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좀 빼라고.
만병의 근원이 살이야!
하지만 과연 주위 사람들이 말을 안 했을까?
모르긴 몰라도 최소 한 번씩은 건드렸을 것이다.
원래 살찐 사람들이 그런 말 많이 듣는다.
고막 떨어질 때까지 말이다.
본인 스스로도 절대 모를 리 없다.
그렇게 스트레스 받으면 먹게 돼있다.
악순환이 자연스럽게 반복되는 구조다.
'그리고 선수는 원래 스트레스 많이 받아.'
성격이 민감하다면 더더욱이다.
안타깝게도 정확히 이에 해당한다.
당장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살은 둘째 치고, 장비 부분은 신경 쓸 수 있는 거잖아요?"
"장비? 장비는 딱히……, 노후화된 게 없는데?"
나머지 한 가지.
다름 아닌 장비다.
숙소 내부를 둘러 보는 것만으로도 문제점이 눈에 띈다.
'보통 신경을 잘 안 써.'
프로게이머들은 무슨 장비를 쓸까?
일반 유저들은 환상을 가질지 모른다.
결론부터 말하면 선수들도 별로 아는 거 없다.
그냥 손에 잡히는 거, 추천 받는 거 위주로 쓴다.
관련 시장도 선수보다 소비자에 포커싱 돼있다.
그러다 보니 흔히 간과되는 사실이다.
"게이밍 의자가요 허리에 진짜 안 좋아요."
"어, 왜? 편하지 않아?"
맛있는 것과 몸에 좋은 것은 다르다.
마찬가지로, 편한 것과 허리에 좋은 것도 다르다.
'잠깐 앉을 때는 편해도, 장시간 앉으면 허리에 무리가 가는 구조라.'
어, 게이밍 의자인데?
의아할 수도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그 '게이밍'이라는 개념에 대해 고찰을 해봐야 한다.
선수가 하는 게임이 아니라 일반 유저가 하는 게임이다.
하루에 한두 시간 스트레스 풀이로 잠깐 하는 것.
딱 짧은 시간에 최적화된 편안함을 제공한다.
"저희 선수들은 못해도 8시간 이상은 앉잖아요."
"많이 하는 선수들은 12시간도 가볍게 넘기지. 나 때는 말이야……."
Latte is horse.
스타판 출신인 모양이다.
확실히 옛날에는 지나칠 정도로 선수를 갈기는 했다.
'하루에 17시간 연습시키고 그랬다니까.'
그건 좀 극단적인 경우다.
하지만 최근도 그리 다르지 않다.
결국은 10시간 가까이 의자에 앉아서 산다.
"인체공학적인 의자를 쓰면 많이 나아져요."
"그래? 근데 게이밍 의자가 아닌 다른 걸 쓰면 게임에 방해되거나 하진 않을까?"
"그럴 리가 없잖아요……."
「Gaming Chair」
공격력: +20
게임시 집중력을 상승시켜 줍니다!
이런 만화나 게임에서 나올 법한 특수 효과가 현실에 실재할 리 없다.
물론 게이밍 의자가 편한 것은 사실이다.
'시디즈 이런 거 앉아보면 불편하잖아.'
몸에 익기 전까지는 딱딱하게 느껴진다.
익은 후에도 게이밍 의자에 비하면 좀.
선수 컨디션에 다소 영향을 주겠지만.
"그런 거 말고 더 좋은 의자도 있어요."
"그런데 우리가 게이밍 업체 후원을 받거든. 너 혹시 EDC가 EDC Gaming인 건 알고 있니?"
"……."
스폰서의 심기에도 다소 영향을 주겠지만.
케이스가 케이스인 만큼 배려해야 한다.
'비싼 의자를 쓰면 안락함과 허리 두 가지를 다 잡을 수 있어.'
그냥 대놓고 돈지랄이다.
그 돈지랄.
절실하게 필요한 순간에 한다면 약이 된다.
수많은 프로 선수들이 게이밍 의자를 쓴다.
수많은 프로 선수들이 만성 허리 통증을 호소한다.
적당히 늙은 나이도 아니고 파릇파릇한 친구들이 말이다.
결코 우연이 아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의자가 비싸면 얼마나 비싸냐고 생각할 수 있는데.
"가격은 한 이 정도 잡아야 하긴 해요."
"뭐……? 단위가 좀 이상하지 않아??"
최소 100.
비싼 건 500도 넘는다.
어처구니가 없을 수 있지만 거짓이나 과장이 아니다.
'그리고 비싸다고 생각할 것만도 아니야.'
관점을 조금만 바꿔보자.
하루에 10시간 가까이 생활하는 공간이다.
자세를 조금 교정해주는 것만으로도 장기적인 영향이 대단하다.
"……라고 침대 업체에서 하는 광고 한 번쯤은 들어보셨죠?"
"방문 판매하는 사람들한테 귀 따갑게 들었지."
