니다.〉
중국팬들은 알지 못할 편안함이다.
실제 촉각으로도, 경기 감상도 말이다.
분명 전력 차이는 비슷해 보였는데 왜?
같은 어른, 같은 체급이라도 기술이 다르다.
격투기의 숙련자와 비숙련자의 매치였다.
마치 그런 느낌이 드는 경기 내용이었다.
"나니ㅣㅣㅣㅣㅣㅣㅣㅣㅣㅣㅣㅣ."
일련의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EDC의 코치 Let the Killing begin씨.
놀라 자빠져도 결과는 변하지 않는다.
"이 몸, 졌다? 받아들일 수 없다!"
"코치님 죄송합니다."
"꾸웨에엑……."
경기를 지고 피드백이 진행된다.
EDC의 숙소 내 분위기가 침울하다.
애처로운 알파카의 울음소리가 상황을 방증한다.
체급적으로 밀리지 않는다.
승리로 나아가는 길도 명확히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맥을 못 쓰고 패배한 이유.
'전략에 깊이가 없어, 디테일이 부족해.'
어른과 아이.
체급을 만드는 것만으로도 웬만큼은 통한다.
아니, 정규 시즌까지는 찜 쪄 먹을 수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강팀이 될지언정 최고의 팀은 될 수 없다.
그 마지막 피스를 감독 스스로는 절대 채우지 못한다.
"라인 스왑 실패했으면 그냥 파밍을 하지. 왜 적 정글에 들어가!"
"고멘나사이."
"꾸웨에엑……."
노발대발 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닌 것이다.
선수 메이킹형 코칭 방식이 가진 한계다.
'게다가 본인 스스로 자뻑이 개쩔잖아.'
보통 그런 사람들은 에고가 엄청 세다.
팀을 만들어 성적까지 내다 보니 자신이 맞다는 '확신'을 얻는다.
예로부터 자신감과 똥고집은 한 끗 차이다.
이렇듯 중요한 무대.
세심한 전략이 필요한 자리.
그런 곳에서 '내가 만든 완벽한 팀'으로 곧이곧대로 부딪히니 결과는 불보듯 뻔하다.
"창민아 니가 말 좀 해봐. 얘네 아직도 정신 못 차렸어. 꾸웩꾸웩밖에 안 한다니까?"
"원래 알파카는 꾸웩 하고 울잖아요."
선수 입장에서는 그냥 슬프다.
알파카의 두터운 속눈썹이 똘망똘망 젖어있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근데 선수가 뭘 알겠냐고.'
선수가 가진 지식이 1이고, 감독이 3이라면, 전문 코치는 10 이상이다.
보이는 시야의 단위가 다르다.
이것을 인정 잘 안 해준다.
다른 사람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는다.
이 에고이스트 새끼들.
알고 있기 때문에 특별히 답답하지는 않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내가 만약에 그런 감독이 있는 팀의 코치로 들어가면 딱 잘라서 말할 거야. 감독 귀싸대기 때릴 수 있는 권한 주세요라고.'
조금 심할 수도 있지만 그 정도 안 하면 또라이들은 컨트롤이 안된다.
아니, 컨트롤은 못할지언정 발언권과 억제력은 필수다.
이게 딱히 실례인 것도 아니다.
그런 양반들을 잘 알아서 하는 말이다.
귀싸대기를 때린다고? 정말 재밌는 친구인데?
어떤 상황이 와야 귀싸대기를 맞는지 시뮬레이션 해봤어. 와, 빨리 맞고 싶다!
진심으로 이런 소리를 할 사람들이다.
안타깝게도 현재 상황에서는 허락 받지 못했다.
흥분한 사람에게 이성적인 대화가 통할 리 없다.
"꾸웨에엑!"
"그만 짖으라고! 나, 화남."
흥분한 알파카도 마찬가지다.
선수가 멘탈 터지면 감독이 달래줘야 하는데 같이 성이 나있으니 큰 무대에서 약할 수밖에 없다.
전략적인 관점 이외에도 필연적인 고질점을 가진다.
결국은 무너지는 것이다.
무너질 수밖에 없는 모래성이다.
애초부터 이렇게 되리란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기본기 하나는 탄탄해.'
제대로 굴리기만 한다면 그 누가 적이라도 이길 수 있다.
이를 해낼 수 있는 두뇌가 여기에 있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권한.
만약 레오파드가 감독이었다면 힘들었을 것이다.
워낙 똥고집이라 정말 귀싸대기 한 방이 절실하다.
현재 시점에서는 감독이 아닌 코치이기 때문에 상관없다.
"감독님, 제가 이전 경기에 대한 의견이 있는데 말씀드려도 될까요?"
"상관은 없지만……, 너도 혹시 커뮤니티 좋아하니? 혹은 자작 소설 같은 거 써?"
"커뮤니티는 신경 안 씁니다. 자작 소설은 취미로 삼은 적 없어요."
"그래애?"
반색을 하신다.
EDC의 헤드 코치, 감독.
레오파드에게 꽤나 휘둘리며 사신 모양이다.
'이성적으로 대화가 통하는 상대가 있다는 건 서로 좋아.'
감독의 마음에 드는 것.
그리고 내 뜻대로 구슬리는 것.
그렇게 어렵다고 볼 일은 아니다.