"의자라고 다를 게 있을까요? 심지어 저희 선수들은 침대보다 더 오래 앉아있는데."
우리나라 같은 경우 의자에 대해 회의적이다.
의자를 굳이 비싼 걸 써야 돼?
하지만 유명 글로벌 기업들 보면 회사의 기본 의자가 다 엄청나게 비싸다.
그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는 것이다.
허리가 괜찮은 사람이면 모를까.
아픈 사람이고, 오래 앉는 직업이라면 돈 아까운 걸 걱정할 때가 아니다.
"어쩔 수 없지. 상황이 상황이니."
"예, 일단 제 의견은 그래요."
"허먼 밀러 사면 되는 거지? 그거 들어본 적 있거든."
의자계의 롤렉스라고 보면 된다.
의자를 잘 모르는 사람들도 한 번씩은 들어본다.
그런데 롤렉스가 그렇듯, 알고 보면 더 좋은 의자들이 많다.
'매장 가서 한 번 앉아봐야 돼.'
꼭 비싸다고 좋은 게 아니라, 개인마다 잘 맞는 것이 있다.
물론 이는 장기적인 것이다.
당장 허리가 짜잔~! 하고 완치될 리 없다.
알고서 하는 소리다.
궆 선수가 가진 문제.
사실 허리는 그렇게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확실히 의자가……, 오래 앉으면 불편하다고 느끼긴 했어요. 근데 문제가 허리만이 아니라서……."
"그래? 우리가 도움을 줄 순 없어?"
"일단 좀 쉬어야 될 것 같아요."
감독이 이야기를 건네자 받아들인다.
하지만 세컨드 트러블.
컨디션 난조와 세팅 강박증이 남아있다.
'쉬긴 뭘 셔. 쉰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닌데.'
정말 여러가지가 꼬이고 꼬였다.
뭉친 실타래처럼 답이 보이지 않는다.
반대로 말하면 결국 실은 하나라는 소리다.
허리 통증도, 컨디션도, 세팅 강박증도 마찬가지다.
그냥 게임이 마음처럼 안되는 거다.
그런 상황에서 쉰다?
더 안된다.
자신감이 떨어진다.
그 자신감을 보충하기 위해 컨디션과 세팅에 얽매인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실타래 문제의 해답은 자르는 것이었다.
"궆 선수, 실례가 아니라면 잠깐 본인 책상에 앉아주실 수 있으세요?"
"잠깐이면 뭐……, 네."
선수의 심정은 선수가 가장 잘 안다.
세팅이 어떤 부분이 마음에 안 드는지.
자세와 손의 크기, 시선의 높낮이 등을 보면 대충 입감이 간다.
"혹시 마우스가 조금 더 작았으면 하고 생각한 적 없어요?"
"조금……, 예."
"키보드는 더 자연스럽게 눌렸으면 좋겠죠? 그러면서 키감은 남아있고."
흔히 이런 말이 있다.
장인은 도구를 가리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개씹소리라고 생각하는 말이다.
'장인일수록 더 가려. 그런 사람들이 실제로 있고.'
e스포츠로 한정하지 않으면 궆 선수처럼 민감한 사람들이 꽤 있다.
내가 관리했던 선수들 중에도 있었다.
물론 이 정도로 심하진 않았다.
하지만 심한 사람.
더 세심하게 관리하는 게 규칙 위반이냐?
묻는다면 당연히 아니다.
장비에 돈을 바르지 말라는 룰은 없다.
"그 정도만 고쳐져도 한결 나을 것 같긴 해요."
"아니요. 안돼요. 솔직히 더 있죠?"
"네??"
"그게 정말로 최선이에요? 더 욕심 낼 수 없어요? 여기 마우스 귀퉁이 잘라버리고 싶다던가."
"그건 좀……, 뇌절 아니에요?"
한 발 더 나아간다.
사실 말이 안되는 일이다.
수많은 모델들 중에서 고르고 골라도 수백에서 수천 가지 정도다.
'그러니까 대충 만족하려고 하는 거지.'
만족해서는 안된다.
만족하는 순간 또 세팅 강박증이 재발하게 된다.
특이 케이스의 선수를 관리하려면, 구단도 특이 케이스의 대응을 해야 한다.
선수가 쓰고 있는 개인 장비.
아무리 오래 쓰고, 잘 써도 찜찜한 부분이 있다.
그런 부분을 갈아버리고, 소재도 좋은 걸 써서 몸에 딱 맞게 만든다.
선수 스스로는 바라기가 힘들다.
이건 좀 너무 징징대는 거 아닌가…….
스케일이 너무 크다 보니 애초에 그런 생각을 떠올리지도 못한다.
"특별 주문하죠. 맞춤형 제작해 달라고 해요."
"뭐? 아니, 창민아…….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너무 나갔지."
지켜보던 감독이 어이가 없다는 듯 말해온다.
보급형 모델도 양산을 하니까 적게는 수만원, 많게는 수십 만원인 거지.