전략을 짜는 것도 마찬가지.
EDC의 패인은 여러가지 있지만 가장 큰 건 하나다.
테이커가 아닌 하드훈이 출전할 걸 예상하지 못했다.
'성향이 다르다는 걸 감안해서 밴픽과 세부 전략을 짜면 되는 건데…….'
간만에 주특기를 발휘할 기회다.
선수로서의 삶도 좋지만, 코치로서의 나도 포기하기 싫다.
조금 들뜬 기분으로 머리를 굴리기 직전.
"감독님, 저 드릴 말씀이……."
"궆 선수가 문제가 생겼다고 합니다."
EDC의 매니저가 달려온다.
사색이 된 얼굴로 헐레벌떡 중국말로 설명을 한다.
이를 통역이 감독에게 전달하고 있다.
"허리가 불편하다고, 그리고 경기 집중도 잘 안된다고 합니다."
"그래요? 진통제라도 처방해 달라고 해야겠네."
최대한 완곡하게 말이다.
하지만 나는 필터링 없이 알아 듣고 있다.
그 내용이 그리 가벼운 사안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여러모로 개인적인 문제가 심각한 선수이긴 했지.'
산 넘어 산.
해결해야 할 건 팀적인 것만이 아니었다.
프로팀.
운영의 난점은 비단 게임 내에서의 일만이 아니다.
'선수들 관리도 해야 하고, 다른 것들도 있고.'
게임 외적인 문제도 많이 터진다.
솔직히 그런 건 코치는 잘 모른다.
프론트나 감독이 해줘야 할 부분이다.
그렇게 뺑소니를 치는 게 편하다.
뭐, 못하는 걸 어떡해.
잘하는 사람들이 알아서 하는 거지.
'그런데 이번 건 아니야.'
EDC의 숙소 안.
내부 분위기가 침체돼있다.
딱히 알파카의 단말마가 들려와서는 아니다.
"저번에도 말씀 드렸던 것 같은데 힘들어서……."
"많이 힘들어? MSI 그렇게 오래 남은 건 아니거든?"
"죄송합니다 감독님."
EDC의 에이스 선수 중 한 명.
알파카와 쌍벽을 이루는 궆이 허리 통증을 호소한다.
부상은 당연히 경기력과 연습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그런 선수였지.'
궆 선수에 대해서는 기억한다.
허리 통증과 기타 개인적인 사정.
그로 인해 은퇴를 하게 된 예외적인 케이스다.
그렇게 특이한 일은 아니다.
세간에 발표가 안돼서 그렇지.
대부분의 선수들이 자잘한 부상은 안고 산다.
그래도 웬만하면 참는다.
이것저것 치료를 병행하며 말이다.
경기력 저하가 올 때까지는 그럭저럭 해먹는데.
"병원에 가면 되나?"
"일단, 저번에 조치 취했다시피 물리 치료는 하고 있습니다. 수술이 아닌 이상 더 할 수 있는 건 없어요."
"그래요? 어쩌지……."
특별히 심한 사람도 있는 법이다.
감독과 매니저&통역의 대화.
아픈 걸 참으면서 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용납돼서도 안되는 일이고.'
스포츠 업계에는 비일비재 하다.
아픈 선수 혹사시키는 일이.
e스포츠 업계에도 없는 건 아니지만 경우가 다르기도 하다.
아니, 앉아서 하는 건데 뭐.
궆 선수도 그 정도는 알고 있다.
한 일주일만 더 뛰면 되는 걸 본인 스스로도 아쉽다고 느낀다.
"허리도 허리인데 세팅도 잘 안되고 컨디션이 너무 나빠서……, 제가 안 뛰는 게 차라리 날 것 같아요. 이번 경기도 그렇고 죄송합니다."
"그, 그렇구나……. 괜찮아. 편히 쉬어."
죄송하면 뛰어 달라고!
감독의 마음속 외침이 들리는 듯하다.
부속도 아니고 메인격인 선수가 빠지면 팀 자체의 근간이 흔들린다.
"어쩌지?"
"유 선수가 뛸 수 있긴 합니다. 로스터 등록은 해뒀어요."
"차이가 너무 심하잖아. 갓직히……."
이해하는 것과는 별개다.
야속하다는 감정이 안 들 수가 없다.
단체 생활이라는 게 이런 아이러니한 일이 반드시 생긴다.
'허리 부상에, 세팅 강박증에…….'
감독이 이해해줘야 하는지.
궆 선수가 극복을 해야 하는지.
사람마다 관점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어느 쪽도 틀리지는 않다고 본다.
한 가지 확실한 결국 어쩔 수가 없다.
선수 본인이 경기를 못하겠다는데 뭐 어떡해.
프론트나 감독이 애쓴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프론트나 감독은 말이다.
코치이며 선수였던 나만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감독님,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는데요."
"지금? 바쁜데? 나중에 하면 안될까?"
"궆 선수 문제 해결할 수 있습니다."
"아니…… 어?! 진짜로?!!"
딱히 못할 것도 없는 일이다.
* * *
허리 통증.
그리 드물지도 않다.
거의 대부분의 프로게이머들이 달고 사는 고질병이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자기 관리.
궆 선수는 예외는 커녕 굉장히 일반적인 케이스다.
'진짜 솔직히 말하면 가장 큰 문제는 역시 비만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