하나를 만들면 얼마나 들지 상상도 안 간다.
내 말은, 그걸 하라는 소리다.
'쓸데없는데 쓰는 게 돈지랄인 거고, 이런 건 투자라고 불러.'
선택의 시간이다.
궆 선수가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지.
결정하는 건 내가 아닌 감독이 해야 할 역할이다.
"다 좋다 이거야. 방법 자체는 동의해. 근데 그걸 누가 만들어. 그것도 이 짧은 MSI 기간 내에."
"누구긴요. 정해져 있잖아요."
"설마 너……."
EDC Gaming.
게이밍 업체다.
스케일이 조금 많이 커진다.
내 건의가 구단 상층부에 알려졌다.
그리고 최상층, 네이밍 스폰서인 EDC측까지 말이다.
하루이틀 걸릴 사안이 아니다.
빠르게 전달이 돼도 받아들일지 의문이다.
워낙 전대미문, 존재한 적이 있을 리가 만무한 사태다.
어찌저찌 받아들여도 문제다.
예산 책정, 인원 배분, 시간 소요…….
일이 진행되는데 얼마나 걸릴지 짐작조차 안 간다.
"고생이 많으십니다. 플로리다라서 굉장히 오래 걸릴 줄 알았는데……."
"사장님이 전용기를 임대해 주셨습니다."
"저,전용기요? 하하……"
탤러해시 국제공항.
이야기가 있고, 정확히 15시간 걸렸다.
베이징-플로리다가 16시간 넘게 걸린다는 걸 생각하면 딜레이가 거의 없다시피 했다.
EDC Gaming의 수석 디자이너들이 한 걸음에 날아왔다.
일이 일사천리를 넘어 시간을 왜곡하고 있다.
그 정도로 어처구니없는 대응 속도다.
'빠르구만.'
어느샌가 자연스럽게 동행하게 되었다.
EDC의 멤버 한 명처럼 말이다.
감독은 땀을 뻘뻘 흘리며 당황하는 눈치다.
이 정도로 판이 커지다니?
된 건 좋은데, 이후의 뒤처리가 문제다.
책임자의 입장에서 머리가 아픈 수준이 아닐 것이다.
"그렇게 이렇게……, 해도 되는 거에요?"
"위에서 지시가 떨어졌습니다. 저희는 다른 건 모릅니다."
"하하 네……. 아, 알겠습니다. 바로 안내할까요?"
"예."
무뚝뚝한 언사.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감독은 당황스러울지 몰라도 나는 예상하고 있었다.
'딱히 이상할 것도 없어.'
중국이다.
국가 대항전을 치르고 있다.
이 두 가지면 추론을 할 합당한 근거가 마련된다.
심지어 초-비상 사태다.
SKY T1에게 대패.
이를 뒤집을 한 수가 있다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일이 어쩌다가 진짜 어쩌다가 진짜……. 아 모르겠다, 모르겠어. 이래도 되는 거 맞는 거겠지?"
정신머리가 떠나가 버린 감독의 모습이 안쓰럽긴 하다.
옆에서 듣고 있자니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와~ 이게 이렇게 되네. 재밌는데?"
"너는 그런 말이 나와 지금?"
"일상에 자극이 없으면 죽는 병에 걸렸습니다."
"하…… 말을 말자. 진짜."
레오파드 코치가 한 소절 얹는다.
안쓰럽기를 넘어 불쌍할 지경이긴 하지만.
'괜찮아. 뭐, 별 일 있겠어.'
나라고 아무런 생각 없이 일을 저지른 게 아니다.
내 건의인 만큼, 오해가 없도록 설명도 직접 했다.
《이야기는 들었다. 필요성도 인지했다. 하지만 비용이 얼마나 들 줄 아느냐?》
《안다. EDC측에도 나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궆을 위한 완벽한 세팅이다.
천문학적인 수준까진 아니더라도 억 단위는 가볍게 깨진다.
하지만 기업의 입장에서는 생각보다 별 금액이 아니다.
'그걸로 비즈니스가 된다는 전제 하에.'
선수 개인의 전용 장비로 어떻게?
선수 개인의 전용 장비이기 때문이다.
《MSI를 우승할 것이다. 중국 최초의 국제 대회 우승이다.》
《인지하고 있다.》
《부상을 딛고 일어난 궆, 프런트의 전폭적인 지원. 이를 만들어낸 EDC의 장비.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다.》
《……알았다. 조금만 기다려라. 내가 확답할 사안은 아니다.》
'중국'에 자연스럽게 힘을 주었다.
국뽕이 그 어느 곳보다 잘 먹히는 나라다.
1억 명의 LPL팬들이 주시하는 국제 무대면 더더욱.
'돈냄새가 솔솔 나잖아.'
대회에서 승리한다?
EDC 장비가 날개 돋친 듯 팔릴 거라는 건 불보듯 뻔하다.